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크라테스는 극복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에게 극복이 필요할까요. 그래도 굳이 극복을 대입해보자면, 자신과 대결하고 자신의 욕망 한 부분을 떼어낸다는 의미가 될 수도 있겠지요. 자신이 가진 가능성을 현재화해서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만, 이를 극복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발전이지요. 자신을 변형하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발전하는 사람도 아닙니다. 돌아가는 사람입니다. 신에게로 향합니다. 계시로 주술효과가 그득한 미신으로 되돌아갑니다. 그곳에는 그를 고발한 멜로토스도, 그를 추종한 멜로토스 아들도, 끝까지 곁을 지킨 친구들 … 도 없습니다. 오직 소크라테스 자신이 존재합니다. 덕을 가진, 지혜를 사랑하는, 신이 신임하는 가장 현명한 자입니다. 그가 실천하고 회복한, 고귀한 영혼, 계시된 이성에 대해서 말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지혜의 철학자 소크라테스를 고발한 멜로토스에 대해서도 말해야겠습니다. 이전 글 《빌리 엘리어트》에서, 아버지 재키의 교육방식에 개입하고 간섭하던 윌킨슨 선생을 기억해보세요. 윌킨슨 선생은 아들 빌리가 평생을 탄광촌에서 벗어날 수 없는 노동자 신세가 될 게 뻔하다고, 구렁텅이에서 벗어나도록 하라고 훈계했습니다. 소크라테스 역시 멜로토스의 아들 아니토스에게 지적 능력이 있다며, 가업을 승계하지 말라고, 무두질하는 직업에 머물지 말라고 조언하지요. 젊은이의 소질을 알아보고 참다운 자신을 찾으라고 조언했습니다만, 멜로토스의 입장에서는 젊은 아들의 영혼 속에 불화를 심어 넣는 악한이었죠. 부모와 자식 간의 인륜적 연관에 개입하는 소리들을 눈여겨봐야 합니다. 새의 날개짓을 통해 전쟁을 결정하던 세계에서, 부모의 직업을 물려받는 일은, 건강을 위해 의사의 말을 듣듯이 자명한 일이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서 멜로토스는 소크라테스를 고발하며 사형시켜 줄 것을 주장했으니까요. 윌킨슨 선생은 수 천 년이 지난 영국의 탄광촌을 배경삼아 말했으나, 재키가 받은 충격은 작은 일이 아니었을 겁니다. 부자관계의 파괴는 공동체의 결속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고민할 필요가 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아테네 도시 곳곳을 누비며 대화를 이끌어냅니다. 부지런히 돌아다니다 보니 아테네인들이 ''이 아니라 '알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죠. 소크라테스 자신만이, 자신의 무지를 인정하는 사람이었다고 한탄합니다. 도시의 죄를 알아챈 소크라테스는 적극적으로 그 상황에 개입합니다. 소크라테스가 실천의 철학자였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지요. 자신이 깨우친 진리를 아테네 도시국가 전체로 이전시키려고 합니다. 그 방법은 소크라테스가 개척한 독특한 것이었습니다. 마을에서, 시장에서, 귀족들과, 청년들과 끊임없이 대화합니다. '너희들도 스스로 진리를 잉태하고 낳아야 한다, 나는 너희들이 진리를 낳을 수 있도록 산파가 되겠다'. '네 스스로 진리를 깨우쳐라', '너 자신을 알라'의 다른 말입니다. 소크라테스의 행동은 진실한 시대의 용기가 아니라 선동 소요죄로 받아들여집니다.


신이 모든 것을 주관한다고 믿는 그리스인들에게 신을 따르지 않는 듯 보이는 소크라테스는 문젯거리였습니다. 고발자 멜로토스는 자신의 아들이 소크라테스의 꼬임에 빠져 타락의 길로 들어서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멜로토스의 입장에선 멀쩡한 아들이 가업인 무두질을 경시하며, 물려받지 않겠다고 거부하다가, 결국 술독에 빠져 지내게 되는 일이 어떻게 신의 계시일 수 있었겠습니까. 저마다 자신의 혼phyche을 돌보라고 강권했던 소크라테스가 멜로토스의 아들에게 내면의 소리를 들으라고 조언하는 과정에서, 무두질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한 것은, 소크라테스에게 내린 다이몬의 명령이었지만, 멜로토스에게는 생업 문제와 연결된 현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시점부터의 소크라테스는 긴 의문들을 남기게 됩니다. 소크라테스의 친구들은 벌금형으로 감형을 요구하라고 재촉하지만, 재판 중 소크라테스는 오히려 영빈관에서 식사 대접을 받아야 한다고 당당한 무죄를 주장합니다. 1차 변론 후 1차 투표에서 30표 차이로 유죄로 판결됩니다. 형량을 감량할 수 있는 2차 변론에서 소크라테스는 죽음을 피하는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비천함을 피하는 것이 훨씬 더 어려울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방식대로 변론하고 죽는 쪽으로 걸어갑니다. 2차 투표에서는 80표 차이로 사형이 확정됩니다.


내게 평소 들리곤 했던 다이몬의 신령스런 알림은 지난 시절 아주 자주 들렸고, 내가 행동을 올바로 하지 못할 형편이 될 때는 아주 사소한 일에서도 나를 가로막았소. 그러나 지금 내게, 여러분들 자신들이 보듯이, 어떤 사람은 가장 나쁜 일이라고 생각하고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그렇게 여기는 일이 일어났소, 하지만 그 신의 계시는, 내가 오늘 집을 나서서 이리로 올 때도, 여기 재판정에 들어설 때도, 변론을 하면서 어떤 것을 말하려고 할 때도 나를 가로막지 않았소. 다른 말을 할 때는 말하는 중간에 내가 말을 그치게 했소. 이에 비해 지금 변론을 하고 있는 동안에는 행동을 할 때도 말을 할 때도 나를 가로막지 않았소.”



소크라테스가 최후 법정 연설에서 자신을 옹호해 준 재판관을 향해 했던 변론을 합니다. 그러나 이는 변론이 아닙니다. 선언에 가깝습니다. 재판관 앞에 선 소크라테스는 여전히 자신이 의존하는 바가 신의 섭리이고, 늘 신이 내리는 내면의 소리, 다이몬의 소리에 복종한다고 말합니다. 소크라테스가 하고 싶었던 일은 아테네를 신의 계시로 가득 채우는 것이었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도덕이었습니다. 델피 신전에 새겨진 '그노티 세아우톤'은 당시 그리스인들의 시대인식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그렇다면 어디서 어떤 부분에서 소크라테스와 다른 이들의 균열이 발생했을까요. 물론 아테네를 둘러싼 외교, 정치, 행정 등의 문제가 중층적임을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 글에서 주목하는 바는 다이몬의 소리, 신의 섭리, 그리고 신탁을 받아들이는 일에 대해서입니다. 어떤 사람이 참된 지식을 말한다는 사실은 그 사람이 신으로부터 계시를 받은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소크라테스가 아버지의 직업인 조각을 포기하고 철학자로 나선 일이 신탁이었는지 신탁의 위반이었는를 가려야 했던 겁니다. 멜로토스에게는 무두질이 그러했습니다. 그런데 철학자는 젊은이에게 말합니다. 무두질이 네 직업이 아니라고. 그렇다면 이런 추론이 가능합니다. 소크라테스는 아버지의 직업을 물려받으며 굴러가는 그리스 사회 체제를 전복하려는 것이었을까요. 거기에 중점이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다만 누가 무두질을 해야 하는가라는 문제 제기는 없었다고 보여집니다. 소크라테스 이후 인간의 욕구나 충동이 억제되어야 한다는 금욕 운동이 시작되었다는 말은 소크라테스의 변론이 어떤 역할을 했을 거라는 것만을 암시합니다. 소크라테스의 재판은 누구의 논변이 더 '신적인'가를 '판가름'하는 것이라고 봐야 합니다. 신이 맡긴 뜻을 해석해내고 진리를 선포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사회자본으로서의 논쟁과 재판이 중요한 시대였습니다. 그 사회적 인정에 주목해야 합니다. 그리스 사회가 작동할 수 있었던 사회자본에 '재판'이 크게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어떤 순간은 사회자본의 위치를 확연하게 보여줍니다. 그렇죠. 암요. 아테네 시내를 돌며 소크라테스가 몰두했었던 대화들, 오고 갔던 논리들은 지식과 신의 세계를 연결하는 '참된' 지식을 생산해내려는 활동이었습니다. 아테네의 모든 사람들이 이 사회자본의 영향권 안에 있었습니다. 신탁이 그리스 사회를 뒷받침하고 있던 정치경제적 생산양식들을 설명할 수 없음을 깨닫기 시작하는 단계이기도 했습니다. 만약 신이 주재하는 바가 엉터리라고 의심하게 된다면 어떻게 그리스에서 권력이 '인정'받을 수 있겠습니까. 그리스 인들이 논리를 사랑하고 이성적인 사유를 이끌어내는 데 탁월하다기 보다는 그리스 사회가 성립/보존하는 순간에 발생했던 사회자본이 '산파술'이었다고 보여집니다. 더불어 산파술이 제외하고자 했으나 엄존했던 것들이 떠오르게 됩니다. 예를 들어 누가 무두질을 해야 하는가와 같은 문제 말입니다.


소크라테스는 정치체제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상태에서 독배를 마셨습니다. 정치에 관여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소크라테스의 마지막은 정치 판단이었을까요. 소크라테스는 그렇게 생각했었을 수도 있습니다. 어지러운 정치에 관여하면 몸을 망치게 된다, 부정과 불법적인 일을 막으려는 사람은 누구건 그 목숨을 부지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이죠. 그러나 정치와 경제가 뗄 수 없이 연결되었던 그리스 사회 속에서 비정치적이거나 반정치적인 행동이란 존재할 수 없었습니다. 다만 신탁이라는 사회자본을 생산하는 과정에 변동이 일어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사회자본과 분리된 삶이 가능하지 않으니까요. 현실을 회피하는 현실주의자가 성립할 수 있었던 시대입니다.


잠시 주제에서 빗겨났습니다. 다시 원래대로 돌아오자면, 소크라테스는 왜 법정에서 형벌이 결정되는 소송 당사자 임에도 간절한 변론이 아니라 선언을 했던 것일까요. 제가 생각하는 바는 이렇습니다. 소크라테스는 다이몬의 신탁을 들었습니다. 자신이 아테네에서 가장 지혜로운 자라는 것이죠. 신탁을 확인하며 아테네의 모든 명망있는 자들과 토론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다이몬의 신탁을 어느 정도 인정합니다. 그런데 여기에 중요한 지점이 있습니다. 신탁은 늘 수수께끼로 주어집니다. 대개의 사람들이라면 신탁의 소리를 '가로막는 소리'로 듣지 않겠지요. 그런데 보십시오. 소크라테스는 최후의 변론에서 말하듯이 늘 다이몬이 자신을 제어했다고 말합니다. 욕망을 제어하고 도덕을 완성했다고 말하지만, 실로 벌어진 일들을 보자면 이렇습니다. 소크라테스는 '가로막는 소리'가 내면에서 들릴 때, 뭔가 주저되거나 회의되거나 의심될 때 그 소리를 따랐고, 그 결과를 도덕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가로막는 소리'가 사라진 상태는 다이몬의 신령이 들리지 않는, 평화로운 상태입니다.


이성을 뭐라고 해야 할까요. 흔히 상대방을 공격하며 이성을 언급할 때, 감정에 휘둘려서 무식하게 행동하고 편가르기를 한다고 말합니다. 이성이 작동하면 억제되는 것이 감정이라도 된 듯 말하지요. 그런데 소크라테스의 이성은 '가로막는 소리' 였을까요. 아니면 마지막 다이몬의 소리 '묵음' '침묵'이었을까요. 소크라테스의 계시된 이성을 돌아보는 일은 그렇게 수 천 년을 함께 하고 있습니다.


이성은 총체화되지 못한 잔여에 대한 차단과 수용의 갈등에서 현상합니다. 만약 당신이 사는 사회가 '인간의 권리와 자율성'을 보장하는 곳이라면 어떻게 그런 상태가 가능하게 된 것일까요. 인간의 이성, 보편 진리를 인식한 불굴의 자유인들이 선창하고, 대중들이 이를 본받아 자유 의지를 복구해내면서 일까요. 아닙니다. 아니예요. 만약 그런 사회가 존재한다면 필시 '미신' '주술' '신탁'에 의해서 가능했을거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이성이란 '계시된' 것입니다.


2020년에도 소크라테스는 끊임없이 돌아오고 있습니다. 소크라테스를 누가 읽을까요. 지성인의 기본 자세를 역설하며 지식인의 자리를 확보하고 싶어하는 사람도 좋아할 겁니다. 두려움 속에서 긁어모아야 할 용기가 필요한 사람도 관심을 가지겠지요. 국가폭력 앞에서 시름하는 사람에게도 어떤 영감을 줄 것입니다. 더 절실하게 필요한 사람은 '시위'를 진압하려는 공권력일 수도 있겠습니다. 이렇게 여러 상황에서 사용가능하다는 점이 고전이 '오래된'을 뜻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고전은 혁명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회자본의 생산양식에 깊게 관여하고 있어서 혁명의 재료가 될 수는 있겠지요.


* 문득 멜로토스의 아들이 아니라 다른 고발자의 아들이었던 것 같아요. 도서관에 가게 되면 찾아보고 수정해야죠. 조금 덜 추해지려고, 급하게 기억에 의존해서 쓰다보니 오류가 있습니다. 멜로토스, 이름도 정확한가요. 이런, 이런, 제가 머저리라는 것은 알겠는데요, (9월 11일 덧붙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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