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상적인 구절을 적고 보니
언젠가 읽었던 것 같은데,
언제, 무슨 책으로 읽었는지
전혀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로알드 달이 삶에서/사람에게서
포착하는 지점과 묘사는 정말로 대단합니다.

프랏은 나이가 쉰 정도였는데, 호감이 가는 생김새는 아니었다. 어떻게 된 건지 얼굴에 입밖에 없는 것처럼 보였다. 전문적인 미식가의 두툼하고 축축한 입술만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아랫입술은 가운데 부분이 축 늘어져 흔들거렸다. 맛 감정가의 입답게 언제든지 술잔이나 음식을 받아들이기 위해 동그런 구멍을 열어놓고 있는 듯했다. 열쇠구멍 같군. 나는 프랏의 입을 보며 생각했다. 실제로 그의 입은 축축하게 젖은 커다란 열쇠구멍 같았다.

- <맛>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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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세상에 토마토 종류가
그렇게나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던 기억이 납니다.

‘이탈리아에만 몇 백종의 토마토가 있다니!‘하고
놀랐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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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먹다가, 울컥 - 기어이 차오른 오래된 이야기
박찬일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4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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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만난 아름다운 사람에 대한 글입니다.

아름다운 사람들과의 개인적인/일대일 만남에서 남은 향기와 그리움과 음식에 대한 글입니다.

공감하는 제목인 <추억의 절반은 맛이다>처럼, 어떤 사람의 인생이 떠올라 ‘울컥‘하게 되는 것은 아주 다채롭고 깊은 감정일 것 같아요.

처음에 이 책은 개인적인 기억에 관한 글이라고 생각했는데, 곳곳에서 참 열심히 살았고, 나누고, 그래서 향기가 남은 사람들에 대한 글이라고 이해했습니다.

누구에게 자신을 대단하다고 내세우지 않고 살았고 설사 내세웠다고 하더라도,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살아서 떠올리는 이를 ‘울컥‘하게 할 수 있는 삶은 대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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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오래 전에 서점에 갔다가
새로 나온 책인줄 모르고 지나쳤어요.
(‘표지가 바뀐 개정판이 나왔겠거니...‘)

전작도 재미있게 읽고
새로 만난 일부 생활명품들은
친하게 되었어요.

이번에는 최초 이름인 ˝카스텔 9000˝으로
파버카스텔사에서 만든 연필을 소개하셨어요.
(오랜동안 써왔을 뿐 아니라
꽤 여러 자루를 주변에 선물했는데,
이름이 ˝카스텔 9000˝인 것은 오늘 알았습니다.
지금까지 ˝파버카스텔 9000˝인 줄 알았어요.)

반가웠습니다.
그래도 저라면 ˝ 3B˝를 특정해서 소개했겠지요.
깎은 연필 한 자루면 빽빽하게 받아 적어야 하는
두 시간 짜리 회의도 걱정이 없으니까요.

당분간 101가지 생활명품들을 만날 생각을 하니
신이 납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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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목을 읽고 정말로 놀랐습니다.
전영애 선생님의 ‘스케일‘과
‘제대로‘에 대한 수준 때문입니다.

늘 겸손하게 말씀하시지만,
저라면 떠 올리지도 못했을 선물을
이렇게 긴 기간 동안
제대로 된 절차를 밟아
재대로 지으셨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습니다.

꽤 여러 편의 TV와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선생님의 이런 철두철미한 모습을 보여준 내용은
없었던 것 같아요.

‘괴테 금메달‘을 받으셨는데 이 메달의 의의,
독일에 지으신 시의 정자,
독일에서 동생분의 사진과 함께 내신 시집 등은
다루어지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아쉬운 대목입니다.

노학자의 연구 성과에 대해
제대로 다루어주는 기사나 방송, 책이 있었으면 합니다.

천안에서 정자를 다 지어서, 다시 헐어서, 컨테이너에 실어서 일산에 가서 소독을 해서 포장을 하고, 다시 컨테이너에 실어서 부산으로 가서, 배로 독일 북쪽 끝의 항구 브레머하펜으로 갔다. 그리고 거기서 다시 컨테이너가 실어 동남쪽 끝 파사우까지 갔다. 파사우에 내려서도 산비탈인 건축지까지의 수송이 만만치 않았다.
화물 박스를 직선으로 늘어놓으면 길이가 24미터가 되었고, 하중은 승용차로 운반하자면 열여덟 대 정도가 필요한 것이었다. 터는 독일에서 별도로 닦아놓았고, 그 닦아놓은 터에다 나와 내 동생이 한옥 전문가 일곱명과 함께 가서 호텔에 묵으며 재조립을 했다. 긴 수송 기간을 생각해서 공사 기간을 오래 잡았는데, 독촉도 많이 했건만 결국 일이 늘어져서 한겨울에 공사를 시작하게 된 탓에 한파의 내습으로 마무리를 못하고 일단 귀국을 했다. 날이 좀 풀린 다음 다시 와공 두 명과 함께 가서 2차 공사를 했다. 마침내 공사가 끝나고 정자에는 ‘시정‘이라는 현판이 걸렸다. 독일에 정자를 세우는 일을 몹시 기뻐하셨던, 내 아버지의 글씨이다. (아버지는 정자를 보시지는 못하고 돌아가셨다.)

- <도나우 강변에 지어두고 온 ‘시정‘>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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