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채인간 - 인간 억압 조건에 관한 철학 에세이
마우리치오 라자라토 지음, 허경.양진성 옮김 / 메디치미디어 / 2012년 9월
평점 :
품절


 1. 지난 몇 년간 집안 폐인으로 떠돌면서 자주 이렇게 주절거렸습니다. 벽을 보고 읊는 거지요. 지적 신뢰에 기반한 공동체는 불안 그 자체입니다. 불안은 그 자체로 좋을 것도 나쁠 것도 없겠지만, 지적인 불안은 파국일 뿐입니다. 지적-신뢰 공동체는 정보와 경험의 격차로 인해 늘 비대칭적인 채무관계를 발생시키고, 채무 불이행은 권력을 강화시키게 되곤 합니다. 그래서 늘 묻지요. 공동체가 채무관계를 갖지 않는다면? 채권채무, 의무와 죄의 청산이 자연스럽게 해소될 수 있다면? 사회 불평등을 완화/해체할 수 있으려면 어떤 삶의 증거들이 필요할까요.


원죄를 가지고 태어난다는 ‘신성한 말씀’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가장 크고 황당한 채권채무관계를 자연스럽게 주입시키는 억울한 주장아닙니까. 신생아는 사랑과 순수를 상징하는 절대적 존재입니다. 아주 작은 위해爲害도 가할 수 없는 ‘보호대상’이지요. 부모는 자신들이 만들어낸 새로운 생명체, 그 자체에 경이로움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지상에 없었던 새로운 무언가를 창조한 것이지요. 그런 아기에게 죄를 뒤집어 씌운다는 것은, 위대한 신의 이름이 아니면 감행할 엄두를 내지 못할 일입니다.


아기는 무능력하지만 또 무능력하지 않습니다. 절대 홀로 설 수 없는 존재, 타인에 의해서만 생명을 연장할 수 있는 존재지만, 그것을 죄라 말하지 않습니다. ? 어째서요? 아기는 무궁한 가능성이며, 미래이며, 완전한 세계일 수 있습니다. 근대의 인간들은 이렇게 아기라는 생명체를 불확실한 세계에 확실한 존재라고 믿기 시작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종류의 경이감이 옳은 감각이었는지는 근대 이후의 아동-개인의 탄생을 통해 낱낱이 증명되는군요.


무능력한 상태에서 자립하고 독립적인 생활을 통해 공동체에 기여할 준비가 되어 있는 인간으로 성장하는 과정에 온갖 지적-신뢰 공동체 프로세스가 작동합니다. 이 과정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원죄와도 같은 채무관계가 끝없이 생성되고 희석되고 강화되는 것을 목격하게 됩니다. 어제 태어난 아기가 진 빚은 얼마인가요. 어떻게, 무엇으로, 누구에게 갚을 수 있을까요, 10년 후에, 30년 후에는 완전히 가능한가요. 빚에서 해방될 수 있나요. 빚에서 해방되지 못하는 부채인간의 운명은 주체라는 멍든 영혼을 만들기에 충분하군요.


2. 화폐의 기원은 상품 교환과 무관하다는 증거들이 있습니다. (가족, 사회, 종교, 정치) 세계는 인간 간의 위계를 만들면서 확장합니다. 불균형을 만들며, 무수한 채권 채무 관계를 만들어대기 시작했습니다. 의무를 짊어진 인간에게 채무 관계의 청산은 공동체에 대한 응답의 증표가 되는 셈이지요. 화폐 경제의 시작점을 이렇게 정치적, 종교적 의무의 계산과 청산을 위한 수단에서 보는 시각은 상당한 설득력을 지녔습니다.

 

결국 하나의 공동체 혹은 사회의 주요 임무는 무엇보다도 우선 약속할 수 있는 사람, 채권자-채무자 관계에서 자신을 보증할 수 있는 사람, 즉 부채를 갚을 수 있는 사람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약속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을 만들어낸다는 것은 그에게 부채에 관한 기억을 구성시키고, 망각에 反하는 의식과 내면성을 갖게 만드는 것이다. 기억, 주체성 및 의식이 만들어지기 시작하는 것은 부채의 의무 영역 속에서이다.


슘페터에 따르면, 근대 자본주의는 채권 채무인 신용화폐를 창조하고 소멸시킬 권력을 은행이 가지면서 나타났다고 합니다. 실물 경제와는 별도로 채권 채무 관계를 생성, 팽창, 수축시킴으로써 자본주의의 역동성과 탄력성을 만들어낸다는 말이죠. 그렇다면 최근 세계적으로 불어닥친 경제위기는 국가를 넘어 천문학적 규모로 불어난 채무를 일시에 파괴해줄 우주적 힘이 생기지 않는 이상 대책이 묘연해 보인다는 말이겠지요.   


대안적 경제학의 오랜 전통이 이야기하는 대로, 그리고 이 책의 저자가 철학적 인류학과 사회학의 관점에서 제기하듯 자본주의 경제의 본질이 상품 교환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의 부채의 계산과 청산에 근거하고 있는 것이라는 관점을 받아들인다면, 지금 지구적 경제가 직면하고 있는 소위 디레버리징의 과정을 기계적이고 몰인간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도, 가능하지도 않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화폐’라는 신용창출의 기원을 비대칭적인 인간 관계들에서 파생한 것으로 보는데 동의한다고 해도, 상대적인 관계에서 주체를 설명해 내기에는, 턱도 없이 힘이 달리는데, 오히려 근대는 이 과정을 수월한 것인양 치장해왔습니다. 조상과 후손, 신부와 신도, 남자와 여자, 지배자와 피지배자이런 연결보다 더 애처로운 꼴이 주체와 객체, -, 개인과 세계의 관계입니다.

 

3. 오랜 시간 죄와 죄책감, 불평등에 집착해 왔습니다. 이미 너덜해진 주제의식에 다시 숨을 불어넣어준 책이 『부채인간』입니다. 묘한 긴장 속에서 읽었고, 또 재빨리 지워지길 바랐지만 어림없더군요. 여러분도 직접 읽어보길 권합니다.


이제 자연과 상품의 이동은 권력관계의 파생에 좌우됩니다. 특정 자본가가 늘 이기지도 않으며, 생산자와 소비자 관계가 주된 관계도 아닙니다. 채권자와 채무자 구도로 불황기의 손실은 사회화되고, 호황기의 이윤은 사유화된다고 합니다. 공공영역을 대표하는 주체의 형상이 부채인간이라고 말합니다. 부채는 현대경제의 주체적 동력이 될 수밖에 없겠지요. 주체 패러다임은 억압이나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계약과 신뢰로 만들어지고 있다고 말합니다. 마우리치오 라자라토는 양심의 가책으로부터 벗어나 단 한 푼도 상환하지 말라고 주문합니다. 우리가 가난한 것은 권력장치의 문제라는 것이지요.


부채는 사회 전체에 대한 ‘공제’ 기계 혹은 ‘포식’ 기계, 포획 기계이자, 거시 경제의 규정을 만들고 관리하는 도구인 동시에, 하나의 소득 재분배 장치이다. 부채는 또한 집단적 개인적 주체성의 ‘통치’ 및 생산의 장치로서 기능한다.

 

부채 경제는 매우 정치적인 목적을 갖는다. (상호부조, 연대, 협력, 만인을 위한 권리 등과 같은) 집단행동의 무력화, ‘임금노동자’ 및 ‘프롤레타리아’의 집단 조직, 행동 및 투쟁 기억의 무력화를 보라. 대출(금융)을 지렛대 삼아 이룬 경제 성장은 이와 같은 방식으로 갈등을 없앨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회 보조, 은퇴 연금, 직업 교육 등을 자신들의 투쟁을 통해 획득한 집단적 권리로서 바라보는 주체들과 마주하는 것은 ‘채무자’ 소규모 자산가, 소액주주를 통치하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일이다


라자라토가 제기한 본질적인 문제의식은 불안 속에 잠재해 있던 저항-무의식을 자극하기에 충분한 공명이 있습니다. 이제 할 일은 더 철저하게 부채와 죄책감의 기원을 확인하고, 지배와 피지배 관계를 배격할 주체-객체를 바로 세우는 일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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