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반 일리치는 바티칸의 징계를 받고 신부직을 반납했다. 그때 실제로 채찍질을 당하는 벌을 받았다고 한다. 젊은 나이에 푸에르토리코 난민들의 사제를 자청하며 해방신학의 현장에 서게 된다. 경제개발에 반대하는 운동을 벌이기도 하고, 끝까지 믿음의 인간으로 신앙 속에서 살다간 사람이기도 하다. 일리치는 한 마디로 소개하기 어려운 인물이다. 사제였으며, 역사가이고, 철학자, 신학자였던 일리치의 이름 옆에는 항상 급진적 사상가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일리치가 주장하는 많은 문제가 현 시대를 날카롭게 겨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삶을 빈곤하게 하고, 노예적 위치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하는 조건들을 비판한 일리치는 <학교 없는 사회>나 <과거의 거울에 비추어>, <젠더> 등의 알려진 책들을 남겼다. . 


최근에 본 드라마 <일타 스캔들>의 재방송을 보다가 일리치를 다시 떠올렸다. 이 드라마 속의 학교 수업 장면은 충격적이어야 하지만 시청자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인다. 맞아, 현실이 저렇겠지 한다. 우리가 애써 모른체 하는 것들을, 드라마는 또 모른체 꺼내서 배경으로 삼는다. 학원이 왜 필요한지, 일타강사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통통 튀는 캐릭터들을 통해서 살려낸다. 

일리치의 얘기로 다시 돌아가자면, 두 가지 부분으로 일리치 얘기를 해보고 싶다. 첫째는 관습의 타파, 둘째는  공생의 도구다. 먼저 <녹색평론>의 글을 통해서 일리치를 표현할 일단의 모습을 찾아보자.


"물건과 인공물은 우리가 누구인지, 그리고 좀더 깊이, 우리의 감각이 기능하는 방식을 변화시킵니다. 전통적으로 응시(凝視)한다는 것은 손가락으로 어루만지는 행위의 일종으로 생각되었습니다. 옛 그리스 사람들은 바라보는 행위를 내가 당신의 얼굴을 어루만지기 위하여, 그리하여 우리 둘 사이에 관계를 맺기 위하여 나의 영혼의 팔다리를 밖으로 뻗는 방식의 하나로 이해하였습니다. 이러한 관계를 그들은 비젼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다가 갈릴레오 이후 눈은 단지 빛이 외부로부터 무엇인가를 그속으로 가져다주는 수용기(受容器)라는 생각이 발전하였고, 그리하여 내가 당신을 바라보고 있을 적에도 당신과 나는 분리되어 있게 된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기의 눈을 일종의 카메라렌즈로 생각하기 시작한 것이지요. 우리 시대의 사람들은 실제로 자기의 눈을 기계의 일부인 것처럼 여기고 사용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지금 ‘인터페이스’에 관해 말하고 있습니다. 누구라도 나에게 “나는 당신과 인터페이스를 갖고 싶습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으면 나는 “죄송하지만 제발 딴 데로 가보십시오. 화장실이든 어디든, 거울한테로 가보십시오”라고 말합니다. 또, 누구라도 “나는 당신과 커뮤니케이션을 갖고 싶습니다”라고 말하면 나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당신은 말을 할 수 없습니까? 당신은 얘기를 나눌 수 없습니까? 나와 당신 사이에는 깊은 타자성(他者性)이 가로놓여 있다는 것을 보지 못합니까? 당신과 같은 방식으로 나도 프로그램화된다는 것은 나로서는 참을 수 없습니다



근원적인 변화를 겪고 있는 현대인에게 경험하는 방식을 바꾸라고 말한다. 일리치는 서로 얼굴을 맞대는 일이 어려워져 우리는 매일 누군가에 의해서 조작되고 프로그램화된 스크린을 보게 된다고 생각한다. 이런 일리치의 주장에 조금이라도 공감한다면 저는 <일타 스캔들>을 보는 대신 다른 경험을 찾아야 했을거다. 스크린 앞에서는 고개숙여 절하지 않는다 인사를 나누지 않는다 포옹을 하지 않는다. 누군가를 만나고 얼굴을 맞대는 일은 고개숙여 절하는 것이 가능하며, 친분을 만들고, 우정의 공동체를 가능하게 하며, 우정의 정치를 할 기반이 된다. 이 문제에 대해서 계속 말하고 싶은데, 두 가지 정도- 관습의 타파에서 우정을, 공생의 도구에서 거울을 얘기할 것이다.


다시 드라마 <일타 스캔둘>로 돌아가 보자. 드라마 속에는 말 그대로 <학교 없는 사회>의 양상이 드러난다. 그런데 이 드라마의 주된 스토리는 일타 강사와 반찬가게 사장님의 사랑인 듯 보인다. 일타 강사 최치열은 이렇게 말한다. 

"1조원의 남자, 최치열이예요. 그런 제가 어떻게 유부녀한테 이상한 감정을 느끼겠어요. 심장이 벌렁거리고 ... 이거 무슨 병이예요?" 일타 강사가 말한 1조원은 소득은 아니겠고, 매출을 올린다는 의미일테니 우리나라 입시시장의 규모는 어마어마하다. 이 모습에 벌렁거릴 분은 일리치 선생님이실 것이다. 최치열은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며 도덕적인 인간이라고 자신을 파악한다. 결벽주의자여서 주변 인간관계도 서먹하다. 최치열이 이성에 대한 사랑을 자율신경 이상으로 파악하는 근거에는 납득할 수 없는 감정선이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만약 여기서 최치열의 사랑을, 일리치가 얘기하는 환대나 덕성으로 파악한다면 어떻게 될까. 먼저 관습을 얘기해야 할 것이다. 밤이 깊었다. 다음 얘기는 사마리아인으로부터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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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쟝쟝 2023-02-08 07:3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 저거 좋아요! 응시 만지는 거!! (응?) 자기 눈을 카메라 렌즈처럼 생각하는 것 싫어요!
초원님 드라마 마니아!

초원 2023-02-08 21:11   좋아요 1 | URL
아직 안 해 본게 많아요. 오징어게임, 헤어질결심 같은 대작들 다 못 봤어요. 넷플릭스도 유투브도 모르죠. 카톡도 해 본적이 없네요. 그래도 요즘 6시 내고향도 보고, 드라마도 보죠. 신세계네요.
일리치는 다른 방식으로 사회를 고민할 기회를 줘요.
기회가 된다면 다음 번에 함께 읽어봐요.

아무튼 이걸로 공쟝쟝님과는 우정을 나누기 어렵다는 건 알았어요. 드라마도 안 보는 공쟝쟝님!

공쟝쟝 2023-02-08 22:18   좋아요 1 | URL
오겜은 비추, 헤결은 추천! 유튜브는 공쟝쟝의 난게문독 시청하시면 되고요 ㅋㅋㅋㅋ
저는 드라마 과몰입러인 가족, 친구들 덕분에 잘 골라진 것만 섭취해요! ㅋㅋㅋ

꼭 우정이 취향이 같아야합니까? ㅋㅋㅋ 저는 초원님의 알쏭달쏭한 선문답이 즐겁습니다.

초원 2023-02-09 21:12   좋아요 0 | URL
공쟝쟝님 활력은 일종의 개인기. 쭈욱 멈추지 않는 생기.

초란공 2023-02-09 08: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일리치의 책이 꾸준히 다시 나와주어서 반갑네요. 책소개 감사합니다~

초원 2023-02-09 21:05   좋아요 1 | URL
초란공님, 저도 어제 태초의 알, 위상 수학 써 주신 글 읽고 왔었는데요.
오늘 이렇게 초란공님 만나니 반갑습니다. 저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