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 - 제20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
장강명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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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강명이 쓴 생활언어의 매력은 솔직히 매혹적이다. 내가 어느순간 시공간을 넘어가 돌아가신 아버지랑 조우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달콤한 상상까지 하게 만들어줬으니까 말이다. 당장 펼쳐 들고 보라고 외치고 싶다. 신비한 체험은 나눌수록 좋은 게 아닌가.http://blog.aladin.co.kr/721991140/7759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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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 - 제20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
장강명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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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대체 너는 누구였어? 그 남자에 대한 기억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

 

 

 

8월 말에 시작된 한 작가에 대해 호기심이 생기기 시작된 건 아주 우연한 인연이었다. 지루한 나날들이 반복되던 어느 날 오후, 인터넷서점 블로그에서 새로운 연재를 시작한 신인작가의 인터뷰를 보게 되었다. 조용한 분위기를 풍긴 채 특이한 이름을 가진 장강명이란 소설가였다. 그래서 그의 새로운 소설 연재를 읽기 시작했고, 읽다보니 출간된 지난 소설들이 모두 궁금해졌다.

 

 

 

 

저자 장강명은 『고백』부터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까지 총 5편의 장편소설을 낸 주목받는 작가로 이미 문단에 눈도장을 제대로 찍은 작가였다. 그런 이력을 보니 너무 궁금해져서 먼저 최근에 나온 문학동네 작가상 수상작『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부터 주문하고 기다렸다. 의도치 않았지만, 받자마자 앉은 자리에서 2시간 만에 읽어버리고 말았다.


정확히 말하면 책을 덮을 수가 없었다. 왜 그랬을까. 아마도 기존의 소설이 흔히 가지는 신파조의 감정선이나 불필요한 인물들의 이야기가 빠진 채 그냥 담백하게 써나가고 있어서 그렇지 않았을까? 게다가 읽다보면 마음 한 구석이 묵직하게 울림이 있는 슬픔이 책 곳곳에 배여 있는 묘한 냄새가 나는 글이었다.

 

 


이 소설은 남자, 여자, 아주머니가 주인공이며, TV에서 종종 해줬던 단막극을 본 거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그러다보니 몰입도가 뛰어났던 소설이었고, 남자의 이름이 강씨라는 것과 여자의 개명전 이름은 이보람이란 정도만 최소한의 정보만 알려주는 불친절한 설명에도 불구하고 난 한 남자와 한 여자의 이야기에 빠져들고 말았다. 우선 이야기들의 순서가 너무나 잘 버물어진 비빔밥처럼 현재와 과거가 잘 연결되어 이야기를 이끌어가고 있었다.

 

 

 

 

 

과거 고등학교 시절 괴롭히던 일진 동급생을 죽이게 된 주인공의 속죄의식이 곳곳에 베여있어 따끔따끔 콕콕 내 마음을 찌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옆을 지켜주는 동창생 여자 또한 아버지에 대한 원망으로 힘들게 살아온 아픈 과거가 있었다. 그리고 또 한 명의 여자가 나오는데, 주인공 남자를 그림자처럼 쫓아다니는 피해자의 어머니인 아주머니가 있다.


보세요? 여보세요. OO이니?

남자가 전화를 끊었다. 조금 뒤에 전화가 걸려왔다. 전화기가 끈질기게 몸을 떨었다. 화면에 ‘부재중 전화 7통’이라는 문구가 떴을 때 남자는 기계를 집어 들었다.

(중략)

전화번호 바꿨더라. 너?  네.

왜애? 왜 바꿨어?                                                                      

                                                                                              (본문 22쪽)


비정상적인 행동을 보이는 피해자 엄마는 어디선가 불시에 나타나서 주인공에게 끊임없이 죄를 묻고 죽은 아들의 행위가 정당했음을 주장하고 주인공의 정상적인 삶으로의 복귀를 방해하고 있다. 오히려 과거에선 피해자의 엄마였을지 몰라도 현재는 스토킹을 하는 가해자일 뿐이다.


아주머니는 우편물을 보고 조금이라도 정보가 될 만한 것들은 모두 가방 안에 넣었다. 전화요금 고지서 같은 것도 가방에 넣었다. 아주머니는 불편한 자세로 우편함 옆 벽에 기대어 섰다.

그리고 남자를 기다렸다.                                                           

                                                                                               (본문 45쪽)


 이 부분을 읽고서 나도 두 아이의 엄마로서 아들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아주머니의 마음을 알 것 같다. 또한 가해자가 정당방위로 9년 만에 나왔을 때 아마도 피가 거꾸로 솟구치는 느낌이 들었을 것이다. 이젠 멈출 수 없어 가해자를 쫓고 괴롭히면서 그 세월을 버텼을 것이다. 그러나 주인공 남자가 겪었을 죄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괴로움과 절망, 억지로 주입되는 속죄의식의 강요행위들을 보니 막연히 아주머니의 편을 들 수는 없었다. 아주머니는 남자에게 너무 집요했고 너무 잔인한 모습을 책 속에서 보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녀도 그 긴 세월 고치지 못할 집착이 뼛속 깊이 베어 들어간 거 같아 한편으론 안타깝고 멈출 수 없는 그 15년이 불쌍했다.


경찰서, 소년교도소, 일반교도소, 병원. 남자가 대답했다. 소년교도소에 있다가 나이가 차면 일반교도소로 가게 돼.

의사들이 의식을 흐리는 약을 주었다. 약보다는 스스로의 의지로 소년은 자신의 패턴들을 지웠다.

(본문 8쪽)


주인공인 남자의 입장에선 사건충격으로 장기간의 정신과 치료로 기억이 잘 안 나는 상태에서 이제 겨우 소설을 쓰고 새로운 삶을 꿈꾸면서 과거 사랑을 겨우 찾았는데, 숨 막히게 조이는 피해자 엄마의 스토킹을 감당하긴 힘들었을 것이다.

 

 

 

 그에게 삶이란 무엇이었을까. 남들과 조금 다르게 생각하고 그것을 밖으로 뱉아냈다는 이유로 괴롭힘만 당하다 일진이었던 피해자를 죽이고만 남자. 평생 그에겐 전과자라는 꼬리표가 달렸고 새로운 삶을 살려 하면 피해자의 엄마가 주변에 사실을 알려 떠돌아다니게 만든다. 얼마나 제대로 살고 싶었을까. 그가 마포구 일대를 돌아다니며 그 동네에 숨겨진 설화나 이름에 얽힌 이야기들을 추적하는 과정만 봐도 자리 잡고 싶은 그의 마음 한 구석이 느껴져 내 마음까지 아렸다.

 

 

 

그 때 남자아이가 캐비닛 안에서 여자아이의 옷깃을 잡아당겼다. 여자아이의 몸이 앞으로 기울며 캐비닛 안에서 두 아이의 입술이 맞닿았다. 베이비로션 냄새. 겨드랑이 냄새. 비냄새. 젖은 나무와 이끼 냄새. 다크초콜릿 냄새. 강아지 발바닥 냄새. 그 밖의 온갖 강렬하고 유혹적인 냄새들.

(본문 95쪽)


그 남자에게도 지우고 싶었던 고등학교 시절 사랑이 있었다. 힘든 약물치료도 이겨낸 첫사랑의 기억...책에선 첫사랑이란 언급은 없었지만 글에서 풋풋함이 묻어났다. 그냥 첫사랑의 기억이라고, 그 남자에게도 아름다운 추억으로 기억 한편에 숨겨둔 사랑이었다고  나혼자 지레짐작하고 그렇게 여기고 싶은 예쁜 감정들이다.

어쩜 로맨스에 약하다던 저자의 표현력에 솔직히 이 정도면 됐지 아니한가, 박수라도 쳐주고 싶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감정들이 조심스럽게 느껴졌고 남자와 여자의 과거 만남이 가볍지 않았구나 싶었다. 그리고 그의 과거를 받아들이고 그를 사랑하게 된 그녀의 마음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들의 만남을 제지시키고 싶어 하는 피해자 엄마가 나타날 때 마다 남자의 편이 되어 대변해주는 여자의 마음이, 그 사랑이 대단해보였다.

 

 


난 내 이름이 너무 특이해서 싫었어. 어렸을 때부터 이름을 불러주면 상대방이 그걸 제대로 받아적을 때가 없었어. 주로 ‘강’지를 ‘광’자로 알아들었지. 한강 할 때 강입니다, 라고 매번 알려줘야 했어. (중략) 대중을 상대로 하지 않을 사람, 그냥 평범한 인생을 살고 싶은 사람이 특이한 이름을 쓰면 되게 피곤해. (중략) 그래서 이름을 바꾼 거야? 여자가 물었다. 쫓겨다니는 것 같아서? 응. 남자가 대답했다.

(본문 96-97쪽)


남자와 여자는 이름 때문에 나누는 이야기가 많았다. 여자는 너무 평범한 이름 때문에 겪었던 일 때문에 개명까지 해야 했고 남자는 특이한 이름 때문에 조용히 살기 힘들어 개명하게 된다. 둘은 이름이라는 같은 주제의 고민을 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래서 서로 더 이해해주고 끌리지 않았을까. 아이러니하게도 저자 또한 장강명이란 특이한 이름을 가졌다. 특이한 이름을 가져 힘들어하는 남자란 설정이 많이 공감되고 바로 와 닿았다. 내 이름은 그 여자처럼 오히려 평범한 이름이라 고민이었는데, 항상 같은 반에 한두 명은 내 이름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믐이라 그래. 그믐달은 아침에 떠서 저녁에 지거든. 그래서 쉽게 볼 수 없지. 해가 뜨기 직전에만 잠깐 볼 수 있어. 남자가 말했다. 낮에는 너무 가느다랗고 빛이 희미해서 볼 수가 없어.

(본문 140쪽)


남자는 스스로 그믐달이라 생각했던 거 같다. 해가 뜨기 직전에만 잠깐 볼 수 있는 존재, 남자 자신의 처지를 그렇게 표현하고 있는 게 내 코끝을 시큰거리게 했다. 시공간에서 있다가 잠깐 보였다가 사라지는 남자가 그 빛을 보여주겠다고 말할 때에는 이들이 내가 볼 수 없는 시공간으로 사라질까봐 불안해졌다. 다음 장을 넘길 때에도 그 불안감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고 내 예상이 어느 정도 맞아떨어질 때 허무하게 긴장이 스르륵 풀려버렸다. 


 

 

지금까지 내가 해온 모든 거짓말들은 다 잊더라도, 이 말만은 기억해줬으면 해. 널 만나서 정말 기뻤어. 너와의 시간은 내 인생 최고의 순간들이었어. 난 그걸 절대로 후회하지 않아. 고마워. 진심으로.

(중략) 

너를 만나기 위해 이 모든 일을 다시 겪으라면, 나는 그렇게 할 거야, 같은 말들. 사실 남자는 여자를 만나기 위해 시공간연속체 속에서 그 모든 일을 몇 번이고 다시 겪고 있는 중이었다.

(본문 148쪽)


이 말은 평소 내가 꼭 듣고 싶은 말이어서 솔직히 남자의 여자가 부러웠다. 이 말은 책의 끝머리 저자의 당선소감에 똑같은 문장으로 '그리고 HJ에게,'만 넣어서 또 등장한다. 아마도 저자의 부인에게 고마움과 진심을 담아 고백조로 읇조리는 말이었으리라.

 

 

마치 남편이 내게 해줬으면 하는 말 같아 바쁘다는 핑계로 내게 무심했던 남편에게 이 글귀를 사진으로 찍어 보내보았다. 나도 이름이 HJ였기에, 뜨끔하면서 내 마음이 통하리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내가 예상했던 답변이 돌아와 기분이 좋았다. 가끔 소설 속에 등장하는 달콤함 문장은 현실에 없지만 이렇듯 가끔은 투덜거려볼 만하다.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은 소설 안에서 주인공 남자가 썼던 바로 그 소설 『우주 알 이야기』의 형식처럼 되어 있다. 출판사 편집자인 여자가 우연히 남자의 출품작인 『우주 알 이야기』를 몇 장 떨어뜨리고 만다. 그런데 그 안을 살펴보니 사건들이 시간별로 나열되지도, 쪽 번호가 매겨있지도 않아 순서대로 완벽하게 나열할 수는 없었다. 결국 사건들이 일어나는 시간 순서대로 정렬되지 않은 이야기, 페이지가 적혀 있지 않으면 결코 순서를 맞출 수 없는 소설 속 이야기처럼 진짜 소설도 그렇게 이야기가 흘러간다. 결국 영화 인터스텔라 처럼 시공간이 생겨 아빠와 딸이 만나듯이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을 통해 패턴에서 벗어나 주인공들이 만나는 신비한 체험을 하게 된 건 아닐까. 우리에게 저자는 이런 방식의 체험을 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건네고 있는 건 아닐까.


대부분의 수상작들은 신인작가의 등용문답게 젊은 작가의 패기와 조금은 어설프거나 농익지 않은 표현들이 툭툭 튀어나오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은 저자가 꼼꼼히 설정하지 않은 글들이 별로 없었다. 군더더기가 적어 오히려 매끈하다. 이야기에서 크게 벗어나거나 많은 등장인물에 대한 부연설명, 신파적 구성요소도 없어 담백하다 못해 심심한 편이다. 하지만 장강명 작가가 이야기 하고 싶어 했던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에는 공대 출신 기자로서 간결한 언어로 기사를 썼던 그 기억이 담겨있음에 분명했다.


그가 쓴 생활언어의 매력은 솔직히 매혹적이다. 내가 어느 순간 시공간을 넘어가 돌아가신 아버지랑 조우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달콤한 상상까지 하게 만들어줬으니까 말이다.


지금 다른 시공간으로 가보고 싶은 마음의 준비가 된 독자라면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을 당장 펼쳐들고 보라고 외치고 싶다. 신비한 체험은 나눌수록 좋은 게 아닌가. 그 남자처럼, 그 여자처럼...그리고 나에게도, 내 남자에게도...그대에게도, 그대의 연인에게도...


도대체 너는 누구였어?

너는 도대체 누구였어?

너는 누구였어, 도대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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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여행자 2015-09-18 08: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대체 너는 누구였어? 그 남자에 대한 기억...빠져나오기힘들었고 이젠 장강명의 소설 모두를 완독하는 중입니다.
 
 전출처 : 작가와의만남님의 "영화 <사도> GV 시사회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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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세자에 대한 관심이 뜨겁네요.
영화 사도에도 나오고 드라마 밤을 걷는 선비에도 사동세자로 언급되어 나오죠.
비운의 세자에 대한 애련함이 현대에까지 이어져 내려오다니 신기합니다.
이재익 님의 [빙애]에서도 사도세자의 숨겨진 궁중나인에 관한 러브스토리가 나왔는데,
이 영화에서도 그 이야기가 나올지 기대됩니다.

이준익 감독님이 또 메가폰을 잡은 사극영화라면 왕의 남자 이상으로 관객이 들 듯 합니다.
정병설 교수님의 [ 권력과 인간 ]에서 보여주신 견해가 영화 사도에서는 어떻게 표현하셨는지도 기대되는 포인트구요.
사도세자의 죽음과 조선왕실을 바라보는 교수님의 탁월한 고견 마음껏 듣고 오고싶네요.
조철현 시나리오작가님도 어떻게 작품을 해석하시고 리얼리티와 픽션 사이에서 고뇌하셨을지 기대됩니다.

마지막으로 두말 필요없는 천만관객 배우 송강호, 유아인의 존재 만으로도 이미 흥행은 따논 당상이네요.
관상에서 아버지의 모습과 다른 영조를 연기한 송강호...
제멋대로인 재벌 3세 역할에 완전빙의했던 유아인이 연기한 사도세자.
그리고 문근영의 사극영화도전기도 흥미롭게 지켜보게 됩니다.

어느 한가지 빠지는 것이 없는 영화입니다.
영화 사도 응원하겠습니다.
영화 리뷰도 블로그에 확실히 남길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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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동물농장 - 스노볼의 귀환
존 리드 지음, 정영목 옮김 / 천년의상상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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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동물농장》에서 쫓겨난 ‘스노볼’이 전하는 메시지『자본주의 동물농장』에 주목하라!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그러나 어떤 동물들은 더욱 평등하다”는 다시 씌었다.

“모든 동물은 평등하게 태어났다. 무엇이 되느냐 하는 것은 자기 자신이 결정한다.”


동물농장에 남아 있던 마지막 계명, 책 첫머리에 강렬히 써있는 문구를 읽다보면 이 책이 말하고자하는 바가 나와 있다.

『자본주의 동물농장』의 첫 장을 펼치는 순간 망치로 머리를 내려친듯한 당황스러움이 나를 괴롭힌다.

 

 

 

우리가 읽고 열광했던 조지오웰의 『동물농장』 후속작 쯤 된다고 생각했던 이 책은 내가 생각했던 방향과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아니 완전히 다른 이야기는 아니었다. 조지오웰의 『동물농장』에서 추방당했던 돼지 스노볼이 주인공으로 다시 등장하고 있었다. 아니 사라졌던 스노볼의 등장이라니!! 대단한 능력을 가진 당나귀 벤자민조차 두려워하게 만드는 존재 두 발로 선 돼지 스노볼과 그의 박사친구 염소 토머스는 과연 농장에서 어떤 일을 벌일 것인가 궁금해서 책을 덮을 수 없었다.

 

조지오웰의 소설 『동물농장』을 패러디한 소설 『자본주의 동물농장』은 공산주의의 폐해를 다루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저자 존 리드는 사회비판적인 시각을 가진 작가로 정평이 난 사람이었다. 존 리드에게 대단한 조지오웰도 『동물농장』도 중요치 않았다. 9.11 테러가 일어난 날 이후 그에게 중요한 것은 바로 ‘지금의 자본주의가 참된 자본주의의 모습을 하고 있는가’, ‘자본주의는 누구에게나 평등한가’에 있는 것 같다.

 

 


 

존 리드가 책을 구상한 즈음 기가 막히게도 영국 외무부에 넘긴 ‘오웰 리스트’ 때문에 조지 오웰의 재평가가 이루어지고 있었다고 한다. 하필 그 때 문제의 책 『자본주의 동물농장』이 나올 때 오웰의 자손들은 그가 책을 출간하면 고소하겠다고 편지를 보내 더 유명해졌다. 출간할 때부터 논란이 되는 이런 흥미로운 소설책이 도대체 어디 있단 말인가...


『자본주의 동물농장』이 당시 대학가에서 핫한 토론주제로 최고의 인기를 구가했다는 말이 믿겨진다. 왜냐하면 나 또한 9월에 있을 조지오웰의 『동물농장』강연회에서 어떤 이야기가 오갈지도 기대되기 때문이다. 엄청난 인기에 탈락할지도 모르겠지만 그 곳에서 난 『동물농장』(민음사) 번역자 도정일 님의 이야기에 집중하고 또 집중할 거 같다.


아마 왜 다시 『동물농장』인가...다들 서로 물어뜯는 돼지들로 변해가겠지..그런 생각이 든다. 그만큼 우리들이 좋아하는 위대한 고전『동물농장』을 건드린 『자본주의 동물농장』이 주는 임팩트는 가히 놀랄 만하다. 그럼 이 책 속 등장하는 스노볼과 토마스, 그리고 농장들의 돼지들 이야기를 간략히 언급만 해보겠다. 나머지는 직접 읽어보고 판단을 내려야할 나와 다른 수많은 똑똑한 독자들의 몫이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나폴레옹과 그의 시대는 깨끗이 잊혀졌다. 어쩌면 그것이 목표였을 것이다. 더욱이 앞으로 다가올 시대에는 동물의 마음에서 자신이 누군가의 지도를 받고 있다는 사실도 종종 완전히 사라져버릴 것이었다. 점점 자신이 하는 일은 자신의 계획에 따른 것처럼 보이게 될 것이었다.”

( 본문 p. 57 )


소설의 첫 머리를 보면 동물농장이 세워진 후 여러 해가 흘렀고, 늙은 돼지들은 하나둘 죽어갔고, 농장의 미래는 불투명했으며, 동물들은 불안에 떨고 있었다. 나폴레옹으로 풍자된 스탈린이 세웠던 공산주의 체제가 무너지고 전쟁영웅들도 하나둘씩 사라지는 동안, 구 소련 국민들의 심리를 반영한 부분으로 보인다. 


그때 외양간 전투의 일등 동물 영웅이었지만 추방당했던 돼지 ‘스노볼’이 그들 앞에 나타나 인간 마을에서 배워온 더 나은 길을 펼칠 것을 동물들에게 약속하였다. 비록 가상이지만 그의 등장은 트로츠키의 재등장이나 마찬가지였다. 정말 그가 돌아왔다면 이 세상은 어떻게 변모했을까. 소설이지만 얼마나 재미있는 설정이 아닌가. 존 리드의 신의 한 수였다는 생각이 든다.


" 꿈이 실현되는 땅이 될 거요. 온수 목욕, 에어컨. 우리가 우리 꿈을 실현하지 않았소? 우리는 실현했소! 자 그러니까 이제 다른 모든 이의 꿈이 실현되도록 도웁시다. 우리의 이 비전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안락으로, 동물의 안락으로 우리에게 보답할 거요!"

( 본문 p. 94 )


농장 동물들이 원하는 온수와 전깃불, 전기난로, 에어컨, 창문이 달린 축사 방을 실행하기 위해 건축가인 염소 토머스는 전기 발전기를 도입하기 위해 쌍둥이 풍차의 설계도를 그려갔다. 여기서 자본주의로 변모하는 농장의 변화가 그려지고 있다. 공산주의 체재가 흔들리고 차츰 자본주의 개념에 물들어간 러시아의 행보가 여기에 해당되는 거 같다. 스노볼은 더 나은 길을 보여주기 위해 돌아왔고, 불가능한 꿈을 꾸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동물동장은 그 꿈이 실현되는 땅이 될 거라며 농장 동물들을 현혹하고 있었다. 과연 스노볼의 약속이 이루어질까.

농장 동물들은 두 발로 걷는 스노볼의 가르침에 따라 두 발로 걷는 법과 옷 입는 법, 알파벳을 익히고 화폐의 특성을 알아가기 시작한다. 곧 농장 밖 삼림지대 동물들에게까지 성공과 기회의 땅인 ‘동물농장’에 관한 소문이 퍼져나가고, 많은 동물들이 꿈을 찾아 ‘동물농장’으로 이주해온다. 여기에서 숙청으로 물들었던 농장이 드디어 바깥 동물들에겐 동경의 장소가 되어 찾아오게 되었다. 이는 예전 우리 부모님 세대들이 많이 가졌던 아메리카 드림처럼 달콤하나 현실은 씁쓸했었다. 


점차 탐욕적으로 변모해가는 스노볼을 통해 ‘동물농장’은 ‘동물장터’로 탈바꿈하게 되었다. 그곳은 갖가지 재주를 가진 동물 공연자와 온갖 놀이시설, 범죄자가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 공연으로 채워진 거대한 테마파크였다. 하지만 동물공원이 들어서고 점점 자본에 의해 부가 축적되어 가면 갈수록 동물들 사이의 갈등은 더 심각해져만 간다. 결국엔 ‘동물농장’은 아이러니하게도 자본주의 문제점을 고스란히 노출하게 되고 만다. 요즘 세상이 다 그런 것처럼 자본주의에선 돈이 가장 중요한 가치가 아니었던가! 역시『자본주의 동물농장』에서도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스노볼을 통해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희한하게도 지도자들은 결코 그런 걸로 죽지 않았지만. 큰 모험은 늘 토끼나 오리가 하는 것 같았다. 늘 “이런 모험을 더”, “저런 모험을 더”, “더 용감하게 어쩌고저쩌고” 하는 말이 들렸다. 호전적이지 않고, 아무도 죽이고 싶지 않은 동물은 권력이 없는 동물들뿐인 것 같았다. 공교롭게도 이들이야말로 죽임을 당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동물이기도 했다. 그러니까 죽임을 당하는 것은 남을 죽이는 짓을 하고 싶지 않은 동물들뿐일지도 모른다. 재미있는 일이었다.“

( 본문 p. 176 )


결국 이 책은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에서 권력싸움에서 밀려나 쫓겨났던 스노볼이 재등장하면서 자본주의의 모순과 문제점을 풍자하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예전보다 풍요로워져도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 간의 격차는 더 많이 벌어지고 소수만이 더 잘살게 되는 점차 불평등해지는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게 아닐까? 이러한 불평등 문제 때문에 잘 사는 나라에 대한 분노로 이를 평범한 일반인들에게 테러라는 악랄한 방법으로 자행되는 게 아니었을까? 저자가 이 소설을 착안하고 쓰게 된 사건을 기억하고 있는가. 바로 9. 11테러였다. 이 사건은 2001년 9월11일 미국 뉴욕의 11층 세계무역센타(WTC) 쌍둥이 빌딩이 알 카에다 등의 이슬람 테러조직의 항공기 자살테러로 무너져 내렸고 수천 명의 희생자가 발생한 가장 최악의 테러였다. 공산주의를 이기고 세계 유일의 강대국으로 등극하여 자신만만해하던 미국의 심장부를 강타한, 특히 미국인들의 자존심을 무너뜨린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미국의 자본주의가 가진 힘을 우린 알고 있다. 이는 덜 가진 자들 중 특히 위험한 폭력성향이 많은 집단의 이익과 상반될 경우 안타깝게도 극단적인 사고로 이어지고 말았다.


과거 공산주의나 자본주의의 싸움이 종결되고 결국은 가진 자들의 싸움만 남았다. 권력자들은 일반 국민을 위한 정책보다 그 체재를 유지하고자하는 정책을 우선하기 마련이다. 이대로 간다면 무엇이 남아 있게 될까. 자본주의를 대체하게 될 그 무엇도 없다. 우리에겐 선택할 기회가 없다. 결국 빅브라더의 통제 안에서 움직이는 시민들이 될 뿐이다. 동물농장의 돼지들처럼 말이다. 결국 동물농장의 동물들처럼 자신도 모르게 희생당하는 피해자가 될 뿐이다. 우리의 자본주의가 이대로 두어도 좋은지 질문을 던지는 『자본주의 동물농장』의 출간이 반가울 따름이다. 이제 우리가 꿈꾸었던 유토피아의 실체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다면 이 책을 펼쳐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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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농장》에서 쫓겨난 ‘스노볼’이 전하는 메시지『자본주의 동물농장』에 주목하라! ‘동물농장’은 아이러니하게도 자본주의 문제점을 고스란히 노출하게 되고 만다. 요즘 세상이 다 그런 것처럼 자본주의에선 돈이 가장 중요한 가치가 아니었던가! 역시『자본주의 동물농장』에서도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스노볼을 통해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결국 이 책은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에서 권력싸움에서 밀려나 쫓겨났던 스노볼이 재등장하면서 자본주의의 모순과 문제점을 풍자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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