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킬링필드>를 보고 섬득했던 기억이 있다.
사람이 사람에게 얼마나 잔인할 수 있는지.
사람이 사람을 생사여탈할 수 있는 권리가 있는지.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 사람임을 알 수 있게 된다.
작은 킬링 필드.
킬링 필드는 <죽음의 들> 이라는 뜻이다.
순박하고 착한 이 캄보디아라는 나라에서 이 잔혹한 일이 벌어졌다는 게 정말 믿어지지가
않는다.
정치의 권력을 잡은 이가 자행한 눈 뜨고 못 볼 그 처참한
광경들....
출처 <위키백과>
킬링필드(The Killing Fields)는 1975년에서 1979년 사이, 민주 캄푸차정권 시기에 폴 포트가 이끄는 크메르 루즈라는 무장단체가 저지른 학살을
말한다.
DC캠 매핑 프로그램과 예일 대학의 조사 결과, 1,386,734명의 희생자가 발생했다고 발표했다. 크메르 루즈에 의한 희생자 수(병사한
사람과 굶어죽은 사람 포함해서)는 800만명 중 170만명-250만명 가량 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1979년 베트남의 침공으로 민주 캄푸차는
종말을 고한다.
캄보디아의 저널리스트인 딧 프란은 "내가 독재정권을 탈출한 이후의 기간"이 킬링필드 시기라고 말했다. 1984년 영화 '킬링필드'는 딧
프란과 또다른 생존자 하잉 응고르가 겪은 일들을 보여준다.
크메르 루즈는 3년 7개월간 전체 인구 600만 명 중 1/3에 해당하는 200만 명에 가까운 국민들을 학살했다.[1]
미국의 지원을 받던 크메르 공화국의 론 놀이 세력이 약해져 해외로 망명한 사이, 베트남 전쟁이 종결되고 수도 프놈펜에 크메르 루즈가 입성했다. 국명을 민주 캄푸차로 개칭한 크메르 루즈는 혼란한 국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화폐제도의 폐지·도시 주민의 강제 농촌 이주 등의 극단적인 공산주의를 내세워, 기존의 산업시설을 모두 파괴하고, 기업인·유학생·부유층·구 정권의
관계자, 심지어 크메르 루즈 내의 친 월남파까지도 반동분자로 몰아서 학살했다.
희생자
수[편집]
근거있는 희생자 수가 나오기 전까지 120만명이 살해되었다는 미확인 보도가 있다. 1980년 통계로는 200만명이 희생된 것으로 파악되었으며, 1986년 발표된 보고서에 따르면, 610만명의 국민의 희생되었다고 나온다. 보통 학자들은
집계되지 않은 사람과 이 시기에 기아로 사망한 사람의 수를 합하면 캄보디아 인구(당시 약 600만)의 1/3에 해당하는 200만명에 달한다는
주장이 있으나 이는 근거가 불확실하다. 다른 한편 크메르 루즈의 학살 희생자는 수가 과대 평가되었고, 1969~73년에 이루어진 미군 폭격에
의한 희생자 수 40만~80만명,크메르 루주 학살 희생자 10만~30만명, 기아에 의한 사망자가 약 70만~80만명 정도로 추산되어 이를 모두
합쳐야 최대 약 200만명 정도가 된다는 주장도 있다.
이 어린 아이들에게 사진을 찍어 죄명을 붙여 놓았다고 한다.
훗날 국제 재판에 회부될 때 명분을 갖기 위하여...
지금도 캄보디아에서는 킬링필드가 끝나지 않은 것 같다....
관람을 마치고 나오는 길에
할머니가 어린 손주를 도닥거리고 있다.
아이는 어떤 몹쓸 병에 걸렸는지 머리가 정상이 아니다.
할머니는 그런 손주를 안타깝게 바라보고 있다.
해줄 수 있는 것은 옅은 미소와
몇 푼의 작은 돈뿐이다.
안타깝다.
현실이, 지구 어딘가에서 이렇게 고통받는 사람이 있음이...
이것 또한 여행의 한 부분이거늘...
느끼고 배우고 각성하여 조금이나마 봉사하고 나누는 삶을 살아가리라
다짐해본다.
지구촌 여행을 떠나면 내가 얼마나 많을 것을 가졌는지 절실히 깨닫게
된다.
그래서 여행은 몸으로 읽는 책이고 가슴으로 배우는 언어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