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시간을 자고 7시를 넘어서 일어났다.
세면을 하고 옷입고 출발이다.
염치없이 아침밥을 달라고 할 수도 없고 길어 나선다.
아침 7시50분 출발, 오늘의 목표는 30km다.
강진 초입까지 가자.
포도원 황토민박.
내가 머문 곳이다.
주인 내외분도 참 좋으시고 황토방에서 묵었더니 금새 피로가 풀렸다.
제대로 하룻밤을 자고 난 기분이다.
내가 묵었던 마을이 영전을 지나 평암마을이었구나.
평암마을.
걷는다.
걷는 것만이 나의 일이다.
참 복 받았다. 그 춥던 날씨를 비켜가고 내가 걸었던 도보여행의 1차여행에 이렇게 날씨가 도와주다니... 감사한 일이다. 햇살좋고 날씨좋고...
걷는 내내 보이는 것이 이 배추밭이다.
그 춥던 겨울동안 이 배추가 수확이 아직 안되었구나.
봄에 출하하기 위하여... 이 추위를 견딘 저 배추가 대단하다.
16.5km, ㅎㅎ
이만큼이 아니라 이만큼 많이 온거다.
한걸음,한걸음이 만들어내는 종단여행.
"여러분!! 힘내세요! 박수를 보냅니다" 이 말에 정말 힘내본다.
따뜻한 날씨에 모자가 거름을 내고 있다.
참보기가 좋다.
봄이 오고 있구나.
2시간걸어 7km왔구나.
다리가 슬슬 아파질려고 한다.
북평면 고개를 넘었다.
속력이 나지 않는다.
슬슬 정말 슬슬 걸어서 간다.
마음같아서는 뛰고 싶지만 이 걸음걸이는 쉽지 않다.
나도 도보여행이라면 뭐 힘들겠나 우습게 생각했는데 영 아닐올시다.
아스팔트를 몇시간 걷다보면 벌서 무릎과 발목이 안다.
흙길이 아니기에 피로와 다리에 무리가 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힘든 여정에 도착한 곳이 이 북일휴게소다.
아침도 안 먹고 도착한 곳이라 더 좋다.
여기서 제대로 아침겸 점심을 먹으리라.
얼마나 반갑던지...
여행을 다닐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혼자 다니면 제대로 대접을 못 받는다.
한정식 집이나 고급 음식을 먹을라치면 독상은 안 받아요. 반찬을 독상으로 쓰면 수지타산이 안 맞네, 단가가 안 맞네 한다. 남도 여행을 다닐때도 밥도 못먹고 나온 적이 한 두번이 아니다.
아니~~ 혼자 다니면 밥도 먹지 말라는 건가? 하다 못해 갈비탕,육개장이라도 밥은 먹고 가게 해주는 것이 사람사는 인심아닌가?
그런데 이 곳 북일식당.
장난이 아니다. 6천원짜리 점심식사에 반찬이 20가지다.
한상을 턱하니 받으니 군침이 절로 돈다.
남도 여행 최고의 밥상이다.
주인양반도 후덕하시고 종업원들도 친절하다.
"아줌마~~ 피로해복제 한병(막걸리)요~~"
막걸리가 없단다. "그럼. 또 다른 피로해복제요~~"
잎새주가 등장한다.
정말 맛있었다. 맛도 맛이지만 피로해복제의 맛이 더 일품이었다. (막걸리만 마시기로 했는데...)
신전면에 들어섰다.
영전,신전, 무슨 전이라는 지명이 그리 많은지...
밥도 먹고 나른하니 참 좋다.
역시 금강산도 역시 식후경이다.
피곤하여 쉴라고 풀밭에 누우니 어~~ 누가 툭툭하고 건든다.
눈을 떠서 자세히 보니 이 녀석이다.
반가운 녀석과 10분을 놀아주었다.
여기서 알았다.
만보계가 고장이 났다는 사실을 말이다.
아무리 다리가 아프기로서니 내가 걸음이 있지.
속도와 키로수가 안 나오는 거다.
확인해보니 만보계 작동이상..
무릎과 발목, 허벅지는 아프지... 속도는 제자리 걸음을 걷는 듯 거북이 걸음이었다.
시멘트 ,아스팔트를 걷는 일은 많은 고통이 수반되는 일이었다.
그까짓 것, 걷는 게 무슨 일인가? 했는데 교만은 없어지고 겸손으로 순한 양이 되었다.
아침 7시51분에 시작한 국토종단도보여행은 오후 6시쯤,원인을 알게 되었다.
만보계의 이상 작동으로 많이 걷지 않은 착각을 알았다.
계라 삼거리.
강진까지 남은 거리는 9km, 걸어온 거리는 30km를 넘게 걸었다.
시간은 6시를 넘어서 숙소가 마땅치 않았다.
9km를 걸어서 강진까지 가야 되나,여기서 마을회관이라도 사정하여 잠을 청해야 하나?
고민아닌 고민을 하게 되었다.
9km를 걸으려면 꼬박 2시간은 넘게 걸어야한다.
일단 걸었다.
기록을 갱신하거나 최대한 빠른 국토종단의 의미는 아니지만...
가는 내내 깜깜한 밤이지,마을도 보이지 않지, 차도 다니지 않지...
다리는 아프고 배도 고프고 피곤하지...
차를 얻어타고 강진에 가서 하루 묵고 다시 아침에 이 곳으로 다시 원위치하여 다시 걸을까?
머리속에서는 천사와 악마가 싸운다.
8km를 정말 죽기 살기도 걸었다.
캄캄한 밤에 아무도 없는 곳에서 무작정 걸었다.
정말 외로운 싸움이었다. 하지만 떠오르는 한가지가 있었다.
오늘 이 고비만 넘기면,오늘 강진까지 가는 그 의지의 힘만 있다면 나는 국토종단을 성공적으로 마칠것이다. 단 오늘만,오늘만 이겨내보자.
힘든 다리와 피로를 이겨내면서 걷고 또 걸었다.
드디어 13시간 30분만에 40KM를 걸었다.
강진읍내에 드디어 도착했다.
헤냈다는 그 기쁨을 말로 표현하기가 힘들었다.
기념사진을 찍고 근처 통닭집에 갔다.
치킨 반마리를 시켜서 생맥주와 먹었다.
엄청 맛있을 것 같았던 치킨과 생맥주도 그리 맛있진 않았다.
근처 여관으로 향했다. 혼자자는 데 비싸면 못자요.
2만원에 재워주쇼.. 했더니 3만원 이하로는 안된단다.
그래요. 그럼 가야지 하는 데 2만원에 자고 가란다.
진작에 그럴 것이지...^^
여관방에 들어오자 마자 누웠다.
너무 힘들어서 씻기도 힘들어 불끄고 바로 잠이 들었다.
어지간하면 샤워를 하려 했는데 도저히 안되겠더라.
그냥 옷 입은 그대로 잠이 들었다.
나는 해냈다. 강진까지 왔다. 그 마음 하나만은 정말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