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첫인상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는 수도 없이 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자신의 인상을 고치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인상은 고쳐지는가? 물론이다. 인상은 생김새와는 별개이다. 잘 생긴 사람이 반드시 인상이 좋은 것은 아니다. 이때 좋은 인상이라는 것은 잘 생기거나 예쁜 것 보다 호감이 가고 정감이 가고 친근감이 가는 인상을 말한다. 처음 만나서 이야기하는 사람인데도 호감이 가는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에게 우리는 ‘인상이 좋다’라고 말한다.
이 인상이라는 것은 언어적 요소와 비언어적인 요소로 나누어진다.
언어적인 요소는 말의 내용이라면 비언어적인 요소는 말을 하는 태도, 외모, 태도를 말하는데 특히 첫 만남에서는 거의 대부분 비언어적인 요소인 시각(55%)과 청각(38%)에 의해서 이미지가 형성된다고 한다.
처음 만났을 때 상대방의 모습과 웃음소리 등이 그 사람의 첫 인상을 좌우한다는 이야기이다. 따라서 잘 웃는 사람은 93%를 얻고 들어가는 것이 된다.
프린스턴 대학 연구팀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첫 인상은 0.1초안에 결정된다는 설도 있지만 최대한 5초 이내에 상대방에 대한 평가가 이루어진 다는 이야기가 된다.
오늘부터 사람을 만나면 늘 웃는 얼굴로 대하도록 해 보자!
웃는 얼굴은 사람을 끌어 드리는 좋은 요소인 것이다. 늘 웃는 모습을 갖도록 노력하는 사람이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웃음 은 인생을 바꾸는 좋은 전략이 되는 것이다.
'웃으면 복이 온다.‘ 는 것은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니다. 웃는 사람주변에는 사람들이 모이고 그 안에는 반드시 복을 가져다주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웃는 사람에게 침을 뺏을 수 없고 웃는 사람에게 화를 내기가 어려운 것이 인지상정인 것이다.
첫인상을 좋게 하는 가장 좋은 전략은 늘 웃는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면서 기분 좋은 일을 떠올리도록 하자. 그리고 미소를 지어 보도록 하자.
좋은 일이 있어서 웃기도 하지만 웃다 보면 좋은 일이 일어난다. 웃는 사람은 심리적으로 심신이 편안해지고 그러한 마음이 얼굴로 표출되어 상대방에게 좋은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많이 웃는 하루 하루를 만들어 가면 복은 그냥 들어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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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평생을 살면서 얼마나 많은 시간을 웃고 살까? 궁금한 일이다.
즐겁게 사는 사람의 경우와 그렇지 않은 사람의 경우에는 많은 차이가 있겠지만 시간적인 분석은 의미가 있을 것 같다.
어린아이들이 하루에 평균 3-500번 정도를 웃는데 비해서 성인들은 하루에 7-10번 정도 웃는다고 한다. 성인이 되면서 웃음을 잃어가고 있는 것이다. 팍팍한 생활에 시달리면서 웃음을 잃어 가고 있는 것이다. 성인이 10번 정도 웃는데 걸리는 시간이 채 5분도 되질 않는다고 한다.
매일 5분 정도씩 웃는 다고 가정할 때 70년을 산다고 했을 때 웃는 시간은 88일 정도 밖에 되지 않는 것이다.
사람이 평균 TV를 보는데 허비하는 시간이 7년, 잠자는데 23년, 일하는데 26년, 근심 걱정을 하는데 7년 정도의 시간을 쓴다고 하니 웃는데 할애되는 시간은 참으로 적은 것이다. 성인도 나이가 들수록 그나마 웃음이 줄어든다. 50이 넘어서기 시작하면 웃는 시간이 하루에 2분도 채 안된 다고 하니 얼마나 삭막한 삶인가.
옛말에 ‘일소일소 일노일노(一笑一少 一怒一老)󰡑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한번 웃으면 그만큼 젊어지고 하번 화를 내면 그만큼 늙는다는 말이다.
동양사람들은 웃음에 관한 한 야박했던 것 같다. ‘웃음이 헤프면 안 된다󰡑라고 교육을 받기도 하지 않았는가! 하지만 현대 생활을 하는 우리들은 세계화시대를 살고 있다. 세계의 선진국 국민들은 우리보다 훨씬 잘 웃는고 많이 웃는다. 웃음은 분명히 긍정적인 사회 커뮤니케이션이다.
미소짓고 만나는 사람들과 인상을 굳게 하고 만나는 사람들과의 커뮤니케이션 벽은 쉽게 상상이 될 것이다.
그래서 늘 웃는 모습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웃음 그 자체가 기가 막힌 커뮤니케이션이기 때문이다.
주변에 진짜로 웃지 않는 사람을 간혹 보게된다. 인상이 굳어져 있는 무표정한 사람들도 많다. 공중들이 모이는 장소에 가보면 사람들의 표정만 보아도 선진국과 후진국의 차이를 금새 느낄 수 있다.
선진국은 만나는 사람마다 자연스럽게 웃는 경우가 대다수인 반면에 후진국의 경우에는 그 반대의 현상을 볼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거리에서나 공공장소에서나 얼굴이 굳어져 있는 사람을 많이 보게 된다.
서로 만나면서 웃고 이야기하는 사회는 그 만큼 사회커뮤니케이션(social communication)이 활성화되어 있는 것을 의미하며 이러한 사회일수록 다툼은 적어지게 마련인 것이다.
항상 커뮤니케이션이 잘 되는 사회가 경쟁력이 높아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 일 것이다.
같은 동네에 살면서 마주쳐도 인사하지 않는 사회에서 당연히 다툼이 많아지고 삭막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이 우리가 만들어 내는 구조적인 문제인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동네에서든 아파트에서든지 간에 누구를 만나든지 먼저 인사하고 미소 짓는 노력을 해 보도록 하자. 밝고 명랑한 사회가 경쟁력이 있는 사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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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늦게 영주에서 강연을 마치고 인근에 있는 부석사를 들렀습니다.
그동안 방문하였던 산사 가운데서 으뜸 가는 곳을 한 군데 들자면
단연코 부석사라 할 것입니다.
영주 시내를 출발하여 단종의 복위를 도모하다 세조에 의해 처형당하였던
금성대군과 그 일파들의 처형장소인 순흥을 지나서 부석사로 가는 길에는
가을이 깊어가고 있었습니다.
길가에 은행잎들이 '정말 노랗다'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으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노란빛으로 아름답게 단장되어 있었습니다.
'참 아름답다'는 감탄이 절로 나올 정도로 멋진 길이었습니다.
이동하는 길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와서 살다가는 시간이란 것이 긴 영겁의 시간에 비하면
잠시 머물다 가는 것이다. 꼭 손에 넣어야 할 것들도 있고, 꼭 이루어야 할 것들도
있지만 자주 자주 잠시 멈추어 서는 시간을 가져야 하지 않다.
그리고 삶의 여행길에서 가능한 좋은 만남들로 가득 채워야 하지 않겠는가?"

부석사의 무량수전 앞뜰에서 바라보는 일몰의 소백산맥들은 우리들의 삶이 가진
유한성을 늘 깨우쳐 주게 됩니다. 크고 작은 산봉우리들이 올망졸망 경쟁이라도 하듯이
앞서거니 뒷서기 펼쳐진 광경들을 가슴 가득히 채우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천천히 가파른 아홉곳의 계단을 지나서 무량수전에 다가가는
길은 '우리 조상들은 어쩌면 이렇게 아름답게 산사를 지을 수 있었을까?'라는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합니다.

고전미라는 것은 언제 방문하더라도 늘 새롭게 새로움으로 느껴지는 그런 아름다움이라
생각합니다. 이 땅에 나서 살아가는데 가장 큰 은혜들 가운데 한 가지 중에는
반드시 한국의 가을 산사를 들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어제의 행복한 시간을 떠올리면서 새벽에 글을 올립니다.

2009년 10월 23일(금)... 새벽 4시 50분... 진주 남강이 내려다 보이는 곳에서... 공병호


* 추신: 아래의 시는 안악루에 걸린 김삿갓(김병연)의 시입니다.
안악루에서 바라본 소백산의 절경을 그린 시입니다. 해설하시는 분의 도움으로
그동안 눈여겨 보지 않았던 김병연의 시를 만나게 되었네요.

김삿갓 -부석사(浮石寺)-
平生未暇踏名區(평생미가답명구)/평생에 여가 없어 이름난 곳 못 왔더니
白首今登安養樓(백수금등안양루)/백발이 다 된 지금에야 安養樓에 올랐구나
江山似畵東南列(강산사화동남열)/그림 같은 강산은 東南으로 벌려있고
天地如萍日夜浮(천지여평일야부)/천지는 부평같이 밤낮으로 떠 있구나
風塵萬事悤悤馬(풍진만사총총마)/지나간 모든 일이 말 타고 달려온 듯
宇宙一身泛泛鳧(우주일신범범부)/우주간에 내 한 몸이 오리마냥 헤엄치네
百年幾得看勝景(백년기득간승경)/인간백세에 몇 번이나 이런 경관 보겠는가
歲月無情老丈夫(세월무정노장부)/세월이 무정하여 나는 벌써 늙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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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동안에 악마에서부터 '가장 존경 받는 경영인'으로 변한 사람이 있다. 이제는 후계자를 모색하고 있는 GE의 잭 웰치 회장( John F. Welch)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 나는 효율이라는 단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좋아 하는 단어는 창조이다. 그리고 창조는 모든 사람이 다 중요하다는 믿음에서 부터 비롯된다. " 라고 말했다. 그가 위대한 것은 바로 이 믿음을 지키고 있다는 것 때문이다. 그는 GE 의 개혁의 중앙에 '크로톤빌' 이라는 경영개발센터를 놓아두었다. 교육의 중요성을 누구보다도 신뢰하고 있는 웰치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단순한 변화가 아니라 혁명을 원한다. 그리고 그것이 크로톤빌에서 시작되기를 바란다."

그는 단순한 변화가 전하지 못하는 강력한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 '혁명'(revolution)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였다. 그가 크로톤빌이라는 자체 교육 기관에서 '혁명'이라는 단어를 통해 직원들에게 전달하려고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 그는 직원의 본질적인 변화를 주문한 것이다. 인간에 관한 본질적인 변화란 무엇일까 ?

번역가이며 작가인 이윤기씨는 변화의 정도를 세 가지의 다른 용어로 번역하고 있다. 형태만 변하는 것은 변형(transformation), 성질이 바뀌는 것을 변성(transmutation), 그리고 본질이 바뀌는 것을 변역(transubstantiation)이라고 구별한다. 예를 들어 포도를 가지고 즙을 짜서 먹으면 이는 변형이다. 형태는 바뀌었지만 성분은 같다. 그러나 포도를 가지고 포도주를 만들어 내면 이는 변성이다. 성분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만일 사람이 포도주를 먹고 취해버리면 이는 변역이다. 평소에 그가 가지고 있던 기능과 역할을 잊고 다른 사람이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재미있는 비유이다. 아마 잭 웰치가 직원에게 주문한 것은 이런 변역을 의미했을 것이다.

이윤기씨가 사용한 상이한 개념을 인간의 변화라는 과정 속에 직접 적용해 보자. 직위가 달라지거나 직장이 바뀌는 경우 혹은 직업이 바뀌는 경우는 아마 변형일 것이다. 껍데기는 바뀌었지만 사람 자체가 달라 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만일 직업을 바꾸는 과정에서 자신을 움직이는 정신적 원칙이 달라지게 되었다면 어떨까 ? 예를들어 소극적인 성격에서 아주 적극적으로, 부정적 사고에서 긍정적 사고체계로, 위험 회피에서 도전적으로 바뀌게 되었다면 아마 변성쯤 될 것 같다. 보다 사회적 가치가 있는 곳으로 사람들을 바꾸어 가는 일반적인 자기계발 과정은 인간의 변성을 촉진하고자 하는 접근법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한계가 있다. 인간은 날 때 부터 서로 다르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에너지를 내면으로 부터 받아오는 내향적 성격인데 반해 어떤 사람들은 외부로 부터 에너지를 받아오는 외향적 사람이다. 어떤 사람은 감각적이고 어떤 사람은 직관적이다. 어떤 사람은 이성적이고 어떤 사람은 감성적이다. 어떤 사람은 선택하고 결정하는 것이 분명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결정을 늘 유보한다. 사람은 날 때 부터 다양하고 서로 다르다. 획일적인 계발에 의해 다양성을 누르는 것은 최선이 아니다.

여기에 변역의 필요성이 대두된다. 변역은 '자기를 찾은 것'이다. 나는 원래의 자기가 되는 것을 변역이라고 믿고 있다. 말하자면 자기에게 주어진 재능을 발견하고, 그것을 계발하며, 그 재능이 잘 적용될 수 있는 스스로 좋아하는 일을 찾아 그 일에 몰입하는 경지에 이른 사람들은 변역의 인물이라고 불리울 수 있다. 그들은 성인들은 아니다. 그러나 그들은 세상 속에 자신을 세우는 법을 알고 있다. 그들은 위대해 지기를 바라지 않는다. 그들은 그저 자기가 되고 싶어 한다. 그들은 사회적 틀과 기대로 부터 비교적 자유롭다. 그들은 자기가 원하는 대로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 가며 그 속으로 다른 사람들을 초대한다. 이것이 변역의 의미이며 변화의 궁극적 목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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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인 스티븐 호킹( Stephen Hawking)은 이런 말을 한적이 있다. " '나는 변화를 원하는가 ?' 이런 질문은 무가치한 것이다. 단지 '변해서 무엇이 되고 싶은가 그리고 어떻게 그렇게 될 수 있는가 ?' 라는 질문 만이 진정한 질문이다"

질문은 대부분의 경우 답 만큼이나 중요하다. 어떤 때는 오히려 답 이상으로 중요하다. 중요한 질문일수록 더욱 그렇다. 훌륭한 질문 만이 훌륭한 답을 만들어 낼 수 있다.

변화는 어려운 것이고 불편한 것이며 미지의 것이다. 예측할 수 없는 것이며, 지금 누리고 있는 혜택을 박탈하는 것이다. 누가 변화 그 자체를 좋아하겠는가 ? 그러나 우리는 '어느 경우' 변화를 원한다. 변화가 주는 더 큰 혜택을 믿을 수 있는 경우에 그렇다. 따라서 의미 있는 질문은 변화가 주는 혜택이 무엇인지 물어야한다. 그리고 그 혜택을 얻기 위해 어떻게 변화해야할 것인지를 알아야한다.

변화하지 않음으로써 당신이 누릴 수 있는 혜택은 무엇일까 ? 그것은 당신이 지금 세상 속에 어떤 모습으로 있느냐에 따라 다르다. 한 예를 들면 월급 150만원, 익숙한 직장 동료의 관계, 손에 익은 작업, 회사가 일부를 부담해 주는 연금과 각종 보험, 직업을 가지고 있다는 안심, 신용카드를 만들 수 있거나 은행에서 신용으로 돈을 조금 빌릴 수 있는 자격, 조금씩 월급이 오르고 승진할 수 있다는 기대, 지루하지만 편안한 일상 같은 것들일 것이다. 만일 실업 상태에 있다면 어떨까 ? 아주 많은 시간, 살아온 과거를 돌아 볼 계기, 어려운 사람들의 고충에 대한 공감, 하고 싶은 일과 재능에 대하여 생각해 볼 수 있는 여유 같은 것일 것이다.

지금 누리고 있는 혜택으로 보면 직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실업 상태에 있는 사람 보다 경제적으로 보다 많은 것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지금 직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직장을 그만둘 때 가장 두려원하는 것은 경제적 상실이다. 반대로 지금 실업 상태에 있는 사람들이 직장을 구하게 되면 시간적 여유를 상실하게 된다. 변화를 통해 우리는 지금 향유하고 있는 '내가 좋아하는 무엇인가'를 잃게된다. 이것이 두려움의 근원이다.

이제 또 물어 보자. 변화 함으로써 당신이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 아주 밝고 긍정적인 변화를 생각해 보자. 더 많은 수입, 더 많은 성장 기회, 더 좋아하는 일의 발견, 그 일을 아주 잘하게 되는 것, 열정, 적극성, 자기의 실현, 자기만족, 사회적 인정등이다. 변화를 통해 우리가 얻으려고 하는 것은 '미래이며 희망'이다. 이것이 우리가 변화를 갈망하는 이유이다.

두려움과 희망 사이에 존재하는 것은 갈등이다. 우리는 갈등을 피하고자 한다. 그것은 혼란과 혼동이다. 그것은 마음의 균형을 깨뜨리고 내면적 평화를 위협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갈등의 해소를 원한다. 더 정확히 말하면 갈등 자체를 가지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러나 누구도 갈등을 피할 수 없다. 갈등은 사회적 산물이다. 가만히 있다고 해서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갈등이 없는 부부가 있는가 ? 자식과 부모 사이가 늘 화평한가 ? 갈등이 없는 직장 생활이 있는가 ? 친구와 만나면 늘 즐겁게 웃기만 하는가 ?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가장 소중한 관계 속에 갈등이 존재한다면 갈등을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갈등은 우리의 일상이며, 그러므로 힘껏 껴안아야할 핵심이다. 갈등의 자식은 선택이다. 미래와 희망을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현재의 기득권을 선택할 것인가 이것이 문제이다. 불만과 갈등 그리고 선택, 이것이 바로 변화가 다루어야할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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