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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멀지 않은 어느날이었습니다. 그즈음 괴로운 심정으로 나날을 보내던 차였기에 어디에서나 불안 불편했었다는 사실을 먼저 말씀드립니다. 집을 나서 버스를 기다립니다. 강화된 단속으로 승차인원을 준수해야 했기 때문에, 20여 분을 기다린 후에야 버스에 오를 수 있었던 시기였습니다. 버스는 제 시간에 도착했지만 또 얼마의 사람은 자리가 없어 내려야 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할머니 한 분이 갑자기 버스 바닥에 철퍽 앉으며 말합니다. 지금 가야 병원예약에 늦지 않는다고. 기사님은 채근합니다. 할머니가 이러시면 면허정지 당할 수도 있다고. 5분이 지나도, 할머니는 더 당당히 요구하고 버스가 출발하지 못했습니다. 급기야 기사님은 회사에 연락하느라 버스에서 내린 상태였고, 승객들은 하나둘씩 할머니에게 내릴 것을 요구합니다. 누구는 병원에 좀 늦을거라 전화하라 하고, 누구는 병이 중하면 119 부르라 하고. 할머니는 더 크고 당당한 태도로, 병원 진료 못 받게 되면 책임질거냐고, 여든이 다 된 어른에게 대드냐고 소리칩니다. 심사가 괴롭고 힘들었던 나도 한 마디를 소심하게 중얼거렸습니다. 지금 중요한 것은 나이가 아니라고. 통화를 끝낸 기사님은 경찰을 부르겠다고 합니다. 할머니는 더 당당하게 부르라고 합니다. 어쩔 줄 모르는 사이에, 갑자기 어떤 목소리가 들립니다. 할머니! 여기, 제 자리에 앉으세요. 그러자 그러면 안 된다고 승객들이 말합니다. 자꾸 그러면 버릇된다고. 그 목소리는 연이어 말합니다. 제게는 급한 일이 없습니다. 제가 뒷 차를 타겠으니 할머니가 앉아 가세요. 갑자기 할머니가 엉덩이를 털며 일어났습니다. 할머니 얼굴이 빨개졌다고 느낀 것은 내 뒤틀린 심사 때문이었을까요. 할머니는 작게 중얼거리며 내렸습니다. 양보해 준다고 말한 아줌마 얼굴은 쳐다보지도 않고, 감사 인사도 없이 훌훌털며 버스를 내려갑니다. 아마 이런 말이지 않았을까요. 그러는거 아니라고. 사람들 그러는거 아니라고. 


가끔 할머니가 생각납니다. 그런 일이 없었다면 기억될 일이 없었을텐데요. 드라이로 멋을 낸 머리모양, 계절에 맞는 코트와 옷차림, 주름도 많지 않은 뽀얀 얼굴에 곱게 한 화장....어떤 면으로 봐도 평범한 중산층 할머니였으니까요. 할머니는 그날 병원진료를잘 받았는지 모르겠습니다. 할머니를 일어나게 한 것은, 혹은 얼굴을 달아오르게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내내 벼르고 덤벼보지만 쉽게 알 수 없습니다. 요구와 설득의 차이는 어디에 있을까요.


2. 대부분의 관계는 고통입니다. 관계를 푸성지게 하려면 그 고통에 다른 이름을 붙여야 합니다. 그런데 공적 관계는 어떤가요. 까다롭게 말하자면 사적 관계는 모두 공적 관계망 안에서 생각해야 합니다. 이웃도, 친구도, 가족도, 공적 체계에 의해 만들어진 규정들이니까요. 그렇지만 정반대의 인식과 감성들에 더 자연스럽게 노출되어 있습니다. 가까운 관계의 혈육과 인연들에게는 모든 관계의 형식을 허물고 싶어하니까요.가까울수록 허물어야 한다고 생각하니까요. 


3. 이 블로그는 세 분의 댓글을 달고 있습니다. 한 분은 가족이고, 한 분은 무명입니다. 유일하게, 비록 비공개지만, 실명을 밝힌 분의 블로그에 가끔 방문하곤 합니다.어떤 심성을 가진 분이 이 황량한 곳에 흔적을 남기고 싶어 했을까하는, 감사와 호기심 때문이었겠지요.몇 달만에 방문한 그 분 블로그에서 약간의 혼란을 경험했습니다.그리고 부분적으로나마 알게 되었습니다. 줄곧 그 분을 가까워질 수 있는, 형식을 허물어가며 만날 수 있는, 그런 사람으로 (혼자) 생각했었다는 것을요. 그 분의 짧은 댓글에, 한 마디의 짧은 말에 오해를 키우며 살았던 것이지요. 내 말을 이해하고 내 말을 들어줄 '내 편'으로 만든 것이지요. 많이 외롭나봅니다.


굳이 따져보자면 아무 일도 아닐 수 있습니다. 그 분이 쓰는 글들은 인기가 많았고, 흐름도 비슷했습니다. 예를 들자면, 책을 많이 읽었다고 주장하는, 인기많은 저자가 거짓말을 했느냐 하는 것입니다.그 분도, 다른 댓글 친구들도, 시간 상으로 그렇고 본인들의 경험에 의해서도 그 많은 책을 읽을 수 없다고 동의합니다. 그렇지만 생각해 보십시오. 그런 증언으로 강화되는 것은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을 우대해야 한다는 섣부른 계산 뿐입니다. 


생각이 너무나 판이한 걸 알았으니 그 분은 이제 내게 가까운 사람이 될 수 없을까요. 또 그 분의 글은 계속 읽어야 할까요.    

      

언제인지 기억나지 않습니다. 니체의 책을 읽다가 덮어버렸습니다. 꾸역꾸역 치밀어오르는 반항끼가 어디로 향할 지 알 수 없는 날들이었습니다. 주체할 수 없는 노여움에 부르르 떨면서 말이지요. 요즘 다시 읽는 니체는 이렇게 말합니다. 날 읽으려면 유머를 먼저 배우라고요.

우리에게, 아니 적어도 내게는 심층과 심연이 모두 있습니다. 유머가 필요할 때입니다.   


3. 낮술이 다 깨어갑니다. 글은 언제 써야 할까요. 넘쳐나는 파편으로 머리가 엉망이 되려하면 무작정 메모합니다. 그렇게 글이 되길 기다리는 메모장과 작은 단락들은 어지럽게 흩어져 있습니다. 부스러기와 문단을 모으고 제목을 붙여 글을 만들어야 할까요. 아니면 더 해체시키고 단련시켜 오류를 줄이도록 부단히 노력해야 할까요.


어떤 사건이 혹은 일상이 내게 옵니다. 이미 왔다는 것은 해석이 끝났다는 말이지요. 올바른 해석일지 반문해야 합니다. 경험으로, 배움으로, 물음으로, 숙고로, 어리석음으로 반추합니다. 이때 과거라는 모지래기가 모조리 딸려 나오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지만, 마냥 거부할 수도 없지요. 거칠게라도 모양을 잡아야, 개입을 해야, 글이 됩니다. 개입이라는 것은 증명할 뿐입니다. 이미 왔지만 아직 오지 않았다구요. 


좁은 방에 홀로 앉아 낮술을 마시지 않았다면 이런 글은 완성될 수 있었을까요. 아니 공개할 수 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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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제 곧 다시 만나리


검푸른 물이 가로막고

차단당한 희망으로

칠흙이 되어버린 창벽

닿지 않는 비명이 정지되어 허공에 떠 있다

이렇게 떠나지 말라고, 이렇게 헤어질 순 없다고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다고


쓰지 않을 수 없는

되새기지 않을 수 없는

살아남은 자의 슬픔

죽음이 남기는 말을 받아적는 것

그리고

이제 곧 다시

물이 되고 노래가 되어 다시 만날 것이다



2. 반복은 생명장치


반복은 자연스런 본능입니다. 의식적인 노력없이 그저 이루어지는 것이지만 생명의 비밀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반복하는 행위를 의식으로 끌어올려 조작할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 저항없이 수용하게 됩니다. ‘우리’를 만들어줄 몇 개 남지 않은 귀한 능력, 반복을 애정하세요. 이럴때 발랄한 사람들은 이렇게 반문합니다. “반복은 지겨울 뿐이죠. 아침에 일어나 하루를 상쾌하게 시작하는 일, 어제보다 나은 새로운 내가 되어가길 기대해야죠.” 조금 진지한 사람들은 또 이렇게 말합니다. “모나리자는 다시 반복되지 않아서 위대하잖아요? 위대함은 죽지 않아요. 예술이 없는 사회, 문화유산이 모조리 파괴된 인류를 상상해보세요. 원시적 공황상태에 빠지겠죠. 끔찍한 재앙이니 부디 문화예술을 보호해 주세요. 모조품에 속지 마세요.”


하지만 당신이 그 말을 할 수 있는 것도 반복이라는 능력 때문이지요. 모든 위대한 것은 ‘위대함’이라는 반복 때문이라니까요. 한번 찾아보세요. 반복하지 않은 것이 무엇이 있나요. 당신이 걷고, 말을 흉내내고, 숨쉬고, 자고, 먹고, 배설하고 당신이 유일하게 한 번만 할 수 있는 일은 죽음뿐입니다. ‘뭐 이런 억지를 쓰나’ 하시는 당신에게 또다시 반복해 보겠습니다. 탄생과 죽음은 다른 맥락이랍니다. 탄생이라는 사건은 죽음 이전까지 반복이라는 생명장치를 유지하게 된답니다. 호흡과 언어가 다른 차원이 아닌 것처럼, 본능이 된 것들은 반복해야 합니다. 당신이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 순간, 혹은 저항하는 순간 당신은 병이 들 것이고 당신 생은 무너지기 시작할 것입니다. 악담이 아니라니까요. 반복하며 반복함을 잊고 반복적으로 반복을 돌아보세요.


순간을 지속시키려고 집착하는 사람들은 예술가가 되기 쉽습니다. 아주 조금 덜 그런 사람들-예술가가 아닌 사람들-보다 예민하게 굴거나 병에 쉬이 걸리는 것도 반복되어야 할 것을 잡아두기 때문이지요. 예술은 부질없이, 병증으로 태어나곤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인류의 면죄부가 되어 지구정복을 정당화하는 기제가 되었답니다. 훌륭하고 멋진 삶이란 예술과 함께 지상을 휘어 감습니다.


위대함을 탄생시키는 것은 예술가가 아닙니다. 순간을 잡아내는 것은 예술가의 노고지만, 지속은 타인의 능력이니까요. 그렇지요. 내내 부정적인 당신은 주장하겠지요. 예술이 일상을 이기게 해주는 또다른 본능이 된 것을 거부하지 말라구요. 먹고 싸고 자는 이기적인 인간들에게 도덕을 심어줄 수 있는 힘도 아름다움을 만들어내는 예술의 힘이라구요. 읽고 쓰고 노래하는 일을 뺀 삶이 얼마나 메마른 것이냐구 하겠지요. 


아니랍니다. 반복을 거스르는 예술의 힘을 제거해 나가는 것이야말로 우리를 회복하는 희망이 될 수 있답니다. 거대 자본과 다국적 기업 뿐만이 아니라 지적 재산권도 얼토당토 않은 억압이니까요. 자본주의를 견고히 하는 큰 틀 중 하나가 저작권이 아닌가 싶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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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달이 해를 누르는 일을 불가능이라 하지 않고 희망이라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누군가 묻는다, 누르는 일은 결국 지우는 일이 되느냐고 말이다. 서둘러 답이 돌아온다. 함께 '누리기' 위해서는 눌러야만 한단다. 어설픈 질문자는 애맑은 소리로 되묻기에 바쁘다. 그럼 달이 해가 되고 마는 것이지요? 이즈음 신경증이 발현되는 사람들은 외치듯 말하고 등을 돌린다. 모두가 동등해진다는 겁니다. 뒷모습만 보이고 떠나는 사람들에게 어리석은 질문자는 하다만 말을 삼키며 중얼거린다. 그건 해도 달도 원하지 않을걸요. 


2. 8월이 시작되며 나타났던 어지러움과 끝도 없는 방황을 정리하기에 10월은 알맞다. 다시 해가 뜨고 추위가 몰려오는 것이 지각된다. 눈을 들어 거울을 보고 팔을 들어 책을 연다. 망각, 위선, 거짓말이 흐른다. 그것들이 사라진 적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짐짓 모른 체하기 적당하다.

거대 언론은 개인에게 닥친 불행의 배후를 드러내기에 여념이 없고, 반대편에서는 시스템을 방기하는 이익 집단의 추악함을 드러내기에 여념이 없다. 한 사람의 '살아감'에 망각은 일정한 가치를 지니겠지만 사회에게 망각은 독이 될 뿐이다.


3. 부채인간의 리뷰를 쓰다가 멈췄다, 두 번째다. 좋은 책인데 말이다. 많은 의문을 허용하고, 수행적 발화의 연속작용을 일으키는데...좋은 책은 완결되지 않는다. 질문지를 만들어내다 리뷰를 끝맺지 못한 것은 허약하고 병든 심신의 영향이었다. 부채 의식과 죄책감을 따져 물어야 하는데...그 끝이 두렵다. 죄책감의 근원을 들여다보는 것은 아무 것도 입지 않고 벌판을 헤매는 것과 같다. 행여 누구라도 마주칠까 두렵고, 행여 아무도 없을까 두려운 것, 그것.


4. 정상상태란, 한 끼의 성스러움을 알아가는 것, 한 숨을 쉴 때 곧 뱉어내야 한다는 것을 아는 것, 쪼그라드는 신체를 보드랍게 만져 주는 것, 가진 것을 점점 줄여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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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주 고단한 일이다. 무기를 준비하며 살아가는 일 말이다. 입술 위에 가볍고 경쾌한 말을 매달고, 두 손에는 정을 나눌 초코파이를 쥔다. 휘두르지 못하는 것들이니 무기라 할 수 없겠는가.

 

깊은 잠을 담지 못하는 눈동자는 번득이며 두리번거린다. 거리는 미처 들이마시지 못한 냄새를 창 너머로 뿜어대며 유혹한다. 

 

달콤한 말이 독이 되고, 지글대며 타는 고소한 냄새가 약이 된다. 누군들 그 향연을 마다하겠는가. 누군들 금욕이 좋다 하겠는가.

 

독과 약을 들이마시고 나면, 그렇게 아침이 오고 나면 더 많은 무기가 필요해질 것이다. 그렇게 모든 사람들은 매일 저녁 상채기 하나씩을 더 만들어 내며, 괴로워한다.

 

"못 나고 썩어빠진 글 뭉텅을 잘라낼 가위가 되어줄래."

뜬금없는 여자의 요구에 말문이 막힌다.

"누군들 괴롭지 않겠어요. 에휴~"

꾼들의 주정에 이력이 난 미스터 리가 답한다.

"쓰레기가 너무 많아, 태어날 이유없는 것들이 너무 많아, 숨이 막혀요."

가위질을 멈춘 미스터 리는 초저녁 손님의 안색을 살피며 실소를 머금는다.

"이유없이 태어나는 것은 없다네요. 에휴~"

낮술이라도 걸치셨나, 중얼거리던 미스터 리, 고기 알바 3주차 답게 요령있게 불조절을 한다.

여자는 맨정신이다. 마치 흥건한 술자리에 둘러앉아 취해가는냥 흉내만 낼 뿐이다.

"무기는 자신에게 휘두르는 거야, 무기 끝은 꼭 자신에게 온다니까."

고기는 익어가고, 여자의 얼굴도 익고, 미스터 리의 두 손도 익는다.

여자는 고기 한점 입에 대지 못한 채, 온 얼굴 가득 달큰한 고기 냄새를 묻히고, 거리로 나선다. 알맞게 잘려진 고기들이 접시 위에 고대로 남겨진다.....

창밖에는 고스란히 남겨긴 고기를 탐내는 여러 눈동자들이 번득인다.

 

2. 허기진 산책길에 오릅니다. 이 산책들은 의도된 것으로 고행이 아님을 밝힙니다. 홍대 정문을 향해 약간의 비탈길을 오르다가, 셀 수 없는 인파를 피해 신촌쪽으로 고개를 돌립니다. 짬뽕집을 지나고 기찻길을 지나는 순간이었습니다. 몇 마리의 비둘기가 도망갈 생각도 없이 앞 길을 막아 섭니다. 길 위에 뿌려진 약간의 음식물에 둘러앉은 비둘기들. 그들의 모양이 심각합니다. 머리 부분의 털빛이 좋지 않습니다. 뽑혀나가고 문드러진 살결이 보입니다. 이미 변색이 된 피부결에 이질이질한 고름빛들이 흥건합니다. 그래도 이 비둘기, 열심히 모이질을 합니다.

 

며칠 전 골목에서 보았던 비둘기 떼 중에는 하나의 다리로 서 있던 녀석도 있었지요. (야무지게도 살아가는구나.) 다른 비둘기들이 안정감있게 깡충거리며 두 다리로 이동하는데, 외다리 비둘기는 이리저리 흔들대며 움직여야 했습니다. (무리 안에서 벗어나지 말고, 잘 살아가렴.) 주접스런 닿지도 않을 말을 뱉어 봅니다. 

 

사실 이 산책길에는 참 많은 종류의 동물들이 있습니다. 예쁘게 염색한 꼬리를 살랑이며, 목줄을 힘겨워 하면서도, 장난을 즐기는 애완견들이야 [유기견이 되지 않고서야] 저무는 해를 따라 산책을 끝내겠지요. 그렇지요.

 

주위가 벌써 어두워집니다. 아주 작은 소리에도 파르르 자리를 떠나고야 마는 참새나 고양이는 또 어디로 갈까요. 신촌오거리를 다 갈 즈음 식당 아주머니 한 분이 생선 머리를 문밖에 던집니다. 기다리던 길고양이 잽싸게 낚아채고 골목에 주차된 차 밑으로 가서야 야금야금 먹기 시작합니다. 그 옆을 서성이던 다른 고양이는 괜히 안절부절합니다. 

 

제법 큰 횟집에는 여러 개의 수족관이 있지요. 개불이 장삼을 펄럭이듯 춤을 추고, 해삼은 유리벽에 턱 붙어 있습니다. 또다른 수족관에는 [어른 남자 팔뚝만한] 상어 한 마리가 있습니다. 며칠 동안 이 길을 지날 때면 한참을 서서 쌩쌩한 상어의 움직임을 바라보곤 했습니다. 오늘은 지느러미 부분이 벌겋게 변해 속살이 드러난 걸 확인합니다. 

 

3. 그 모든 생명들은 불이 꺼지지 않아 밤을 잃어버린 도시에서 어떻게 살아내고 있을까요. 천둥번개, 기나긴 장마와 무더위에도, 매서운 바람에도 작은 참새의 불평은 들리지 않았군요. 다만 아침이 오고 산책길에 나서야 그들 존재는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어제 본 참새가 오늘 산책길의 그 참새인지는 모를 일이지만요.

 

그 많은 동물들은, 이렇게, 잠깐, 스칠 뿐입니다. 어떻게 사라지는지도 알지 못합니다. 참새와 비둘기의 죽음을 알리지 않는 도시, 고양이의 죽음이 비밀이 되어버리는 거리 , 상어의 사라짐을 드러내지 않는 골목은, 그래서 늘 고요합니다.

 

녀석들이 떠나가고 또다른 비둘기나 참새들이 날아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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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옷을 껴입고도 한기가 스며드는 날이면 저도 모르게 어깨서부터 잔뜩 힘어 들어간다. 피곤하다.돌풍이 간판을 넘어뜨리고도 모자람없이 내 몸을 훓고 지나간다. 바람은 그렇게 파동을 일으키다 소멸해야 하겠지만, 그 에너지는 좀처럼 수그러들려고 하지 않는다. 따뜻한 음료 한 잔이 절실하다.


2. 거리를 내다볼 수 있는 천 원의 행복 매장에 들어온다. 천 원으로 커피 한 잔을 사고 나서 구석 자리를 찾아 앉는다. 열 장도 넘는 통유리가, 흐르는 거리의 시간을 듣기에 좋은 조건을 만든다. 바람소리도 버스 엔진음도 통째로 막힘없이 보여진다. 


3. 나이도 배경도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 곳이다. 어린아이는 통로를 사정없이 뛰어다니지만 할머니는 좀처럼 꼬마를 자리에 앉히지 못한다. 옆자리의 어린 연인들은 아이스크림과 햄버거 세트를 먹을 생각도 없이 서로의 얼굴에 열중해 있다. 생머리를 출렁거리며 수다떠는 즐거움에 빠진 아가씨들, 가방을 바닥에 아무렇지도 않게 내려놓고 지속적으로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교복으로 자신을 말하는 청소년들. 그 사이로 중년의 남녀들이 커피와 우유를 앞에 놓고 토론 중이다.


4. 웅장한 쇼핑몰, 화려한 가게, 냄새가 흘러나오는 식당이 낮게 깔려 있는 도시에서도 갈 곳이 그리 많지 않다. 물질문명은 마천루에 걸려 있지만, 정작 갈 수 있는 곳이 별로 없다. 녹쑤시개 族은지난 번, 달의 책에서 태어났다. 그들이 만끽할 수 있는 천 원의 쾌락은 (사회적으로 정크푸드, 착취의 대명사- 대기업으로 비난받는)  패스트푸드 매장이 선물한다.


5. 가난이 밑으로 이전되는 것은 마치 멸시와 냉담이 밑으로 이전되는 것과 비슷한 형태다. 도덕적인 차원에서도 경제적인 차원에서도 그 흐름은 소름끼칠 정도로 유사하다. 고급하건 저급하건, 어느 공간을 들어서도 이질적인 것들이 쉽게 섞이지 못한다. 


6. 천 원의 행복에서는 조금쯤은 다른 장면이 연출되기도 한다. 손사레를 치며 상대방 투자자에게 충고를 아끼지 않는 부동산 업자의 출현도 어색하지 않다. 발랄함이 전부인 십대들이 말하면서, 메시지도 보내고, 감자튀김을 집어먹는 산만함도 당연하다. 바닥에 음료수를 왕창 쏟는 아이에게도 관대하다. 두 시간째 혼자 앉아 있는 나에게도 천 원의 쾌락 공동체는 아무 말이 없다.


7. 옆 테이블로 옮겨가 교정기를 낀 소녀에게 말을 걸어볼 수는 없다. 길고 가는 손가락을 이용해 깔끔하게 버거를 먹는 숙녀들에게 나눠 먹어도 되냐고 물을 수도 없다. 어린 손자 한 명에게 가족들의 시선이 몰입되어 있는데, 내게도 관심을 나눠 달라고 할 수도 없다. 하지만 이 순간, 열 장의 통유리 속에서 하나의 공동체가 생겨난 느낌이다.


8. 공동체는 한 가지에 동의해도 생겨날 수 있는 것일까. 생존의 조건을 전면에 내걸지 않아도, 생활 규약을 만들지 않아도 지속가능한 것일까. 그런 것들을 질려버릴 만큼 경험해 본 역사가 있다. 공동체가 해체되는 것을 안타까워 하지 말라. 공동체가 성실과 신뢰를 기반으로 시작해야 된다고 조바심내지도 말라. 


9. 쾌락은 곧바로 퇴폐가 되지 않는다. 쾌락은 흐르는 것이다. 경건함을 위해 멈춰 세우는 자들에게서, 예술적 고통으로 승화시키는 자들에게서도 뒤틀린 쾌락을 목격한다. 뒤집히고 위치를 잃어버린 쾌락이 더이상 쾌락인지는 알 수가 없다. 다만 지금 내가 아련한 고통으로 글을 쓰는 쾌락에 너무 깊게 빠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10. '천 원의 매장에 일시적인 공동체가 생겼다'고 말해도 괜찮은가.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지쳐 보이는 손놀림에, 구겨진 유니폼을 입은 저 청년에게도 이 공간이 매몰차지 않다면 그래도 좋다고. 내가 마신 천 원의 커피 생산자에게도 부당하지 않은 공간이라면 그렇게 말할 수 있다고 말이다. 그러나 모든 공동체의 운명은 '천 원의 매장에서 일시적으로 생겨났던 쾌락 자체를' 무시하지 않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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