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이라는 것은 쓰여진 것이지요. 특히 소설의 경우 쓰여지지 않은 소설은 존재하지 않은 셈이지요. 하지만 시는 쓰여지지 않더라도 존재한다고 저는 신념으로서 믿고 있습니다. 때문에 사람에게 있어 시는 거의 모든 만인이 똑같이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스스로 각자가 지니고 있습니다. 한평생 평교원으로 지내는 사람도 있거니와, 주방에서 조리하면서 식칼을 쥐고 한평생 지내는 사람도 있고, 선로 인부로 지내는 사람도 있고 말이지요. 그 삶을 보내고 있는 방식이, 자신이 생애를 거기에서 열중하고 있는, 걸으면서 살고 있는 사람에게는 이미 그 사람의 시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은 각자 자신의 것이 이미 시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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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 관한 한, 일본어로 밑천이 떨어지지 않는 한 절대로 일본어를 버릴 생각은 없습니다. 그것은 곧 일본인에 대한 복수인 셈이고, 복수라는 것은 적대관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민족적 경험을 일본어라는 광장에서 서로 나누고 싶다는 의미에서의 복수입니다.


- 「김시종의 시와 '자서전'」『조선과 일본을 살아가다-제주도에서 이카이노로』를 중심으로 중에서-




 《엑스맨 ; 아포칼립스》이 끝나가는 부분이다. 찰스 자비에 교수는 절박하게 소리쳤다. 진, 네 힘을 쏟아내! 진이 사력을 다해 괴성을 뿜어내자 사방이 거대한 불꽃으로 덮였다. 돌이 갈라져 흙이 되고 하늘은 그 빛을 잃었다. 고대 악마는, 이것이 나의 운명이었어라는 말을 남기고 모래성이 무너지듯 사그라들었다. 


인상적인 장면이다. 돌연변이 엑스맨들은 자신들이 가진 초능력을 평범한 지구인을 위해 쓰면서 힘의 출처를 정상화 시키려고 한다. 반면 악마는 고대의 질서로 지구를 되돌려놓기위해 지구인을 희생시키려고 한다. 이 드라마는 두려움의 연쇄에서 극적 전화을 마련하는 것처럼 보인다. 고대의 혼돈, 괴물같은 힘을 지닌 돌연변이들,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더 검은 빛에 흡수되는 사람들. 


진에게 두려움에서 해방되면 네 힘이 드러날 것이라고 예언하는 자비에 교수는 마치 프랑스 혁명 전야의 장군과 같다. 너희들을 막고 있는 것은 그림자다, 두려움이다, 그런 약한 것들로는 누구도 구원할 수 없다. 엑스맨은 지구 인간이지만, 이들이 가진 능력은 놀라울 정도로 거대하다. 총을 맞고도 죽지 않는 자, 모든 이의 머리 속에 들어갈 수 있는 자, 강철을 움직이고, 레이저로 물건을 녹이고, 번개를 일으킨다. 신의 힘이 얼마일까를 생각하며 만들 수 있는 거의 모든 장점들을 망라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들의 능력을 모두 합해봐야 신과 비슷할 뿐 신의 자리에 앉지 못한다. 엑스맨이 비로소 신이 되는 순간은, 진이 고대 악마를 제거하며 얻게된, 순수한 파괴의 힘을 소유하게 되면서다. 엑스맨은 두려움에서 벗어날 뿐만 아니라 두려움을 생산하는 지배자가 되었다.   


진은 자신의 초능력을 두려워하며 갈등을 겪고 있었고 마침내 혼란이 파괴되며 진 스스로를 살아갈 수 있었다. 초능력이 무능력으로 변환되는 순간 진은 두려움을 지배할 수 있었다고 영화는 말한다.'순수한 파괴'만을 목적으로 하는 힘이 두려움이다.   


일본으로 밀항을 감행했던 조선인 김시종이 겪어야 했을 두려움과 갈등은 이중 언어의 문제에서 더 가중되었다. 조선의 감각으로 길어올린 김시종의 시가 일본어로 발표되었을 때, 재일 조선인과 일본인은 각각 서로 다른 당혹감과 이질적인 시선을 보냈을 것이다. 김시종의 결단은 '재일하는 일본 내 조선인' 어느 하나로도 갈등하지 않고 있다. '시를 살아가다'가 김시종의 삶이며, 두려움에서 해방되어 제 스스로를 살아갈 수 있는 길이었다. 김시종의 시는 '두려움'이 없기에, 더 이상 시인의 길을 파괴하지 못한다. 그런데 진은 시로 살아가고 있을까. 


어떻게든 1시간 글쓰기가 종료되었다. 그냥 올린다.


그러나 내 생각으로는 삶이 어디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하는데 공연한 착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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