렌고쿠가 숨을 거두기 직전 말한다. 어머니, 제가 제대로 해낸 건가요, 해야 할 일을, 완수해야 할 일들을 다 해낸 건가요. 어머니는 대답한다. 아주 훌륭하게 해냈단다. 그제서야 렌고쿠는 활짝 웃는다. 어제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를 우연히 보았다. 새삼스럽지만 일본문화가 동일한 지점을 반복하는 걸 느끼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렌고쿠는 약한 자들을 돕기 위해 선천적으로 강하게 태어난 존재다. 남들을 위해 그 힘을 사용해야 한다. 하늘이 내려주신 렌고쿠의 강력한 힘은 사리사욕을 채우는 일에 써서는 안 된다. 그걸 잊지 말라고 강조한 양육자는 렌고쿠의 어머니였다. 어머니의 법이다.
마음을 불태워라, 이를 악물고 앞으로 나아가라, 네 곁에서 슬퍼해 주지 않는다. 내가 여기서 죽는 걸 슬퍼하지 마라. 염주라면 누구라도 이렇게 한다. 어린 싹을 죽도록 놔두지 않는다. 더 크게 성장하라. 너희가 귀살대를 받치는 힘이 되어라.
TV 화면 속 귀살대원들은 약해 빠진 소리에 거부감을 갖는다. 훌쩍거려서 돌아오는 건 없다고 말한다. 멧돼지 귀살대원도 눈물을 흘리지만(탈을 쓴 것인지 '멧돼지인간'인지 모른다, 동료 귀살대원으로 출현한다), 온 힘을 다해, 기꺼이, 혈귀와 전쟁을 치른다. 염주는 (짐작하기로는), 귀살대의 강력한 능력치를 가진 그룹을 일컫는다. 혈귀들로 인해 죽은 아이들의 한을 풀고 싶어 귀살대로 모여든 아이들은 최고의 대원인 염주가 되기 위해 어려운 미션을 수행하려 한다.
어렵게 혈귀사냥꾼이 되지만 그들은 만만한 존재가 아니다. 팔을 잘라내면 바로 잘린 팔이 다시 재생되는 혈귀를 어떻게 이길 수 있을까. 공격할 틈을 주지 않는 혈귀의 빠른 움직임은 뼈를 깎는 마음으로 싸우더라도 헛수고가 되곤 한다.
이즈음 가만가만 요상한 생각이 들었다. 이제까지 어머니의 법이 싸우고 있는 세계가 아버지의 법이 아닐까 싶다. 혈귀들은 부상당한 내장도 금방 다시 재생시킨다. 혈귀는 아무나 될 수 없다. 선택받은 혈귀들의 세계는 단순한 말이 아니라 힘으로 보여준다. 그들은 언제든 다시 재생할 능력을 갖는 존재들이다. 선택받은 강한 자로서 혈귀는 특히 약한 인간을 싫어한다. 늙지도 않는 탓에 몇 백 년을 수련해 더 더 강한 존재가 될 수 있다 한다. 인간이 덧없는 생물로, 약해서 추하고, 추해서 더 약해지는 미물이 되어간다. 혈귀는 죽지 않는 무엇이다.
이 영화의 부제가 무한열차다. 혈귀가 열차를 장악해서 열차 자체가 혈귀가 된다. 기차와 융합할 능력을 가진 혈귀가 200여 명의 승객을 먹어치우려고 사용한 전략이 특이하다, 매우 매우. 먼저 혈귀는 귀살대원들을 잠들게 한다. 그리고 그들에게 원한이 있는 자들을 밧줄로 연결한다. 원한을 가진 자들은 귀살대원의 꿈에 들어가 무의식의 영역에 있는 정신의 핵을 찾는다, 그들을 파괴하기 위해서. '꿈의 세계'와 그 경계선에 있는 무의식의 공간 속에 '정신'의 핵을 찾아 파괴하는 것이다. (왜 이렇게 복잡하게 사냥을 할까_이런 생각을 눌러담는다.)
혈귀들이 보기에 인간은 무르고 약하다. 무의식에 있는 정신의 핵을 파괴하면 정신은 주인을 잃고 만다. 혈귀는 쉽게 그 인간을 해치울 수 있게 된다. 귀살대원 중 한 명인 탄지로를 보자. 그의 가족은 살해되고 홀로 살아남았다. 탄지로의 꿈은 행복의 순간을 그대로 담고 있었다. 파란 하늘 아래 정겨운 집이 있다. 여동생이 나물을 캐오고, 누군가는 숯을 굽는다. 투닥거리며 서로를 보듬어 안는다. 즐거운 가족들이 거기에 있었다. 탄지로는 그대로 있고 싶었다. 그러나 무언가가 탄지로를 계속 자극한다. 꿈에서 꿈인 걸 눈치챈다. 나는 모두를 잃었는데 어떻게 이들이 이곳에 있을까. 난 꿈에서 나가야 해, 난 귀살대야.
꿈 속에 머무르기를 거부한 탄지로는 갑자기 혈귀의 공격을 거세게 받는다. 다사롭던 가족들이 울부짖는다. 탄지로, 우리를 두고 가지마. 우리를 버리지 말라고 애원한다. 그리고 또 을러대며 왜 우리를 책임지지 않느냐 한다. 사랑하는 가족들이 너는 왜 태연하게 살아있느냐고 원망을 말을 한다. 탄지로는 가족들에게 대꾸한다. 잊지 않을 거라고, 부디 용서하라고. 탄지로가 혈귀의 선물이었던 '꿈의 세계'에서 탈출할 수 있었던 까닭은 자신을 살해하는데 있었다. 각성하기 위해 자신을 제거하며 '꿈의 세계'까지 없애는 결단이었다.
혈귀들은 가족들이 살아돌아오는 행복한 꿈을 꾸게 하고 연이어 악몽을 꾸게 한 후에, 그 불행에 괴로워 발버둥치는 인간을 보는 걸 즐긴다. 상상할 수 없는 큰 힘을 가진 꿈의 역동은 인간을 더 무력하게 한다. 탄지로는 정신을 차린 후에야 내 가족들이 그런 말을 할 리가 없다고 단정한다.
혈귀는 누구인가? 혈귀는 꿈의 내용을 간섭할 수 있을까. 혈귀는 과거를 변경시킬 수 있을까. 아버지의 법이 한계에 이르는 지점이다. 아버지의 법이 다다르는 지점이다. 그렇다면 어머니의 법은 어떨까.
난 혈귀는 되지 않는다. 이 결연한 외침이 어머니의 법일까. 내가 있는 한 인간을 보호할거다. 이 단단한 투지가 어머니의 법일까. 부상을 입은 상태로도 다시 몸을 일으켜 약한 자를 구해낸다. 이 선택받은 자가 어머니의 법일까. 어머니의 법은 혈귀가 선물한 '꿈의 세계'와 대척점에 있을까. 그렇다면 우리는 꿈의 세계를 어떻게 열망해야 할까.
'어머니의 법'은 어머니가 품은 아이들에게 유효하다. '어머니의 법'이 어머니를 넘어 사는 존재들에게까지 미칠 방법이 있을까. 만약 '어머니'가 세계 자체라거나 '대지의 신'이라면 어머니의 법은 모두를 구원할 수 있을테다.
몇 번 포스팅했던) 줄리엣 미첼의 『동기간』은 바로 어머니의 법을 다룬다. 남성적 히스테리와 함께 측면관계를 다룬다. 미첼이 보기에 사회관계는 수직관계(아버지의 법)도 엄연하지만 수평 축과 함께 구성된다. 사회구조의 본질은 이 축들의 통합일 수 있다. 정신분석이 집중했던 수직축으로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다시 검토하며, 측면관계를 주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책을 번역한 저자는 자신의 책에서 『사랑과 연합』을 주장한다. 형제, 동료, 친구, 이웃은 귀살대일까, 혈귀일까.

궁금해서 찾았다. 최근 책이 '예의 있는 반말'이다
이 책은 존비어체계를 끌어낸다. 평어는 새로운 언어체계로 측면관계를 사유하는 과정에 필요할 터이다. 수평적인 관계를 위해 우리 삶을 콘크리트화시키는 언어구조를 바꾸자고 한다. 사회가 열망하는 평어를 무시할 재주를 가진 '아버지'도 없을테다.
지난 달 포스팅 《보부아르와 그 동지들》에서 보부아르의 발화가 여성적인가를 물었다. 여성이 여성동지를 가질 수 있을까를 되물었다. 어머니의 법이 아버지와 다르다면 그 性은 어떤 性일까를 물어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