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른 쌀을 담아 밥을 해보았다.

어두워지기 전에 먹거리를 준비한다.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어 보았다.

'니코스 카잔차키스' 정말 대단한 작가다.

어떻게 이렇게 글을 자유스럽게 구사할 수 있는 지...

그의 천재적인 표현에 감탄해본다.

맥주를 한 잔 하면서 읽으니 그 맛이 더욱 좋다.

 

 

 

 

 

 

 

 

 

 

 

 

 

 

 

 

 

 

 

 

 

고개를 들어 텐트 앞의 풍경을 이제야 세심히 바라보았다.

계곡에 온 것 처럼 물 흐르는 소리가 아주 그만이다.

물 소리,새 소리, 바람 소리.. 나는 이 세가지 소리가 있으면 그만이다.

 

 

 

 

 

 

 

 

 

 

 

 

 

 

 

 

 

 

 

5시가 넘어서 슬슬 쌀쌀해진다.

 

아직은 음력 3월이 아닌가?

 

근처에 아주 땔감이 쌓였다.

15분 정도 땔감을 주워왔더니 밤새 때도 남겠다.

캠핑과 모닥불, 정말 궁합이 제대로 맞는다.

삶에 찌든 힘겨움,고통,스트레스의 근심덩어리들을 이 모닥불속에 태워버린다.

 

혼자가 되니 외롭다는 생각도 든다.

이럴 때 아내가 있었다면,좋은 친구가 같이 있다면... 다 좋지만 이 외로움을 즐기기로 했다.

여행은 홀로 일 때가 가장 멋나다.

외롭고 힘든 가운데 삶의 성찰과 사색의 깊이에서 키다리 아저씨가 되는 거다.

그렇게 덕적도의 밤이 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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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업도 가는 길.

결론부터 말하자면 제주도 가기 보다 몇 배는 힘들다.

여기저기 많이 여행을 다녀봤지만 굴업도처럼 힘들게 여행 한 적은 없었다.

그 만큼 의미도 있고 남다른 추억을 간직했다.

여행자들이,캠핑자들이 가장 선호하고 멋지다는 그 곳으로 이제 떠나보자.

 

 

 

새벽 4시 10분,자동으로 눈이 떠졌다.

세수하고 간밤에 준비한 옷을 껴입고 사무실로 향했다.

사무실에 여행 준비물이 다 있기 때문이다.

하나 하나 다시 한 번 확인해보았다.

차로 가는 여행이 아니고 배로 가는 여행이기에 빠진 것이 전혀 없어야 한다.

 

모든 것을 준비하고 뺀질이 집사 어린양교회에 가서 계단청소를 깔끔하게 했다.

 

"주여~~ 뺀질하고 죄많은 저를 용서하소서...

주일까지 빼먹고 이렇게 여행을 떠납니다."

 

기도를 하고 청소를 마치고 떠나는 시간이 6시 30분이다...

 

 

자~~죄도 조금 회개했겠다. 이제 꿈에 그리던 굴업도 여행을 떠나보잖게...^^

 

 

 

 

 

 

 

 

 

 

 

 

 

 

 

 

 

 

7시10분, 연안두부 여객 터미널에 도착했다.

주위는 안개에 휩싸였다.

이 안개로 인하여 6시간을 기다릴 줄은 꿈에도 몰랐다.

 

애마를 주차했다.

하루에 만원,3일이면 3만원이다.

조금 아깝기는 했지만 투자해야지, 내 애마를 보살펴주는데..

방아머리는 주차비가 없어 참 좋았는데...

 

 

 

 

 

 

 

 

 

 

 

 

 

 

 

전날, 평촌 벼룩시장에서 노스페이스 모자를 15000원에 샀는 데 여행내내 효자 노릇을 했다.

지금 생각해도 판매하는 아저씨, 참 멋진 분이다.

 

 

"아저씨~~! 모자 5000원 깍아서 만 원에 안돼요?"  물었더니..

 

"가요~~ 가세요! 저기 건너편 노스페이스 매장에 가면 8만5원이요!!!"

 

벼락같이 소리를 지른신다. 이정도면 싼 데 왜 또 깍아달라는 말이냐는 말씀이다.

쾍~~~ 한 마디도 못했다. 그저 난 깍아달라고 한 마디 했을 뿐인데...

그래도 샀다. 거의 새 것이다.

여행내내 햇볕을 가려 줘 참 좋았다.

 

 

 

 

 

 

 

 

 

 

굴업도 가는 길은 대부도 방아머리와 여기 인천 여객터미널에서 가야 한다.

일단 덕적도로 가야 한다.

위의 운행정보에서 보면

8시 배가 대부 고속이다.

이거 타면 거의 완행열차 수준이다.

대이작도,승봉도,이작도 등등 몇 군데의 섬을 돌아서 돌아서 3시간 가까이 걸린다.

나도 처음에 뭣도 모르고 표를 구했는데 12100원이다.

싼 게 비지떡이다. 하지만 시간도 여유있고 천천히 가볼 사람이라면 한 번 타기도 좋겠다.

 

스마트,코리아나를 타고 가야 한다.

20900인가? 가격이 조금 부담스럽지만 한 시간이면 간다.

팁======

주위에 인천 사람이 있다면 표를 한 번 부탁해볼만 하다.

인천 시민은 반 값이다...

 

 

 

 

 

 

 

 

 

 

 

 

 

 

 

 

 

 

이곳에서 무려 6시간을 기다렸다.

안개가 걷히지를 않는 거라.

8시,9시를 지나니까 사람들이 짜증이 난다.

10시에 짙은 안개로 대기하라는 말에 사람들이 소리를 지르고 난리다.

나도 조금 짜증인 난다.

하지만 어쩌랴... 날씨가 협조를 안 하는 데...

 

바람이 불면 바람이 불어 걱정,안개가 끼면 안개가 끼어 걱정...

 

위화의 "영혼의 양식"을 읽으면서 마음을 다독였다.

 

 

11시를 넘고 12시를 넘어서 거의 폭발 직전이다....

사람들도 아주 참기 힘든가 보다.

밖을 보니 안개도 거의 걷였는데 우리가 보는 관점과 여객터미널에서 보는 관점과는 다른가보다..

 

정말 굴업도 가는 길 힘들구만....

 

 

 

 

오후 1시 20분 드디어 덕적도 가는 스마트호에 탑승했다.

아~~ 정말 섬여행 한 번 하기 힘들다.

 

1시간을 달려 덕적도로 향했다. 쾌속선이라 정말 무지하게 빨랐다.

 

 

 

 

 

 

 

 

 

 

 

 

 

 

 

 

 

 

 

 

 

 

 

 

그렇게 도착한 덕적도.

 

덕적바다역에 굴업도 가는 배를 물어보니

 

"오늘은 배편이 끊겼어요.벌써 다 가버렸지요.

갈려면 내일 오전 11시에 오시용~~!!"

 

헐....

정말 굴업도 가기 힘들다. 사랑 참 힘들다가 아니라 굴업도 가기 참 힘들다...

 

 

 

 

 

 

 

 

 

 

 

 

 

 

갈매기야~~

너는 내 마음을 아느냐?

끼욱~~ 끼욱~~ 우는 갈매기가

"아저씨~~ 열 받지 마시요.

여기 덕적도에서 하루 밤 자라는 계시요. 여기 덕적도도 좋으니까 재미있게 하루 쉬었다 가시요~~"

하는 것 같았다.

그래... 사는 게 다 그렇지. 여기라고 굴업도와 뭐 그리 다르겠냐..."

 

 

 

 

 

 

 

 

 

 

 

 

 

 

 

 

 

 

 

 

 

 

 

 

 

 

 

 

 

 

 

 

 

 

 

 

 

 

 

 

현 위치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범선 전망대 근처로 장소를 정했다.

가깝고 내일 움직이기도 편하겠다.

육안으로 보기에도 좋아 보였다.

바다가 훤히 보이고 주민들께 여쭤보니 좋단다.

 

그래서 배낭을 짊어지고 범선 전망대로 향했다...

 

 

 

 

 

 

 

 

 

 

 

 

 

 

 

 

 

 

 

 

 

 

 

 

 

 

 

 

 

 

 

 

 

 

내가 짊어지고 온 배낭과 텐트 장비들.

 

보기엔 얼마 안 되어 보여도 속에는 꽉 들어 있다.

캠핑에서는 사소한 것 하나가 없어도 불편하다.

하지만 불편도 해야지. 고생하려고 여행왔지. 집처럼 편하고 좋으면 그게 어디 여행인가?

 

 

 

 

일단 하룻밤을 묵을 텐트를 쳤다.

큰 텐트는 가져오기가 힘들어 작은 텐트를 저렴하게 하나 샀다.

자주 다니면 좋은 제품으로 하나 구비해야지...

자리 참 좋다...

바닥에 푹신하고 경관 또한 좋다.

더 좋은 것은  옆에 데크가 있다는 말씀이다...

 

 

 

텐트를 설치하고 침낭도 펼쳤다.

여기가 오늘은 내 집이다. 이곳에서 멋진 추억을 쌓아야지^^

"어느 곳에 있던지 내가 주인이다. 지금 있는 순간이 가장 행복한 날이다."  수처작주 입처개진이라...

 

 

 

 

 

 

 

 

음악과 카메라 등등

자잘한 것만 빼고 다 나열해보았다.

라면,소주,맥주 (버드와이저는 꼭 굴업도에서 먹기로 마음 먹었다.)

책은 (형제,그리스인 조르바) 삼겹살과 쭈구미 등등 많은 것을,꼭 필요한 것만 준비했다.

소주는 역시 이제 좀 자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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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월 2015-08-07 1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글을 읽는 내내 ㄴ웃음을 금치 못함 이 글을 읽고 웃지 않고 댓글 한자 안 남기는 사람도 웃기네요 아 ~~배 아퍼 주일을 지키고 떠날 것이니 하나님께서 노하셨네요
 

 

 

 

 

 

 

 

part6--- 아버지의 선물

 

 

 

 

 

아버지는 아들에게 무엇을 유산으로 남겨줘야하는가?

 

아버지에게 물질적으로 물려 받은 것이 없다.

왜려 가족에게 약간의 빚을 선물로 남겨주셨다.

지금 생각하니 너무도 감사하다.

세상이라는 이 거칠고 험난한 전쟁터에서 힘들게 배웠다.

포기하지 않는 집념의 깡다구 정신과 잡초처럼 자라 절대 포기하지 않는 의지를 스스로 배우게 해주셨다.

편한 삶과 기회와 물질을 남겨주셨다면 지금 이렇게 자수성가하여 살지 않았으리.

아버지는 선생이셨고 인생의 스승이셨다.

 

 

 

 

 

 

 

1

 

아버지는 말씀이 없으셨다.

같이 나무를 하거나 농사일을 할 때도 처음에 지시를 내리시곤 서로 일에 열중을 했다.

잘 했다 못했다.그런 말씀도 없었다.

 

국민학교 5학년 땐가 정자에서 놀다가 개울에 빠져 기절한 적이 있었다.

어떻게 아셨는지 깨었을 때는 아버지가 옆에 계셨다.

"쾐찮냐?"

한 마디 물어보시고는 앞장 서서 걸으셨다.

나는 뒤에 따라가면서 집에 가는 내내 대화가 없었다.

지금 생각하니 그것이 사랑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2

 

중학교 2학년 때

저녁 식사 중 어떤 이유에서인지 아버지께 혼나 도중에 밥도 다 먹지 못하고 작은방으로 온 적이 있었다.

1시간 후 방문이 열리고 킹라면이 방 안에 놓여 졌다.

아버지가 두고 가신 게다.

그 라면을 곤로에 맛나게 끓여먹었다.

그렇게 맛나는 라면은 먹어보지 못한 것 같다.

말씀이 없으셨지만 속정이 많은 분이셨다.

 

 

 

 

 3

 

1990년 늦 가을에 하루 휴가를 내고 군산에 갔었다.

아버지께서 형의 반강제적인 의사로 (아버지의 건강을 염려한 형의 진정어린 마음이란 것을 알고 있다)

고모와 아버지 형제들에게 그 많은 욕을 먹으며 요양원(정신치료와 알콜 중독 치료)에 아버지를 입원시켰다.

평일 날 연락도 없이 찾아간 아들을 반갑게 맞아주셨다.

"여기서 퇴원시켜달라. 힘들다." 그런 말씀을 전혀 하지 않았다.

아버지께서 주무시는 침상에서 이야기도 나누었다.

몇 분과 같은 쓰셨는데 좋은 분들 같아 보였다.

 

잔디가 푸르게 내려앉은 곳에서 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누는데 아버지는 그 누구도 원망하는 말씀은 안하셨다.

그저 밥도 잘 나오고 잘 지내니 걱정 말라고 하셨다.

"회사 가 봐야지...."

아버지와 많이 가까워진 것 같았다.

아버지와 아들 사이를 가깝다는 표현을 쓰는 게 어색하지만 솔직히 그렇게 느꼈다....

 

 

 

 

 

 

 

 

 

 

 

 

 

국제 시장은 볼거리 먹을 거리가 많았다.

부산이라는 도시.

우리 나라 제2의 도시 아닌가.

사람과 바다,고기와 갈매기,사투리와 짠내가 물씬 풍기는 부산.

이런 부산의 이미지는 누가 만들었는가?

 

 

 

 

 

 

 

 

 

 

 

 

 

 

 

 

 

 

 

 

 이 부산 당면이 나는 보기에도 좋았고 맛도 좋았다.

 

점심을 먹은지 얼마 안됐지만 한 그릇 먹어야지.

가격도 착하고 쭈구려 앉아서 먹는 맛,

이런 게 여행의 참재미지...

 

 

 

 

 

 

 

 

 

 

 

 

 

 

 

 

 

 

 

 

 

 

 

 

 

 

 

 

 

 

 

 

 

 

당면과 김밥과 오뎅의 절묘한 맛.

 

지금 생각해보니 맛있었다.

입안에 침이 가득고이는 것을 보니 말이다.

다음에 가면 시원한 맥주와 꼭 먹고 말테다.

 

여행의 행복을 배가 시키는 이런 맛집의 음식들.

누군가에게는 만드는 즐거움을,누군가에게는 먹는 즐거움을 선물하는 먹거리.

여행에서 나는 책에서 배우는 것보다 더 큰 가르침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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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5  [아버지의 선물]

 

 

 

 

나는 지금도 궁금하다.

아버지는 왜 외딴집으로 이사를 하셨을까?

지금으로 말하면 귀농이겠다.

앞에는 산과 물이,주위에 온통 보이는 것은 논과 밭과 나무들이 있는 곳으로 가신 이유가 무엇일까?

농사를 잘 짓는 분도 아니고 그렇다고 풍류를 즐기신 것도 아닌 것 같은 데 과연 아버지는 왜 산으로 가신 걸까?

(그래,맞겠다. 지금 해석해보니 풍류를 즐기신 게 분명하다.)

 

 

내 나이 7살 때, 마을과 1시간 홀로 떨어진 곳으로 이사를 갔다.

홀로 있는 집이다.

둑 바로 앞에 지어진 집. 방 2개와 거실,가축들이 사는 곳,축사,가장 끝에는 화장실.

 

냇물이 있는 70미터의 거리를 단 한번에 날아서 가는 오리들, 그 오리들이 저녁이 되면 누가 부르지 않았는데도 집을 찾아 오는 진풍경도 보았다. 여름이면 전날 쳐 놓은 그물에서 고기를 졸린 눈을 비벼가며 손실했다.

엄청난 홍수가 밀려오면 동생과 독대를 가지고 가서 한 주전자 가득 고기도 잡았다.

 

내 키 만큼 구덩이를 파서 심어놓은 그 곳에서 자라난 복숭아 나무,사과 나무.

그렇게 크면서 달고 맛난 복숭아를 먹어본 적이 없다.

 겨울이면 얼음배를 타기도 하고 망치로 잠든 고기를 때려 잡기도 했다.

가끔 산으로 한번도 잡지 못한 토끼를 잡으려 기를 쓴 적도 있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그 때 마다 눈물겹게 일한 것들은 이 지면에서 말을 아끼기로 하자.

지금 생각해보니 내가 귀촌을 선택하고 산으로 들어가려는 본능은 연어의 귀소본능과 비슷하다.

글을 쓰면서 생각해보니 아버지가 자식들에게 해 준 것이 참으로 많구나.

오랜 시간을 흘로 돌고 돌아서 이제야 그것을 감사히 느껴본다.

 

 

 

 

 

 

 

 

 

 

찬빈이가 둘째 날 가장 하고 싶은 일은 신세계 백화점 센텀시티를 구경하는 것이다.

그것도 센텀 시티에 자리 잡은 대형 찜질방.

정말 크고 좋긴 좋더라....

 

 

 

 

 

 

 

 

 

 

 

 

 

 

 

 

 

사우나를 마치고 지하 푸드코너에서 샤브샤브를 먹었다.

음식은 기대 이상이었다.

아주 맛났다.

음료도 맛났다.

 

 

 

 

 

 

 

 

 

 

 

 

 

 

 

 

 

 

 

 

 

 

 

 

 

 

 

 드디어 남포동에 도착했다.

 

영화  <국제시장>도 개봉해서 상영하고 있다.

남포동의 화려한 거리, 국제시장의 소박하고 오래된 흔적들.

쾐찮은 시간과 여행의 꺼리가 되겠어.

 

일단 먹이자.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했겠다.

먹을 때 행복한 우리 아들,그래 이제 진짜 부산 여행을 시작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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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4--아버지의 선물

 

 

나는 아버지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오해가 있을 수 있는 말인데

나는 아버지를 잘 모른다. 아니 알 수가 없었다.

나와 아버지는 25년이라는 세월동안  <아버지와 아들>로 분명 살았지만 제대로 아는 게 없다.

대화도 그렇게 많이 나누어 본 기억도 없다.

유일하게 가장 많이 대화를 해본 게 내 나이 19살,취업나간 그해 추석 당일  오후였다.

아버지와 백화수복 대두병을 나누어 마셨다. 아버지께서 어른으로 인정 해 주신것 같다. 군대에서 형이 보내 준 담배 3보루도 피우라고 주셨다. 그때 나눈 3시간여의 시간이 내 인생에서 가장 많은 대화의 시간이었다.

그 전이나 이후에 다시는 그런 긴 대화를 나누지 못했다.

 

 

어린 날 나의 기억에 아버지는 거의 술에 취한 모습이셨다.

그것도 하루내내 또는 주무시거나 술주정 하시는 모습이셨다.

(그런 아버지도 1년에 한 두번은 몇 주나 한달 정도 술을 일체 안 드셨다.지금 생각해보니 대단한 일이다.)

왜 그렇게 술을 많이 드셨는지 모르겠거니와 또 술 드시면 주무시지 않고 사람을 힘들게 하셨다.

늦은 저녁이나 새벽이면 아버지는 저 멀리에서부터 형제들의 이름을 부르고 오셨다

형제들이 부축을 하거나 니어카에 아버지를 태워 모시고 오는 게 일이었다.

새벽 12~2시 사이에 술을 받으로 먼 동네까지 가곤 했다.

공동묘지도 지나고 물도 건너고 비를 맞고 눈을 맞고 바람을 맞고 무서움과 싸우며 술을 받아왔다.

 

어릴적 나의 꿈과 목표는 정해졌다.

좋은 아버지,좋은 남편이 되는 게 나의 평생의 꿈과 목표가 되었다.

 

"아버지처럼 살기 싫었어" 가 아니고  "아버지와 다르게 살고 싶었어!"

 

아버지는 몸소 보여주셨다.

 

 

 

 

 

 

 

 

 

 

 

 

 

 

 

 

 

 

 

 

 

 

 

 

동장군이 기승을 부렸던 경기도의 날씨와 완전 다르게 부산은 따뜻하다.

푸근한 바람과 햇볕의 감촉이 여행의 기쁨을 배가 되게 한다.

그럼 우리 두 상남자가 왔는데....

 

 

 

 

 

 

 

 

 

 

 

 

 

 

 

 

 

 

 

 

 

 

 

 

2005APEC정상들이 다 모였다고 한다.

그들이 먹었던 음식과 반찬들.

 

 

 

 

 

 

 

 

 

 

 

 

 

 

 

 

 

하늘을 찌를 것 같은 마천루의 높은 빌딩들,

그보다 더 멋진 나의 아들과 내가 있다!

거대한 꿈과 부자 간의 사랑의 힘을 모아 사진을 담고 추억을 저장한다.

 

 

 

 

 

 

 

 

 

 

 

 

오랜 시간이 지나면 아들은 기억할 것이다.

얼마나 너를 사랑했는지,

얼마나 그 추억과 시간이 행복했는지,

또 얼마나 아버지가 자유로운 삶을 동경하며 멋지게 살고 싶었는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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