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맥. 

중요하다. 사람과 사람사이를 이어주는 끈 역활을 해준다. 암벽등반을 하는 사람에게 자일과 카라비너는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하다. 이어주는 끈이 아닌 생명줄이기 때문이다.  

다문화. 그렇다. 우리나라도 어느새 다문화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올정도로 익숙한 단어가 되었다. 다문화의 가장 큰 벽이 무엇인가? 문화의 차이다. 내가 너를 이해하고 존경해줄 수 있다. 아니다.그렇게 노력할께. 그것이 문화의 차이다. 살아온 환경과 생각하는 차이가 문화다. 다문화가 그리 먼곳에 있는 것도 아니다. 같이 어머니의 뱃속에서 나온 형제도 다른 얼굴,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 가족이라는 한울타리의 아내와 자식간에도 지켜야 할 룰과 예의가 있다.  회사,거래처,모임,자주가는 단골식당,등등이 다 다른 문화의 사람들과의 얽힘이다. 옷감이나 원단을 만들때 씨실과 날실이라는 상호작용이 있다.

이런 것들을 짬뽕하여 살아가는 인생살이가 우리가 말하는 삶이라는 것이고 거창하게 말하면 인생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짬뽕된 세상살이를 살아가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인가? 

사람이다. 사람과의 관계다. 사람과의 관계를 잘하면 소위 성공,출세,돈이 따라오는 것이고 이것을 못하면 병신,쪼다,바보가 된다. 어떻게 잘하는 것이고 어떤게 못하는 것인가? 이것을 나는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진정으로 잘하는 인맥의 기술이란 무엇인가를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나란 사람은 과연 인맥관리라는 것을 잘하고 있는 것인가도 반성해보았다. 이제까지 무수히 사람들을 만나고 경험하고 상처받고 만나왔다. 학교친구,사회친구,군대,향우회,산악회,온라인 모임 등등 셀수 없이 많은 자리를 참석했고 다녀봤다.그런데 지금의 현실은....? 

많지않지만 쾌 소수의 사람이 남아있다.  그들의 진면목은 어려울 때 나타난다. 내가 진정 고통스럽고 힘들 때 나타난다. 

월세로 이사가는 날, 이삿집 차 부르기가 아까워 도와준 그 친구들. 비를 쫄딱 맞으며 가져온 용달차로 이삿짐을 나르며 비오는 날 이사하면 돈 많이 번다더라고 위로해주던 친구. 

사업이 어려워 고통스럽게 힘들어 할 때, 취한 내 눈을 지켜보며 계좌번호를 가르쳐달라며 다음날 바로 입금해준 250만원, 혹 내가 부담스러워 할까봐 이거 나한테는 별 필요없는 돈이다. 너 빌려주는게 아니고 주는 거다.그리고 힘내라던 그 친구. 그 친구 성격을 내가 안다. 짠돌이에 형편이 좋지 않음을. 

 

가장 최고의 인맥은 바로 무엇인가?   

- 먼저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내가 무엇을 먼저 줄 수 있을까.그리고 내가 무엇을 그 사람에게 도움이 될 수 있나를 생각해봐야 한다. 

- 먼저 전화하고 먼저 찾아간다.  아쉬울 때만 전화하고 찿아가면 속보인다.  

- 진심어린 마음, 이 진심어린 마음이 가장 중요하다.

1,독서다.  저자와의 가장 소중하게 인맥을 쌓을 수 있는 거다. 저자는 나를 모르지만 나만 알고 있다. 책으로 쌓은 인맥만큼 나를 배신안하고 진실성 있는 것은 절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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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포기하지 마라!

골목길을 돌아서면

어떤 기회가 너를 기다리고 있을 지는 아무도 모른다.

인생이란 네가 생각하는 것 처럼 그렇게 짧지 않다.

먼훗날 그 골목길에서 울던 일이 추억이 될 것이다.

 

절대 절대 포기하지 마라!

 

때론 길을 잃고 당황하고

때론 너무 힘들어 주저 앉고 싶을 때도 있을 것이다.

하늘을 쳐다보며 흘리는 눈물이

아무런 해결책도 제시하지 못하고

 마른 목에 침도 넘기지 못 할 정도로

절박하고 숨이 끊어질 것 같이 목이 탈때도 있으리라.

 

그러나 그 순간이 또 다른 인연을 만들기 위한 쉼표이며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기 위한 색깔이라고 생각하라.

인생이란 고역과 기쁨과 방황과 쉼을 녹여 그린 아름다운 그림이다.

치열한 색깔이 아름답게 수놓인 그림을 바라보며 담담한 미소를 지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자.

마치 살아서 튀어나올 것 같은 강렬한 색깔에 가슴이 베일 것 같은 그런 그림을 그리자.

 

지나가다 원두막에서 막걸리 한 잔 얻어 먹은 기억밖에 없는 그런 사람이 아니고

고뇌에 몸부림 치더라도 멋진 까페에서

독한 양주를 마시는 그런 주인공같은 삶을 살자.

하루를 살더라도 세상 한가운데서 한판 붙어 보고 가자.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기웃거리며 남의 싸움을 구경만 하지말고

내가 피범벅이 되고 뼈가 살을 뚫고 나오더라도 한판 붙어보자.

그러다 죽어도 그렇게 살기 간절히 간절히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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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할 것이 너무도 많이 드는 훌륭한 글이다.

어느 곳에서 이 글을 발견하는 순간 전율이 일 정도로 내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많은 분들이 공감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글을 같이 나누기로 한다.  같이 나누면 좋고 따뜻해지는 것이 말과 글이다...

 

 

 

 

 

인생이란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짧지가 않다. 먼훗날 그 골목에서 울던 일이 추억이 될 것이다.

 

맞다. 

인생이란 엄청나게 긴 것이다.  사람들은 자고 나면 몇날,몇달이 금새가고 나이를 들어  세월이 간다 하지만 이런 말들은 시간을 헛되이 보낸 이들이 하는 말이다.

이루어 놓은 일들이 없는 사람,  시간을 헛되이 보낸사람, 과거 1년이 지금 1년과 같은 사람.  그런 사람들이 만들어 낸 아주 간교한 변명이다.

시간을 귀하게 여기고 하루를 1년처럼, 1년을 평생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인생이 짧다는 말은 거짓일 뿐이다.  누구에게나 주어진 가장 공평한 시간.   이 시간을 주도하고 소중히 관리한 자만이 분명히 이룰 것이다.  그 먼훗날에 웃는 추억을 말이다.

먼훗날 그 골목뿐 아니라 곳곳에서 눈물나게 시린 기억들이 훈장이 될 것이다.

그 훈장을 기억하고 열어보고 싶다면 일기를 쓰는 습관, 기록하는 습관, 메모를 하는 습관을 길러야한다.

피같이 시간을 아끼면서 맹렬히 삶을 치열하게 살아온 사람들에게는 후회가 없다.

 

마른 목에 침을 넘기지 못할 정도로 절박하고 숨이 끊어 질 것 같이 목이 탈때도 있으리라..

 

살다보면 신을 믿지 않는 사람도 기독교를 안 믿는 사람도 절박한 심정으로 기도 할  때가 있다.

하다 하다 도저히 안 될 때나, 자신의 힘으로 도저히 안되는 불가항력의 아픔이 엄습할 때 교만을 버리고 무릎을 끓는다.  꼭 절대절명의 순간에는 말한다.

" 하느님 도와 주세요! 꼭 도와 주세요!  제발 "   꼭 제발이라는 말을 쓰고는 한다.

마른 목에 침을 넘기지 못할 정도로 힘든 상황을 안 겪어본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몇번 겪어보아서 그 절박한 심정을 알고 있다. 숨이 끊어질 것 같이 목이 타는 심정으로 살라는 것이 아니라 언제든 그리 될 수가 있으니 준비를 하라는 말 일 것이다.

삶의 여유와 긴장은 내려놓지만  자기를 절제하고 생각의 자기관리속에서 세상의 유혹들을 물리치라는 말이다. 

 

치열한 색깔이 아름답게 수놓인 그림을 바라보며 담담한 미소를 지을 수 있는 그런사람이 되자.

마치 살아서 튀어나올 것 같은 강렬한 색상에 가슴이 베일 것 같은 그런 그림을 그리자.

 

내가 가장 존경하는 고 정주영 명예회장께서 평생을 가슴에 두고 사셨던 그 한마디다.

 머나먼 고국에서 아들이 죽었다는 소식에도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었던 그 한마디다.

" 담담하라...  담담하라...  때로는 이세상 사람이 아닌 것처럼 담담하라! " 는 그 말씀이 생각나는 대목이다.

누구나 세상의 유혹에, 다른 사람의 말과 행동에서 흔들리고 상처받는 나약한 존재들이다.

자신의 주관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 길이 옳다고 생각하면 모든 것을 걸 수 있는 태산같은 자신만의 힘을 가지라는 말이다.  때로는 우직하고 미련할 정도로 자신이 가는 길에서 미쳐보라는 말이다.

다른 보통사람들과의 삶에서 보통의 생각으로, 보통의 일로, 보통의 열정을 가지고 하루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치열하게 살 것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살아서 튀어나올 것 같은 강렬한 색상에 베일 것 같은 그런 그림을 그리자. 

열정의 불꽃이 피어오르면 대체 안 될 일이 무엇이냐는 마음이 저절로 든다.

천재물리학자나 대통령, 에베레스트를 오르는 전문산악인 같은 특별한 삶이 아닌한 대체 못할 것이 무어냐는 생각이 든다. 어떤 분야에 뛰어난 재능을 가진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보통사람들이 재능을 타고 났다고 하는 사람들도 알고 보면 피눈물나는 노력에 의해 그런 경지를 도달한 사람들이다.  타고난 사람을 부러워하지 말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사람들을 부러워하자.

 

지나가다 원두막에서 막걸리나 얻어 먹은 기억 밖에 없는 그런 사람이 아니고 고뇌에 몸부림 치더라도 멋진 카페에서 독한 양주를 마시는 그런 인생을 살자.

허세와 위장이 아닌 진솔한 삶을 살자는 말이다.
삶에 힘겨워 사람들의 비좁은 시간에 끼어서 이리 저리 방황하고 주관을 잃은 채 살자는 말이 아니다.
너무 안전한 삶에서 때로는 벗어나 보는 것이다. 누군가 다 필요한 사람들이다.
회사원도 청소부도 경비원 아저씨도 서점의 책 딜러들 심지어 식당에서 주차관리하시는 분들 까지도 다 소중하고 필요한 사회의 귀중한 분들이시다.

하지만 하지만 말이다. 그저 먹고 살기 위한, 가족을 위하여 어쩔 수 없이 처자식을 핑계로 생활의 수단으로써 살자는 말이 아닌 것이다.
내 인생에 주인공으로써 진정 가고픈 삶의 이정표가 저기 보인다면 어서 방향을 바꾸는 것이다.
준비하고 기회를 언제든지 얻어낼 수 있는 실력을 기르자는 말이다.
세상에 공짜가 어디있으며 쉬운 일이 있는가?
막걸리는 누구나 마시는 것이다. 막걸리만 매일 먹는 사람은 항상 막걸리가 세상에서 가장 좋은 줄 안다.
아니 왜 다른 술을 마셔보려고 생각도 안 해보는 것인가.
남이 채워주지 않으면 내가 채워 마시고 남이 먹는 자리에 가서 나도 한잔주시오 하는 똥 베짱과 용기도 필요한 것이다.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기웃거리고 남의 싸움을 구경만 하지말고 내가 피범벅이 되고 살이 뼈를 뚫고 나오더라도 한판 붙어보자. 

 

 

더이상 말이 필요가 없는 대목이다.
자신의 인생을 제대로 살고 있지도 않으면서 남의 인생을 살아 줄 수는 없다.
어차피 한번 왔다가 가는 인생이라고 말한다.  더 이상 연습도 재도전도 없는 인생이라고 말한다.

가슴을 활짝 펴고 당당히 세상에 대하여 자신을 갖자는 말이다.
후회가 없는 사람들에게는 시간의 흐름은 의미가 없다.
이 순간 지금 있는 현실이 중요할 뿐이다.
나도 내가 이렇듯 30대 후반에 들어설 줄은 꿈에서라도 알았는가?
나에게도 푸른 빛을 내 뿜은 중고교 시절이 있었다.  방황이라는 시간속에 거리를 배회하는 20대 초반과 군대에서의 추운 겨울과 20대 중반의 당당함도 있었다.
내가 이렇게 나이를 먹게 된 줄은 나도 몰랐다. 30대 중반이면 분명 나도 아저씨가 되어가는 것이다. 하지만 그리 나쁠 수 만은 없다.
다 그 나이에 맞는 놀이와 사람, 즐거운 시간들이 기다리고 있고 또한 재미도 있을 것이다.
모두가 내 자신이 이루어놓은 시간과 일 들이다.

 

이 글을 읽노라면 그 어떤 강렬한 기같은 것이 느껴진다.
한편으로는 차력사의 힘이 느껴지도 한다. 불을 뿜어내고 쇠를 휘며, 날카로운 창끝이 목을 겨누고 있어도 도리어 그것을 부러뜨리는 기염...   언젠가 들었다. 차력사들에게 그 순간은 마지막처럼 온몸의 힘과 기를 정신력을 한곳에 집중시키는 일종의 초능력이라는 것을...
누구에게나 그런 능력이 있다. 다만 있다고 믿지도 않을 뿐이고 자신에게서 밖으로 표출을 못하고 있을 뿐이다. 집중하고 내가 가는 그 길에서 최선의 몇배를 가하는 것이다.

 

가슴이 베일 것 같은 그런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자신만의 색깔로 제대로 그려보는 것이다. 그리고 책임을 지는 것이다. 자신의 그림에 책임을 지는 것이다.매순간 삶은 멈추었던 순간이 한번도 없었다.
삶을 이겨내고 이끌어나가는 나의 삶 또한 도전이다.
때로는 악착같은 악바리 정신도 있어야한다.  객기 비슷한 엉뚱한 생각도 있어야한다.  남이 다 가는 길이지만 나는 이길이 아닌가 보다 하고 반대로 가는 삶을 살아도 보아야 한다.
올 한해 한가지만 약속하기로 한다.
한가지 목표를 위하여 미쳐보기로 한다. 미쳐서 끝장을 본다는 마음으로 열정의 칼을 휘둘러 보기로 한다.
그리한다면 분명 가슴이 베일 것 같은 그런 그림이 내 눈 앞에서 펼쳐질 것이라고 분명 자신해본다.... 
이런 삶이 프로세일즈맨의 정신이다.

 
제 자신을 위의  글 속에  삶처럼 살려고  노력하는 중입니다.
자존심이란 자기 스스로가 지켜주는 것이 아니라 주위의 사람들이 지켜준다고 합니다.
프로 세일즈맨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 위의 글처럼 살아보시길 빌어봅니다.
안되고 힘들면 어떻습니까? 
어차피 인생이란 깨지고 고통속에서 이겨낸 자만이 성취할 수 있는 시원한 생수 같은 것...
프로 세일즈맨의 정신을 가진 사람이 이루지 못 할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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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시 십분전. 

가까운 곳에 10시정각에 상담 약속이 있어 준비를 하고 있었다. 영업하는 사람에게 시간약속은 가장 기본이기에 15분전에 도착하려 애쓴다.  문을 나가려는 순간... 웬 어르신이 들어오신다. 정말 허름한 잠바에 60대를 넘어선 촌로로 보였다. 잠깐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노인같은 분...

대뜸 하시는 말씀이 "명함 하나 줘요."  하시기에 먼저 명함을 드렸다. 내가 이 앞집에 사는 데 나중에 전화할테니까 찾아와요. 하시는 게 아닌가. "예 감사합니다. 당연히 찾아뵈야죠." 그러는 잠깐의 대화에 어르신 하시는 

 "말씀이 말투가 빠르네. 영업하는 사람이 말이 빠르면 안되죠." 예리한 흉기에 찔리는 날카로운 표현의 느낌이 들었다.(상담약속이 촉박하여 말을 빠르게 말하기도 했지만 내가 좀 말이 빠른 것은 인정한다.) 보통분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 제가 말이 빨랏습니까? 그렇다면 죄송합니다." 하면서 비타500을 까서 드렸다.

말씀을 드리니... "고향이 어디요?" " 네 전북 진안입니다." 말씀을 드리니 "진안이 충청도와 전라도 경계라서 사투리가 억세지. 말도 빠르고... " 하시는게 아닌가? 

"네 마이산 근처가 고향입니다." 라고 말씀드리니 "나도 마이산 밑에 동네 살지." 하시는게 아닌가... ( 마이산이 두 군데로 올라가는 길이 있어 우리 면과 진안군내로 내려가는 길이 있다.) 

  " 혹시 화전마을 아니십니까?" 여쭈어보니 " 맞는데 어떻게 그렇게 잘 아는가? " 하시기에 "저도 마령에 삽니다." 

동네 어른을 만나뵈어 정말 반갑습니다. 인사를 여쭈니 아버지 함자를 물어보신다. 아버지 함자를 말씀하시니 알고 계신다. 아버지보다 3살이 적다고 하셨다. 아버지가 39년생이시고 어르신이 42년생이라고 하셨다. 아이구 아버지와 동년배분을 뵈오니 정말 더 반가습니다. 하니 비록 고인이 되셨지만 3살이면 크게 차이나는 법이지. 아버지가 술을 참 즐겨하셨지. 그리고 그 술때문에 돌아가셨지. 우리집 내력을 다 아시는게 아닌가? 외딴집으로 이사를 갔다가 다시 동네로 이사 온 것도 아시고 아버지가 술을 좋아하셨다는 표현을 쓰지 말게. 그 당시는 배가 고파서 술을 마셨지. 아버지의 서운한 감정은 잊고 좋았던 것만 기억하게나... 이사장. 꼭 자네라 안하시고 이 사장이라고 하셨다. 

" 내가 30,40대 정말 안 해본일 없이 해봤지. 당시는 돈도 많이 벌었는데 집과 아내보다는 선배와 후배에게 술사고 지냈지. 지금은 아내가 가장 고마워. 오늘 여기 온게 2번째야. 아주머니 있을 때도 왔다갔지. 내가 금정역 모텔골목에서 모텔을 3개 운영하고 있어. 몇일전 경매에 나온 모텔을 인수했는데 커텐이 필요하지 먼가. 그래서 집앞이라 한번 들려본거지..." 

참 희한한 인연이었다. 같은 고향에 같은 면내에 아버지를 아시고 내가 또 잘아는 동네에 사는 분을 이런 객지에서 만나다니. 모텔3개가 얼마인가? 하나당 10억이상은 넘을거다. 또 다른 보유한 것이 많다는 어르신. 막걸리를 즐겨마시고 플라스틱 그릇보다는 옛 나무 그릇에서 마시고 나이를 먹고 돈을 벌면 좋은 곳에 쓰고 베푸는 삶을 살면서 살아야 한다는 어르신... 시골 고향에 내려가시면 꼭 동네분들이나 친구들에게 좋은 일을 하신다는 분... 

내가 느끼기에는 한 없이 겸손한 분이셨다... 

  

내가 오늘 배운 것은  

1. 사람에게 잘 해야 한다. 진심어린 마음으로 잘 해야 한다. 기회는 사람이 준다. 나외에는 다 스승이다는 마음이다. 어떤 사람에게든 친절과 정성을 다하면 다 내게 그만큼 온다는 것이다. 

2. 사람을 겉모습으로 보지 말라는 것이다. 외모도 중요하지만 본질을 꿰뚫고 정직한 말과 행동을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말이다. 

3. 부자가 되려면 부자에게 배워야 하고 그대로 따라하면 부자가 된다는 말이다. 즉 마인드가 중요하다. 더 중요한 것은 실천하는 힘이 중요하다. 백번의 생각보다 한번의 행동이 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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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이란 "살아가기" 라는 표현이라는 것을 들었다. 

이 살아가기라는 것이 참 우습다. 어떤 사람은 참 편하게 먹을 것 다 먹고 잘 것 다자고 좋은 음식에 좋은 안주에 술도 먹도 하루 하루를 재미나게 산다. 다른 한편의 사람은 새벽부터 일어나 졸린 눈을 비벼뜨고 어제 입었던 옷을 입고 피곤에 절은 모습으로 죽을 두,살둥 맛없는 밥과 반찬을 몇술 뜨고 일자리로 향한다. 12시간이 넘는 힘겨운 노동을 힘들게 하고 저녁이면 대충 차려놓은 밥 몇술 뜨고 티브이로 멍한 눈 보다가 겨우 잠든다. 사람과 사람인데 참 다른 삶을 살아간다...

나는 내가 아는 모든 이들을 존중하고 싶고  더불어 웃음이 가득한 시간을 보내고 싶다.
하지만 그 아름답고 내가 아끼고 좋아하는 사람들이 힘들어한다.
열심히들 살고 있다 하는 그 아끼는 사람들이 무언가에 쫒기는 삶을 살고는 한다.
무언가에 걱정하고, 무언가에 지친 어깨를 떨구면서 홀로인 밤에 소주잔을 기울이고는 한다.
근심어린 눈빛속에서 웃음을 기대하는 것은 위선이다.
설사 그런 눈빛속에서 웃음이 나왔다는 것 또한 멋진 용기일 것이다.

 

사랑이 내 친구를 힘들게 할 수도 있었다.
직장상사의  권위의식을 가진 빈정거리는  말 한마디가 내 친구의 하루를 망칠 수도 있었다.
친구는 쥐 죽은 듯이 세상에 순종하 듯이 살고 있는데  아무 이유도 없이 시비를 거는 사람들 때문에  하소연을 하는 것을 본 적도 있었다.
여러 삶들의  홍수 속에서, 이 자본주의의 세상 속에서 살아본 내가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모두가  돈과 얽기고 설킨  수많은 사연들 때문이었다.
사랑이, 사람이, 직장상사가, 경쟁관계의 사람들이 힘들게 하는 것보다  몇배로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은 이 돈이었다.

돈 ...

이 돈 이라는 것은 어느덧 살기위하여 자연스럽게 숨을 쉬고있고 지금 이 순간처럼 내 몸과 친구의 곳곳에서 나를 움직이게 하고 있다.
새벽녁에 일어나기 싫은 몸을 일으켜 세우기도 하고, 밤늦도록 저녁도 거르면서 김밥 한 줄을 먹으면서 운전하게 만드는 무서운 괴물이다.
내 주위에 사랑하는 친구들이 저렇듯 아침도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출근하고, 직장상사의 그 꾸지람에도 참고 , 가족들에게 잘하고 싶은 마음 하나로 살고싶은데, 하지못하고 쓸쓸히 걷는 가장의 지친 어깨에서 나는 느낀다.

왜 저렇 듯 힘들게 살아야 하는가?

 
돈이 전부가 아니더라...
그래도 정과 행복이 가득한 세상이라고 나도 말하고싶다. 하지만 현실은 냉정하다.
보험금을 타기 위하여 처자식을  생각지도 못하게 하는 청부범죄를 저지르게 마는 무서운 세상이다. 꼭 남의 나라 이야기같고  나와는 동떨어진, 머나먼 사람들 이야기 같지만 엄현히 지금 현실 속에서 자행하는 일들이다. 살아가는 모든 목적의 시작과 끝이 이 돈이라는 것일까?

 
나는 부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오래전 어린시절, 유독이도 가난했던 시절에 했었다.
남들은 그저 먹고 살만하게도 살았던 그시절..
왜 우리집만은 더 어렵게 살았나..    다른이들은 잘 사는데 왜 우리집은 잘 살지 못할까?
하는 그 생각에 나는 이담에 크면 꼭 부자가 되고 말리라...
다짐에 다짐을 더했던 날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꿈은 막연하다.   막연한 꿈은 가시적이고 큰 힘을 한번에 쏫는 응집된 힘이없다.
막연해서는 안된다.  구체화 적이고 기록적인, 검증이 필요한 확실한 목표설정이 필요하다.

내가 절실히 부자의 꿈을 , 큰 꿈을 이루기위한 간절한 바램을 바랬던것은 그 24살의 새벽밤 이었다.
군대를 제대하고 어떤 특별한 계획이나 앞길이 확 잘 될 것이라는  생각은 아니었지만, 다시는 아내와 떨어져 지내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만으로 자신감으로 미래를 꿈꾸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현실의 거대한 벽은  나를 순식간에 허물어 버렸다.
  

젊고, 마냥 잘 되겠지는   여지없이 나를 비웃고 세상의 차가운 바닥의 고통을 주었다.

제대 몇달후 아내는 첫째 아들을 가지게 되었다. 
임신을 하면 먹고싶은 것도 많은 법이고  정기적으로 병원도 다녀야하는 경제적으로 돈이 상당히 필요한 시기이다.
안정된 그 어떤 것  하나 없이 직장도 제대로 구하지 못하고 나는 새벽에 안산으로 인력시장, 막노동을 다녔다.    말 그대로 인력시장 이라는 그 단어 그대로였다.
봉고차에 실려 어디인지도 모르게가고 내려서 지시하는 , 힘으로만 하는 그 일들을 했었다.
웬지 내가 사람이 아니라  물건처럼, 그저 하루 일당에 사람을 판정짓는 그 느낌을 나는 잊을 수 없다.  한곳으로 다녔으면 덜 했을 텐대 항상 변하는 일터와 사람들은 나를 지치게 했다.
그리고 10%를 떼고 받는 그 날의 노임이 나를 평가하는듯 하여 더욱 지쳤다.
 

그러던 어느날...
일하다가 대못에 발바닥을 깊숙이  찔려 고통을 동반하는 일이 생겼다.
피를 짜내어 응급처치는 했지만 나의 그런 현실이 싫었다.
일이 끝나 친구와 함께 포장마차에 들려 소주한잔을 하며  지친생각들을 정리해 보고 싶었다.
그러나  그렇게 큰 빛을 보기도 힘들었고 그 어떤 희망도 내 앞에서 근사하게  보이지를 않았다.  그저 그 현실을 벗어나고 싶었을 뿐이었다.
술에 취하여 나를 놓고 싶었다.  나를 포기하고 싶었다.
그날밤  자정 가까이에 월세집으로 내몸을 쉬러 들어가 보았다.
아내는 자지 않고 기다리고 있었다.  왜 이리 늦었느냐고...  술은 왜 요즘 자주 먹느냐고...
몇마디 하는, 아니 걱정하는 아내에게 버럭 소리를 지르고 화를 내면서 집을 나와 버렸다.

안양역 앞 광장에서  벤취에 누워 밤하늘을 바라 보았다.
나는 정말 나쁜 놈이다.  군대 3년 가까운 세월을 기다린 아내에게 , 아이를 가진 아내에게 나는 정말 몹쓸 남편이었다. 

많은 것을 아니해주어도 그리 큰 돈을 안가져주어도 아끼고 사랑해주어야 했는데 나는 나 자신이 힘든 것만을 생각한 힘없는 철부지 가장이었다.
그때가 내 나이 24살... 군대를 막 제대한 내가 이제 애 아버지가 된다.
나는 현실을 탈피하고 싶었다.  아니 이 현실이 어쩌면 꿈이기를 바랬다.  나는  너무 젊었다.
그렇게 많은 생각에 누워있는데 인기척이 느꼈다.
사랑하는 내 아내였다.
큰 눈에 눈물을 흘리면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왜 이곳에 와서 누워있느냐고...

 

힘든 당신마음 아는데, 이렇게 까지 꼭 내색을 하고 나를 힘들게해야 속이 시원하냐고...
무서운 이 새벽에 걱정이되어 여기저기 포장마차를 들러서 나를 찿아 헤메였노라고...어느덧 배가 상당히 나온 나의 사랑하는 아내가 흐느껴 울고 있었다.

나는 비로소 느꼈다.   그것은 비장한 마음이었다.
이제 다시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힘들게 하지 않겠다.
이 벌어진 현실 또한 내가 노력하고 준비하지 못한 무능한 나의 탓이다.
이제 다시는 돈 이라는 것 때문에 내 사랑하는 사람을 눈물 흐르게 하지 않겠다.
이것은 막연한 나의 목표가 아니다.     나는 부자가 되어야 겠다.  절대 돈이 없어서 내주위의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지 않겠다.

 그밤에 나는 아내를 껴안고 한참을 같이 울었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이 돈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라지만 , 그 말 또한 맞는 말이지만  다시는 돈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에게 고통을 주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이것만으로도 나는 부자가 되어야할 충분한 이유가 되었다.
나는 그 새벽의 밤을 뚜렷이 기억하고 있다.  그 기억이 있기에 나는 오늘 하루도 부자가 되어야 하는 간절한 꿈에 서서히 다가 가고 있다...

돈이 없어 가난하게 살아 부모님께 근심을 드리는 것도 불효이다.
돈이 없어 내 형제들에게 궁핍한 생활과 안스러운 모습을 보이는 것도 미안한 일이다.
내 스스로 가난하여 사람들에게 , 나를 아는 이들에게  지쳐가는 모습과 처진 어깨도 미안한 일이다.
도움을 받는 쪽 보다,  될 수있으면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세상에 질질 끌려가지 말고 이제는 세상이라는 장에서 내가 주도하여 칼자루를 내가 휘들러야 한다. 

 
나는 부자가 되어야한다.   내가 아는 모든 분들도 부자가 되어야한다.
그래서 우리는 꼭 부자가 되어야한다....! 

부자는 항상 쓰레기더미 에서 처럼 , 거친 곳에서 움추리고 있다.
우리는 그 쓰레기더미의 포장을 걷어내고 부자의 기회를 찾는 사람이 되어야한다.
진정 부자가, 자수성가하는 부자는 달라야한다.
어느 분야에서건 최고가 되도록 노력해야하고, 고정관념을 깨고 피와 땀을 흘려야한다.
나의 가슴에는 타오르는 부자에 대한 꿈이 있고 그 꿈을 이루기위한 눈물겨운 밑바닥체험과 목표를 달성하려는 그 열정이 우리를 꼭 부자로 만들어 줄 것이다.

 

아내를 위하여 부자가 되고 싶었다. 정말이다. 아내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어서 부자가 되고 싶었다. 지금도 그 꿈과 목표를 위하여 나는 끊임없이 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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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향은 전북진안이다.
흔히들 무진장 골짜기라고 한다.(무주,진안, 장수를 가르킨다) 지금도 차가 하루에 많이 다니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내 자신이 시골깡촌놈이라고 소개를 가끔한다, 사실이 그러하니까. 지금생각해보니 그 것이 경쟁력이고 살아가는 데 큰 힘이었다.

내 나이 7살로 기억이 된다.
아버지께서 마을하고 한시간 거리인 곳에 외딴집을 지으셨다.
이웃이라고는 한채도없는 홀로이  말그대로 외딴집.
드라마나 영화에서 본적 싶은 그런 외딴집이다. 왜 그런 집을 그 먼 곳에 지우셨을까? 궁금하다.
 
집앞에는 강이라 하기에 크고 냇가라 하기에는 작은 그런 강물이 흐르고 그 강물 건너에는 200미터가 넘는 작은 산이 있었다.

집은 대지보다 약간 높은 둑에 집을 세채로 나누어 지으셨다.
한 채는 부모님과 할머니,저의 형제들이 사는집.
두번 째는 오리와 닭,소,염소,등등 짐승이 사는집.
세번 째는 여러 생리 현상들을 하는 곳과  농사지을 때 쓰는 연장 넣어두는곳...
그 주위로 나무들이 굉장히 많았었고 지대가 확트이 듯 넓었다.
그 넓은곳 들 사이로 논과 밭,그리고  여러 곡식들이 자리를 차지하는 곳들...
친구들의 집은 저 멀리 잘 보이지않는 마을과는 참으로 멀리떨어진  그 외딴집...

그림이 살짝 그려지시나.
좋겠다? 어머 낭만있겠다? 전원생활이다?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같은 집을짓고......
1달만 살아보면 그 말이 쏙 들어간다.(지금은 하라면 하겠는데...)

그 당시 시골이 다 그렇 듯 시골생활이  참으로 가난했다.
먹고 살기위해 일하고 ,일하기 위해 먹고, 먹은 힘으로 또 일하고 ...
먹고 살기위해 일한다는 표현이 참으로 맞을 것이다.

어린 시골생활 ,너 나 할 것없이 어린 고사리같은 손으로 열심히 일했다.
국민학교때 2학년때인가 부터 소 꼴베고, 모심고, 돌 나르고, 거름나르고 , 가을이면 낫으로 벼베고(지금 이런 얘기하면 거짓말이라고 안 믿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겨울이면 낮에는 땔감하느랴 밤이면 소죽을 끓이곤했다.
자갈밭을 옥토로 만들고, 개간한다는게 쉬운일은 아니다.

그래도 외딴집 (그곳을 다른 분들은 액기제라고 그랬다)이라 재미있는 일들도 많았다.

여름이면 고기를 많이도 잡았다.
천렵이라고 그런다.
산수 좋은 곳을 찿아가서 웃통 벗어 젖히고 멱감고 탁족(양말을 벗고 물에 발을담금)하며
물고기잡아 매운탕으로 소주한잔걸치는 (어린나이에는 술이라는 자체가싫었지만 보기에는 좋았음) 모습을 보며 어린나는 고기만 먹고, 나무 그늘 아래에서 늘어지게 한숨자는 그 순간은 참으로 행복하고 깊은 단잠이었다. 강가에 나가 멱(수영)도 하고 대수리(지금은 고동이나 다슬기라고하죠)도 많이 잡았다.
마을에나가 팔기도 하여 아르바이트도 하기도하고 많이도 먹었다.

이사올 때 심었던 복숭아,사과나무,배나무도 어느덧 국민학교 6학년때쯤에는 엄청 크고 ,엄청 좋으맛을 자랑하기도 했다. 맛있다고 타지에서  손수 찿아와서 많이도 사가곤했다.

당연히 그럴수밖에...추운 겨울날 아버지께서 500원 주신다기에 쾡이와 삽으로 키만큼 파서 키운
과일나무이자, 여러 배설물들과  거름등을 정성드려 키어온 결정체였다.
가을이면 한해 열심히하여 지어진 곡식들과 ,여러 호박,감자 고구마,콩 팥등을 캐내는 일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어린애에게도 행복으로 다가왔습니다.

부자라는 것이 무언지 모르는 때였지만 겨우내먹을수있는 양식이 있다 는것은 지금 생각해도 흐뭇하고 뿌듯한 가슴에 행복이 가득한 시간이었다.
차가운 겨울이 오면  외딴집에는 그리할일이 많지 않았다.
낮에만 땔감하는랴 몇 시간 시간보내고 ,저녁이면 짐승들 밥주고 소죽 끓이고 불이 들어오지않는 그 긴 겨울밤을 뭐하고 보내겠는가?

어린 그 시절부터 난 책이라는 소중한 존재를, 인생의 가장 큰 스승을 만나게  되었다.

호롱불이 들어오는 그 불빛에서 읽는 그 독서의 의미는 지금도 눈을 감으면 생각이  저절로 난다.  아스라이 잊혀진것은 잊혀졌지만 그래도 생각이나는 그때 읽었던 위인전들과 모험이담긴 소중한 책들....
몇번을 읽어 지루해지자 눈속을 뚫고 마을로 한 시간을 걸어가 친구들 집집마다 다 들려서 책을 빌려오는 그 즐거움은  아마 모를 것이다.

한 권 한 권,가방에 넣어 매고 오는 약간은 가벼운 ,하지만 마음은 들뜸과 희열이나는 그 기쁨 홀로집에오는 그 발걸음은 책이라는 든든한 친구가있어 외롭지 않았고 발걸음은 더욱 제촉이 됐었다.  방학때 이놈만 있으니  이제 안심이구나...하는 마음이 든거다.

만화책도 엄청 많이도읽었다.
그때 읽은 만화책가운데  최배달선생님의 "대야망"이라는 만화책을 가장 감동적으로보았다.
방학기선생이쓰신 지금은 "바람의파이터"인데 영화로도 아마 나왔다.
최배달선생의 무도의 혼과 집념, 일본의  미야모토 무사시와 줄정도로 돌아가시기전까지 불패의 신화를 창조한 그분의 삶을 얼마나 동경했는지 모른다.
그래서 그당시 제꿈이 첫번째 무도가였고 두번째가 만화가이자  만화가게주인이었다.
그때부터 책과 저는 땔레야 땔수없는 지금까지의 독서습관이 된거다.
어렵고 가난한시절이었다.
하지만 그날그날  부모님과 같이사는즐거움이 있었고,언젠가 우리도 저 멀리 보이는 동네로 이사갈것이라는 희망이 있었다.


내 독서습관의 가장 고마운 것이 외딴집 생활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힘들고 외로운 날이었지만 나를 지금의 나를 있게 해준 것은 그 때의 소중한 날들이었다. 독서라는 그 거대한 존재를 나는 알게 되었다. 평생의 그 큰 꿈속의 세계로 나는 초대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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