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당히 이례적이게도 '주민자치회'의 역할이 커지고 있는 느낌이다. <00동 주민자치회>라는 홍보용 안내문이 자주 보인다. 주민자치회가 집행하는 일들은 행정기구와 지역구 의회의 결합형태가 될 수 있을까. 아렌트의 중요한 논제 중 하나는 인간의 복수성을 실현하려는 평의회제도의 안정적 구축이었다. 그런데 주민자치회가 그 비슷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문제는 주민자치회가 공적 영역에 포함되는 모든 사람들을 가시적 존재로 비춰주는 빛을 가질 수 있냐는 점이다. 서로 말을 나눌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주민자치회의 위치가 애매하다. 공공업무에 참여해 누구나 자유를 누릴 수 있어야 한다면 주민자치회는 그 대안이 될 수 있을까.


그런데 정치인과 시민은 대화를 나눌 수 있을까. 주민자치회는 정치인이 아니라 시민인가? 모르겠다.


플라톤은 지배 계급에게 사유 재산과 가족 제도를 허용하지 않아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소수의 수호자 계급이 사적인 이익을 취하지 않는 것이 가능할까. 피지배 계급인 생산자 계급이 누리는 것을 갖지 못한 지배계급은 어떻게 통치대상과 대화를 나눌 수 있을까.


"철학과 정치 공동체 사이에 존재하는 뿌리 깊은 적대감에 관해 성찰하게 되었다. 그러한 성찰은 공동체의 관행과 철학의 가르침이 근본적으로 모순적인 관계에 있다는 지적으로만 그치지 않는다. 그 성찰은 철학에 헌신하는 삶을 불가능하게 하거나 위태롭게 하는 것이야말로 정치 공동체의 진정한 범죄라는 인식으로 확대된다. 따라서 플라톤은 국가에서 철학자들에게 통치의 의무를 부담시키는 동시에 그들로 하여금 안심하고 철학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 주고자 했던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철학자에게 안전한 세계는 철인에 의해 지배되는 국가로 판명된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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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나누다, 대화하다는 뜻의 디알레게스타이라는 어원에서도 드러나듯이, 변증술은 기본적으로 철학적 대화를 이끄는 앎 또는 기술이다. 변증술은 대체로 대화 상대방이 주장하거나 용인하는 전제들이 어떤 귀결들을 갖게 되는가를 탐색하는 작업을 통해 구현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말대로 흔히 제논이 창시했다고 하지만, 변증술의 역사에서 중요한 시작점은 소크라테스의 논박술(멜렝코스)이다. 소크라테스의 논박술이 대화 상대방이 가진 전제들의 일관성을 검토하는 다분히 부정적인 방식의 것이라면, 플라톤은 이를 더욱 긍정적인 방식의 협동적인 탐구로 발전시키려 했고, 그런 와중에 변증술은 철학방법론으로서의 지위를 얻게 되었다. 플라톤의 중 • 후기 저작에서 변증술은 통상 형상들의 위계에 대한 개념적 논구를 가리키며, 이는 모음과 나눔의 방법으로 나타난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는 엄밀한 전제에서 출발하는 논증과 달리, 우리에게 더 잘 알려진 또는 흔히 받아들여지는 전제들(엔독사)에서 출발하는 논구 방식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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