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 버몬트 대학에서 럭스 마틴은 미셸 푸코를 인터뷰한다. 사막을 걸을 땐 사막을 느껴야 하지만, 그의 인터뷰에는 저작에서 느낄 수 없었던 또 다른 푸코가 있었다. 그런 일은 많이 일어나지는 않지만, 가끔 있어서 더 따뜻해질 수 있다.  대담하는 내내 자신을 그대로 드러내는 푸코의 얼굴을 떠올리며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된다. 푸코는 멋지다. 자신을 드러낼 줄 아는 모든 사람이 멋지다. 

   
 

 인간의 사고방식은 사회-정치-경제-역사와 관련되어 있으며, 상당히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카테고리나 형태상의 구조와도 관련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사고는 각종 사회관계가 아닌 다른 무엇입니다. 사람들이 실제로 사고하는 방식은 논리의 보편적 카테고리에 의해 적절히 분석될 수 없는 것입니다. 사회사와 체계적인 사고분석 사이에는 길-통로 (아주 좁다란 통로일 수 있습니다) 가 놓여 있는데, 이것은 사고의 역사가가 걸어온 길입니다. <자기의 테크놀로지, 20쪽>

한동안 사람들은 앞으로 일어날 일을 알려 주고,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워 달라고 요청해 왔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계획이, 그 의도가 아무리 선의의 것이라 할지라도 억압의 도구가 된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20쪽> 

내가 특별히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점은, 몇몇 사람들이 나를 학생들의 지적 건강을 해지는 위험 인물로 여긴다는 것입니다. 나는 사람들이 지적 활동에 있어서의 건강을 생각하기 시작할 때, 거기에 무엇인가 잘못이 있다고 생각합니다.<26쪽> 

내가 분석한 것이 항상 정치작용과 연관되므로 내가 변화의 불가능성을 주장했다고 추측한 모양인데, 어째서 그런 추측을 하게 되었습니까? <감시와 처벌> 전체는 바로 이러한 질문에 답하고, 새로운 사고방식이 발생하는 경위를 명시해 보려는 시도였습니다. <27쪽> 

내가 휴머니즘에 대해 염려하는 것은, 휴머니즘이 우리 윤리의 특정한 형식을 어떠한 종류의 자유이건 그것의 보편적인 모델로 제시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렇듯 휴머니즘은 좌익이나 중도파나 우익이나 모두 무지개빛 배합을 한 정치의 온갖 측면에서, 이것이 휴머니즘이라고 독단적인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29쪽> 

나의 연구는 다음 세 가지의 전통적인 문제입니다. 1) 학문적 매개로 드러나는 진리, 다시 말해 문명화 과정에서 그토록 중요히 여겨지고 우리에게 주체이며 동시에 객체가 되는 자리를 마련해 주는 <진리의 게임>과 우리가 맺고 있는 관계는 무엇인가?<3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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