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이라도 떠들어보자. 지금 3시 14분, 4시 14분이 되면 무조건 종료한다.

메모를 하나 찾았다. 이것을 정해진 시간까지 붙들어 매자.


《사랑의 블랙홀 Groundhog Day

객관적으로 주어진 것과 주관적으로 구성한 것들은 블랙홀로 흘러간다.

주체론은 세계를 분할 가능한 공적인 공간과 사적인 장소로 안내하고 뒤섞는다.

자신이 세계이면서 세계가 아니라는 우회성이 살아있는 지점이기도 하다.

'스포츠맨십'으로 단련된 육체, '선비정신'으로 조직된 일상, '종교적'으로 들어올려진 평판에 대하여

하나의 질문이 남는다, 왜 병에서 건강을 추출해내야 하는가.


영화를 보고 남긴 쪽지다. 이것에 뼈대를 붙여보려고 잠시 줄거리를 떠올린다. 《사랑의 블랙홀Groundhog Day》은 판타지해서 로맨틱한 영화다. 필은 부정적이고 건조하게 메마른 사람으로 보였는데, 직업이 기상캐스터라서, 대중을 상대로 소위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처지여서 더 절망적으로 하루를 보내곤 한다. 영화의 배경이 봄을 알리는 소식을 전해줄 마못을 기다리는 축제가 벌어지는 지방이어서, 하얀 눈발이 날리는 장면이 자주 등장했고, 매일 똑같은 날이 몇 달이고 반복된다는 점만 생생하게 기억난다(즉 나머지는 정확하지 않다). 


3가지 방향에서 추리를 시작하기로 하자. 

1. 새로운 장으로서의 사랑

2. 시간의 영원성으로서의 허무와 부정

3. 수행성으로서의 사회


<변화에는 하루만 있어도 되잖아>

어제는 오늘이고 내일은 오늘이고,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배경에서 흡사한 방송을 진행해야 했고, 그렇게 의미를 잃은 일상을 보내던 필이 진짜로 그 하루에 갇혔다. 시간을 거머쥔 필이, 여느 사람이라도 그렇겠지만, 현란하게 그 자유를 누리려고 하지만, 우리가 짐작하듯이 금방 시무룩해지곤 한다. 좋아하는 음식을 배터지고 먹거나, 싫어하던 친구에게 복수를 하거나, 금지당했던 반도덕적인 일들 또 범죄를 마음껏 저질러도 다시 눈을 뜨면 그 날이다. 


좀 이상한 일이지만 대부분은 공감하는 부분이다. 매일 놀기, 좋아하던 음식을 매일 배터지게 먹기, 매일 자유롭기 ... 이런 '쾌락'들은 반복을 통해서 가치절하되어 간다는 말이다. 범죄를 저지르고도 처벌받지 않아서 몇 번 쯤은 신날 수도 있지만 계속 반복하다보면 이런 '양심' 같은 것들은 가치확대되어 간다는 말이다. 


여하튼 영화는 후반부에 이르면서 전환을 맞는다. 동료였던 리타를 사랑하게 되면서 필이 달라지기 시작한다. 하루의 회로에 갇힌 자유를 이용해서 리타를 마음껏 스토킹할 수 있었고, 리타에 대한 정보가 쌓일수록 필의 감정은 깊어졌다. 그 데이터베이스에 기반한 연애는 거의 성공하는 듯 보였지만 실패한다. 이 <<사랑이 실패하는 순간>>에 진짜 마법이 시작된다. 마치 마뭇이 겨울이 물러난 줄 알고 깨어나 지상으로 올라왔지만, 하늘을 보고 다시 들어가 버리는 것처럼, 전환이 시작된다. 마뭇이 되돌아간 시간, 그 시간은 여전히 겨울이지만 이전의 겨울과는 다르다.


필은 덤으로 얻은 시간을 마치 다시 반복되지 않는 듯이 보내면서 시간의 허무을 이겨낸다. 여느 날처럼 일어나 조금 더 진심을 갖고 사람들을 바라본다든지,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자진해서 돕는다든지, 심지어 싫어하던 자에게도 친절한 미소를 잃지 않는 일은, 마치 ~듯이 행동하면 그렇게 이루어진다를 실증하듯이 평온해지고, 그 결과 리타의 사랑을 얻게 된다.


피아노를 배우는 필은 그 실력이 늘어날수록, 연습을 통해 연주가 완성될수록 기쁨을 느낀다. 그런 '쾌락'은 몸과 마음이 함께 가는 것이며, 성장을 눈으로 확인하는 것이다. 그래서 피아노와 피아노 선생님과 피아노 치는 자신과 피아노로 연주되는 곡이 모두 같이 '우리'가 된다. 마치 사랑이 그렇듯이 '언어'와 '관계'와 '세계'가 하나의 장에 머무른다. 


주체는 나를 생각하고 나다운 행위를 통해서 나를 입증하지 않는다. 행위를 통해서 '나'가 발생한다는 말은 어떻게 보면 참으로 상투적이기에 모든 사람들이 진리라고 느낀다. 


필이 사회적 인정을 얻게 된 것도 '사심없음'을 수행했기에 가능하다고 영화는 애써 말한다.


<사막의 물방울처럼>

나는 이제 조금 더 다른 쪽에서 영화를 바라보고 싶다. 영화의 제목을 한글로 블랙홀로 바꾸면서 말해지고 있는 '무의식'을 말이다. 필은 나만이 절망인 세상에 사는 인물이다. 곧 그 절망은 블랙홀인데, 모든 일상을 하나의 구덩이로 몰고가는 것 말이다. 벌써 15분이다. 1분이 지났다. 그만 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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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31 20:4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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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01 02:2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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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03 19:3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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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06 21:2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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