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든 이어가는 1시간 끄적이기] 오늘은 6시 32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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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의 22일이 다시 시작된다는 사실이 문제가 되었다. 필에게 23일이 22일보다 안도할 수 있는 날인 것도 아니었을 것이다. 다만 필에게만 머무르는 하루가 문제다. 22일 하루만 넘겨보자!


영화가 말하는 이 판타지스러운 하루의 되풀이는, 과장스러운 표현이겠지만, 고상한 시간의 게임이다. 필이 넌더리를 내게 된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그 하루의 모든 것을 알게 되었다는 점이다. '다 아는 것'을 담은 눈은 더이상 삶의 빛을 목격하기 힘들다는 법칙 떄문이다. 인간이 죽음 앞에 내던져진 존재라는 사실을 알고 허무 속으로 끌려들어가며 절망적으로 휩쓸릴 때 대지는 냉각의 시간이다. 만 년의 빙하 위에서 서성이게 된다.


과학의 진보가 시간을 분초 단위로 쪼개 놓고, 다시 하루 월 년으로 묶어 놓았다. 한 사람의 일생은 연결되고 나아가는 시간의 합이며, 단단한 대지라는 위에 건축된다. 삶이 분모가 되고 하루는 n분의 1이 되었다. 인간은 충실하게 그 하루를 더해가며 성장한다. 그것을 증명하는 일은 간단하다. 22일 아침 6시 라디오 방송은 23일 아침과 다르다. 달라지는 것은 시간이고, 그 시간이 '흘러야' 꽃이 피듯 개화할 가능성이 피어난다.


과학의 시간은 때로는 n분의 2의 하루를 혹은 n분의 100의 하루를 구축하기도 한다. 그리고 필의 하루처럼 n분의 0이 되기도 한다. 우리가 시간의 게임에 휘말리게 되며 잃게 되는 많은 것들은 잃어버린 0의 시간이 있다고 믿으면서 시작된다.


필의 시간은 대지에 묶여 더 나아가지 못한다, 흐르지 않는다. 묶여버린 인간의 시간은 블랙홀처럼 하루의 모든 것을 빨아들여버린다. 여관주인의 친절한 인사도, 따뜻한 아침 식사도, 지저귀는 새들의 소리도, 차갑고 상쾌한 대기도 블랙홀 속으로 빨려 들어가버리고, 급기야 느낄 수가 없다, 감각할 수 없다. 필은 어떻게든 '하루'를 회복하려고 한다. 그 의욕으로는 시간의 마법을 풀지 못하지만, 친밀성을 확보하려는 욕망으로 쉬이 이어진다. 냉각된 대지 위를 서성이다가 언 손을 비벼 얼음을 녹인다. 택도 없이 얼음은 건재하겠지만, 비비는 손, 맞잡은 손이 있는 한 얼어버리지는 않을 것이다. 신비로운 시간 속에서 사랑의 시간으로 이동하는 마법이다.


필의 결말을 좋아할 수가 없다. 사랑이야 인간에게 필수적인 부분이지만, 사랑이 블랙홀이 될 수는 없지 않은가. 시간의 블랙홀을 사랑의 블랙홀로 대체하며 처박힌 것은 무엇인가. 분모였던 n은 이제 분자가 되었다. 사랑이라는 무감각이 분모의 자리에 앉아 있다.


얼마 전 강남역 앞 탑 위에서 농성을 하는 노동자가 있다는 기사를 보았다. CCTV 폐쇄회로를 설치한 탑이라서, 그 크기가 너무 협소해서 놀랐다. 고행의 길로 노동자를 내모는 사회를 벗어나기가 이렇게도 어려울까 생각했다. 서글픔에 울컥하고 무력감에 우울해졌다. 눕지도 못할 크기에서 앉은 자세로 맞이한 오늘 '하루''내일'은 어떻게 다를까. 강남역 위에 유쾌하고 화려한 시간이 흘러가고 있으나, 철탑 위 비닐막 안의 시간은 꿈쩍도 없이 단단히 되풀이되곤 하는 것이 아닐까. 사랑의 시간이 분모가 되어버린 세계에서 농성장의 시간은 사적 온기가 허용될 수 있을까. 이미 분모가 무너진 후 0의 시간은 그대로 저 깊은 빙하 속으로 내달린다.


필이 그 하루에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지 모두 알아내고 난 후 어떻게 대처할 수 있을까를 고민할 여유가 있었던 반면, 필을 제외한 다른 모든 사람들은 사라진 22일을 알 수 없다. 설령 필이 자신을 후려쳤더라도 필이 친근하게 건네는 인사에 감격할 수밖에 없다. 이 상황을 무엇이라 불러야 할까.


시간 게임, 이런 흐름은 그 시대, 변화의 곡선을 충실히 타고 있다. 시간을 이해하는 일이 존재와 장소와 질서를 이해하는 끄나풀이 되기를 바라며, 하나의 가정을 던져볼 것이다. 세 가지 결을 타고 갑니다.


마천루의 설계자 미스 반 데어 로에의 『꾸밈 없는 언어』,

『에로스의 종말』,

사랑의 기쁨과 고통의 메커니즘을 자본주의적 이행과 연결하는『감정 자본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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