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릿이 말합니다.


같아 보인다구요! 그게 아니라 사실대로인 거지요.

'같아 보인다'는 말은 모릅니다.

어머니, 저를 진실로 나타낼 수 있는 것은

이 새까만 외투도, 의례적으로 입는 이 검은 상복도 아닙니다.

억지로 우려내는 긴 한숨도 아니요,

넘치는 강물 같은 눈물도 아니요,

낙담한 얼굴 표정도 아닙니다.

그 밖에 슬픔을 드러내는 온갖 모습과 기분과 모양도 아니지요.

이들이야말로 같아 보이는 것들입니다.

누구나 연기 할 수 있는 행동이니까요.

그런데 저는 밖으로는 보여줄 수 없는 내면을 가지고 있으니

이들은 그저 비애의 장신구와 의복일 따름이지요.


햄릿이 진실함과 진실하지 못함을 구별하고 있는 대사입니다. 요즘 저의 심정으로 햄릿의 말을 듣다보면 회오리치며 껴져가는 제 생명을 느낍니다. 진실함이나, 거짓이 있음이나, 존재나, 안과밖이나, 이런 문제들은 힘을 잃었습니다. 앎과 모름도 어둠 속에 있습니다. 뭘 할 수 있습니까. 뭐라도 있어야 할 곳이 비어 있습니다. 그것이 거짓이거나 허구이거나 장신구이거나 겉치레이더라도, 볼 수라도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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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령 회의주의에 대해서

푸코의 주체를 향한 회의주의는 익히 알려진 예속화assujetissement를 통해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권력이 만들어낸 주체의 형상을 주체라고 할 수 있겠냐는 지점에서 지적 담론을 유발하게 되었지요. 권력테크놀로지는 개인이 자신을 통제하면서 자기 구축을 행하는데, 만약 시장원리를 따르거나 통치기제를 그대로 복사하려 한다면 예속적인 주체일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반면 자기 규율에 따라 통치방식에 저항하고 다른 방식으로 자기 자신을 구축하는 테크놀로지의 활용이라면 주체의 권력테크놀로지가 될 수 있다고 합니다.
현재의 존재방식을 거부하는” 존재자는 개별화하면서 전체화되지 않기 때문에 이중적 억압이 발생하지 않게 된다고 푸코는 말합니다. 개인이 해방되려면 우선은 정치적, 윤리적, 사회적, 철학적 과제를 회의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푸코의 회의주의에 정당한 명분이 주어진다면 국가에 결부된, 자본의 작동원리에 종속된, 전체화된 방식에 대한, 돌이킴에서 발생합니다. 그렇지만 그게 참 묘하지요. 이것은 누구의 명분일까요. 회의주의자의 관점이란 무엇일까요. 철저하게 부르주아적 지점입니다자기통제의 양식을 어떻게 발견할 수 있을까를 생각해 보시길 푸코주의에게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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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2-20 21: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초원 2024-02-22 09:27   좋아요 0 | URL
아, 그렇군요. 몰라서 그런거니 너른 맘으로 대해주셔요. 커피 보냅니다.

-보내려고 했으나 복잡하군요. 방법을 익히게 되면 그때 보낼 듯 합니다.
 

다수가 다수성 없이 존재하려면 하나는 하나가 아닌듯 하다. 쿠자누스를 읽다가 부정신학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쿠자누스는 신과 인간, 그리고 사물과 우주 ... 모든 존재들을 현실의 차원으로 끌어들이는 철학을 하셨구나. 이제 읽기 시작했으나 2024에 어울린다. 








내 안에서 편의점 음식 잔치가 열리고 있다. 지난 일주일 편의점은 내 전용식당이다. 김밥과 빵과 샌드위치와 도시락들로 아침과 저녁을 챙긴다. 그 중에 으뜸은 도시락이라 비싼 값을 하더라. 김밥은 좀 싱거워도 좋을터인데, 쉐프들이 내 말을 들어줄 리가 없으니, 어허... 다음 주에는 뭐 다른 건 없을려나. 편의점 동지들이여 오늘도 반가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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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시간 서재에 글을 썼지만 효용으로 따지면 무안하다. 페이퍼 창을 열고 앉아 있다보면 뭐하러 글을 쓸까 한다. 글쓰기가 텅 빈 밤을 지나는 심정을 만든다. 관성을 못이기고 몇 글자를 적는다. 라디오를 만들어 볼까 싶지만 목소리조차 졸린 상태라, 비디오는 싫고. 


며칠 전 알림에 알튀세르 마니아가 되었습니다라는 메시지가 왔다. 알튀세르? 내가? 싶었으나 그렇다고 하니 그렇겠지. 알튀세르를 어떻게 생각했을까? 내 노트북 파일 탐색기에서 알튀세르를 검색하자 수십 개의 파일이 떴다. 내키는 대로 문서 하나를 열어서 "알튀세르" 찾기를 했더니 이런 대목이 열렸다.


* 주석 7번에 덧해 다음 구절 참고할 것*


주석 7번의 내용은 이렇다. 

"마스페로사의 작은 총서로 나온 《자본론 읽기》제2권에서 발리바르는 수공업에서 대규모 산업으로의 이동에 대한 연구를 시도했다. 내가 이 책을 읽었거나 읽게 될 사람들을 위해 특기하고자 하는 바는 그 책이 기여하는 것이《자본론》의 정신과 일치하지만 《자본론》안에 있는 게 아니다라는 점이다. 그것은 독창적이고 풍요로운 '기여'이다. 이 점을 상기시키는 게 유용한 것은 대담하게 탐구하는 노력을 하는 자들과, 다른 사람들한테 얻는 것을 반복하는 데 만족하면서 '스스로는 생각하지' 않는 자들을 구분하기 위해서이다."  <재생산에 대하여>중에서.


다음 구절은 이렇다.

사토시 “전통적으로 통화의 근본 문제는, 그것이 작동하기 위해 필요한 신뢰의 문제로 귀결된다. 중앙은행은 통화가치를 떨어뜨리지 않기 위해 신뢰되어야만 한다. 하지만 화폐 통화의 역사는 중앙은행이 저질러운 신뢰 위반의 역사로 가득하다. 은행은 우리의 돈을 보유하고 전자송금하도록 신뢰되어야 하지만, 그들은 준비금도 없이 대출을 지속해 신용 거품의 물결을 자초했다. 우리는 우리의 사생활을 지키면서 그들을 신뢰해야 하는데, 그 신뢰란 신원 도둑이 우리의 계좌를 도둑질 하지 않도록 은행이 노력할 것이라는데 (기껏해야) 기대고 있다. (게다가) 그들은 엄청난 간접비로 소액 결제 자체를 불가능하게 하고 있다.”


왜 이럴까.

사토시? 뜬금없이? 영속패전론의 사토시? 발은 알의 제자다. 알이 보기에 발의 책은 대담하게 탐구하는 능력을 통해 자본론의 정신에 기여하지만 그 안에 있지는 않다. 사토시의 영속패전론도 그렇다? 영속패전론의 이론적 대담함은 풍부하지만 ...이런 뜻이었을까. 아니다. 아마도 내 성향을 생각하자면, 탈정치화, 예속적 주체 뭐 그런 개념에 대한 반발이었을텐데 어떻게 왜? 저 구절이 사토시 구절이 맞긴 한거야? 나 왜 이래. 알라딘은 알튀세르 마니아를 취소해 주기 바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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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1-14 19: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초원 2024-01-20 21:55   좋아요 0 | URL
어찌 지내시나? 내 누군줄은 어찌 아시고? 허어 참,, 고맙소. 언제 차 한 잔 살테니 연락 기둘리시오.

2024-01-21 09:42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