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글에서 나는 '상업적 계약'으로 연동된 이 공간에서 자유롭게 글을 쓴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를 물었다. 많은 창작자들은 자신들의 작품이 상업적 상품임을 숨기지 않는다. 상품은 리콜이나 불만을 신고할 창구가 있는 반면, 작품은 그렇지 않다. 국가는 상품 제조의 책임기준을 관리할 집행기구를 두었지만, 문화 상품를 위해서는 부가가치를 늘리도록 조력할 진흥기관들을 두고 있다. 간단하게 말하면 공산품, 농산물과는 다른 운명을 갖고 있는 상품이 창작품이라는 말이다. 그리고 그 사이에 어중간하게 끼어 있는 글쓰기/창작물들이 있다. 페이스북, 트위터, 커뮤니티 게시물 등은 우리 삶에 어떻게 들어와 있는가.    


자유라는 말에 담을 수 있는 많은 지향들을 뒤로 물리고 단순하게 접근한다. '구애됨이 없음'은 완전한 인간이거나 비-인간적인 어떤 상태를 의미하므로 될수록 쓰지 말아야겠지만, 이 글은 '밥벌이에 구애됨이 없는 글쓰기는 어떻게 자유로운가 정도에 서 있다. 


며칠 전, 알라딘 서재에서 <기생충이 바이러스를 삼킨 날>이라는 글을 보았다. 처음에 제목만 보고는 어느 일간지의 기사를 그대로 옮겨온 줄 알았다. 바이러스를 삼킨 날이라니 얼마나 무신경한가. 그런 느낌이 들었던 데에는 바로 그 전 날 한겨레21에서  "남편을 '바이러스' 취급했다"는 가족의 울분을 들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4년 전 메르스 사태 당시에 벌어진 일이나 현재도 코로나 19로 진행형이며, 앞으로 우리 사회의 '미래'가 될 수 있는 일이기에 어느 문제 못지않게 공론화가 필요하다는 점은 모두가 공감할 것이다. 감염자라는 이유로 최소한의 인간적 배려를 잊도록 강제당한 유가족이 던지는 묵직한 소송으로 마음이 무거워진 탓이 었을 것이다. 


여하튼 그 글의 내용은, 왕좌에 오른 감독이 만들어온 영화적 맥락 그리고 한국문학 누구도 담아내지 못했던 한국사회의 불평등 문제를 풀어낸 <기생충>이 세계적인 영화인들에게 인정받은 일에 대한 칭찬 등이었다. 제목이 갖는 의미를 최대한 확대해서 보자면, 영화 <기생충>이 풀어낸 계급, 정의, 분배 등과 관련한 적나라한 현실이 바이러스처럼 파고든 계급이기주의나 자본주의의 병폐를 고발하고 있다, 혹은 미국 중심 문화 구도를 <기생충>이 잠식해 버렸다 ... 아니면 바이러스 공포를 <기생충>영화의 수상소식이 삼켜버렸다.


그 글은 블로그에 쓰인 '개인적'인 의견인데 정색을 할 수도 없다. 만약 알라딘이 서재에 올라오는 글쓰기 노동에 담긴 가치를 인정하고 원고료를 지불했거나, 그 글을 읽는 독자의 읽는 노동도 인정해서 밥벌이와 상관이 '명시적으로' 드러나도록 했다면, 어떻게 달라질 수 있었을까. 


여하튼 나는 어떤 의견을 표시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알라딘 서재에서 이런저런 의견을 주고받고 일은 불가능하지 않은가. 나는 한겨레21의 기사에 댓글을 달지 않고 닫는 것처럼, 이 <기생충~> 글에도 뭔가를 말할 수 없었다. 여기는 뭘 하는 곳일까. 발간된 책에 대한 '저자와 독자'의 공간일까, '독자와 독자를 연결하는' 소통 공간일까, 저명한 독서가들로부터 얻는 고급한 상품평을 습득하는 곳일까. 


나는 저런 이유들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의 실패를 만회하고 싶은 개인적 동기에서 알라딘에 글을 쓰기 시작했었다. 누군가의 글을 읽고 나도 공들여 글을 쓰다보면 뭔지모를 공통의 공간 속에 거주하고 있다는 느낌을 갖기도 했었다. 또 한때는 말을 하면 할수록 커지는 공허함이 글을 쓸 때는 없다는 점에서 매력적으로 느껴지기도 했었다. 비상업적, 비자본주의적인 것들이 많아질수록 자본주의적 적폐들이 사라질 거라는 배경이 깔려 있기도 했었다.  

 

이제 내 자신에게 묻는 질문은 이런 것이다. 구구절절 쓰고 있지만, 요지는 이렇다. 밥벌이에 구애됨이 없이 글을 쓰는 일이 가능한가. 그 글이 자유롭다고 말할 수 있는가.


영화 <기생충>처럼 가려진 현실을 부각시키는 글을 쓰려면, 밥벌이로, 가장 많이 버는 밥벌이 자리에서 글을 써야 하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댓글도 달지 못하는 심약한 나 자신을 자책하기 보다는, 유명인의 위대함을 즐길 심미안을 갖지 못했음을 한탄하기 보다는 다음을 주장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는 것이다. 알라딘이여, 서재의 글쓰기를 무급 노동으로 치부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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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풍오장원 2020-02-17 16: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재 글쓰기가 왜 노동이 되어야 하는지 잘 모르겠는데,
그럼에도 앞으로도 글 많이 써주세요^^

초원 2020-02-17 20:52   좋아요 0 | URL
반갑습니다. 고마운 말씀 남겨주셨네요.

문장의 앞부분에 답을 달아야 할까 생각하다,
설익은 생각으로 사령관 님을 피로하게 할 수는 없으니
우선 인사 먼저 나눕니다.

갑자기 찾아온 추위에 뜨뜻한 하루 보내셨기 바래요.

추풍오장원 2020-02-17 21:18   좋아요 0 | URL
다음 글 기대하겠습니다^^
저도 요새 알라딘 서재 드나들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차에
초원님의 글을 읽어 반가웠습니다.
 

나는 에돌고 있는 알라디너다. 동료와 형성하는 공간 속에 있지 않고 혼자서 자유로운 척 흉내를 내고 있다. 알라딘에 글을 올리는 일을 누가 가로막지 않는다고 자유롭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내가 쓰고 내가 읽고 내가 표현한다고 자유로운 글쓰기가 아니다. 혼자 있다면 어떻게 자유가 가능하겠는가. 그런데 금방 혼란스러워진다. 도대체 이 시대에 '자유'가 어떻게 가능하다고 자유로운 글쓰기를 말할까.

 

대상을 품은 글쓰기는 어렵다. 목적을 쉬이 드러내는 글쓰기는 남사스럽다. 자신을 구제할 글쓰기는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왜 글을 쓰는가. 자유로워지기 위해서. 자유로운 글쓰기는 오직 글을 쓰는 사람과 글을 읽고 나누는 사람이 하나의 공간을 점유할 때나 가능해질 수 있다. 알라딘에 가입하면서 어떤 환상이 있었나보다. 동등한 독자들의 공간, 지배관계에 있지 않으면서, 말할() 권리를 갖는다. (이 때의 권리란 알라딘 허용 한도 내에서 자유롭게 글을 게재할 수 있다는 의미인데, 사용 여부에 대한 재량을 갖는다는 쪽에 가깝다.)

 

 

그런데 글을 게재한다고 무슨 공통감, 서로 발전을 위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말하자면 발화가 많아야하고, 강력한 논리가 있어야 가능하고, 지속적인 글쓰기가 이어져야 한다. 더불어 중요한 것은 다른 알라디너의 자유로운 글쓰기를 보장해줘야 가능한 공간이다. 나를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날을 그렸었나보다. 하지만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자유롭게 글을 쓸 수가 없다. 글재주도 없다. 나는 결속의 띠 안에 머무를 자원을 갖지 못했다.

 

알라딘은 비지니스 모델로 서재를 운영하고 있는데, 왜 그런 환상을 갖고 있었을까. 알라딘은 매년 훈장을 달아주고, 영향력 있는 사람들에게 더 큰 권위를 부여한다. 상업적으로 만들어진 플랫폼 내에서 평등한 유저가 되어 자유로울 수 있는 세계를 어떻게 상상할 수 있었을까. 그런데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먼저 알라딘 가입이라는 형식을 통과하면서, 나만의 아이디가 주어지면서, 내가 구성할 수 있는 카테고리를 꾸밀 수 있으면서 뭔가 사회적 이성에 단꿈을 꾸었나보다.

웅장한 예술의 전당 하나쯤 갖지 않은 도시가 없다. 나는 그 시설을 이용해본 적이 없다. 미술관, 문학관, 과학관, 식물원, 국악원, 음악관, 유적지 등 무수한 공적 자원들에 접근 권리를 갖고 있지만, 그런 것을 즐기기에 내 생활은 너무 바깥에 있다. 오히려 알라딘이라는 상업사이트 - 가입과 동시에 얻는 말할 권리, 함께할 권리, 동일한 뭔가를 구성해낼 수 있는 가능한 공간-에 더 가까이 있다. 뒤섞여버린 세계는 공적 사회가 아니라 상업적 계약 사회다.

 

봄이 오고 있다. 2020년 봄맞이는 아주조금 다른 걸 시도해보자. 정보가 담긴 글을 쓰도록 노력한다. 다른 사람의 자유로운 글쓰기를 보장하는 방법을 골몰한다. 착취와 소외가 아니라 생산과 축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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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모그가 밀려나던 날 

멍멍이가 일없이 왜가리를 쫒기도 하고 

자전거 바퀴살이 묶인 채 산책길에 뒹글기도 하면 

도시에 더 무슨 반가운 것이 있으랴한다 

꺼슬한 청춘들이 얼어오는 두 발로 지치기도 하고 

부족해진 점심에 애닳도록 간식을 두리번하다

공원엔 김날리는 트럭들에 기름내 들썩이다

이것은 가는것이다


어찌하든 한 시간 끄적이기를 마치지도 못하고 멍하다.

평전들을 서렁서렁 넘기다보면 이름이 아니라 사회적 무의식이 드러나기도 한다. 


어느 잊지 못할 저녁, 아버지는 열여덟 살쯤 된 벤야민을 루더슈트라세의 이 나이트클럽에 데려가 위층 칸막이 좌석을 마련해주었고, 그 명당자리에서 벤야민은 몸에 달라붙는 흰색 세일러복 차림으로 바에 앉아 있던 창녀에게서 거의 눈을 떼지 않았다. 벤야민 자신의 회고에 따르면, 그녀는 그 후 오랫동안 그의 에로틱 판타지를 좌우했다. 아버지는 가족의 모든 수요를 사업과 연결시키고자 했는데, 이렇듯 가족의 유흥 수요까지 사업과 연결지으려던 것에 대해 아들 벤야민은 "무모하다"는 표현을 하기도 했다. "투기 기질"과 긴밀히 관련된 무모함이었다 하더라도, 어쨌든 이런 게 겉으로 드러나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 벤야민이 회고하는 아버지는 세도와 위엄을 지니면서 동시에 점잖고 정중하며 준법정신이 투철한 인물이었다. 아버지의 감식안을 회고하는 대목, 예컨대 아버지가 와인에 정통했을 뿐 아니라, 구두 바닥이 너무 두껍지 않으면 발볼로 카펫의 품질을 구분할 줄 알았다고 하는 대목은 특히 인상적이다. 당시 이미 가정에서 지배적 위치를 점했던 전화로 통화 중일 때의 아버지는 가끔 평상시의 온화함과 상반되는 험악함을 드러냈다. 훗날 벤야민은 자신의 진로 문제로(그리고 처자식 부양의 책임을 회피하고 부모에게 점점 더 많은 돈을 요구하게 된 것과 관련된 문제로) 아버지와 여러 차례 심하게 다투는데(벤야민 세대 지식인들의 전형적인 패턴이었다), 그제야 비로소 그는 아버지의 헝악함을 직접 경험하게 된다. (『발터 벤야민 평전』)

 

면직업계의 거물이었던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영국 상류층의 호사 취미인 여우사냥을 즐겼고, 멘체스터증권거래소 회원이자 잘나가는 독일계 이주민 클럽인 실러연구소의 운영위원장이었다. 매력적인 스타일리스트답게 엥겔스는 인생의 온갖 즐거움을 한껏 누렷다. 바닷가재 샐러드, 프랑스산 최고급 포도주 샤토 마고, 체코식 필젠 맥주와 비싼 여자들 등등. 그러는 한편으로 40년 동안 카를 마르크스를 먹여 살리고 그의 자녀들을 돌봐줬으며, 마르크스의 분노를 다독여주었다. 동시에 『공산당 선언』의 공저자이자 후일 마르크수주의로 알려지게 되는 사상의 공동 설계자로서 역사상 가장 유명한 이데올로기적 동반자 관계의 반쪽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 20세기 들어 마오쩌둥 주석의 중국에서부터 동독의 슈타지 국가까지, 아프리카의 반제 투쟁에서 소련까지 지구촌 인류의 3분이 1이 다양한 형태로 마르크수주의라고 하는 매혹적인 철학의 포로가 되었다. 그런데 사회주의 국가 지도자들이 정책을 설명하고 비행을 정당화하거자 정권 유지를 위해 자주 거론한 인물은 마르크스가 아니라 엥겔스였다. ... 그는 때로는 잘못 해석되고, 때로는 잘못 인용되기도 했다. 『엥겔스 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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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이라는 것은 쓰여진 것이지요. 특히 소설의 경우 쓰여지지 않은 소설은 존재하지 않은 셈이지요. 하지만 시는 쓰여지지 않더라도 존재한다고 저는 신념으로서 믿고 있습니다. 때문에 사람에게 있어 시는 거의 모든 만인이 똑같이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스스로 각자가 지니고 있습니다. 한평생 평교원으로 지내는 사람도 있거니와, 주방에서 조리하면서 식칼을 쥐고 한평생 지내는 사람도 있고, 선로 인부로 지내는 사람도 있고 말이지요. 그 삶을 보내고 있는 방식이, 자신이 생애를 거기에서 열중하고 있는, 걸으면서 살고 있는 사람에게는 이미 그 사람의 시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은 각자 자신의 것이 이미 시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

나에 관한 한, 일본어로 밑천이 떨어지지 않는 한 절대로 일본어를 버릴 생각은 없습니다. 그것은 곧 일본인에 대한 복수인 셈이고, 복수라는 것은 적대관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민족적 경험을 일본어라는 광장에서 서로 나누고 싶다는 의미에서의 복수입니다.


- 「김시종의 시와 '자서전'」『조선과 일본을 살아가다-제주도에서 이카이노로』를 중심으로 중에서-




 《엑스맨 ; 아포칼립스》이 끝나가는 부분이다. 찰스 자비에 교수는 절박하게 소리쳤다. 진, 네 힘을 쏟아내! 진이 사력을 다해 괴성을 뿜어내자 사방이 거대한 불꽃으로 덮였다. 돌이 갈라져 흙이 되고 하늘은 그 빛을 잃었다. 고대 악마는, 이것이 나의 운명이었어라는 말을 남기고 모래성이 무너지듯 사그라들었다. 


인상적인 장면이다. 돌연변이 엑스맨들은 자신들이 가진 초능력을 평범한 지구인을 위해 쓰면서 힘의 출처를 정상화 시키려고 한다. 반면 악마는 고대의 질서로 지구를 되돌려놓기위해 지구인을 희생시키려고 한다. 이 드라마는 두려움의 연쇄에서 극적 전화을 마련하는 것처럼 보인다. 고대의 혼돈, 괴물같은 힘을 지닌 돌연변이들,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더 검은 빛에 흡수되는 사람들. 


진에게 두려움에서 해방되면 네 힘이 드러날 것이라고 예언하는 자비에 교수는 마치 프랑스 혁명 전야의 장군과 같다. 너희들을 막고 있는 것은 그림자다, 두려움이다, 그런 약한 것들로는 누구도 구원할 수 없다. 엑스맨은 지구 인간이지만, 이들이 가진 능력은 놀라울 정도로 거대하다. 총을 맞고도 죽지 않는 자, 모든 이의 머리 속에 들어갈 수 있는 자, 강철을 움직이고, 레이저로 물건을 녹이고, 번개를 일으킨다. 신의 힘이 얼마일까를 생각하며 만들 수 있는 거의 모든 장점들을 망라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들의 능력을 모두 합해봐야 신과 비슷할 뿐 신의 자리에 앉지 못한다. 엑스맨이 비로소 신이 되는 순간은, 진이 고대 악마를 제거하며 얻게된, 순수한 파괴의 힘을 소유하게 되면서다. 엑스맨은 두려움에서 벗어날 뿐만 아니라 두려움을 생산하는 지배자가 되었다.   


진은 자신의 초능력을 두려워하며 갈등을 겪고 있었고 마침내 혼란이 파괴되며 진 스스로를 살아갈 수 있었다. 초능력이 무능력으로 변환되는 순간 진은 두려움을 지배할 수 있었다고 영화는 말한다.'순수한 파괴'만을 목적으로 하는 힘이 두려움이다.   


일본으로 밀항을 감행했던 조선인 김시종이 겪어야 했을 두려움과 갈등은 이중 언어의 문제에서 더 가중되었다. 조선의 감각으로 길어올린 김시종의 시가 일본어로 발표되었을 때, 재일 조선인과 일본인은 각각 서로 다른 당혹감과 이질적인 시선을 보냈을 것이다. 김시종의 결단은 '재일하는 일본 내 조선인' 어느 하나로도 갈등하지 않고 있다. '시를 살아가다'가 김시종의 삶이며, 두려움에서 해방되어 제 스스로를 살아갈 수 있는 길이었다. 김시종의 시는 '두려움'이 없기에, 더 이상 시인의 길을 파괴하지 못한다. 그런데 진은 시로 살아가고 있을까. 


어떻게든 1시간 글쓰기가 종료되었다. 그냥 올린다.


그러나 내 생각으로는 삶이 어디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하는데 공연한 착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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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망不忘

어느 시대든 이러한 꿈을 향한 측면즉 어린아이 같은 측면을 가지고 있다이전 세기에 이러한 측면은 아케이드에서 아주 분명하게 나타난 바 있다그러나 이전 세대들의 교육이 전통 속에서즉 종교적인 가르침 속에서 그러한 꿈을 해석해준 데 반해 오늘날의 교육은 아이들의 기분전환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프루스트가 하나의 전례가 없는 현상으로 나타날 수 있었던 것도 그가 속한 세대가 집단적 기억을 위한 신체적자연적 보조수단을 모두 잃어버리게 됨으로써 이전 세대보다 더 가여운 상태로 방치된 채 고독하고 산만하며병적인 방식으로만 아이들의 세계를 소유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아케이드 프로젝트』, 벤야민)


나는 곧잘 쪼잔한 일에 빠져들어 앞뒤 가릴 것 없이 묻곤 했다. 곤경에 이르고서 이제 그 버릇을 고치겠거니 하겠으나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이른바 '싹수가 노래' '싸가지'도 요령도 없는 종자였다. 지금도 달라지지 않았으나, 다행히도 대인관계가 없어, 그 대꾸들은 책을 향해 날아가고, 침묵 속에서 대갈들의 기미만 읽을 뿐이다. 공들여 돌이키면 조잡한 일이었고, 들이댔던 질문들도 특정 인물에 닿지 않았지만, 크고작은 파란을 일으켜 제 신세를 구부려뜨려왔던 것이다. 그 불망, 몇 개의 기억들을 불러와 <주체와 구조-사목 권력의 양상>에 대해 생각해 보려고 한다. 불충분하더라도 제 짝이 맞춰지고, 너덜거리고 바래버린 상태로 '형태를 잃게' 되었으면 한다.


국민학생 어디쯤, 《양치기 소년》을 수업시간에 들었다. 소년은 양을 지키는 일을 한다. 늑대가 나타나면 마을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 소년은 어느 날 늑대가 나타났다고 소리쳤고, 마을 사람들은 하던 일을 멈추고 달려왔다. 소년의 거짓말이었다. 그 후로도 양치기 소년은 또 다시 거짓말을 하고, 마을 사람들은 지쳐갔다. 그러다가 진짜 늑대가 나타났다. 소년이 늑대가 나타났다고 힘껏 외쳤지만, 마을 사람들은 저 놈이 또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했다. 양들은 늑대의 먹이가 되고 말았다. 아주 짧은 이야기로 듣고나서, 나는 그 소년이 어떻게 되었는지를 다급하게 캐물었다. 소년이 마을에서 쫓겨났나요, 감옥에 갔나요, 마을사람들은 왜 소년을 도와주지 않아요? 왜 거짓말을 했대요? 내 다급한 재촉을 가뿐히 노려보고 난 뒤, 그 노련했던 선생은 거짓말 하지 않기, 어른들 말 잘 듣기, 약속 지키기 등의 훈화를 이어갔을 것이다. 나는 양치기 소년을 쉽사리 잊을 수 없었다. 밤낮으로, 마을 밖에서 홀로 양들을 돌봐야 하는 소년은 매일 거짓말을 한다. 이야기는 너무너무나 불완전했다.


어떤 밤 양치기 소년의 꿈을 꾸었다. 거적을 두르고 작대기만 가진 양치기 모습만 비추기도 했으나, 대개는 사연을 갖고 꿈 속을 찾아왔다. 내 꿈 속에 나타나 호소하던 소년은 거짓말 했던 걸 숨기지 않았다. 마을이 떠들썩하게 잔치를 열던 날, 등성에 서서 지켜봐야만 했던 소년이 일부러 심술나고 질투심에 가득 차 외치면서 거짓말이 시작되었단다


어떤 날은 실제로 나타났던 늑대들이 마을 사람들이 도착하기 전에 사라져 버리기도 했다

나는 그날 꿈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는게, 온힘을 다해 “저기 늑대가 도망가고 있어요 보세요 저기요저기” 외치는데 말소리가 만들어지지 못하고 비명소리만 내다가 깨어났었다


더러 다친 양을 도와주려고 마을 사람들을 꾀어 낼 거짓말을 했다 한다. 아주 가끔은 너무 심심해서 늑대를 부르기도 했다고 한다. 외로움을 참을 수 없어 늑대가 출현하길 바랐다는 마음을 전하는 소년이 불쌍해 찔끔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나는 꿈이라는 것도 잊고, 성심껏 대꾸를 해주곤 했는데, 양들과 친해지라거나 노래를 부르거나 혼자라도 할 수 있는 놀이같은 걸 일러 주기도 했다. 마을 사람들이 소년을 혼자 보내지 말았으면 했고, 실제 일어난 일 마냥 늑대의 출현을 알리기도 했다. 양치기 소년이 거짓말을 멈출 수 없었듯이 나는 양치기 소년의 거짓말을 멈추게 할 수 없다, 꿈 속에서조차.


머리통이 크고 나서는 양치기 소년의 꿈은 더이상 꿀 수 없었다. 그러나 책을 읽다가, 글을 쓰다가 불쑥 깊은 그림자를 끌고 나타나기도 했다. 사회학 책을 읽다가, 정신분석에 대해 배우다가, 페미니즘의 계보를 찾다가 문득 나타나 묻곤 한다. 이 책의 저자들이라면 양치기 소년/소녀에게 무슨 말을 할까. 그 불망의 꿈들은 무한 재현의 미디어, 이미지로서 정치, 이야기로서의 정체성이 범람하던 시대의 사소한 반영들이었다.


나는 지금까지도 공동체적 시선과 감각으로 양치기 소년을 떠올리지 못한다. 양치기 소년이 이솝 우화 속에 있다고 들었는데, 그렇다면 집단적 결속과 사회화의 문제로 받아들였어야 한다. 개인을 내세우기 위해서 보편을 특수화로 안내하는 일관된 질서와 방법을 동원하려는 의지를 가졌어야 한다. 내면에 신이나, 위인, 민족이든 또는 스승을 지녔어야 한다. 인간의 길을 벗어나지 않을 준거점이 필요했던 것이다. 자신만이 원칙이고 자신만이 존재하는 땅에 자연이 생성될 일이 없음을 알아야 한다. 분명한 나의 문제다.


그러면서도 시종일관 꿈 속의 나는 마을 사람들을 향해 말을 걸지 않았다. 양치기 소년을 합당한 행동으로 이끌어 마을 공동체에서 쫓겨나지 않도록 하는데만 전전긍긍했다. 따뜻한 보호 속에서 생활하고 싶음이 내가 가진 소망이었었나 보다. 얼마나 웃기는 일인가. 보호가 그냥 올 리도 없는데, 마을 사람들을 똑바로 바라보지도 못한 채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 그런 면에서 양치기 소년 읽기 매뉴얼의 문제는 나의 고질적인 병의 문제이다.


양치기 소년을 놓지 못하는 한심함은 종결을 두려워하는 시대의 영향도 있다. 어느 버전, 어느 시즌에서라도 마무리를 지어야 할텐데 후속작을 계속 만들고 있다. 양치기 소년에 대한 변론이 비루하고 공황에 빠진 내 삶에 대한 변론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면죄부를 주기 위해 글을 쓰는 짓은 하지 말아야지 다짐했다가 도대체 뭐가 면죄부냐고 반문한다. 그리고 나는 불안장애에 빠졌다. 거짓말을 해서라도 지금 이 상황을 벗어나고 싶다


꿈으로 만났던 양치기 소년이 맹랑한 대갈만이 아니듯 이 글의 최후도 그러하길 바란다. 분명하게 의식하고 있었던 점은 사회를 불변항의 시스템이라 당연시했다는 것이다. 마을 사람들을 대중이 아닌 '사회' 자체로 인식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꿈 속의 양치기도 마냥 무시하기에 무겁다만약 질문을 바꿨다면 어땠을까 …마을 사람들이 보호하고 싶은 것이 무엇이었는가?


내 꿈 속에 선 양치기 소년은 반복적으로 사람들을 위협하고 불안을 조장하며 권력을 즐기는 종자가 아니었다. 늑대를 불러내 공동체를 와해하는 흑마술사도 아니었다. 오히려 어떤 때는 들판을 가로질러 잃어버린 마지막 양 한 마리를 찾는 '예수'처럼 결연하기도 했다. 양치는 일이 적성에 맞지 않아 사고를 치더라도 양의 안위를 걱정하기도 했다. 여기까지가 불안장애 이전이다. 지금부터는 공황상태에 빠진 환자의 병상기록이라고 봐도 좋다. 이 책의 마지막 장에 양치기 소년 읽기의 마지막 매뉴얼을 낭송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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