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s://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이런...님의 서재 (이런... 서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21696103</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 /><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Sat, 24 Oct 2026 20:22:15 +0900</lastBuildDate><image><title>이런...</title><url>https://image.aladin.co.kr/img/blog2/manage/profileimg.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21696103</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이런...</description></image><item><author>이런...</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신화에서 계시로 - [모든 이야기의 시작 - 신화에서 계시로]</title><link>https://blog.aladin.co.kr/721696103/17545759</link><pubDate>Wed, 30 Sep 2026 14:0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21696103/1754575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82139513&TPaperId=1754575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500/97/coveroff/k282139513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82139513&TPaperId=1754575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모든 이야기의 시작 - 신화에서 계시로</a><br/>정우조 지음 / 지우 / 2026년 06월<br/></td></tr></table><br/>신화라고 하면 나는 맨 처음 단군신화가 떠오른다. 이때  단군신화에 나오는 곰과 호랑이는 실제로 말을 하는 전설적 존재가 아니라, 각각 곰과 호랑이를 숭배하는 고대 부족이었을 것이라고 학자들은 생각한다. 하늘에서 내려온 신적 존재인 환웅은 외부에서 내려온 선진세력이고, 곰 부족과 섞여 새로운 집단을 이루었을 것이라 해석되는 것이다. 이처럼 신화는 고대인들이 세상을 이해하고 기억하고 전하는 설명체계이다. 그렇다면 계시는 무엇일까? 그리스도인들이 자주 사용하는 표현이지만 모두가 각장 정의하는 바가 조금씩 차이가 있을 것이다. 정우조 목사의 책 &lt;모든 이야기의 시작 - 신화의 계시로&gt;은 계시를 명시적으로 정의하는 일을 목표로 삼지 않았다. 대신 당시 고대 근동의 신화들과 여호와 하나님의 계시인 성경을 대조하며 진정한 계시가 무엇인지 드러내는 일을 설득력있게 전한다.가령 고대신화에서 나무나 식물은 주로 신들의 전유물인 '영생'을 상징하며, 신들의 변덕에 의해 좌우되는 대상이다.(p109) 그러나 성경에서 제시하는 선악과는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상징하며 동시에 인간의 자유와 책임의식을 떠올리게 하는 장치다. 더 나아가 신약에서는 선악과를 더욱 혁명적으로 해석한다.(p77) 십자가(나무)에 달리신 예수님은, 자신을 참 포도나무로 계시한다. 이것은 고대근동의 신화가 이해하는 나무와 생명에 대한 이해에서 단순히 개진한 것이 아니라, 완전히 다른 차원으로 나아간 것이다. 이처럼 성경의 원역사는 고대근동 사람들에게 익숙한 상징물과 이미지를 동원하지만, 재해석하고 전복한다. 한편 고대신화는 당시 사람들이 살아가는 현실을 설명하기 위해 여러 신적 존재들을 만들어 기원을 설명하고, 무엇보다 자신들의 권력을 정당화하는 도구로 사용되었다.(p152) 성경에 난해구절 중 하나인 네피림은 하나님의 아들과 사람의 딸 사이에서 태어난 용사들인데, 이들을 신화적으로 해석하자면 힘과 폭력으로 권력을 누리던 사람들이라 할 수 있다. 성경의 원역사는, 그러니까 계시는 이들을 정당화하는 대신에 반대하고 마침내 쓸어버린다. 이들의 동조하고 저항하지 않는 세상 역시 심판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노아는 하나님의 눈에서 은혜를 발견했다. 이것이 계시이다. 아트라하지스라는 당시 고대근동 신화에서는 상급신과 하급신이 등장하는데, 노동을 담당하던 하급신이 자신들의 노역을 하청시키고자 인간을 창조했다고 기록하고 있다.(p245) 그런데 인간의 숫자가 늘어나자 불편함과 일종의 위협을 느낀 일부 신들이 홍수로 인간을 쓸어버리려 했다. 성경의 홍수이야기(계시)와 이 신화의 차이점이 무엇일까. 저자는 소제목을 통해 이렇게 선포한다."소음을 두려워하는 신, 신음을 들으시는 신"나는 이 문구가 이 책의 핵심을 잘 드러낸다고 생각한다. (이 외에도 문학적이며 매력적인 소제목이 너무 많다. 소제목만 읽어도 책의 윤곽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신화가 네피림과 같은 권력자를 옹호하고, 그 아래 신음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가스라이팅한다면, 성경의 원역사는 말한다. 하나님은 자신을 극복하신다고. (p230) 홍수로 인간을 심판하신 하나님은, 다시는 물로 인간을 심판하지 않겠다고 스스로 제약하신다. 그리고 하나님 자신의 긍휼과 신실함을 증거로 인류와 언약을 맺으신다. 이제 심판의 화살(무지개=레인보우)은 땅이 아니라 하늘을 가리킨다. 인간의 죄악을 하나님이 대신 책임지겠다는 선포. 여기서 신화와 계시의 가장 큰 차이점이 드러난다. 신화가 권력자들의 정당화였다면 계시는 유일하고 진정한 권력자의 자기 비움과 극복의 이야기이다. 많은 경우 계시는 미래를 알려주는 예언이나, 직통계시처럼 하나님의 권위를 가지고 자기 욕망을 휘두르려는 식으로 잘못 이해되곤 했다. 이것은 계시를 신화로 격하시키는 일이다. 레비나스는 오디세우스와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대조하는데 의미심장하다. 20년 동안 방황하다 마침내 돌아온 오디세우스는, 그 여정 가운데 만난 모든 이들을 흡수하고 자기 동일시하여 양분삼는다. 이 신화에 등장하는 모든 에피소드는 오디세우스를 살찌우는 양식이다. 그러나 계시를 받은 아브라함은 '갈바를 알지 못한 채' 여정을 떠난다. 오디세우스는 고향에 도착한다. 신화는 이유와 결말이 있고, 그것은 더 강한자를 위한 원료이다. 그러나 계시는 이유와 결말이 아니라 '용서하고 기다리시는 아버지'에 대한 가장 깊은 심연에서 울려퍼지는 소리이다. 이 책을 읽은 많은 사람들은 그동안 접하지 못했던 새롭고 깊이 있는 통찰을 배울 것이다. 나 역시 그랬다. 그러나 단지 새로운 지식을 얻기보다, 저자와 함께 성경의 원역사를 따라가며, 신화에서 계시로 나아가기 위해 애썼다. 그 고민은 즐겁고 위로가 되고 나를 더 돌아보게 해줬다. 무엇보다 성경을 신화처럼 보려하는 나의 굳은 마음을 조금 열게해주었다. 이제 그곳으로 스며드는 세미한 소리를, 따듯하고 절대적인 계시의 소리를 들어볼 용기를 내본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500/97/cover150/k282139513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5009737</link></image></item><item><author>이런...</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관계가 무너졌다고 생각하는 당신에게 건내는 희망의 편지 - [교실이 무너졌다고 생각할 당신에게]</title><link>https://blog.aladin.co.kr/721696103/17517341</link><pubDate>Tue, 15 Sep 2026 09:4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21696103/1751734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62130320&TPaperId=1751734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945/31/coveroff/k862130320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62130320&TPaperId=1751734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교실이 무너졌다고 생각할 당신에게</a><br/>최범준 지음 / 느린서재 / 2026년 07월<br/></td></tr></table><br/>학창 시절의 은사님들을 떠올려 보면 대부분 기억이 흐릿합니다. 체벌이 만연했던 시절, 혹자는 선생님들의 폭력을 떠올리며 이를 갈기도 하지만 저는 그저 인상적인 기억 자체가 많지 않습니다. 그만큼 선생님과 깊은 교감과 친교를 나누지 못한 탓이겠지요. 때로는 무관심이 폭력보다 깊은 흔적을 남기는 듯합니다.그래도 고1 때 선생님과의 기억은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선생님은 고1 겨울방학 때 저를 포함한 학생 8명을 계룡산에 데려갔습니다. 그곳에서 1박을 하고, 다음 날엔 무릎까지 눈이 쌓인 험한 산을 정상까지 올랐지요.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겠습니다만, 저에겐 그때의 일이 선생님과 함께한 가장 행복한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부산에서 국어 교사로 근무하는 최범준 선생님은 저의 오랜 지인입니다. 그의 책 『교실이 무너졌다고 생각할 당신에게』를 읽으며 지난 학창 시절을 다시 떠올려 보았습니다. 그리고 지금의 제 모습도 돌아봤습니다. 저 또한 8년간 학원에서 수학 강사로 지낸 적이 있습니다. 같은 교사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공교육 교사와는 처지가 많이 다릅니다. 강사로 지내며 ‘교실이 무너졌다’고 생각한 적도 있습니다. 그 책임을 사회와 학교에만 돌리며 외면했던 순간들이 떠올라 괜히 부끄러워집니다.이 책은 2016년부터 2022년까지 교실 현장에서 교육의 본질과 학생의 마음을 고민해 온 한 교사가 학부모에게 보낸 편지들을 묶은 것입니다. 학생과 함께 혼란의 시기를 건너는 학부모를 교사의 조력자로 여기며 건넨 편지입니다. 한편으로는 저처럼 책임은 지지 않으면서 냉소적으로 교실을 바라보며 혀를 끌끌 차는, 무관심하고 조금은 비겁한 이들에게 보내는 교사의 간절한 외침이기도 합니다.이 책을 읽으며 가장 마음에 와닿은 표현은 ‘관계’입니다. 인간에게 관계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 모두 사랑받고 싶고 또 바르게 사랑하고 싶으니까요. 저자는 들어가는 말을 이렇게 엽니다. “무너진 신뢰 속에서 다시 관계를 짓는 편지.”목차는 그의 의도를 더욱 선명하게 보여줍니다. 교사는 먼저 아이 곁에 섭니다. 그리고 아이가 속한 가정에 관심을 둡니다. 저자 또한 한 가정의 가장입니다. 3부에서는 잠시 멈추어 서서 관계 속에 있는 자신을 바라봅니다. 자신의 경험과 지식에 갇히길 거부합니다. 4부에서는 교실 밖에서 교실을 다시 들여다보며 시야를 넓힙니다. 이 모든 것이 훌륭한 교사의 자질입니다.그러나 그는 훌륭한 교사에 안주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한계와 연약함을 외면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마지막에는 부족한 모습 그대로 묵묵히 교실에 남습니다. 마지막 장에서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다시금 느끼지만, 교육이란 늘 콩나물 시루에 물 붓는 작업입니다. 대부분의 물은 빠져나갑니다. 하지만 교육은 그런 효율로 환산할 수 없는, 그래도 필요한 누군가가 있다는 믿음으로 물 붓기를 계속해 나가는 작업입니다.”(277쪽)기독교 사상가 시몬 베유는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주의가 가장 높은 수준에 이르면, 그것은 기도와 같은 것이다.”“어떤 것도 섞이지 않은 순수한 주의는 기도다.”저자의 편지를 읽으며 이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교실뿐 아니라 우리는 모든 장소에서 타인과 관계합니다. 교실만 무너져 있을까요? 우리 사회 곳곳에, 우리가 속한 직장과 가정에도 무너진 곳은 존재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관계 속에서 깊이 무너지고 후회와 상처를 안고 살아갑니다.하지만 거기서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신뢰가 무너진 곳에 다시 씨를 뿌리고 물을 주어야 합니다. 관계를 살리는 길은 나를 비우고 상대에게 귀를 기울이는 일에서 시작됩니다. 내 전부를 다해 상대에게 주의를 기울일 때, 타인은 조금씩 변합니다. 무엇보다 나 자신이 달라집니다. 제가 이 책을 읽고 배운 점입니다. 저는 여기서 희망을 발견했습니다.교실이 무너졌다고 생각하는 저와 당신께, 그리고 인생이라는 학교를 다니는 우리 모두에게 이 책을 추천합니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945/31/cover150/k862130320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9453111</link></image></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