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니체에게 양심이란 자신에 대해 좋은 감정을 지니는 것이다. 인간이 자신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갖게 되는 이유는 바로 그 양심이 침식당한 결과다. 자유롭던 인간이 지닌 양심과 사회에 합류한 인간이 갖게된 양심의 가책은 모두 인간이 동물에서 탈피하면서 얻게 된 것들이다. 너무 잘 알려진 바, 니체는 양심의 가책을 넘으라고 한다. 주인의 도덕과 노예의 도덕을 구별하라고 한다. 길들이기의 도덕에서 벗어나와 힘에의 의지를 믿는다. 어떻게든 살아야 한다는 의지가 아니라 창조하는 자연의 힘에서 존재를 회복하라는 말이다. 


그렇지만 내가 니체를 떠올릴 때는 그럴 때가 아니다. 기존의 도덕들을, 이 세계가 내게 던져 준 선악판단을 넘어서려고 할 때가 아니다. 흔적도 없는 도덕을 붙들어야 할까를 고민하게 되는 순간이다. 파괴되고 경멸이 가득한 세상에서, 폭력이 범벅이 된 생활세계를 목격하게 될 때, 지금 이 혼란이 새로운 창조를 위한 자각일 수 있는지를 묻게 되는 것이다. 나는 이 시대를 제대로 살지 못해서 수없이 많은 밤을 양심의 가책을 안고 지샜다. 지금 이 세계의 잔인함에도 불구하고 편안한 숙면을 취할 수 있다면 무엇에 의해 그럴 수 있는가를 생각했다. 내가 아프고 병든 게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것이 아니냐고 니체에게 물었다. 어떻게 나만 그 세계에서 온전히 빠져나올 수 있느냐고 버텼다.  


2.

평생이 사춘기다. 모든 살아 있는 형상들은 자기-자신의 실현을 추구한다는 자연의 필연적 경향에서 벗어나기라도 한 것이냐. 나, 이놈, 정신차리라. 내게 자연을 거스르는 거대한 힘이라도 있는 게냐. 그럴 리가 없잖은가. 그렇다면 뭔가. 방랑하도록 태어난 게 아니냐. 생명이란, 원체, 완전체 같은 거하고는 거리가 먼 게 아닌가 말이다. 허허. 나는 앞으로도 계속 헤매고 울렁거리며 훌쩍거리겠지만, 그게 이상한 게 아니란 말이렷다. 잠깐만 기다리게. 성미가 급한 탓에 천지분간을 못하는 게구나. 내가 그리 흔들린다 하여 세상도 그럴 거라 믿는 게냐. 내가 헛된 일을 하는 동안 누군가는 또 장한 일을 허는 거겠거니 해볼 수도 있것지. 거봐라. 우쩌다 그런 걸 생각허는 날은 아마도 더 심한 풍랑에 빠지겄지. 아니여. 내 안에 내재하는 목적이 있다허면 말이다, 왜 나는 그런 경지에 이르지 못하는지를 생각하며 더 울적해질 게 아니여. 그러면 이렇게 방향을 틀어야허것지. 지금 내게 이짝저짝 가르는 말들이 필요한 게 아니구나 해야허지. 자연에 목적이 있다허면 인간이 알 수 없는 거고, 자연이 확연히 드러나는 자체라면 내가 허우적대더라도 그렇거니 해야허지. 


그렇지, 그래. 그러허더라도 '너'를 생각하는 순간 그런 건 까마득히 사라지는 거여. 너가 아파하고 너가 힘들어하는 얼굴이라면 말이여. 자연이 그러하니 세상이 이러하니 그렇거니 해야허지 할 수가 없어지는 거지. 그럴 때면 '나'로 시작헌 회오리가 태풍처럼 몰아치는 거여. 허허. 이제 뭔 생각을 해야 허는지 짐작이 가지. 나 ,회오리도 너, 태풍도 좋지 않어. 나와 너와 세상과 자연이 죄다 각자로 나타날 수가 없는거잖어. 나는 너이고 이런 게 아니여. 나이고 너이고 세상이고 자연이여. 나따로 너따로 세상따로 자연따로 그런 거는 해로워. 


가려진 해를 보며 진짜 해를 보고 싶다 허는거지. 해를 잘 알 수 있는 비법이 있다고 생각허는거지. 해를 정면으로 볼 수 없어서 잘 모르는 건 아닐거여. 해를 따로 생각헐게 아니란 말이여. 유일하게 해가 중심일 때가 있기는 허지. 어스름하게 올라오는 아침해를 두고 다함께 맞이하는거 그런거 말이여. 나에겐 너뿐이여 허면서 얼싸안고 해맞이를 하는 거 그런거 아니여. 나는 여기에서 너는 그곳에서 세상은 저기에서 자연은 사방에서. 말없이, 주고받고 그런 것도 없이, 그런게 함께한다는 거지. 


*이 그림은 <제목 없음 43>입니다. 금지를 금지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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