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과 응전을 배우기위하여 산으로간다. 
번들거리는 욕망으로 채워진 세상에서는 경쟁의식을 고취시켜 출세로 이어질지 몰라도 산은 낮아지는 자세를 기본으로 하기에 산을 지향한다.

 

세상에서는 소위 벤츠를 소유하고 운전기사가 차 문을 열어 줄 수 있다.
세상에서는  명품을 몇 억짜리로 몸을 호위하며 자신을 뽐낼 수 있다.
세상에서는  돈 이라는 숫자로 안되는 것이 거의 없는 세상이다.

 

산은 공평하다.
지름길도 없다.
걸어야한다.   오직 자신의 힘으로 한발 한발 내 딛어야한다.  누가 대신해 줄 수도 없다.
명품과 돈이 해결해 줄 수도 없다.  철저히  홀로이 개척해 나가야한다.
누구나 공평하게 할 수있는 위대한 자연의 게임...  그래서 나는 산이 좋다
세상의 온갖 사리탐욕과  변칙도 이 자연 앞에서만은 통용이 되지 않는다.

누구나 마음먹기가 힘들어서 그렇지  마음을 진하게 먹고 나면 행동으로 이어진다.

완벽하게 준비하면 나태해지는 마음이 들려하기에 산행에 꼭 필요한장비만 꾸리어  힘차게 도시를 벋어나본다.
산이 나를 부르고있었고  산을 그리워하고 있었기에 구례에 도착한 후 노고단산장까지는 일사천리다.     그리고 산장에서 밤을 보낸다...

2002년 8월14일.

간밤에 깊은 잠은 이루지 못했지만 산에서 맞는 새벽 공기는 상쾌하다.
아침을 재빠르게 지어먹고  등산화 끈을 질끈 동여맨 시간은 아침 6시를 살짝 넘어선 시간이다.
2002년 8 월과 9 월은 비밖에 오지 않았다,  싶을 정도로 비가 많이 왔었다 .. 아니다 다를까 ..
이 종주산행도 여전히 비로 시작한다.
우의를 갖춰입고 한걸음,한걸음 내 자신과의 싸움에  숭고한 지리산 어머니품으로 발걸음을 약진해본다.
빗줄기는 소나기를 방불케한다.
임걸령을 지나면서 등산화는 어느새 흠뻑젖고 비 내리고 바람부는 이 적막한 산행을 홀로이 걸어본다.
난 혼자가 아니다.

내 안에있는 또 하나의 나에게 묻고 대답해본다.
내가 지나온길, 내가 가야하는 길에 대하여...
내 삶의 지표를 세우는 이 산행에 끝없는 대화를 신청해본다.
나는 성공과 행복을 손 쉽게 얻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
피땀어린 노력도 없이 역경을 피해가면서 소중한 것을 얻으려는 도둑이 되고 싶지는않다.
그러한 안일과  무모한 자세는 실패와 좌절을 안겨줄 뿐이고 내 자신의 마음을 황폐하게 만들어 줄 뿐이다.
나는 노력한 만큼의 대가의 결실을 바랄뿐이다...
진정한 내 자신의 피와 땀의 댓가 만이다!
반야봉을 지나면서 빗줄기는 더욱 거세져서 몸과 장비를 모두 장악했다.
땀인지 비인지도 분간이 가지를 않는다.   온몸은 거의 젖은듯하다.
빗물에 몸이 더욱 젖자 이런 생각이든다.
약간은 기분좋은, 회심의 미소가 피식나온다.그럼!  이 정도는 되어야지 ... 최악의 조건.. 이정도는 되어야 극기훈련이라 할 수 있지!

 뱀사골대피소에서 처음으로 휴식을 취하며 물을 원없이 마셔본다.
역시 물이란 하느님이 주신 최고의 선물이다.

수통2개에 물을 가득채우고 장비를 다시금 정비해본다.
음료수가 보인다..
얼마나 할까 ... 하고 킨사이다를 하나 사본다.
"아저씨~ 얼마죠?"
"1000원인데요"
1000원이라...  원가가 200원이 채 안 되는 음료가 천원이라...
싸구나!!   그래 이것은 싼 음료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비싸다 할 수도있겠지...  하지만 이곳은 도시도 아니고 백화점도 아닌 곳이다.
이곳은 산이다.
이 음료수를 여기에까지 등짐지고 올라왔을 그 누군가를 생각해보자.
땀 뻘뻘흘리고  숨이 막히는 힘으로 가져왔을 그 누군가를 생각해보자.
비싸다는 생각보다는 이렇게 먹게금 해주는 배려에 감사해야 한다고 생각해본다.
언젠가 사업을하면 이렇게 경쟁력이 없는 사업을 한번 꼭 해보자... 하는 생각이든다.

 비는 멈추지않고 하염없이 오고있다.
온몸은 비에젖어 옷을 짜면서 걸어야할 정도이다.
체력이 상당히 떨어지기 시작한다.  사람을  본지도 어느덧 1시간여가 지난 듯하다.
방향감각도 흐려지고 쉬고만 싶어진다.  하지만 시작을 했으면 끝을 보아야 하는 것이  산행이다.
약해지는 마음이들면 난 소리내어 부르던지, 아니면 마음속으로 부르던지 노래를한다.
내가 가장 힘이들때면 부르는 노래들...
노래라는 것도 적극적이고 희망적인 노래가 나는 참으로 좋다.
조용필님의  " 꿈 "  ,  신성우님의 " 내일을 향해 " , 강산에님의 "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오르는 저 힘찬 연어들처럼..
내가 힘이들고 지칠 때면 불러보는 나의 마음을 잘 표현하는 노래들이다.
" 꿈"    은 막막한 내 마음을 표현하는데 이처럼 좋을 수 없다.
" 화려한 도시를 그리며 찿아 왔네. 그곳은 춥고도 험한곳,  빌딩 속을 헤메다 초라한 골목에서 뜨거운 눈물을 흘린다.저기 저별은 나의 마음알까  나의 꿈을 알까  슬퍼질땐 차라리 나홀로 울고싶어 ..."
이런 나의  나약한  마음을  " 내일을 향해 " 에서  자신감을 회복하고  "거꾸러 강을 거슬러오르는  저힘찬연어들처럼 "  난 또  힘을 얻어본다.

이 넓은 산에서 사람을 보기가 이렇듯이 힘이 드나? 시야가 10미터 앞도 제대로 보이지않는다.
그 좋다는 경치는 아예 볼 수도 없다.  산행의 즐거움은 눈으로 보는 것이 최고의 묘미이고 마음으로 느끼는 것이 큰 배움 이라는데...
몇시간을 사람을 보지 못하니,  문득 저 가까운 곳의 다람쥐가 나와 눈이 마주쳤다.
이 빗속에서 정확히 마주쳤는데  경계하는 눈빛이 전혀 없다.
나를 빤히 쳐다보는 녀석을 한참 보았다.
천진난만한 녀석의  눈빛의 귀여움에서 둘째아들 찬빈이 생각이 간절히난다.
눈이 굉장히 닮은듯하다...
뒤에서 의젓히 바라보는 녀석은  큰아들  설빈이겠지...
보고싶다...   따뜻한 너희들의 다정스런 눈빛이...   아빠는 고생을 사서 하는 것일까 ?

오후 3시 50분여경...!
벽소령 대피소에  드디어 도착한다.
연하천대피소에서 밥만 지어먹고  걸어온지  9시간만의 도착이다.
오늘의 목적지라 생각했었고, 죽어도 꼭 도착해야 한다고 믿었던 나의 오늘의 마침표...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라 힘들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다른이들처럼   나도  도착하였다하여 나도 기쁘지는 않았다.
나를 들뜨고 기쁘게 한 이유는 아침에 시작한 나의 한걸음이, 빗속을 뚫고 시작한 그 한걸음이, 힘들고 지쳤지만 쉬고싶었던 그 마음을 이겨낸 나의 마음이 기쁨이었다.
그 한걸음, 한걸음이 이곳 내가 원하는 벽소령대피소까지 오게 한 힘이 아닌가?
처음 한걸음과  이곳에 도착한 마지막 걸음 또한  똑같은 나의 발걸음 아니었던가?
하면 되지 않는가?  안될 이유는 그 어느 곳에도  없는 것이다...

 

 
산속의 밤은 깊어간다.
새옷으로 갈아입은 내 몸은 날아갈 것만 같고  이것저것넣고 끓인 찌개에 몇 사람이 둘러 앉는다.  각자 내놓은 여러 먹거리는 세상속보다 더욱 정감이 있는 안주거리다.
인심좋은 아저씨가 주시는 중국산 소주를 마셔본다.
속이 탈 것같은 짜릿함이 오늘 하루 빗속의 산행에 대한 보상을 해준다.크~~~~ 이맛이다.
얼큰한 찌개국물은 나를 더욱 자극하게 만들고 나는 줄어드는 술병을 감시하면서 한잔이라도 더 마셔보려고...   춥습니다..  감기가 오려고 그러나... 엄살을 부려본다.
그리고  남들보다 몇잔을 더 마셔본다.  나에겐 너무 큰 행복이다...

 
밤 하늘의 별을 볼 수 는없었다.
비는 하염없이 내리고있다...
벽소명월의  청아한 느낌은  내 마음속의 잔잔한 수면위에서 나를 손짓하고있다.
그 밤이 가도록 피곤한 내육체에 잠을 청하지않고  나는 생각해본다...
현재의 정확한 내 자신의 위치와 이 소중한 내 시간이 아까워 가지 못하도록 나는 붙들고 싶다...   이것은 내 자신과의 약속이다.
나는 미쳐야한다.  나 자신을 잊어버려야 할 정도로 몰두해야할 일이 나는 필요하다.
남자는 죽을때 죽더라도 지킬 것은 꼭 지켜야한다.  나는 내 스스로 한 나의 약속을 지키기 위하여 이렇듯 힘을 키우는  내 자신의 혁명을 하는 것이다...
혁명이라는 것 또한 이렇 듯 주기적으로 꼭 해야한다고  다짐해본다...

 

 


 

[출처] [ 지리산 종주 여행기 ] 2|작성자 그랜드슬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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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들기 전 한가지 내 뇌리에 거는 최면이있다.

내일 아침은 산에오른다.
맑은 공기와 산의 정기를 맞으며 하루를 꼭 시작한다.
그리고 나는 잠이든다.
상상속에서 아침의 산행을 시작하며...
5시가 넘어선 시각  자명종시계가 울리지않아도 눈은 자동으로 떠진다.
등산화의 끈을 힘껏 조르며 새벽을 깨우러 나는 발길을 내딛는다.
해가 뜨지않은 대지위에서 미약한 나를 세워 일으켜본다.
발이 한걸음 한걸음 내딛을 때마다 내안의 나를 서서히 깨워본다.

집을 나선지 30여미터부터  산행은 시작된다.

이곳에 이사온지도 어느덧 1년이  살짝 넘었지만 항상 감사하는 마음뿐이다.
삭막한 도시 가운데에서, 이렇듯 산이 가까이 있다는것은 신의 축복이다.
어디에서도 찿아보기힘든 이런아침의 산행이 나를 성숙하게한다.
산길사이로 공기가 시원하게 물밀듯이 밀려온다.
코로 들여마시고 입으로 시원하게 내쉬어본다.

아...
시원하구나!
역시 산행은 아침산행이라는 말이 맞구나.
모든결단과  준비와  올바른 생각은 그래서 밤이아닌 아침에 하라는 말이맞구나...
40분 가까이 숨을 내쉬고, 땀이 기분좋게 나를 감싸면 정상이다.
저멀리 여명이 밝아오는것이 보이고 그멀리 관악산 줄기가 다보이는구나.
산과 숲이 감싸여진 대자연앞에서 나는 얼마나 미약하고 작은 존재인가?
이 숭고한 자연은 나에게 얼마나 큰 스승이란말인가?
산은 나를 겸손하고, 감사하게만드는 스승이다.
멋지게생긴 바위에 걸터앉아 가좌부를 틀고 명상에 잠기어본다.
자연의 기를 마시면서, 지금까지의 나의길, 내가 가야하는길 , 앞으로의 설계를,
현실에 안주하지않는 내자신이 되지않기위하여,
내안의 무안한 능력의 발휘를 위하여
끝없이 내자신을 뒤돌아본다...

산은 언제나 선생님처럼 해결을 해주신다.
어린시절 풀지못한 숙제를 헤메이고,고민하던 문제를 옆집형이 도와주어 쉽게풀듯이
인생에서 혼자가아닌 거대한 동반자로써 내스승이 되어주신다.
나는 맑고좋은산에서 또 한번 다짐해본다.
항상  도전하게 해주시라고...
그리고 다가오는 그어떤 어려움과 고통도 이겨내줄 응전의 힘을 주시라고...

 마부작침!
" 도끼를 갈아서 바늘을 만든다"  는 옛성인의 말씀처럼
항상 머릿속에 생각만 하는 몽상가가 되지말고.
언제나 최고보다는 최선을 다하는 실천가가 되어달라고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해본다...

2년전 문득 나는,
"백마탄 왕자는 잠자는 숲속의 공주를 알아볼수있을까? "
라는 내자신의 극기훈련을 떠난적이 있었다.
고단하고 힘들기만 생각했던 내자신에게 일침을 가하여야할 훈련이었다.
어쩌면 여행이 될수도있고, 생각의 정렬이라는 표현이 될수도있지만
나는 그훈련이 "3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 라고 생각하고싶다.

 때로는 삶을 재평가하고 내자신의 현재위치를 알아보는 훈련도 필요한법이다.
사람마다 그 훈련방법이 다르겠지만 대담하게 전진하여야할 때가 있듯이
때로는 물러서서 재평가해보는 시간도 꼭 필요한 법이라는 간절한 생각이들었다.
내 자신을 세상에서 격리시켜서, 쉬게할수도 있겠지...
하지만 나는 커다란 모험을 해보고싶었다.
커다란 모험에는 언제나 커다란 위험이 따른다는 말을 들었었다.
하지만 누구도 가본적이 없기에 기꺼이 가려하는 의지가 나에게는 절실하게필요했다.

그 때가 바로 모음료회사를 떠나왔을 때였다.
모음료회사에 근무할때 그런약속을 내자신에게 햇었다.
아무리 힘들고 지쳐도 절대 가족에게는 가장인 내 무능으로 힘들게하지는말자.
어떤일이있어 그만두어도 3개월 생활비는 비축해두어서 가족을위한 최소한의 사랑으로
남겨두어놓자... 그랬다.

3개월이 넘는 내자신과의 약속은 지킨셈이다.

 
아내에게 간절하게 내 의사를 표현했다.
나에게는 여행이 아닌 내 자신의 강한 훈련이 필요하다고,
나만이아닌, 내 가족을 더욱 더 사랑하고 지켜야 할 힘과용기를 가질
훈련이 필요하다고...
여행이 아닐세...
나는 내안에서 매일 피어나지도 못하고죽는 나의 꿈들을 확실하게 할필요가있다네...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첫걸음을 내딛지도못하는 나의 용기가없는
의지력을 극복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세세이 설명을 해나갔다.

아내는 나의 가장 큰 후원자이자  따뜻한 둥지...사랑하는 나의 또하나의 나...
허락이 떨어졌다.
15일의 나의 극기훈련이 시작이되는 시간이다.
15일은 가족와함께 보내고 15일은 나만의 극기훈련...
15일동안 철저히 산을 중심으로 극기훈련을 하였다.
지리산,계룡산,대둔산,설악산,오대산,소금강,태백산...

그중에서도 내가 최고로 뽑는 지리산종주를 ,
백마탄 왕자는, 잠자는 숲속의 공주를 보았던 그 극기훈련장으로
난 떠나보기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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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년 효고현에서 태어났다.

 

 

23살에 학생신분으로 결혼.

피터캣이라는 재즈바를 7년간 경영.

1979년 3월 야구 경기를 관람하던 중 안타가 되어 날아가는 공을 보면서 소설가가 되어야겠다고 결심했다.

 

1979년 6월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군조 신인 문학상을 수상했다.

그 어떤 기관에 속하지 않고 재즈바를 운영하고 새벽에 식탁의자에 앉아 글을 썼다고 한다. 이 점도 대단하다. (남들은 대학에서 국문학과며 문창청년을 몇 년해도 될까 말까 한데 말이다!)

 

 

 

'먼 북소리'의 하루키처럼 여행하고 '노르웨이의 숲'를 쓴 하루키처럼 쓰고 싶다.

정말 질투나는 사람이다.

그 많은 재산이 있어도 티 하나 안나는 사람이다.

그저 달리며,소박한 곳에서 와인을 마시며,이국의 도시를 여행하며,밤 10시에 잠들어 아침에 글을 쓰고 오후에는 자신의 생활을 즐기는 남자.

자신의 색깔이 뚜렷한 이 남자.

 

군대 시절.

나는 훈련의 긴 밤에 '노르웨이의 숲'을 읽고 이 따위로 글을 잘 쓰는 인간이 대체 누구냐? 며 밤을 새워 읽으며 글의 힘과 그 내용에 감탄한 적이 있다.

오랜 시간이 흘러도 하루키에 대한 삶의 방식과 글 쓰기는 나에게 로망이다.

 

 

 

 

 

 

 

 

 

 

 

 

 

 

 

 

 

어느 여름 날,

 

새파란 파도가 밀려오는 파라솔 밑에서

시원한 바람과 그 바람속에 나의 향기를 띄우고

해먹에 누워 하이네캔 맥주를 마시며 다시 '노르웨이의 숲'을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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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

 

군대 라는 말은 그 자체 만으로도 가슴이 설레고 아픈 추억들이 있다.

이 아픈 추억 이라는 것 또한 절실하게 , 간절하게 배움 을 얻었다는 것이다.

 

남자라면 누구나 가는 군대 이다.

하지만 얻고 배우는 인생의 크나큰 차이는 사뭇 개개인 다를 것이다.

나는 군대라는 그 자체가 힘들다  생각한다.

누구나 힘들다, 누구나 외로운 자기와의 싸움이다, 차이는 사뭇 다르지 않다.

해병대, 특수부대를 나오고 힘들게 군 생활을 하여야만 군대 생활을 잘한 것은 아니다.

그리고 멋진 군생활이라고 할수는 있지만 그 차이라는 것또한 별반 없다.

군대라는 그 안의 사회와 격리된 생활이 힘든것이다.

방위 생활도 나름데로 힘들고 취사병, 서무병도  다 나름 데로의 그 고충이 크리라.

군대는  군대 라는 그 자체가 힘든 것이다.

그리고 그 생활들을 이겨냈다는 자체 만으로도, 몸건강히 잘 세월을 이겨 냈다는 자체만으로도 휼륭히 군생활을 잘 해낸 것이다.

 

추운 겨울 12월의  어느날 군대를 입대했다.

하늘은 내 마음을 아는지 눈이 펑펑 밤새도록 내렸다.

첫날 그 어설픈 군인의 군복을 입고 내리는 창밖의 눈을 보노라니 과연 내가

제대 라른 것을 할날이 있을까?   정말 갑갑 하고도 보이지도 않는 그 시간을 떠올려 보았다.

하지만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우선 훈련을 마치고 훈련소를 퇴소하는 날이 오기나 할까?

아내가 사무치도록 그리웠다. 훈련소 따라 오면 고무신 거꾸러 신는 다기에 전주터미널에서 군대가는 것도 아닌것 같이 가까운 곳에 가는 것처럼 무덤덤하게 버스에 올라 오지 않았던가?  같이 훈련소 까지 올것을 얼마나 후회를 했는지...

그 밤에 나는 다시는 세상에 나가지 못할것 같은  두려움에 밤을 지세워야만 했다.

과연 내가 이 훈련소를 나가는 날이 오기나 할까...  그 것이 두려웠다.

 

시간이 지독하게도 흘러 훈련소를 퇴소하고 후반기 교육을 광주에서 받게 되었다.

그곳에서의 3개월 시간동안도 두려운 것은 어느곳으로 자대배치를 받는 다는 것인가?

아내가 면회오기 쉬운 곳으로 제발, 가까운 곳으로 자대배치를 받게금  해달라는 기도가

나의 마음을 다해 기도하는데 들어주지 않으면 어떡하나  하는 마음이 두려웠다.

내 소원이  다해 원하는 곳으로 배치를 받아 자대 배치 받던 그 날이 지금도 생각이 난다.

자대를 배치받아 신고식을 하려 하는데 날 쳐다보는 그 많은 고참들의 시선...

그 눈빛들이  비슷한 나이의 사람에게서 나는 그 눈동자가 참으로 두려웠다.

 

나는 기갑부대,  전차 조종수로 군생활을 시작했다.

공부를 그 때처럼만 했으면 아마 고시라도 합격했을 것이다.

배워야할 것도 많았지만 외워야할 것도 많았고 연이은 훈련과 밤의 근무, 나의 신병생활은 그저 냄새나는 그 구막사 화장실에서 아내의 편지를 읽는 것으로 작은 위로를 받을을 뿐이지

다른 어떤 곳에서도 희망을 찾기는 힘들었다.

그 힘겨움은 군대를 갔다온 사람만이 알아줄 것이다.

구타 근절이라는  목표아래, 구타가 사라지고 가혹행위가 점차 없어진다 고는 하는 그 시절이었지만 구타는 음성적으로 윗사람들의 눈에 보이지만 않았을 뿐이지 여전히 판치고 있었다.

맞는 다는 것은 그리 두렵지 않다.

윗 고참들 부터 맞는 그 소리, 그 소리가 무섭다.  내 차례가 다가오는 순간이 두렵다.

 

 정말 하루가 어떻게 갔는지도 모르고 앞도 볼틈도 없이 그렇게 열심히 군생활을 해나갔다.

그리고 내가 일병 2호봉 때쯤 어느 토요일 부대원들이 한 내무반에 모여 비디오를 보는 시간이 왔다.  그러던중 누군지 정중앙에 의자를 놓고 앉아 많은 병사들이 볼수가 없었다.

누군지 보니 하사관 출신인  나와 입대가 비슷한 하사였다.

기갑부대 특성상 하사관이 부대원 40%를 차지 하고 있었고,이 정중앙에 앉아있는 하사는 우리 고참들과 후임들이 가장 싫어하는 눈에 가시같은 하사였다.

고참들에게 교육을 당시 그렇게 받았다.  절대 하사관들에게 경어도 쓰지 말것이며 깡다구로 절대 지지도 말라고...

내 바로 앞에 않아 있었다.  왜 그랬는지는 몰라도 내입에서는 쌍소리가 나오고 비디오 전세냈나..  들릴듯 하게 내가 내밷고 말았다.

내가 나서지 않아도 되는 그런 자리였지만 타인을 배려하지 않는 그 순간이 정말 싫었다.

그말을 듣고 말싸움이 붙었고 말싸움에서 몸싸움으로 가는 것은 오랜시간이 흐르지 않는다.

당직사관에게 보고가되고 부대원전체가 군장을 싸고 연병장을 돌았다.

고참들은 잘 했다며 격려를 받았지만 나는 무언가 깊숙한 깊은 곳으로 빨려드는 느낌을 받았다. 결코 이렇게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그 기분이...

 

적중했다.

중대장에게 보고가 되어  진술서를 시작으로 사고경위에 대한 내용증명과 여러 정황이 담긴 수십장의 종이를 쓰고 또 쓰고 밤을 거의 새우듯 섰다.

그리고 이어지는 징계위원회와 사실처럼 하는 상황재연, 내가 배우가 된듯하다.

그렇게 일주일 가까이 가는 그 순간이 너무도 길었다.

어떻게든 정확한 말이 없고 군기교육대를 갈것이냐, 영창를 갈것이냐, 대체 어떻게 한다는 것이냐  앞을 알수 없는 그 시간이 고통의 두려움 이었다.

사람을 고통받게 하는 것은 몸을 제압하는 것이 아니라 정신을 고통받게 한다는 것을 너무도 절실히 깨달았다. 그리고 나는 10일간의 완전군장에 연병장을 도는 것으로 매듭 지어졌다.

내 안에서 나온 나의 말한디의 위력은 이처럼 나를 힘들게 15일의 댓가를 치루게 만들었다.

 

군인은 군인 다워야 한다는 것이 평소의 내 주관이었고 고참들에게는 책임있는 후임,

후임에게는 솔선수범이지만 강하고 자기위치를 아는, 그리고 후임답게 하는 후임이 되게금 가르쳤고 어쩌면 강요를 많이 하였는듯 하다.

웬지 나약해지고 군인 답지 않은 느낌을 그 즈음 후임들에게서 느꼈다.

보상심리는 아니 었지만 저게 군인 맞나 하는 후임도 여럿이 보였다.

그때가 상병 6호봉 때이다.

이제 병장도 채 2달이 남지 않았다.

그러던중  내 인생의  관점과 군생활을 확 두바꾼 거대한 사건이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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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곳에서 많은 생각을 했다.

고독하게 쓸쓸히 고민도 했고 담배를 피우고 한숨을 짓기도 했다.

여름에도 앉았었고 떨어지는 낙엽속의 가을에도 앉았었다.

겨울이면 눈을 맞기도 했고 봄이 오는 그 시간의 틈새에서 새살이 돋는 나무를 보았다.



사무실 뒷편에 자리잡은 이곳에 난 자주 가려하지 않는다.

이곳만 가면 마음이 찹작해진다.

공간이 주는 그런 묘한 매력에 습관적으로 감수성이 몰려오는 그 느낌이 나는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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