--> 토마스 에디슨 !! 그는 지구상에서 가장 위대한 발명가임을 누구나 알고 있다. 나 역시도 그를 그런 정도로만 생각해 왔다. 하지만 그의 노력, 열정, 집념을 되새겨볼 때 이제는 내가 가장 존경해야 될 한 사람으로 영원히 기억하고 싶으며 한달여 동안 그의 전기를 읽고 간단히 정리해 본다.

* 에디슨 (Edison, Thomas Alva ; 미국의 발명가)


천재는 1%의 영감과 99%의 노력이다.
에디슨은 84년 생애 동안 무려 1천93개의 발명품을 남겼으며, 기록한 아이디어 노트만 해도 3천4백권이나 된다. 하루 20시간을 연구에 몰두했고 백열전구에 알맞은 필라멘트를 구하기 위해 6천여 종의 식물을 탄소처리할 만큼 열성을 보였다.


▶ 에디슨의 일화

토마스 에디슨은 1000종 이상을 발명했다. 이 많은 발명을 위해서 에디슨은 수백만번의 실패를 거듭했다.
에디슨은 우리가 현재 사용하고 있는 전구를 완성하기 위해 9,999번이나 실패를 했다.
한 친구가 "자네는 실패를 1만번 되풀이할 작정인가." 라고 물었다.
그러자 에디슨은 "나는 실패를 거듭한 게 아니야. 그동안 전구를 발명하지 않는 법을 9,999번 발견했을 뿐이야." 라고 대답했다.

에디슨은 만년에도 매일 16시간 일했다. 그는 자기가 유별난 체질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게으르다고 생각하였다.

그는 사람들이 한정된 인생의 귀중한 시간을 너무나도 많이 수면으로 낭비하고 있다고 입이 마르도록 안타까워했다.

또한 그는 시간을 아끼기 위해 극히 작은 양의 식사를 섭취했으며, 다른 사람에게도 식사를 줄이도록 하라고 권유했다.

에디슨은 84년 생애 동안 무려 1천93개의 발명품을 남겼으며, 기록한 아이디어 노트만 해도 3천4백권이나 된다.

하루 20시간을 연구에 몰두했고 백열전구에 알맞은 필라멘트를 구하기 위해 6천여 종의 식물을 탄소처리할 만큼 열성을 보였다.

에디슨은 발명가의 일 외에도 또 하나 전념 한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심령의 세게에 대한 연구였다.

초능력의 세계를 믿었던 그는 이 세계를 떠난 영혼의 모습이나 목소리를 기록하고 교신하는 목적의 기계를 만들기 위해 몰래 연구를 했다고 한다.


▶ 평생을 노력한 99% 노력의 천재!

'천재란 1%의 영감과 99%의 땀이다' 라는 그의 일생 동안의 신조는 지금까지도 잘 알려있다.

대학강의를 경멸했고 보통교육에 관해서도 현재의 시스템은 두뇌를 하나의 틀에 끼워 넣는다. 독창적인 사고가 길러질 수 없다. 중요한 것은 물건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는 것이다>라고 비판하였다.

만년에는 <나는 발명을 계속할 돈을 손에 넣기 위해 항상 발명하는 것이다>라고 술회하여 끊임없이 창조 활동을 계속하였던 끈질긴 발명가의 심경을 엿보게 한다.
밀란에 있는 그의 생가는 사적이 되었고, 미시간주 디어본으로 옮긴 멘로파크실험실과 웨스트오렌지실험실은 각각 박물관이 되었다.


▶에디슨의 연표

1847년 --- 2월 11일 오전3시 미국 오하이오주의 밀란에서 태어났다.
1854년 7세 --- 에디슨 일가는 포트휴론으로 옮기다.
1856년 9세 --- 학교에서 저능아라고 해서 국민학교를 중도(입학 후 3개월)에서 퇴학하다.
1859년 12세 --- 그랜드 트렁크 철도의 신문팔이 소년으로 돌벌며 공부하다.
1862년 15세 --- 열차 안에서 신문을 발행하다. 열차 안에 화재를 일으키다. 마운트 클레멘스 역장 아들을 위기에서 구해내다. 이 고장에 사설 전신국을 열다.
1863년 16세 --- 마운트 클레멘스 역의 전신기사 견습으로 일하다.
1864년 17세 --- 이 해부터 4년간, 전신기사로서 미국 중부와 서부지방을 방랑하다.
1868년 21세 --- 투표기록기를 발명해 내다.(이것으로 처음으로 특허를 얻다.)
1869년 22세 --- 뉴욕으로 가다. 금시세 표시기 회사의 지사장이 되다. 독립하여 포프-에디슨 전기회사를 설립하다.
1870년 23세 --- 주식(증권) 표시기를 발명하고, 뉴욕에 연구소와 공장을 세우다.
1871년 24세 --- 어머니 낸시가 세상을 떠나다. 이 해에 타이프라이터를 발명 또한 인자(印字)전신기를 발명해 내다.
1872년 25세 --- 2중 전신기를 발명하다.
1873년 26세 --- 메리 스틸웰 양과 결혼하다.
1874년 27세 --- 4중 전신기를 발명하다.
1876년 29세 --- 멘로파크에 발명 연구소를 짓고서 그곳으로 옮기다. 탄소 송화기에 의한 전화를 발명하다.

*참고: 전화는 벨이 발명했다지만, 실용적인 것은 에디슨의 이 탄소송화기가 주류를 이루도록 사업적으로 성공했다.

1877년 30세 --- 축음기를 발명하다.
1878년 31세 --- 전등의 발명에 착수하다.
1879년 32세 --- 10월 21일, 처음으로 백열전등을 발명하다.
1880년 33세 --- 신식 발전기 및 전등의 부속품을 발명하다. 하늘을 나는 헬리콥터와 비슷한 것을 연구하고 그 설계도를 만들어 내다.
1881년 34세 --- 멘로파크 연구소 내에 있는 빈 터에서 전차의 연구를 하다.
1882년 35세 --- 뉴욕시에 처음으로 전등을 켜다.
1884년 37세 --- 메리 부인이 죽다. [에디슨 효과]의 발견.
1885년 39세 --- 무선전신을 발명하다.
1886년 39세 --- 마이너 밀러 양과 재혼을 하다.
1887년 40세 --- 연구소를 뉴우저어지주 웨스트 오랜지로 옮기다. 활동사진의 발명에 착수하다.
1890년 43세 --- 원반식 레코드의 연구를 하다.
1891년 44세 --- 활동사진을 발명하다. 파리 만국 박람회에 가다. 에디슨식 선광법에 의해서, 철광산을 경영.
1898년 51세 --- 철광산 사업에 실패. 시멘트 사업을 일으키다. 축전지의 발명에 착수하다.
1903년 56세 --- 축전지의 발명에 고심을 거듭하다.
1904년 57세 --- 축전지의 연구를 계속하여 그 실험 횟수가 이미 30,000회나 되풀이 되었으나, 아직 성공을 못했다.
1909년 62세 --- 10년 동안의 고생이 그 열매를 맺어 이 해에 겨우 알칼리 축전 지를 발명해 내다.
1910년 63세 --- 원반식 레코드를 발명하다.
1912년 65세 --- 무성 영화(키네토폰)를 발명하다.
1914년 67세 --- 전화 축음기 및 원반 축음기를 만들어 내다. 합성 페놀을 발명하여 그 공장을 설치하다.
7월,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다. 웨스트 오렌지 연구소가 화재로 불타다.
1915년 68세 --- 미합중국 해군 고문 위원회의 총재가 되다.
1917년 70세 --- 연구소의 일들은 조수들에게 맡기고 정부를 위해서 군사적 발명에 몰두하다.
1928년 81세 --- 잡초 속에서 고무 즙액을 뽑아내는데 성공.
1929년 82세 --- 에디슨 장학 자금 제도를 마련하다.
1930년 83세 --- 이해 겨울에 폐렴에 걸려서 후유증이 오래가 큰 병이 되다.
1931년 84세 --- 10월 18일, 글렌몬트의 자택에서 이 세상을 떠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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