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순간 대책도 없이 떠오르는 제목이 있는데 이것도 그런 것 중의 하나이다. 무명이란 '이름이 없다'는 것이 아니고 아직 '유명세가 없다'는 것인데, '유명세'란 대개의 경우 저잣거리에 응집되어 있는 누군가의 혹은 무엇인가의 이름값을 뺏어와야 발생할 수 있다는 견지에서, 중요한 점은 아니라 하겠다.

"그날 무명의 미스터리 작가 M이 떠난 방에는 세 개의 화분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잭더리퍼의 피를 받고 자란 화분 a, 영웅적 카르스마 조로의 피를 받고 자란 화분 b, 그리고 우주적 혼돈 그 자체로 자란 화분 c는 조명도 훈기도 사라진 빈 방에서, 사방으로 난 창문 밑에 오도거니 한 자리씩을 차지하고 있었다.  

 인간만이 스스로를 파괴할 능력을 가졌다고 하는 실험적 명제를 입증하기 위해 미스터리 작가 M은 사력을 다해 세 개의 화분들을 키워냈고 이제 결실의 순간이 머지 않았는데...그가 돌연 실종되었다고 한다. M의 방주와 세습의 단절이라는 실험의 결과는...

이 이야기의 인과율을 알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면 내게 A4용지 10장을 보내야 한다. 30명의 종이지원자가 300장의 종이를 보내오는 순간, 내게는 미스터리 작가 M의 궤적을 추적할 에너지가 생길 것이다.

 
   

 삶에는 어떤 종류의 고통과 쾌락이 함께 하는데, 평범한 일상에서 행위의 동력은 고통에 대한 회피와 쾌락의 유지에 모아져 있다. 사람들이 고통이 없는 쾌락을 '부도덕'이라고 비난하기도 할 때는 쾌락에 큰 인과율이 필요한 것 같기도 하지만, 고통과 쾌락의 끝자락은 허무와 만나게 된다는 경험에 비추어 보자면 쾌락을 본능적으로 즐기는 것 이상의 희망은 존재하지 않는 것도 같다.

그런데 세상을 변화시키는 분노의 힘은, 삶을 영위하는 모든 사람, 각자에게 부과된 고통을 동의나 경고없이 타인에게 부과함으로써 자신의 고통을 감소시켜 쾌락의 한계를 확장시켜 나가는 순간, 충천(充穿)하게 된다. 조금 더 세밀하게 말하자면 자신의 고통이 더 묵직한 안개 속에 갇혀 명랑성을 상실하게 되는 폭력을 '목격'하는 순간에 분기탱천한다. 그런데 분노란 고통 뿐만 아니라 쾌락의 긍정성까지 모두 잃어버리게 하는 기제이므로 늘 일상과 길항되어 나타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비상한 사람이 있다. 두뇌의 연산력은 측정하기 어렵고, 지진과 같은 자연재해도 예측할 수 있는 예민함에, 몇 가지 물건은 가볍게 구부릴 수 있는 염력, 더불어 수 천명의 과학자가 만든 첨단의 암호체계도 가볍게 깰 수 있는 추리력을 가진 그런 사람. 그 저주받은 재능은 모두를 두렵게 한다. 그가 누구의 편이고, 그의 재능이 어디에서 누구를 위해 쓰이는지 알아야 하고, 확인받고 싶어한다.  재능은 질시와 탐욕에 둘러싸이고, 오늘이 없다. 그는 자유로운 사람이다. 끊임없이 달라붙는 시선들을 떼어내야 한다. 재능을 원하는 자들과의 추격전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가 달린다. 그가 갇힌다. 분노한다. 삶을 잃어버린다. 이즈음 사람들은 그가 없어져버리길 바랄 수도 있다. 그의 존재는 감당하기 어렵고 감당하기 싫은 문제가 된다. 가장 이상적인 해결책은 이렇다. 보안이 잘된 어느 연구소의 실험실에서, '안전'하게, 그의 재능은 오직 인류를 위해서만 써줘야 한다.    

 

인간이 되면서 사람들은 '보통'을 원한다. 그것이 '정상'이다. 정상적인 범위에서 보통의 상식과 개성(체계 안에서의)을 가지고 살아갈 때 '안정'이 온다. 비상함도, 나약함도 '위협'이 된다. 허약하기 그지없는 인류의 취약점은 그런 암묵적이고 강건한 체계 속에서 유지될 수 있었다. 체계는 참으로 단단한 모양새이지만, 언제든 수시로 변할 수 있고, 변해 왔다. 어떤 순간에도  '체계'는 여전히 체계인 법. 체계를 위협할 수 있는 가능성은 변형시키거나 포섭하고 때론 제거한다. 그러기 위해서 체계는 변화가능성을 가질 수밖에 없다. 개체로서 인류는 사람이기 보다는 인간으로 살아야 한다. 그 안에 설 수도 있고, 밖으로 밀려날 수도 있다. 어떤 사람은 스스로 벗어나기도 한다.  체계는 인류에 한정되지 않는다. 인간의 체계 안으로 편입된 모든 자연도 체계에 길들여진다. 인류는 '인류'가 되면서 폭력적이고 비극적인 성격을 갖게 되었다. 인류, 인간, 사람... 자연, 개체, 생명.

 

녀석의 외출이 길어진다. 도시 문명속 인간과 동거할 수 없는 야생 멧돼지의 운명을 선택하려 하는 것일까. 녀석이 귀가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뛰쳐나갔던 집으로 돌아와, 엄마가 지어 준 따뜻한 밥을 한 그릇 비우고, 따듯한 아랫목에 발을 집어 넣을 때 흘리는 눈물의 의미는 무엇일까. 안에서도 밖에서도 인간은 불완전함을 위해 눈물을 참는다. 공동체란 그 눈물을 감내하는 연대의식일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화면 속에 시커먼 뭉텅이가 보입니다. 다 삭아가는 나무 등걸들 사이로  어찌 저리 빨리 내달리는지 살짝 귀엽기까지 합니다. 아나운서는 녀석이 도망 중이라고 말합니다. 40kg, 말레이 곰, 입산통제, 구조대원... 이어지는 정황으로는 청계산으로 떠난 녀석이 걱정됩니다.  

(시멘트로 바르고 가스와 전기로 불 밝힌 생존법 밖에 모르기에) 미련한 걱정을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먹이가 없어 쫓기듯 도시로 내려와  매구리없이 잡혀 죽는 멧돼지들을 생각하면 역시 녀석의 앞날이 문제입니다. 부디 오늘 밤은 녀석에게 운 좋은 날이기를 바라야지요.

 

녀석이 어떻게 사육사의 눈을 피해 철장문을 열고 외출 혹은 탈출할 수 있었는지 신기합니다. (이것 또한 곰이 그만한 지능이 없을거라는 섣부른 착각이겠지요.) 앞 발을 이용해서 잽싸게 열쇠를 열고 우리를 떠났을 녀석의 뒤통수가 생각나서 웃음이 머금어지기도 합니다. 물론 동네 주민들이나 등산객에게는 심각한 일이기도 하겠습니다. 대체 이 추운 날, 대설주의보가 내렸다네요, 왜 굳이 외출을 결심했는지가 궁금합니다. 잘은 모르지만 동물원 측이 녀석을 대접하는 데 소홀함이 있었을 거라곤 생각지 않습니다. 녀석의 건강이 동물원의 재산인 시스템이라서 말이지요.

 

외로움이었을까요, 동료 곰과의 불화였을까요, 눈이 내리는 징후를 읽었을까요. 자유를 원했을지도 모릅니다. (어리석지요, 이런 질문들. 이것도 인과관계를 따지고 들어야만 했던 계몽의 후유증인데 고쳐지지가 않아요.) 그 어떤 이유로든 녀석이 걷고 있는 길이 동물원 생활과 얼마나 달라지게 될까를 생각하니,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그저 녀석이 잠깐 외출한 것이라고 생각하면 안 될까요.

 

영화 혹성탈출(1968년)의 찰턴 헤스턴도 탈출을 간절히 원합니다. 지구적 삶에 회의를 느낀 주인공 함장은 지구를 떠나지요. 우주 속 어느 행성에 불시착하게 되지만, 불행히도 그곳은 유인원들이 문명의 지배자로, 인간은 원시적 동물상태로 언어도 문명도 없이, 가축과 같이 살아가고 있었어요. 감옥에 갇혀 노예로 전락할 위험에 처하지만, 다행히도 유인원 사회에도 체제에 불만을 품고 개혁을 원하는 집단이 있었는데, 그 중 미모의 여류 과학자가 도움을 줍니다. 유인원 사회의 불평등과 부패를 개혁하고 싶었던 그 과학자는 여러 가지 변화를 원했던 터라, 주인공을 자신의 실험동물로 선발하여, 탈출에 성공시킵니다. (제 기억이 틀릴 수도 있어요.) 참으로 야릇하지요.

 

철장을 열고 혹성을 탈출하는 함장의 마음으로 녀석은 청계산을 헤매고 있을까요? 함장은 떠나왔던 지구로 다시 돌아가야 할까요? 아니면 어딘가 있을 환상적인 행성을 찾아 또 다른 탈출을 해야 할까요. 수 억킬로미터를 떠나도 벗어나 질 수 없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에게 어떤 선택을 원하는 것을까요. 혹시라도 함장이 맛보았던 쓰라림을 녀석도 맛보게 되면 어쩌지요. 녀석의 외출이 탈출이 될 수 있을까요.

 

밤새 내리는 하얗고 뽀송한 눈 위에는 녀석의 외출일기가 선명하게 남을텐데,  아무리 해도 읽을 수가 없어요!
 

<2010. 12.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17개월 전에 쓴 글을 다시 읽고 있다. 그 시간을 부채살처럼 쫙 펴놓고 생각한다. 

 

<통계에 대한 집착>

 

블로그를 만들어 내 이야기를 쓴다, 그리고 이례적으로 공개상태로 만든다. 나에게는 이례적인 일이다. 그리고 다른 블로거들처럼 반응을 기다렸다. 하루에도 몇 번씩 확인했다. 신기했다. 10명도 오고 20명도 온다. 어떻게, 어디서, 왜 온 걸까? 읽고는 갔을까? 공감은 했을까? 찌질한 글이라 욕하지는 않았을까? 별 생각이 다 든다. 하하, 후-우.


그러다가 오늘 문득 알게 되었다. 오늘 방문자수는 5명. 내가 시간 있을 때마다 즐겨찾기에 링크해 놓고 로그인 없이 방문한 수도 5번 정도이다. 내가 열광했던 10명, 20명은 내 글의 반응을 기다리는 바로 '나'였던 것이다. 같은 아이피로 접속하면 카운트가 안되는 줄 알았는데 그런 것은 아닌가보다.

 

생각해보니 내가 열광한 것은 통계였다. 사람이 아니라 숫자 말이다. 땅살이에서는 누군가 내 말을 들어주고 눈빛을 교환했다면 그날 대화를 나눈 사람의 숫자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대화의 내용, 서로의 생각을 공유했는지, 혹은 싸움이 일어났는지, 친구가 되었는지 등등이 중심문제였을테니까 말이다. 그런데 블로그란 놈은 혼자서라도 실컷 떠들어댈수 있지만 외로운 메아리가 될 수도 있다보니 자연스럽게 방문자 '숫자'가 중요해지나보다. 


 

방문자수도 많아지고 인기 블로거가 되려면 어째야하나. 인터넷살이도 땅살이와 마찬가지인가 보다. 땅살이에서도 집 밖으로 나가면 무수한 사람이 오가는 걸 볼 수 있지만 내가 말을 걸거나 다가가지 않으면 여전히 남이고, 아무리 많은 군중 속에서도 외로운 1인이다. 외로움을 벗어나려면 관계짓기는 반드시 필요하고, 짝을 만들고 자기 편을 형성해야 한다. 인터넷살이도 그런 것이다. 다른 블로그에 방문해 흔적도 남기고 부지런히 초대도 해야하거늘 나는 수많은 글과 그림이 올라오고 내려가는 것을 '그냥' 볼 뿐이다. 땅살이에서 불가능했다면, 이곳은 가능성의 공간일수도 있었지만, 여전히 외로운 1인으로 살아간다.

 

그래도 달라진 것이 있다면 더이상 비공개글만 쓰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누군가 들여다보고 '내 생각'을 뻔히 해석하고 평가해도 괜찮은 공간이 생긴 것이다. 인터넷살이를 시작한 나는 달라질 기미가 보이는 것일까? 나는 숫자를 보지 않고 사람을 만나는 블로그 생활을 할 수 있을까?

                                                                                                           - 2009년 6월 -

 

이 블로그는 그때와 똑같다, 통계적으로는 말이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블로그 제목인데, 이는 오랜 꿈이던 '소설가 지망생'이 되었음을 스스로에게 공표하고자 함이었기에 애초의 의도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흔들림없는 기조를 보이는 것은 '혼자인 것'이 얼마나 편한 것인지 알기 때문이다. 대개 이런 증상들은 상담치료를 요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나에게는 오래된 관행과 같은 것이며, 더러 나와 같은 사람들도 있음을 고려하면, 특별한 일도 아니다. 물론 종이 공책에서, 비공개 1인 온라인 클럽으로, 그리고 '공개적'이나 철저하게 '개인적'인 블로그로 매개체가 바뀌면서 약간의 변화는 있었음을 고백할 필요가 있겠다. 그 변화의 내용과 성격은 좀더 숙고해 봐야 할 문제이긴하다.

나는 왜 이 공간을 '사적인'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고 '개인적'이라는 단어를 사용해서 설명했을까. 빈틈없이 사적인 일이란 존재하기도 어렵겠지만, 어떤 일을, 문제를, 말을 꺼낸다는 것 자체가 -담화자가 몇이건 간에, 저 깊은 동굴 안에서 건져낸 후, 햇빛의 존재를 인지하게 했다면- 이미,결코 사적일 수 없는 공간이 생겨버림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혼자이면서 혼자가 아닌 공간, 혼자이기에 더 편안한 공간, 혼자가 아니라는 망상적 공상속에서도 멋쩍을 일없는 공간. 이 모든 조건을 만족하는 공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은 나쁘지 않은 경험이다.  

예전에 쓴 글들을 모두 비공개로 만들고 놓고서, 하나씩 다시 꺼내서 읽어보고, 공개상태로 전환하면서 쏠쏠한 재미를 느낀다.
<2010. 11.20>

댓글(4)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블로그구경 2012-09-08 15: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잘 하고 갑니다...가끔 저처럼 슬금슬금 보고 가는 방문자도 있다는 사실ㅎㅎ
'공개적'이나 철저하게 '개인적'인 블로그라는 말에 공감하고 갑니다.(저도 그런 블로그를 하고있는지라 ㅋㅋㅋ;)

초원 2012-09-09 20:15   좋아요 0 | URL
이런 외진 곳에 걸음을 남겨주시니... 반갑고 고맙습니다.

마나가하 2012-12-09 2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늘 거기 있었으나 그저 가지런히...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던 그래서 주인의 눈길과 손길이 익숙하게 알아봐주는 책장의 책들처럼...님의 블로그에서도 개인적이지만 그래서 더 공감적인 책장의 냄새가 납니다. 근황이 궁금하군요

초원 2012-12-10 19:46   좋아요 0 | URL
이름이 생소해서 구글링 했습니다. 푸른 바다를 그리워하는 님, 반갑습니다. 마나가하에 다녀오실 때 파란 엽서 하나 보내 드리고 싶군요.
 

바람이 불어 온다

바다의 바람이다.

150km 너머 파도소리를 싣고 온다

콧구멍 벌어진 사이로 차알싹 심장이 울린다 .

한 걸음을 뗀다

바다로 간다.

 

야트막한 언덕을 지나 돌다리를 건넌다

지도도 나침반도 모른다.

두 다리로만 걷는다

심장이 들썩대는 대로 따라 걷는다.

 

바람이 사라졌다

별빛에도 묻어나던 바람이 멈췄다.

바다의 바람이.

뒷걸음을 친다

아, 바다의 바람이다.

다시 앞으로 달려간다

파도소리가 멈춰버린다.

다시 뒷걸음을 친다

바람은 그대로 머문다.

 

 

 

바람과 나는 그 자리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