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인류 변천의 기록이다. 이것은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화두 중의 하나가 변화였음을 의미한다. 변화에는 늘 혼란과 고통이 따른다. 힘들지도 않고 카오스도 없다면 변화가 겉돌고 있다는 반증이다. 아무도 괴롭히지 않는 변화를 통해 우리는 근본적인 어떠한 개혁도 이루어 낼 수 없다.
변화의 기술이 필요한 이유는 두 가지이다. 첫째는 성공하기 위해서이며, 둘째는 고통과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서이다. 하버드 경영대학의 존 코터는 이 분야에서 주목할 만한 사람이다. 이론적이며 또한 실전적이다.
코터는 8 단계의 변화의 리더십을 제시한다. 첫 번째 단계는 위기감을 구성원들과 공유하는 것이다. 위기의식 없이 아무도 이 어려운 일을 당장 시작하려하지 않는다. 변화는 늘 내일의 일이 되고 만다. 두 번째는 리더십이 강한 개혁 주도세력을 결성하는 것이다. 조직 변화는 잘 짜여진 팀의 작품이다. 셋째는 변화의 혼란과 고통을 충분히 보상할 수 있는 비전을 공유할 수 있어야한다. 비전은 복잡하면 안된다. 1분 안에 설명되어 구성원들이 현재의 이해를 넘어 협력할 수 있도록 정서적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어야한다. 비전을 공유하는 작업, 바로 적절하고 충분한 커뮤니케이션이 네 번째 단계이다. 이 정도면 개혁을 시작할 준비가 갖추어진 셈이다.  


변화가 일상에서 실제로 일어나려면 구성원들이 참여해야한다. 행동하게 만들지 못하면 변화는 일어나지 않는다. 각자가 비전에 따라 행동할 수 있도록 모든 족쇄를 풀어 주는 것이 다섯 번째 단계이다. 여섯 번째는 가장 빨리 가시적인 결정적 성과를 만들어 내야 한다. 저항을 분쇄하고 관망자를 합류시키고 스스로 자신감을 가지려면 좋은 결과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일곱 번째는 불필요한 연관성을 없앰으로서 저항의 뿌리를 뽑는 것이고 여덟 번째는 기업문화 속에 혁신의 능력을 정착시키는 과정이다.
조직의 변화를 돕기 위한 이론이지만 개인의 변화에도 충분히 활용될 수 있다. 위기감을 자신에게 설득하고 삶의 비전을 창조하는 일, 일상적 현실속에서 이를 실천함으로써 가장 빨리 결정적 성과를 만들어 내는 일, 성공을 통해 변화의 능력을 자신 속에 정착시키는 일은 조직과 개인 모두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적절한 기술적 충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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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Harvard Business Review)지에 실렸던 변화 관련 논문 모음집을 번역한 것이다. 논문이지만 어렵지 않다. 그리고 재미있다. 하버드 경영 대학원은 이미 오래 전에 경영학 논문들의 수준을 일반인의 눈높이로 만들어 왔다. 논문이 주는 딱딱하고 융통성 없는 틀을 벗어버리고 실용성을 추구한 지 오래이다. 기고한 사람들도 교수가 아닌 현업 변화경영전문가들이 많다.
8편의 논문 중에서 특히 보스턴 컨설팅 그룹의 부사장인 지니 덕이 쓴 '변화의 관리: 균형의 예술'은 압권이다. 그녀는 먼저 수 없이 많은 변화 프로그램들 속에서도 변하지 않고 살아 남는 방법을 체득한 '변화 속의 생존자'들이 존재함을 일깨운다. 우리는 조직의 혁신을 통해 제도와 시스템, 그리고 기본 관행과 프로세스를 바꾸려한다. 그러나 결국 변화의 성패는 조직 속의 각 개인이 어떻게 다르게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하느냐에 달려있다. 따라서 변화는 매우 개인적인 것이다. 개인적이기 때문에 감정의 관리가 필수적이다. 2만 5천명의 직원을 가지고 있다면 2만 5천 번 각 개인과 만나 설득할 각오를 해야한다.  


변화의 경영은 리더십의 다른 이름이고 이것은 지금까지의 경영과 다르다. 자신이 견딜 수 없을 만큼 반복해야 겨우 구성원들의 행동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우선 경영자가 변해야 한다. 행동을 통해 일관된 메시지를 보내야한다. 스스로에게 감정을 부활시킴으로써 구성원들이 자유롭게 새로운 관점에서 새로운 생각, 해결책들을 제시할 수 있는 자유로움을 부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녀는 또한 전체적 균형을 강조한다. 한 분야에서의 변화는 다른 영역의 균형을 파괴한다. 마치 모빌의 균형을 잡듯, 경영자는 다양한 변화 프로그램들의 상호 영향을 고려하여, 전체를 관장할 수 있어야한다. 조각을 떼어내어 각각을 관리 할 때, 우리는 실패할 수 있음을 경고한다. 여러 부위를 동시에 수술한 환자의 예를 보자. 각각의 수술은 모두 성공적이었으나 결국 환자는 죽고 말았다는 에피소드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은 변화 프로그램의 전체성과 균형의 중요함이다.
사는 즐거움 중의 하나는 배운 것을 함으로 체득하는 데 있다. 핵심을 보존하고 동시에 변화를 일구어 냄으로써 유자신에게 적용일한 자신만의 세계를 창조해내는 것은 조직 뿐 아니라 각 개인의 과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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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여러 얼굴을 가지고 있다.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져 있는 것은 혁명의 정치적 얼굴이다. 기존 권력의 붕괴와 새로운 집권세력의 등장 그리고 그 과정에서 철철 넘치는 피와 처형 - 그러나 이 책은 정치에는 별 관심이 없다. 1998년 '혁명의 문화사'라는 강좌를 담당했던 저자들은 혁명의 또 다른 얼굴, 즉 서민의 일상과 관련된 대목 그러니까
우리가 문화라고 총칭하는 것들과 혁명의 상관 관계를 따진다.
한 예로 노동과 문화의 관계에 대한 생각을 따라가 보자. 자본주의는 노동에 숭고한 의미를 부여한다. 그래서 일을 많이 하다보니 자유시간이 너무 짧다. 스스로 대안적 삶을 추구할 여유가 없다. 짧은 휴식을 끝내고 빨리 일로 복귀하려다 보니 자연히 노동 문화는 자극적이고 소비적인 문화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문화가 문화다우려면 쉽게 말해 좀 놀 수 있어야한다. 게으를 수 있는 권리가 필요하다. 그러므로 문화예술은 자본주의적 노동의 삶을 본능적으로 거부하는 어떤 힘을 가지고 있다. 구체적인 예로 멕시코의 사빠띠스따는 발전의 이데올로기를 거부한다. 자본에 의한 인류와 생태계의 파괴에 저항하고, 발전의 이름 속에
숨어있는 잔인한 실체를 고발함으로 인간의 존엄과 자유를 추구한다.
장시간 교육, 장시간 노동으로 생각할 줄도 모르고 놀 줄도 모르는 대중을 양산했다는 지적은 새로운 천년을 눈앞에 둔 우리 모두가 심각하게 되새겨 볼 말이다. 실제로 많은 개인들은 자신이 평생을 바쳐 무엇을 하고 싶은 지 조차 알지 못한다. 자기 삶을 스스로 조직 할 줄 모르게 되었기 때문이다. 문화 사회는 노동이 지배하는 사회가 아니다. 인간의 정신적 자유와 자율적인 활동이 지배하는 사회인 것이다.
시켜서 하는 노동이 아니라 하고 싶어 하는 일일 때, 일은 몰입할 수 있는 취미이며 문화가 된다. 개인은 일을 통해 자신을 구현하고 조직은 개인의 성과를 통해 발전한다. 이것이 지식사회에 대한 희망이며 기대이다. 혁명은 현재의 삶 속에서 실현되지 않은 것들을 구현하려는 의지이다. 지루한 자신의 삶 속에 혁명을 한번 일으켜 내고 싶은 사람은 이 책을 통해 혁명의 다차원적 개념과 친숙해 질 필요가 있다.

공간과 건축에 대한 예를 들어보자. 김일성 광장이나 천안문 광장은 형태상 엄격하고 대칭적인 고전적 양식이다. 권력과 지배에 대한 야망의 표현이다. 국회, KBS, 강남의 법원 역시 그렇다. 국민을 지배하겠다는 의도를 건축물에서 읽을 수 있다. 고층 아파트가 도시 주거 공간의 전형이 되어가고 있다. 메마른 정서, 무관심, 폐쇄성들은 이런 도시 건축과 무관한 것일까 ? 처칠은 '공간을 만드는 것은 인간이지만, 만들어 진 공간은 다시 인간을 만든다'라는 말을 하였다.
몰입의 즐거움(Finding Flow) , 미하리 칙센트미하리 / 해냄
이 책은 가볍고 만만하다. 그러나 꽉 차있다. 사람들은 보통 직장일을 고역으로 여긴다. 하나마나한 일을 하고 있다는 불만, 참신함도 없고 도전 의욕도 불러 일으키지 않는 일을 몇 년간 밥 먹 듯 되풀이하고 있다는 느낌은 정체와 퇴보의 불안감을 안겨 준다. 그리고 스트레스도 심하다. 특히 상사로부터 과도한 요구를 받거나, 자신이 한 일을 제대로 알아주지 않으면 스트레스는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올라간다.
스톡홀름에 있는 한 연구소에서 일하는 생물학자 게오르크 클라인은 자기 일을 좋아했다. 그러나 질색으로 여기는 일이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국제회의에 참가하기 위해 공항에서 줄을 서는 일이고, 또 하나는 연구비 지원 신청서를 작성하여 정부의 해당 부서에 제출하는 일이었다. 두 가지 일에 정력을 소비하다 보니 연구 작업에도 불만이 쌓였다. 그는 두 가지 일을 하나로 모으기로 마음먹었다. 비행기 탑승을 기다리는 동안 연구비 지원 신청서를 쓰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최고급 휴대용 녹음기를 샀다. 그리고 줄을 서 있는 동안 연구비 지원 신청서에 들어갈 내용을 구술하였다. 클라인은 이 일을 놀이의 경지로 승화 시켰다.
놀이가 곧 일이고 일이 곧 놀이인 직업처럼 좋은 것은 없다. 삶과 일이 혼연 일체가 되는 때가 즐겁다. 창조적인 사람들은 "내가 한평생 일분도 쉬지 않고 일을 했다는 것도 맞고, 내가 단 하루도 일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일한 적이 없다는 것도 옳다" 라고 표현한다. 일과 여가가 녹아 있는 상태 속에서 우리는 행복하다.
모든 사람이 극적인 변신에 성공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렇지 못하더라도 자기가 하는 일을 가치있게 만드는 방법이 있다. 상황이 요구하는 수준 이상의 관심을 기울이면 대수롭지 않은 사건이 삶을 바꾸는 위대한 발견으로 바뀐다. 마찬가지로 일에 대한 태도를 바꾸면 지긋지긋하고 넌더리 나는 일이 하고 싶은 환상적 일로 바뀐다. 그 비결은 무엇인가 ? 첫째, 무슨 일이 일어났고, 왜 그런 일이 발생했는 지를 명확히 이해하는 데 관심을 기우려라. 둘째, 자신의 방식이 유일한 업무처리 방식이라는 수동적 자세를 벗어나라. 셋째, 대안을 모색하여 더 좋은 방법이 나타날 때까지 실험을 계속하라. 창조적인 사람들은 자기가 원하는 곳으로 일을 맞추어 간다. 깔려 있는 길을 가는 것이 아니라 걸어 가면서 길을 만들어 간다. 이 책은 놀이처럼 일에 몰입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적절한 사례들과 참고할 수 있는 데이터를 제공한다. 따뜻한 마음에서 우러난 권유와 차분한 설득력이 돋보인다.
동아일보 8편 - 의식혁명 (Power vs Force, 데이비드 호킨스 / 한문화 )
1933년 뉴욕시 32번가에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 빌딩은 건축가의 마음 속에서 태어났다. 마음 속에서 '일어난' 사건을 강철과 콘크리트로 옮겨 놓음으로써 건축가는 우리 모두에게 그의 비전을 경험하게 해준다. 서로 다른 감각 영역의 지배를 받긴 하지만 '개념'과 '건축', 이 두 가지는 모두 다 완벽하게 존재한다. 창조자와 피조물 사이에는 어떠한 분리의 개념도 존재하지 않는다.  


마음은 마음 그 자체로 실재한다. 철근과 콘크리트만이 실재가 아니다. 모든 것이 다른 모든 것들과 연결되어 있는 이 우주에서는 '우연'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몸이 아프면 이미 이와 연관된 마음이 아픈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질병은 마음에서 온다. 예를 들어 적의는 우리를 편치 않게 한다. 적의가 존재하는 한 우리는 자기 자신의 원한의 희생자가 된다. 그것은 우리 몸에 생리적인 공격을 가하는 것과 같은 결과를 낳는다. 치유는 그러므로 자기 자신과 인생을 새롭게 바라보려는 자발적 태도에 달려있다.
모든 변화는 마음에서부터 온다. 마음이야말로 변화를 가져오게 하는 힘이 머무는 장소이다. 그리고 실재한다. 그러므로 형태를 가지지 않고 보이지 않지만 마음의 세계는 물리적 세상에 못지 않게 '실재(real) 하는 세상'인 것이다.
쉽게 말하면 우리가 세상을 창조하는 것이다. 높은 의식 수준으로 올라 갈수록 오래, 그리고 아주 깊게 응시할 수 있다. 진실이란 이렇게 두려울 만큼 주관적이다.
저자인 데이비드 호킨스(David Hawkins)는 인간 정신의 진화에 관한 전문가이며 미국 정신치료협회 종신회원이기도 하다. 그는 원인과 책임이 자신의 밖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무기력한 희생자로 남아 있어야한다고 경고한다. 의식의 향상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기꺼이 하는 태도이다. 기꺼이 변화하려는 태도는 개인의 믿음이 다 허물어지고 더 나아 갈 수 없는 아주 '밑바닥' 상황에 처해 있을 때만 가능하다. 닫힌 상자 속으로는 빛이 들어가지 못한다. 위기의 장점은 보다 높은 의식 수준으로 가는 통로가 된다는 점이다. 인생은 배우는 것이다. 마음이 실재한다는 것, 마음이 세상을 만든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소프트웨어가 무엇이며, 그것을 이용하는 법을 알게 된다. 20세기를 보내며 얻게되는 최소한의 핵심적 깨달음이 아닐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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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어디서나 밤낮을 가리지 않고 부르면 가야하는 일에 종사하는 사람은 고되다. '박봉에 힘든 일'은 누구도 원치 않는다. 그러나 그곳에 정열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119를 한 번이라도 이용해 본 사람들은 그들에게 진심으로 감동한다. 어렵고 당황스런 일을 힘껏 도와 주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잊을 수 없는 일은 그들이 하나같이 당당하고 깨끗하다는 것이다. '진심으로 너무 고마워서' 조심스럽게 내미는 사례의 표시조차 그들은 용남하지 않는다.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부패의 고리로 부터 자유롭기가 참으로 어려운 이 땅에서 그들처럼 열정적인 조직이 생겨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 많은 한국의 조직들이 지금 정신적 활력을 잃어가고 있다. 사람이 가장 중요한 지식 사회에서 일에 대한 열정을 가진 구성원으로 가득한 조직을 만들어 내는 것이 급선무이다. 외국 기업의 사례로 부터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정신은 우리 풍토에서 자생된 것일 때 다른 조직으로 이전 가능하다.

119가 119일 수 있는 이유 가장 중요한 이유는 자율성에 있다. 일을 당하여 그들이 믿는 것은 자신과 동료밖에 없다. 위급한 상황을 필요로 할 때 그들은 자신이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한다. 상사가 기대하는 것을 생각하지 않는다. 오직 최선을 다하고 스스로 책임진다. 이러한 자율성이 바로 그들은 견디게 하고 자긍심을 가지게 한다. 현장에서 최선을 다하기 위해서는 평소에 훈련하고 연습해야한다. 가상적 위급 상황에 대처하는 평소의 훈련이 자기를 믿고 최선을 다할 수 있는 전문성을 쌓게한다. 직원이 직장을 떠나지 않고 맡은 일에 열정을 쏟아 붓기 위해서는 그 일을 마음대로 처리할 수 있는 자율성이 전제되어야한다. 책임도 영광도 함께 따라주어야한다. 동시에 최선의 판단이 가능하기 위한 전문성이 평소에 늘 배양되고 계발될 수 있는 환경이 주어져야한다. 교육과 훈련이 중요한 대목이다. 자율성과 훈련, 이것이 바로 다른 조직으로 그 활력을 이전 가능하게 만드는 119의 비밀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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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놀고 있을 때 재미있어한다. 재미있는 놀이는 우리를 몰입하게 한다. 놀이에는 어떤 의미 기능이 숨어 있다. 즉 현실을 이미지로 전환시키는 형상화의 과정을 가지고 있다. 아이들이 노는 것을 보면, 평범한 현재의 자신 보다 더 아름답고 장엄하고 더 모험적인 것을 상상하고 있다. 왕자가 되고 영웅이 되기도 하고 마녀나 호랑이가 되기도 한다. 놀이는 삶의 한 문화적 요소이다. 그래서 요한 호이징하(Johan Huizinga)는 인간을 '놀이하는 인간' 즉 호모 루덴스라고 규정한다.
보통 사람들은 먹고 자고 일한다. 특히 부지런한 사람들은 더 많이 일한다. 심지어 일을 만들어 한다. 비유컨데 한 곳에 쌓아 놓은 흙더미를 다른 곳으로 옮기고 그 일이 끝나면 원래의 위치로 다시 옮겨온다. 이들의 특징은 늘 바쁘다는 것이다. 바쁜 사람은 다른 사람도 바쁘게 한다. 이들은 왜 바쁜 지 결코 알려하지 않는다. 이런 사람들이 지배하는 사회는 근면하지만 획일적이고 단조롭다. 이들에게 휴식과 놀이는 소비이고 게으름이다. 집단으로 부터 '요구받은' 일을 하느라고 자신을 돌아 볼 시간도, 자신을 표현할 여유도 없다. 자신을 지금과 다른 더 아름답고 장엄한 존재라고 상상할 수 있는 힘을 박탈당한 것이다.
한국의 놀이 문화가 소비적이고 향락적인 이유는 우리의 휴식 시간이 짧다는 것과 대단히 밀접한 관계가 있다. 짧게 끊어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TV 시청, 노래방, 그리고 짧은 여행은 향락적인 소비문화 일 수 밖에 없다. 자유시간이 턱없이 짧기 때문에 놀이의 클라이막스는 빨리와야한다. 뜸을 들이고 전희를 즐길 여유가 없다. 짧은 시간에 농축되어야하기 때문에 진해야 되고 그래서 야만적이며 과격한 몸짓이 된다. 짧은 휴가 동안 보아야할 관광지들울 찾아 새벽부터 움직여야한다. 밤늦게 까지 시달리다가 파김치가 되어 숙소로 돌아온다. 몸은 힘들지만 그래도 그냥 잘 수는 없다. 서운하다. 그래서 밤늦도록 놀아야하고 마셔야한다. 왜냐하면 다시 일로 복귀해야할 날이 촉박하기 때문이다. 휴가가 휴식일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휴가가 길면 효율성이 중요하지 않다. 천천히 걷고 생각하고 쉬고 빈둥거리는 것도 좋은 휴식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경우 주 35시간 노동이 확정되자 여름철 파리 대탈출은 완화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노동으로부터 자유로와 짐에 따라 스스로 원하는 때에 원하는 방식으로 놀 수 있는데 무엇 때문에 그 복잡한 바캉스 대열에 합류할 것인가 ? 느긋해도 얻을 수 있다고 믿으면 느긋한 사회가 된다. 언제나 손을 뻗으면 얻을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사람들은 북새통을 이루지 않는다.
바쁘다는 것, 그리하여 빨라질 수밖에 없게되는 것, 이것은 우리가 놀 줄도 쉴 줄을 모르는 사람들이 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문화는 쉽게 말해 잘 노는 것이다.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하고, 자기가 스스로의 삶을 조직하는 능력을 배양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자유시간이 모자라면 자기의 삶을 자율적으로 조직할 수 있는 가능성이 낮아진다. 문화는 본질적으로 스스로를 유한계급으로 만드는 과정이다. 문화사회란 그러므로 일하는 시간을 줄여 그 시간을 자아의 실현을 위해 투여하는 사회이다. 노동이 지배하는 사회가 아니라 사람들의 자율적인 활동이 지배하는 사회가 바로 문화사회인 것이다.
인간은 혼자 있을 때 가장 활동적이다. 철저하게 혼자 있을 때 고독하지 않다. 인간은 물리적이며 또한 정신적이다. 그리고 이성적 존재 이상의 무엇이다. 놀이는 바로 비이성적 활동이다. 이것은 우리가 어둡고 답답한 현실을 넘어 현실을 잊지 않으면서, 더 커다란 꿈에 닿도록 도와준다. 바쁜 사람은 그러므로 바보이다. 생각하고 꿈꿀 수 없기 때문이다. 휴식과 놀이를 게으름이고 소비라고 느끼지 않을 때, 그리하여 한 사회가 이에 진심으로 공감할 때, 우리는 훨씬 창조적인 사회에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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