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겔 정신현상학의 이해
한자경 지음 / 서광사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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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은 '정신현상학의 이해'이지만 그에 대한 해설서라기보다 요약서에 가깝다. 해당 저술의 내용이 저자 고유의 언어로 주해되어있는 것이 아니라, 원전에서 핵심적인 문장들이 지속적으로 인용되면서 본문에서는 그 인용된 바와 동일하거나 유사한 언어와 개념들이 반복되어 재서술될 뿐이다. 절 말미마다 해당 절의 내용을 도식화한 것은 저자 나름대로의 주해를 도모한 유의미한 시도라 할 수 있겠으나, 원전 이해에 그다지 크게 기여한다고 여겨지지는 않는다(애초에 나는 철학적 사유를 도식화하거나 요약하는 것에 회의적이다). 헤겔의 "정신현상학"을 원전으로 도전하기엔 버겁지만 그 내용을 너무나 알고 싶어 어떻게든 접근하고자 안달난 사람이 아닌 바에야, 통상적인 독자층에게는 결코 추천하고 싶지 않다. 헤겔 철학을 탁월하게 소개하거나 평가하는 학술적 연구서나 대중적 해설서가 이미 많이 나와있다는 점에서, 구매 및 소장가치 역시 떨어진다. "정신현상학"에 도전하기에 앞서 혹은 그와 병행할 참고서로서 굳이 활용하고자 한다면 도서관에서 빌려서 일별하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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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 논리학 수업 - 논리적 사고와 추리논증의 기초
윌러드 밴 오먼 콰인 지음, 성소희 옮김 / 유엑스리뷰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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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가지 점으로 인해 아주 추천하고 싶지 않은 책이다. 


1. 명제논리와 양화논리 두 가지만이 다뤄지고 있는데 그 접근법이 공리적이고 구문론적이어서 다소 어렵고 자연연역법을 중심으로 삼는 작금의 일반적인 논리학 교수법 트렌드와도 이질적인 편이다. 이에 초심자가 혼자 읽어내기란 거의 불가능하거나 매우 어렵고, 논리학을 다소 아는 사람이라도 전문적인 숙달 수준을 갖추지 않은 이상 읽어나가기 어렵다. 예컨대 명제논리에서 타당성, 함축, 동치, 모순 개념 등을 설명하는 데에, 진리표 방법이 아니라 연산자 변형을 통한 연언/선언 표준형으로 전환하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물론 엄밀히 말하자면 전자는 의미론적인 것으로서 진리치를 갖는 문장/명제에 대한 방법이기에, 문장 <도식>에 대한 추상적, 구문론적인 접근법을 취하고자 한다면 후자의 방법을 택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문장/문장도식 개념 간의 구분부터가 초심자에게는 어려운 과제인바, 논리학의 형식성과 추상성을 깊이 있게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라야 이러한 접근법의 필요성과 묘미를 간취해낼 수 있다. 또한 연언/선언 표준형 변형과정은 그를 위한 진리함수적 연산자들의 정의를 숙지하고 그를 통한 변형 방법을 먼저 숙달해야만 진행할 수 있는 절차이다. 논리학 초심자가 그런 방법에 익숙할 리는 만무하며, 이를 어떻게든 이해 및 연습하고자 한다면 진리치표를 활용하는 직관적인 방법에 기대는 수가 결국 최선이다. 앞 절에서 제시된 문장들을 다시 표기해주지 않고 그 번호만을 언급해가며 증명을 이어가는 방식 및, 언어요소의 전부를 기호화하지 않고 자연언어 문자와 논리상항들을 혼용하여 설명하는 방식 등, 콰인의 서술방식이 그다지 친절하거나 매끄럽지 못하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는 단점이다. 콰인이 위대한 논리학자라는 사실이 그가 탁월한 논리학 교수라거나 저ㅓ명한 논리학 교재 저술가라는 점을 함축하지는 않는다. 이렇듯 제목 및 책의 외양이 비춰주는 바와는 다르게 초심자를 위한 내용은 절대 아니다. 보편화된 학습법 외의 색다른 방법을 알아보고자 하는 숙련자에게나 추천된다. 


2. 사실 1에서 지적한 사항은 책 자체적인 단점이라기보다는 책의 특수성에서 기인하는 상대적 단점이다. 기실 내가 가장 마음에 들지 않았던 점은 이 책의 전체적인 만듦새와 그에서 비춰지는 출판사의 기만적인 행태였다. 일단 나는 이런 식으로 팔아먹기 좋은 형태로 예쁘고 아기자기하게, '하버드', '전설적인' 이라는 거창한 단어들까지 달고 나오는 이런 류의 책들을 아주 좋아하지 않는다. 이는 개인적인 기호의 문제로 치부해버릴 수도 있겠으나, 문제는 콰인의 이 책을 이런 모양새로 만들었다는 것 자체가 원서에 대한 종합적인 무지와 비검토를 방증해준다는 점이다. 책 어느 내용을 읽어 봐도 이런 모양새로 논리학 초심자들을 홀릴 만한 내용이 아니다. 이 책에서 제시되는 내용은 현실의 논리/논술 시험을 준비하는 그 누구에게도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는 강도 높은 지식들이다. 그런데도 전문 서적이 아니라 마치 교양 수준이면서도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듯한 만듦새로 외양만 번드르하게 꾸며놓은 채, 활자 크기와 줄 간격과 본문 외 여백을 대빵만하게 키워놓고는, 그렇게 해놓고도 쪽수가 300쪽 남짓으로 뽑힌 이 작은 책을 이만 오천 원에 팔아먹고 있다. 원저자의 80년 판 서문을 보면 마땅한 논리학 교재가 없는 당시 실정에서 본인이 활용키 위해 6주 간 이 "얇은" 책을 썼다고 하는데, 그 말이 암시하기도 하듯 실제 내용을 읽어보면 이 책은 혼자 읽어나가며 숙달하는 목적보다는 전문가의 지도 하에 활용되는 교재 내지 부교재의 용도를 염두에 두고 쓰인 저서라는 느낌이 강하다. 책의 특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보지도 않은 채 이런 식으로 책을 기획, 출판한 것은 어느 모로 보나 질타받아야 할 구석이다. 편집자나 검수자가 책을 제대로 읽어보기나 했을지마저 의심스럽다. 일례로 n개의 요소명제로 구성된 복합명제의 진리치표에서, 가능한 진리치의 배열을 나타내기 위해 필요한 가로행의 개수는 2n개가 아니라 2^n개임에도, 153쪽에는 두 번이나 '2n'으로 표기되어 있다. 사소한 오식이든 역자의 오역이든 어느 쪽이나 한심스럽기는 불문가지다. 하기사 'extensionalist'를 '외연주의자'가 아닌 '확장주의자'로 번역하는 마당에 뭘 더 기대할 바가 있겠는가. 기획자든 역자든 편집자든 검수자든, 이 책이 만들어지는 데에 개입한 그 누구도 이 책의 특성과 원저자의 이론이라곤 일절 모른 채 탄생한 대환장 콜라보나 다름없다. 수준이 변변치 못하게 탄생한 이런 물건이 하바드 전설이란 타이틀을 달고 이만 오천원에 세상에 나왔다. 혐오스럽기 그지없고, 작고한 콰인에게 일개 독자인 내가 감히 민망할 정도이다. 


3. 열 한두 해 전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 열풍이 불었다. 철학사 한 권 안 읽어본 독자층들이 '하버드 강의'라는 수식어에 혹해 많이들 이 책을 샀을 테고, 많이들 읽다가 내팽겨쳤을 테고, 그렇게 많은 책들이 방치되었을 테다. 지금도 알라딘 중고매장에 가면 갈 적마다 이 책은 낱장 하나 해진 데 없이 말끔한 상태로 한두 권씩 꼭 비치되어 있다. 이제 독자층들은 원체 자신의 관심 분야가 아닌 바에야 책의 겉모양과 출판사의 상술에만 혹해 이런 책들을 사는 수준을 점차 벗어나고 있을 것이다. "이런 책"이라 해서 콰인의 이 책이나 샌델의 그 책이 좋지 않은 책이라는 말이 아니다. 철학이든 자연과학이든 문학이든 장르소설이든, 어떤 분야의 유명한 저서나 저자에 대한 그럴 듯한 꾸밈새만으로 책을 팔아먹을 수 있는 시대는 곧 지나갈 것이라는 말이다. 책을 즐기며 꾸준히 독서를 하는 사람이라면 자신이 관심하는 분야에서 무엇이 양서인지 무엇이 자신에게 필요한 책인지를 알아보는 안목을 점차 키워갈 것이다. 그에 따라 이런 책들과 이런 물건들을 만들어내는 출판사는 롱런하지 못할 것이다. 콰인에겐 안타깝지만 이 출판사에서 나온 그의 이 책은 곧 절판될 것이고, 그 넓은 여백에 증명 절차 하나 메모되어있지 않은 깔끔한 상태로 알라딘 중고매장에 몇 권 돌아다니게 될 테다. 

 

4. 다만 나는 좋은 책을 알아보는 안목, 아니면 적어도 <견실하게 만들어진 책>을 알아보는 안목이 여전히 많이 부족한가보다. 콰인이라는 논리학 대가가 쓴 논리학 저서는 도대체 어떤 모양새일까 그것만이 궁금하여 섣불리 책을 사버렸다. 논리학에 더 충분히 숙달한 뒤에 다시 도전해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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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리학입문 - 제14판
IRVING M.COPI 지음 / 경문사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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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다지 추천하고 싶지도 않고 읽는 걸 굳이 말리고 싶지도 않은 책이다. 논리학의 기초적인 내용들을 체계적이고 좋은 구성으로 잘 전달해내고 있긴 하지만, 그 내용이 <양적>으로만 방대하고 예시문이 과하게 많아 논리학 초심자든 숙련자든 읽다가 지루해 하거나 지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논리학의 형식적인 측면에만 관심하는 사람이라면 이 모든 내용과 예시를 굳이 다 읽을 필요가 있을까 싶다. 다른 한편으로 논리학 지식이 요구되는 공인 시험이나 논술 등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측면을 대비하는 사람이라면, 굳이 이 책보다는 그런 측면만을 겨냥하여 출간된 연습문제집을 사서 훈련하는 편이 더 도움이 될 듯하다. 그렇다고 부교재로 활용하자니 내용이 많고 두꺼워 배보다 배꼽이 큰 형국이 될 것이다. 제시된 연습문제들(특히 형식논리의 문제들)의 패턴이 천편일률적이어서 발전성 있는 논리학 연습을 도모하기 어렵다는 점도 부차적인 단점이다.


 다만 초입에 말했듯 그 구성은 꽤나 좋은 편인 듯하다. 이 책이 논리학 교재로서 널리 인정받고 활용되어오며 판쇄를 거듭하게 된 데에는 이런 측면이 가장 강하게 작용한 듯하다. 여러 대학 출판부에서 본교의 철학과 내지 교양 논리학 강의를 위해 자체적으로 출간하는 논리학 교재들은 많은 것들이 이 책의 구성과 목차를 본따 그 내용을 다소 압축한 형태로 되어 있다. 내가 대학 시절 수강한 논리학 학 강의의 교재 역시 이 책의 구성을 따랐던바, 논리학이라는 학문 개관, 명제와 논증 개념 분석, 형식적/비형식적 오류, 아리스토텔레스 정언논리, 연역논리와 그의 두 가지 큰 표준 줄기인 명제/술어논리, 귀납논리, 과학적 추론과 설명 개념 등을 다루는 장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교수님께서 강의 중간중간 인용하는 책들도 코피의 이 책(과 W. 새먼의 책)인 경우가 많았다. 현대의 대학 강의에서 일반적, 표준적인 형태로 자리잡은 논리학 교수법을 제시했다는 점은 분명 이 책의 큰 장점이며, 학습자의 입장에서도 효율성을 제고해주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양적인 부담감을 이겨내면서 형식논리와 자연언어 논리를 폭넓고 끈기 있게 연습할 결심이 있다면 읽어볼 가치가 있겠다.


 추가적으로, 6장 말미의 부록에 제시된, 아리스토텔레스 정언논리학에서 타당한 형식에 대한 연역을 소개하고 있는 절은, 개인적으로 처음 접하는 방법론이어서 신선하고 흥미로웠다. 논리학 저서를 많이 섭렵한 편은 못되지만, 이적지 읽어온 여타 논리학/논리철학 책에서는 보지 못했던 내용이다(닐 부부의 "논리학의 역사"에 제시되었을 법도 한데, 그 책을 읽던 당시엔 내가 이해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정언논리에 대한 이해가 풍부해짐과 동시에 그간 막연히 갖고 있던 의문점이 조금 해소되는 느낌이었다. 관심 있는 사람은 빌려서라도 이 부분을 읽고 연습해보면 재미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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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m euiwon 2024-03-24 04: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런 논리학 책을 찾는데 이 책인가 보네.
 
가능세계의 철학 - 필연과 가능으로 읽는 ‘존재’와 ‘세계’ 철학의 정원 6
미우라 도시히코 지음, 박철은 옮김 / 그린비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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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상논리와 가능세계 형이상학을 흥미롭게 접할 수 있도록 준수하게 쓰인 수작이지만, 입문서로 의도되었음에도 주제 자체의 어려움으로 인해 진입장벽이 높은 책이다. 양상논리의 형식적 측면, 양상과 가능세계 개념에 얽힌 형이상학적 사항들, 자연과학과 가능세계 개념 간의 관계 등, 주제와 얽힌 내용들을 풍부하고 알차게 전달하고 있는 좋은 책임에는 분명하다. 논리학, 철학, 수학, 자연과학 등에 숙달해 있기에, 내용이 잘 전달되고 읽히게끔 매끄럽게 번역해내면서 필요한 부분에서는 전문적이고 세세한 역주를 통해 본문을 보충 첨언하고 있는 역자의 솜씨도 이 책의 가치를 더욱 높여준다. 

 다만 기본적으로 현대 분석적 경향의 언어철학, 명제/술어논리, 논리철학, 집합론 등에 대한 강도 높은 선지식이 없이는 논의의 맥락을 따라가기 어려울 듯하다. 역자 주에서 제시되고 있는 내용도, 그 분야에 대한 맥락적인 선이해가 없능 사람이라면 이런 내용까지 알아야 하나 싶은 생각과 함께, 이해가 풍부해지기보다는 어려움만 느끼기 쉬울 것 같다. 양상논리와 가능세계 개념에 대한 배타적인 저서가 내가 알기로는 이 책을 포함하여 네 권* 정도밖에 없으니, 이 책을 읽고자 하되 상술한 하위분야들에 대한 선지식이 없는 사람이라면 그 분야들에 대한 지식을 먼저 갖추고 이 책에 도전해야 읽는 소득이 있을 듯하다. 어쨌든 이 분야를 다룬 저서의 희소성으로 인해서도, 책 자체의 탁월함으로 인해서도, 읽을 가치가 높은 책이다. 

 

*손병홍, "가능세계의 철학"(절판)

  김우진, "양상논리와 형이상학"(절판)

  미우라 도시히코, "허구세계의 존재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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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자연주의 철학
바나 바쇼.한스 D. 뮐러 지음, 뇌신경철학연구회 옮김 / 철학과현실사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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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철학, 신경철학이라는 자연주의적 기획 하에서 형이상학, 인식론, 윤리학과 심리철학 등 철학의 굵직한 분야들을 조감하고 있는 논문 선집이다. D. L. 스미스의 "생물학이 철학을…"과 함께 구매하여 읽어보았는데, 그 책보다 먼저 읽어볼 걸 하는 생각이 들게끔 그 책보다 <약간> 더 읽기 수월한 편이었다. 아무래도 그 책에 비해서는 자연과학적 내용보다 철학적 내용의 비중이 좀 더 많은 듯하고, 전술하였듯 철학의 분야에 따라 의도적으로 편집되었기 때문인 듯하다. 대부분 저자들의 뚜렷한 논지와 논증적 구성이 책의 내용을 명료하게 파악하는 데에 도움이 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어쨌든 그 책과 마찬가지로 다소 학제적인 분야를 다루는 책이니만큼, 전통/현대철학(특히 프래그머티즘, 콰인의 철학, 분석적 경향의 심리철학)과 생물학, 신경학, 심리하 등의 자연과학 양자에 숙달해 있어야만 수월하게 읽을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막연하게만 알고 있는 현대적 자연주의의 기조가 철학의 하위 분야들에 <구체적으로> 어떻게 적용되어 논증 및 옹호될 수 있는지를 알게 해준 결실 있는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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