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마을이 잘 살게 될수록 찾아오는 손님들이 늘었어요. 돼지임금은 누구보다 빠르게 그들을 안내합니다. 어유, 먼 길 오시느라 얼마나 힘드세요. 저 쪽 길이 지름길이랍니다. 똥거름 저장소에서 마을 놀이터를 지나 자신이 살았던 대궐까지 마을 곳곳을 누비며 신나게 안내합니다. 토끼 손님이 오는 날은 특히 신나는 날이었어요. 길고 하얀 귀를 세우고 두 손을 비비며 인사하는 토끼들의 말은 언제 들어도 돼지임금을 행복하게 했어요. 당신이 그 호랑이를 물리친 돼지임금이군요! 부끄러우면서도 기분 좋은 돼지임금은 코를 킁킁 거리면서 말합니다. 어유, 뭘요. 지금은 똥 폭탄을 만들지 못하는 걸요. 여우가 왔고 고양이도 행차했어요. 거북이 등에 올라탄 병아리들까지 다녀간 후에 돼지임금은 그만 피곤해지고 말았어요. 새 임금은 돼지임금에게 엄마돼지와 함께 쉴 때라고 충고합니다. 엄마돼지는 새 임금에게 기쁘게 말했어요. 새 임금님, 당신은 관대하군요. 그런데 몇 번째 새 임금인가요? 새 임금은 허허 웃으며 답합니다. 글쎄요. 그거야 알 수가 없고, 알아야 할 필요도 없군요. 엄마돼지도 잘 알고 있었어요. 돼지마을은 문제가 생길 때마다 그 문제를 제일 잘 해결할 수 있는 돼지를 임금이라 부르며 힘을 모았거든요. 그러니 지금 눈 앞에 서 있는 새 임금이 몇 번째 임금인지는 아무도 모른답니다.


돼지임금이 시원한 그늘에서 엄마돼지와 낮잠을 자고 있을 때 새 임금이 다급하게 찾는다는 소식을 전합니다. 마을 광장에는 이미 많은 돼지들이 모여 웅성웅성 걱정을 내놓고 있었어요. 글쎄 호랑이마을이 화가 났다는군요. 늑대들이 호랑이마을에 가서 돼지에게 졌다고 놀렸다네요. 호랑이 군대는 어찌할까요. 이제 우리마을은 어찌 될까요. 우리 돼지들은 전쟁이 싫어요. 싸우기 싫어요. 광장에서 열린 회의에서는 각자 의견을 내느라 분주합니다. 마을 경계선에 똥 저수지를 만들자고 주장하는 돼지도 있었고, 뒷 산에 굴을 파서 잠시 피하자는 의견도 있습니다. 새 임금은 똥 저수지는 짧은 시간에 만들기도 힘들고 오염되는 물 때문에 힘들다고 합니다. 그때였어요. 누군가 탄식하듯이 중얼거립니다. 호랑이를 설득할 곰을 데려옵시다. 곰이라면 우리의 친구가 될 수 있어요.


새 임금은 돼지임금에게 부탁합니다. 당신은 우리 중 제일 빠르지요. 지금 당장 곰마을로 달려가세요. 그리고 도움을 요청하십시오. 돼지임금은 가장 빠른 속도로 달려갑니다. 쉬지 않고 달렸어요. 하루도 지나지 않아 도착합니다. 안녕하세요. 곰돌이님들! 우리마을을 도와주세요. 호랑이 군대가 곧 온다고 하는데 우리에게는 무기도 없고 군대도 없답니다. 곰임금님, 호랑이 군대에게 말해주세요. 곰님들 언제나처럼 우리 돼지들을 도와주세요.   


곰님은 서두르는 돼지임금이 안타까워 헛기침을 합니다. 진정하세요, 여기까지 오느라 얼마나 힘드세요. 당신에게 시간이 없어 보이는군요. 하지만 우리 곰마을도 이제 병사가 없답니다. 임금도 없답니다. 모두가 미안해 합니다. 크게 실망한 돼지임금을 문 앞에 두고 곰님은 잠시 자리를 비웁니다. 그리고 커다란 꾸러미를 들고 다시 나타납니다. 돼지임금이여, 이것들은 우리 조상들이 남겨준 소중한 보물이랍니다. 당신이 받아준다면 좋겠어요. 곰님들은 돼지임금에게 음식이 든 보자기와 곰 이빨로 장식한 곰 가죽 옷을 선물합니다. 


골짜기에 해가 뉘엿뉘엿 넘어갑니다. 돼지임금은 기운이 없어 뛰지도 못하고 어기적 걸어갑니다. 그러다가 엄마돼지 생각이 났습니다. 어유, 이 일을 어쩌나. 엄마돼지가 제일 먼저 호랑이 군대를 마주칠텐데, 이 일을 어쩌나. 엄마돼지의 집은 마을 가장자리에 있습니다. 돼지임금은 가슴이 뛰고 눈물이 났습니다. 어유, 이 일을 어쩌나. 호랑이 군대보다 먼저 도착해야 하는데, 어이구, 어이구. 돼지임금은 보자기에 든 음식을 꿀떡 삼키고 힘을 냅니다. 곰 가죽을 두르고 고개를 치켜 세웁니다. 그리고 날쌔게 달립니다. 엄마돼지 집으로 가는 지름길을 생각합니다. 눈물이 흘러 날립니다. 


호랑이 군대는 잠시 쉬기로 했습니다. 저 촛대바위만 지나면 돼지마을입니다. 호랑임금은 호랑이 군사들에게 힘주어 말합니다. 우리는 준비되었습니다. 호랑이 군대는 허약하지 않습니다. 호랑이 군사들은 얍, 얍, 얍. 단결합니다. 그리고 우렁차게 대답합니다. 밤이 깊었습니다. 호랑임금이 초승 달빛 속에서 돼지마을로 가는 산등성이를 봅니다. 곰이 순식간에 돼지마을 쪽으로 뛰어갑니다. 아니, 이럴 수가. 엄청난 속도로 가고 있어요. 호랑임금은 그만 악하고 소리칩니다. 저렇게 날쌘 곰이 있다니. 곰들은 배고플 때만 사나워지는데, 어쩐 일로 화가 났을까. 조금 더 다가가 봅니다. 비를 뿌리며 괴성을 지르고 곰이 지나가고 있지 뭡니까. 돼지마을을 지키는 곰이 틀림없구나. 안되겠다. 퇴각이다. 호랑임금은 억울한 마음을 누르고 발길을 돌립니다.



*이 그림은 <제목 없음 112>입니다.


다른 곳으로 가더라도 다른 시간에 살더라도 우리라고 외치면 마법이 찾아옵니다. 


이제 5부만 남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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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돼지임금 3부입니다. (돼지임금 1부, 2부는 이전 포스팅  https://blog.aladin.co.kr/722236154/12659152 에)


돼지임금은 신이 났어요! 동쪽 마을에서도 서쪽 마을에서도 돼지임금이 와 주길 기다리고 있었거든요. 돼지임금은 조금은 우쭐한 기분이 들었어요.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 이렇게나 좋은 일이라니!!


돼지임금은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어디에서 똥을 눌까를 고민해야 했어요. 돼지마을 사람들이 너도나도 돼지임금의 똥이 필요하다고 했거든요. 그러던 어느 날 새 임금이 돼지임금을 찾아왔어요. 아유, 수고가 많으십니다. 당신의 똥은 우리 마을의 보물입니다. 월요일은 동쪽 마을로 가 주세요, 그리고 수요일은 서쪽 마을로 금요일은 남쪽 마을로 토요일은 북쪽마을로 가셔야 합니다. 


돼지마을은 돼지임금 똥밭 만들기가 한창이었어요. 돼지임금은 이리저리 움직여 다니며 볼 일을 봐야 했어요. 그래도 돼지임금은 힘든 줄도 몰랐어요. 어쩌다가 갑자기 똥이 마려울 때면 힘을 써 참아야 했지만, 그래도 돼지임금은 즐거운 마음으로 참을 수 있었어요. 


집 밖을 나서면 동네 사람들이 환하게 웃으며 돼지임금에게 인사를 건네요. 안녕하세요. 어제 당신의 똥을 묻었는데 언제쯤 싹이 날까요. 돼지임금은 어흠~ 웃어요. 조금만 기다려 보세요. 서쪽 마을에는 이미 싹이 올라왔대요.


돼지마을이 풍족해지기 시작했어요. 쑥쑥 올라오는 가지에 튼실한 열매들이 주렁주렁 열려요. 돼지마을은 배부르게 먹을 수 있게 되었어요. 아이들은 집 앞 공터에서 놀기도 해요. 함성소리가 저 멀리까지 울려요. 놀다가 지친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갈 때 돼지임금 똥밭을 지나가요. 아이구 냄새, 지독한 냄새 방구 냄새~. 아이들은 똥터가 거북해요. 어른들도 이미 그 똥밭이 거북해지기 시작했어요. 


그러다 어느 날이었어요. 새 임금은 마을 밖에 돼지임금 똥밭을 만들라구 했어요. 돼지마을에는 공원이 생기고 공연장이 생기고, 똥밭은 거북한 장소가 되었거든요. 돼지임금은 엄마와 살던 마을 끝 집으로 돌아와야 했어요. 마을 끝 엄마돼지의 집은 돼지임금이 살던 때보다 훨씬 낡아져 있었어요. 돼지임금은 조금은 슬픈 마음이 들었지만, 왜 그런지 알 수는 없었어요.  


엄마돼지는 반가운 마음에 돼지임금 등짝을 어루만져요. 오랜 동안 네 등짝이 그리웠단다. 그런데 왜 이렇게 말랐니. 돼지임금은 엄마돼지를 안으면서 자랑스럽게 말해요. 엄마는 모르실거예요. 마을사람들이 내 똥을 좋아해요. 저 멀리 사는 북쪽 돼지들도 반가워 인사를 세 번씩 해요. 엄마돼지는 돼지임금이 점점 홀쭉해지는 이유를 알게 되었어요. 매일 저 멀리까지, 동서남북, 똥 누러 다니느라 쉴 새가 없었던 돼지임금이 애처롭게도 생각되었어요. 


가을이 되던 무렵이었어요. 돼지임금은 집 밖에 있는 똥밭에 똥을 누다가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마을 밖으로 옮겨온 똥밭에 마을사람들이 오지 않고 있었어요. 돼지임금의 똥을 구하러 줄을 서던 사람들이 사라지고 있었어요. 돼지임금이 홀쭉해지고 나서는 똥 속에 소화되지 않은 씨앗도 없고, 마른 똥이 나오기 시작했거든요. 아유 어쩌나 이제 더이상 똥이 나오지 않아요. 돼지임금이 누는 똥은 마을에 필요한 똥이 아니었어요. 갑자기 슬픔이 밀려와요


울먹이는 돼지임금 옆으로 새 임금이 찾아왔어요. 돼지임금이여, 나는 새로운 임금입니다. 우리 마을에서 당신이 가장 빠른 돼지라는 사실을 알고 있어요. 이제 우리 마을은 걱정을 덜었군요. 당신은 호랑이만큼 빠르고 곰보다 냄새를 더 잘 맡는 돼지라고 하더군요. 돼지임금은 깜짝 놀랐어요. 누가 그래요? 믿어지지 않아요. 


새 임금은 부르럽게 말을 이어갑니다.  당신이 지난 여름 아침에는 동쪽 마을에 오후에는 서쪽 마을에 나타났다고 하더군요. 당신이 재빠르게 동서남북을 오고가는 모습을 우리 마을 모든 사람들이 봤다고 증언했어요. 누가 뭐래도 당신은 가장 빠른 돼지랍니다. 그래서 부탁합니다. 이제 우리 마을은 호랑이도 여우도 무섭지 않아요. 우리 마을의 파수꾼이 되어주세요.


돼지임금은 날이 밝기도 전에 일어납니다. 온 마을을 하루에도 몇 바퀴 쏜살같이 달립니다. 위험한 일이 생기면 제일 먼저 소식을 알립니다. 누군가 길을 잃었을 때 재빠르게 안내를 합니다. 바람이 달라붙고 발바닥이 간지럽고 돌부리에 넘어지기도 하지만 즐겁습니다. 마음 속에 그득한 용기는 헉헉 숨이 차올라 잠시 쉴 때마다 속삭입니다. 달리기는 행복이에요. 


(4부와 5부를 기다려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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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몇 십년 전에 농활을 갔다가 아이들과 함께 부른 노래 '돼지임금'의 이야기 버전을 썼었는데, 이제서야 2부가 완성되었다. 노래의 내용은 단순하면서도 재미있어서 아이들이 좋아했었다. 내가 기억하는 가사는 다음과 같다.


"뚱뚱뚱 돼지임금 부하들과 으스대다 어느 날 산길에서 호랑이를 만났네.

겁쟁이 돼지임금 도망가고 싶었지만 부하들이 보고있어 어쩔수가 없었네.

돼지임금 호랑이보고 잠깐 기다리라 했네. 온 몸에 똥칠하고 자- 덤비라 했다네

소중한 내 발톱에 똥칠하기 싫어! 호랑이는 돼지보고 내가 졌다 했다네."


노래와 율동을 즐기던 중 뚱뚱하고 더럽게 표현된 돼지의 재치에 개연성을 넣어 줄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만들게 된 이야기다. 아주 오래된 1부 이야기에 2부를 추가했다. 


《1부》


옛날 옛적에 아주 깊고 깊은 산 중 마을에 돼지들이 모여 살았답니다. 그 곳은 동서남북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으면서 평평한 들판과 냇가가 있는 한적하고 마을이었지요. 돼지들은 너도 나도 모여들었고 마을의 인구는 해가 갈수록 늘어났답니다. 그러자 마을에는 돼지들이 먹을 음식들이 부족하기 시작했어요. 돼지들은 회의를 열고 대표를 뽑아 그 문제를 해결하기로 했지요. 마을돼지들은 모두 냇가 옆에 모여 '누가 대표가 될 것인지 의논합니다. 여러 돼지가 거론되었지만 결국 한 돼지가 결정적인 말을 하게 됩니다.


"다른 동물들을 압도할 거대한 몸집과 무시무시한 입김을 가져야 최고지요!"

"맞아요, 우리 마을에서 최고 멋진 돼지를 뽑아요!"


그 때부터 멋진 돼지는 '거대 몸집의 돼지'가 되었습니다. 마을에서 가장 큰 돼지는 존경받게 되고 마을의 대표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 마을 끝 마지막 집에 살던 엄마돼지도 자신의 아들을 가장 존경받는 돼지가 되도록 키우고 싶었습니다. 아들돼지는 엄마 말씀대로 아침부터 저녁까지 먹고 몸집을 키웠습니다. 아들돼지가 음식을 구해오는 엄마돼지를 위해 조금이라도 집안 일을 하려고 하면 엄마돼지는 벌컥 소리를 키웁니다.


" 너 그러다 살 빠지면 어쩌려고 그러니."


아들돼지는 결국 아침부터 밤까지 꼼짝할 수 없었습니다. 심지어 손을 들어 양치질하는 것까지 엄마돼지가 합니다. 몇 년이 지나자 아들돼지는 마을에서 가장 큰 돼지가 되었습니다. 아들돼지를 보기 위해 아침저녁으로 모여드는 마을돼지들 덕분에 엄마돼지는 더 부지런하게 움직여야만 했습니다. 엄마돼지는 쉴새없이 일하느라 아들돼지의 손바닥만하게 작아졌지만 그래도 행복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들돼지가 드디어 마을의 임금이 되었거든요.


그런데 마을 가운데에 있는 돼지임금 저택으로 가야하는 날, 아들돼지는 너무 커져서 문을 나설 수가 없었답니다. 결국 문을 뜯어내고 나서야 집을 나설 수가 있었어요. 아들돼지가 저택으로 가는 모습은 논밭에서 일하던 돼지들에게도 똑똑히 보였습니다. 아들돼지가 한 발 디딜 때마다 땅이 울리고, 한 숨 내쉴 때마다 거친 바람이 됩니다.


"아, 너무 멋지시다. 저 임금님은 땅을 울리고 하늘을 가를 수 있어. 우리 마을은 이제 안전해."


이런 믿음이 마을돼지들에게 생겼습니다. 돼지들은 기쁜 마음으로 더 열심히 일을 하며 돼지임금이 먹을 음식을 만듭니다. 그러다 문제가 생기기도 했습니다. 더 거대해진 돼지임금에게 맞는 집과 옷감, 음식이 턱없이 모자라게 되었던 것입니다. 마을돼지들은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일하고 또 일해서 돼지임금의 먹이를 구할 수 있었습니다. 돼지임금은 점점 거대해지고 마을돼지들은 점점 야위어 갔지만 모두가 행복해 했습니다.


어느 날 밤이었습니다. 돼지마을 동쪽에서 일을 하던 돼지들이 부엉이들에게 이상한 소문을 듣게 되었습니다. 저 멀리 호랑이 마을에서 돼지임금을 만나러 온다는 것입니다. 돼지임금에 대한 소문이 그 곳까지 퍼져 호랑이들은 세상에서 가장 멋진 호랑이 임금의 명예를 지키고 돼지들을 혼내주기 위해 군사를 파견한다는 것입니다. 마을돼지들은 그 소문을 듣고도 전혀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는 돼지임금이 있기 때문입니다.


돼지임금은 걱정에 빠졌습니다. 자신을 믿는 마을돼지들과 엄마돼지를 위해 일어나 싸우고 싶었지만 이미 거대해진 몸을 움직이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손을 위로 올려 체조하기도 힘들다는 것을 알 리가 없는 마을돼지들은 하나같이 밝은 얼굴로 말합니다. 


"임금님, 그들이 마을에 오기 전에 물리쳐 주세요. 호랑이 군사들은 발톱이 날카로워 마을이 엉망이 될 거예요. "


결국 돼지임금은 자신의 몸을 이끌고 길을 나섭니다. 마을돼지 절반은 돼지임금의 음식을 들고 그를 따릅니다. 돼지임금이 마을을 벗어나는데는 이틀이 걸렸습니다. 드디어 산길에 들어서자 마자 호랑이 군사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돼지임금은 숨이 차서 말조차 꺼내기 힘든 상태였습니다. 물론 뒤돌아서서 도망갈 수도 없었습니다. 거친 숨을 내쉬며 어찌할 바를 모르던 돼지임금은 생각합니다.


'내가 잘 하는 것은 먹는 것과 먹은 것을 소화시키는 것인데, 어떻게 저들을 이길 수 있지? 빠르지도 않고 날카로운 발톱이나 이빨도 없는데 어떻게 해야할까... 그나저나 오랜만에 걸었더니 똥누고 싶을 뿐이야'


배에 힘을 주고 똥누고 싶은 것을 참던 돼지임금은 결국 참지 못하고 엄청난 방구폭탄과 똥을 발사하게 되었습니다. 어마어마한 양의 똥덩어리와 함께 나온 방구냄새는 호랑이 군사들의 혼을 빼놓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뿌해진 산 속에서 우왕좌왕하다 말합니다.


"에이, 더러워. 숨쉬기도 어렵고. 모두 퇴각이다. 돼지임금 기다려라. 우리는 또 올 것이다."


마을돼지들은 호랑이 군사를 물리친 돼지임금이 자랑스러웠지만 기쁨을 표현할 기운이 없었습니다. 방구폭탄에 혼미해진 것은 마을돼지들도 마찬가지 였거든요. 돼지임금은 마을저택으로 돌아오며 생각합니다.


"거대한 것은 멋진 것이 아니야. 더이상 돼지임금으로 살고 싶지 않아"


마을돼지들도 생각합니다. 방구폭탄과 거대한 똥덩어리에 둘러싸인 돼지임금이 더이상 멋지게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마을돼지들은 하나둘씩 모입니다. 새로운 규칙을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누가 이 마을의 대표가 되어야 할까요?"


아직도 돼지마을은 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답니다.


《2부》 


돼지임금은 며칠이 지나서야 알게 되었답니다. 마을 사람들이 새로운 임금을 뽑은 사실을 알려 왔거든요. 물론 호랑이군을 물리쳐 준 일에 대한 감사도 잊지 않고 전해왔지요.

돼지임금은 몹시 놀랐고 어지러워 일어설 수도 없었답니다. 아이고 아이고,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발버둥을 쳐보지만 몸놀림이 여의치 않았어요. 돼지임금이 괴로워하자 새로 뽑힌 임금은 모두에게 말했어요.


“돼지임금이 준비가 될 때까지 기다려 줍시다. 그리고 우리는 한 마을 사람들이라는 걸 잊지 마세요.”


돼지임금은 그날 처음으로 밤 산책을 나갔습니다. 하루를 굶었더니 허기졌지만 마을에서 보내 온 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않았어요. 아이구 아이구, 어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돼지임금은 아이구 하며 계속 걸었습니다. 아침 해가 뜰 때가 되어서야 잠시 발걸음을 멈췄고 아이구 소리도 그쳤습니다. 자신이 살던 궁전을 되돌아 보았습니다. 온갖 음식과 푹신한 이부자리가 있는 그곳으로 발이 움직이지 않습니다. 어이구 어이구 어찌 발이 안 움직일꼬.


돼지임금은 몹시 당황했습니다. 돌아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며칠을 쉬지 않고 더 멀리멀리 걸어갔습니다. 그러다가 탈진한 돼지임금은 그대로 잠이 들고 말았습니다. 눈을 떠보니 마을 밖에 있던 전승지였습니다. 몇 달 전에 호랑이군에게 승리를 거둔 곳이지요. 그날의 안도감이 다시 생각나고, 돼지임금 눈에 눈물이 맺힙니다. 돼지임금이 될 준비를 하며 십 년, 돼지임금으로 십 년을 보냈는데 이제 뭘 하며 보내야 할까요. 으이구 으이구 이 난리에도 어찌 배는 이리 고플까. 돼지임금은 먹을거리를 찾아 두리번 거렸습니다. 아유 아유 어찌 이런 일이 있을까요. 열매가 주렁주렁한 나무도 있고 좋아하던 부추와 쑥이 엄청나게 자라나고 있지 뭡니까. 돼지임금은 허겁지겁 먹기 시작합니다. 


저 멀리서 횃대를 든 마을사람들이 몰려옵니다. 돼지임금, 돼지임금 어디 있소? 돼지임금을 찾아 마을을 헤매고 다녔답니다. 마지막으로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전승지까지 오게 된 마을사람들은 배부르게 먹고 잠이 들어 있는 돼지임금을 발견합니다. 반가움은 잠시 스치고, 화가 난 마을사람 몇몇이 돼지임금을 큰 소리로 불러 깨웁니다. 이거 봐유, 지금 며칠을 돼지임금 찾느라 들판에 일거리가 얼마나 밀려있는지 알긴 해유. 돼지임금은 잠결이지만 말도 없이 나와서 미안하다 합니다. 


그런데 마을사람들이 갑자기 비명을 지릅니다. 돼지임금도 너무 놀라 따라 소리칩니다. 아악 아악 왜 그래요. 마을사람들이 횃대를 주변으로 비추자 온갖 종류의 야채들이 쑥쑥 자란 들판이 드러납니다. 가지가 휘어질 듯 열매가 풍성한 나무들도 보입니다. 마을사람들은 너무 놀랐답니다. 와아 와아 어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지난 호랑이전투에서 돼지임금이 뿜어냈던 똥바가지들 속에 있던 씨앗들이 쓱싹쓱싹 자라고 있었어요. 나무 뿌리도 튼실해져 싱그러운 열매가 주렁주렁 합니다. 마을사람들은 갑자기 돼지임금 주위로 모여들어 말합니다. 돼지임금이여, 어서 똥을 누세요. 마음껏 누세요. 그 말을 들은 돼지임금은 너무나도  기뻤답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을 다시 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이 휘파람 불기는 <제목 없음 88>입니다.


자신이 의심스러울 때면 외치세요, 돼지임금이여. 아, 돼지임금이여. 


5부까지 계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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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아 2021-06-02 0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이야기 읽는 내내 웃음이 떠나질 않았습니다. 아이들도 재미있게 들어줍니다. 꼭 완결되어 책으로 엮어보고 싶습니다. (개인 소장용입니다. ) 다음 글 기다리는 시간이 행복할 거 같습니다. 천천히 기다리겠습니다. 초원님

초원 2021-06-02 14:41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제 글을 좋아해 주신 세 번째 사람이 되셨습니다.
사심 없이 칭찬을 건네는 사람을 만나는 일은 좋은 일이네요.
돼지가 깨끗하고 영리한 동물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돼지가 있는 그대로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오면 더 좋을거라는 생각도 합니다.
모든 게 다 고맙습니다.
 

부추를 씻고 있는데 드라마 <대박부동산>에서 흘러나오는 대사가 흥미롭게 들렸다. 퇴마사에게 건네는 말이었는데 정확한 문장은 아니지만 이런 뜻이었다. '너 그렇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사람들을 다 물리쳐버리면 아무도 남지 않게 된다.' 퇴마사는 '상관없어요'라며 단호하다. 그러자 충고를 건네던 사람은 낮은 목소리로 '혼자 살아간다면 원귀와 뭐가 다를까' 한다. 


또 다른 장면에서는 두 번째 사람을 위로하며 '할 말을 참고 살면 원귀가 된다더라'며 마음 졸이지 말라고 한다. 조언자는 '너 나가'라며 매몰차게 몰아내던 첫 번째 사람과 아무 말 못하고 쫓겨난 두 번째 사람을 화해시키려고 했다. 터져 나오는 말을 참지 못하는 사람과 그 고함을 듣고 항변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자신의 약점을 극복하라는 메시지는 보편적이지만 아쉬운 메아리다. 만약 못 참던 사람이 참게 되고, 속만 끓이던 사람이 분명하게 자기 표현을 하게 되더라도, 두 사람은 다시 참는 사람과 참지 못하는 사람 관계가 되기 쉽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첫 번째 사람에게 필요한 말은 '네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곁에 누군가는 있어야 하니까 참아야 해'가 아닌 셈이다. 두 번째 사람에게도 '속이 병들 때 까지 참으려고만 하지 말고 소리쳐, 네 뜻을 밝혀야 해'가 아니다. 중요한 점은 '관계를 유지하기'라고 말하고 있다. 


인기 있는 드라마들은 이 정치적 우정을 잘 그려내며 시청자를 설득한다. 움직이는 욕망의 그물 속에서 고통당하는 사람들을 생생하게 표현하며, 야들아, 누군가와 함께 살아가려면 어떤 타협이 필요해. 누군가를 밀쳐버리고 싶을 때, 누군가에게 밀려나 버렸을 때 그 '무엇'을 떠올려 봐야만 해'한다. 그렇게 건져올린 과거/무엇이 사람들을 뉘우치게 하고, 화해시키고, 사랑을 유지시키고 미래를 만들 힘이 된다. 


첫 장면을 생각해 보자. 꽥 소리치며 고립되던 첫 번째 사람도 자신과 싸우는 중이고, 침울함 속에서 속을 삭이던 두 번째 사람도 자신과 싸운다. 자신과의 싸움은 2자 관계의 변형된 형태로 근원적으로 불안과 함께 한다.  오직 조언자의 위치만이 자신과 싸울 필요가 없어 보인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안정감을 느끼는 지점이 바로 이 위치다. 사람들은 너도나도 분석가가 되거나 비평가가 된다. 혹은 연출가의 지위에 선다. 사람들은 안심한다.  


두 사람의 마음이 어긋나 갈등할 때 왜 이해당사자가 아닌 제3의 권위가 필요하게 되었을까. 관계의 기울어짐에 따라 힘의 차이가 여실할 때, 그 드러나는 차이를 무화시킬 무언가는 어디에서 나올 수 있을까. 너와 나의 관계가 부실한 상태로 3자 4자 관계는 가능할까. 


그렇다고 현대사회가 관계의 위기를 겪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관계의 폭발이 오히려 더 문제점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대박 부동산>에서도 그렇지만 영화나 문화 현상으로서 좀비나 유령, 원귀 등의  출현은 다중/다성多聲에 대한 곤혹스러움으로 보인다. 몇 해 전 유행했던 『82년생 김지영』에서도 김지영은 '빙의'를 통해서 뭔가를 시도하려 하지 않았던가 말이다.     


그런데 이 평범한 장면들에서 조금은 비껴가는 주장을 해보고 싶었다. 뭐라도 쓰다보면 구체화될 수 있을거로 생각했다. 여지없이 실패다. 글 속에서는 그나마 시도라도 하는 중이었지만 현실의 나는, 착하고 온화하며 용감한 m에게 생일축하한다는 말조차 하지 못한다. 건강하렴.

내 거주지가 원룸인 점이 내 상황에 얼마나 어울리는지....   


* 이 그림, 휘파람 불기는 <제목 없음 56>이다.


기도하는 마음은 종교와 달리 홀로 자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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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하나의 세계를 사랑한다 그 하나의 세계로부터 사랑받는다 이것은 우정의 세계다. 세계를 사랑하지 못하고 세상으로부터 사랑받지도 못한 채 늙어간다. 유감이 자란다. 유감이 폼을 잡는다. 머리를 굴릴 때마다 유감이 넝쿨을 이룬다. 분명히 몇 번은 우정이 샘 솟았을 텐데 우정으로 밤이 낮처럼 밝았을 텐데... 모조리 사라졌다. 


당분간 '동시대성'에 계속 집착하려고 한다. 같은 시간대에 비슷한 공간에 살면서 어느 장소에 머물며 하나의 세상을 만들고 있다는 '공감대'에 강박이 스며있음을 느낀다. 친해진 후에야 믿을 수 있으며, 親親이 신뢰의 증표다.  친한 친친의 실제 세계를 구성해야만, 비로소 너와 나의 경계선이 그어질 것이고, 비로소 자립할 수 있을 것이라는 연쇄고리에 선 사람들의 세상이다. 현기증이 인다. 


몇 차례 반복해서 조금 지루한 말이겠지만) 소크라테스는 계시된 이성에 의해 움직였던 사람이다. 많은 사람과 크고 작은 논박을 이어갔지만, 스스로의 믿음을 검증하던 사람이었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경우 타자의 논리를 검증하고 심판하는 형세가 되곤 했다. 상대방의 신념을 무너뜨리고야 말았다. 소크라테스의 진정성은 쉽게 공동체에 의해, 세상에 의해 변형되어 출현한다. 


그렇다면 세상은 소크라테스의 진정성을 유지시켜 줄 책임이 있는가. 



2. 테스형과 세상의 푹푹한 밤


모지란 세상이

테스형을 사랑하라 한다

눈부심에 푹푹한 밤이 내린다


테스형이 빛나는 날은

사랑이 푹푹한 날이고

테스형은 스스로 유배되고 나서

눈부심에 묻힌 세상을 사랑한다


세상은 테스형과 나란히

푹푹 쌓여 눈부신 밤에 

오직 둘만이 줄줄이 우는 유배지에 눕는다


아름다운 테스형은 세상을 사랑하고

어데서 푹푹한 밤이 지난 울음소리를 뒤에 두고

테스형은 오직 세상과 단둘일 것이다. 



* 이 그림, 휘파람 불기는 <제목없음 57>입니다. 자유는 아마도 <동시대성>을 벗어날 수 없다.


몇몇의 친친의 세계를 불러본다. 백석에서 뤼시스를 건너 히로키를 통해 다음 생각을 이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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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06 20:2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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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06 21:5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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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06 22:0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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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06 15:5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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