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의 늦여름
이와이 슌지 지음, 홍은주 옮김 / 비채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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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의 늦여름 - 이와이 슌지 (지은이), 홍은주 (옮긴이) 비채 2024-09-30>


영화감독 이와이 슌지의 작품들은 특별하다. 일본 특유의 감성을 영상미로 너무도 아름답고 치열하게 잘 보여준다. 유명한 수많은 영화를 차치하고서도 소설가로도 충분히 그가 가진 잠재력을 많이 보여주었다. (나는 립반윙클의 신부를 정말 좋아했는데, 찾아보니 꽤나 많은 영화들도 소설화되어 있다)

400여쪽이 되는 분량의 글에도 지루할 틈 없이 흥미진진하게 읽혀나간 이 책은 작가가 미술을 공부한 사람답게, #이와이미학 을 펼치고 있는 사람답게 미술과 미스터리가 자연스럽게 얽히고 설키면서 매료시켰다.

광고회사 입사 9년차인 야치구사 카논은 상사 비토와 사귄다는 소문이 돌면서 마음의 무언가 툭 끊어졌다. 그리고 회사를 관둔다. 미술대학을 졸업했던 카논은 지인의 소개로 미술잡지에 수습으로 취업을 하게 되고, 기사 중 하나로 얼굴도 이력도 공개하지 않은 , 그리고 그의 그림 모델이 되면 반드시 죽는다는 ‘사신’이라는 별명을 가진 수수께끼의 화가 ‘나유타’를 취재하게 된다. 그러다 과거 고등학교 미술부 동아리 때 후배이자, 자신이 처음 유화를 알려줬던, 그리고 지금은 미술을 하지 않고 도장공이 된 가세를 만난다. 그와 함께 ‘나유타’ 취재에 박차를 가한다.

이걸 어떻게 풀어나갈까 했는데, 역시나 이와이슌지였다. 그림을 볼 줄 모르는 내게 소설에서 실체 없이 만나는 그림이 상상력을 더해가면서 더 좋았다.

174쪽에 #도스토옙스키 의 #악령 이야기를 하면서 이 책의 핵심부분을 말해주었고, 읽지 않은 책이라 올해가 가기 전에 꼭 읽어야지라고 또 이렇게 문어발책을 늘리고,

마지막까지 긴장을 놓을 수 없었던 이 책.
너무 좋았다!!

✴︎ “죽음을 생각하는 일은 쾌락과 맞닿잖아요? 유년 시절 내가 얻은 최초의 쾌락은 다름 아닌 죽음의 존재였어요. 그것이 나를 위안하고 구원했죠. 죽음과 등을 맞대고 있다는 실감 속에서 지금껏 살아왔으니, 내게 만일 재능이 있었다면 그거랄까요.”

✴︎ “저주나 악령이라면 퇴치할 수도 있겠지만, 그게 자기 마음 자체라면 도망칠 곳이 없잖아요.”

✴︎ 사람은 누구나 세상이 다 제 것인 줄 알고 태어나죠. 하지만 세상을 겪을수록 분수를 알게 돼요. 자신의 존재가 얼마나 미소한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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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들의 섬
엘비라 나바로 지음, 엄지영 옮김 / 비채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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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들의 섬 - 엘비라 나바로 (지은이), 엄지영 (옮긴이) 비채 2024-10-24>


최근에 스페인 문학을 한 권 읽었다. #나무좀 그와 비슷한 결이 느껴졌다. 고작 두 권뿐이지만, 결이 비슷해서 스페인 문학이 이러한가?를 잠시 고민했다.

개인적으로 토끼라는 이미지화된 것들을 좋아한다. 귀엽다. 사랑스럽다. 근데... 문학에서 접하는 토끼는 어쩐지 무섭다. 아마도 정보라 작가의 #저주토끼 가 내 뇌리에 강하게 박혔는지도 모른다. 그 토끼는 좀 귀엽기라도(?)했지. 단편들로 11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이 책 중 표제작인 토끼들의 섬에서 끝까지 기괴함과 스산함, 이게 현실인가? 화자의 망상인가? 별별 생각을 다 하면서 읽은 것 같다.

단편이 많은 관계로 인상 깊었던 것을 몇 개 이야기하자면 일단

+토끼들의 섬
코 앞의 텅빈 섬에 오는 새를 쫓아내기 위해 토끼를 풀었는데... 이 토끼들이... 뜨악... (읽어보시길...)

+역행
개인적으로 좀 좋았는데, 친구와 함께 놀았던 어느 날, 친구의 집을 갔다온 후, 영문도 모른채 따돌림을 당한다. 6년 후 자연스럽게 다시 이야기를 한다.

+미오트라구스
(숨겨온) 난잡한 성적 취향을 가진,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는 대공, 피부병을 앓고 있어 밤에만 산책을 하는데, 그때 어떤 짐승을 본다.

+꼭대기 방
호텔에서 일하고 그 호텔의 꼭대기 방에서 자는 여자. 어느날부터 꿈을 꾸기 시작한다.

짧은 이야기들인데 임팩트가 아주 강하다. 현실과 비현실, 허구, 불안함, 환상과 욕망, 기괴함과 음산함, 뭔가 조금씩 일그러지고 뒤틀려져 있음을. 짧지만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는 정독이 필요하다.

책을 읽는데 공간과 시간에 구애를 받는 내게 이 책은 새벽에 압도적으로 잘 읽히는 책이었다. 새벽의 고요함과 너무도 잘 어울렸던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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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들
최유수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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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들 - 최유수 (지은이) 알에이치코리아(RHK) 2024-10-30>


서평단에 응모할 때는 출판사의 서평단 모집에 쓰여 있는 작가의 이름 혹은 소개글에 매료되어 신청을 한다.

독립출판계에서 가장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작가. 라는 멘트를 보고 작가의 이름은 읽었으나, 기억 속 어딘가에 넣어둔 채로, 그렇게 책을 받았다. 앗, 읽다가 넘 좋았던 #사랑의몽타주 작가였다. 헛!! 몰랐다니!!! 사랑의 몽타주를 디자인이음 출판사의 청춘문고 시리즈로 읽었을 때 너무 좋았다. 그래서 기대 가득 안고 읽어나간 글에는 나의 기대를 역시나 져버리지 않았다.

책을 읽을 때 간혹 어떤 책에는 향기가 나는 것 같다. 이 책 역시 그랬다. 어떤 글을 갓 샤워하고 나온 이의 뒤로 욕실 안에 가득찬 수증기에 구석구석 배어있는 비누향이 뒤따라나온 것 같았다. 어떤 글은 카페의 유리창으로 흘러내리는 빗물과 빗소리를 배경음악 삼아 마시는 따뜻한 커피 한잔의 향이 느껴졌다. 어떤 글은 오랜 시간 만나지 않은, 나의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내온 옛친구를 오랜만에 만났을 때의 편안한 시절이 향이 느껴졌고, 어떤 글은 갈색 딱지가 진 상처를 아플 줄 알면서도 떼어내고 또 연갈색의 딱지가 지면 부리나케 떼어내다가 어느 날 문득 다 나은 걸 알았을 때의 시원섭섭한 후련함이 느껴지는 개운한 박하향이 났다. 이게 무슨 향인지 알 것 같은데, 분명 어디선가 맡아봤던 향인데 대상을 찾을 수 없어 계속 고민하는 이의 뒷모습도 느껴졌다.

이 책 참 좋다. 틈틈히 모아두었던 스티커와 마스킹테이프로 나만의 책을 만들었다. 행복한 독서시간이었다.

✴︎ 대단한 뭔가가 아니라도 좋다. 그저 마음이 흐르는 쪽으로 꾸준히 흘러가고싶다.

✴︎ 오늘의 내가 앞으로 다신 없을지도 모를 이 순간을, 언젠가 반드시 그리워하게 될 참 아름다운 시절을 보내고 있구나 하는 그런...... 시간이란 게 다 허구 같다. 그리워할 날에도 내가 있고 그날의 내가 그리워할 오늘에도 내가 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이 동네를 더 많이 걸어다니는 일뿐이다. 걷고 느끼고 호흡하고, 차례대로 밀려나는 순간들을 착실히 떠나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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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루나파크 일력 (스프링) - 매일매일 심력 충전
루나(홍인혜) 지음 / 창비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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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루나파크 일력 (스프링) - 홍인혜(루나) (지은이) 미디어창비 2024-10-30>


또 이렇게 한살을 먹어간다.
어렸을 때 한살 한살 먹는 게 즐겁기까지 했던 철없던 어린 내가 있었는데 말이다. 까마득했던 2025년이, 어렸을 땐 애초에 생각조차 안했던 숫자를 가진 년도를 이제 두달이면 만나게 된다.

잘 몰랐다. 하루 하루가 나이의 속도만큼 빠르게 지나간다는 걸, 그럴 땐 이런 달력을 보면서 하루하루를 보내야지. 심력이라는 주제로, 현대인이 가장 소홀히 하기 쉬운 마음의 힘을 북돋아주고 길러주고 웃음을 주는 루나파크의 일력. 좋다.

2025년 평범하다고 생각하는 일상을 좀 더 행복하게 만들어 줄 이 스프링 달력(이라 좋다! 이전에 달력을 좀 늦게 뜯었더니 완전 망가진 달력이 있었어서ㅠㅠ) 선물로도 딱 좋은, 특별한 이에게 특별한 선물이 될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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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밤의 달리기
이지 지음 / 비채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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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밤의 달리기 - 이지 (지은이) 비채 2024-10-21>


이전의 이 작가의 단편소설집 나이트와 러닝을 매우인상깊게 읽었었다. (호불호가 꽤 있던데, 나는 완전 “호”였다.)

이번 소설. 개인적으로 엄청 좋았다. (또 나오는 방어기제, 개인적으로ㅎㅎㅎㅎ)

읽으면서 얼마나 킥킥댔는지(카페에 들고 가서 읽어서 혼자 키득거리느라 혼났다...웃음의 포인트는 사람마다 다르니까 ㅎㅎㅎㅎ), 읽으면서 얼마나 몽글몽글해졌는지, 읽으면서 내가 느끼는 이 감정들이 작가가 의도한 것인지 아닌지 생각해보고 가늠해보기도 했다. 필사 포인트들이 얼마나 많은지, 어쩜 이렇게 소설을 시처럼 적었는지.

인생을 축제처럼 살으라고 휴일이라고 지어주신 나는 시각예술가로 살아가고 있다. 연상의 애인 엘과 사귀고 있고, 작업실의 임대료가 올라갈 때마다 옮겨서 지금은 세운상가에 거처를 마련했다. 구 여친 나리의 sns도 엿보고 말이다. 아빠가 게이인 걸 알고 엄마는 나갔고, 그런 아빠는 사업을 하겠다고 돌아다니고, 함께 예술을 하던 친구들은 점차 현실로 나아가고 있고, 어쩌다 동물원에서 아르바이트도 하고, 백수 형수 형을 만나기도 하고.

와. 이거 줄거리를 적으려니 어렵다.

[청춘에 관한 소설은 많고 많지만, 끝까지 위트를 잃지 않는 작품은 귀하다. 《노란 밤의 달리기》는 ‘하루키적 경묘함’을 갖췄다는 찬사를 받으며 데뷔한 소설가 ‘이지’의 신작 장편소설로, 을지로 세운상가에 터 잡은 청년 예술가들의 일상을 그린다._알라딘 책소개]

와! 내가 이 작가의 글이 왜 이리 좋나 했더니, 하루키적 경묘함을 갖췄다고 찬사를 받았구나...!! 개인적으로 무라카미 하루키의 글들을 사랑하는 나에게 이 작가의 글들이 와 닿지 않을 수가 없었네!!

좋았던 문장이 너무 많아서 플래그가 덕지덕지 붙었다. 청춘이란 게 어떤 시기를 말하는 게 아니고, 정신이 젊어야 청춘이라 한들, 우리가 정의하는 청춘은 20대의 싱그러움과 열정을 갖추고 있는 걸 청춘이라 일컫는 경우가 많다. 그렇지 않는가. 결혼하고 애를 낳고, 가장의 무게가 짊어진 자리에 누군가와 사랑을 하고, 내 가족이 아닌 타인을 보살피고, 마음을 연다는 게 쉽지 않으니까 말이다.

이 책이 좋았던 이유 중 가장 꼽자면, 나의 그 20대 시절 어딘가를 보는 것 같아서, 지나온 나의 열정과 패기와 무언가 되지 않을까 하는 나의 기대들이 녹아 있어서 일 것이다. 인생이 어떻게 향해갈지는 그 누구도 모르고, 그러니까 모르는 것 투성이니까. 그래서 모르니까 사는 거라고. 가족도, 사랑도, 우정도,일도, 인생도.

좀 모호한 리뷰가 되었지만, 아무튼 이 작가의 글들이 참 좋다. 몇 번이고 다시 읽어볼테다.

✴︎ 잡고 있는 엘의 손에 신경을 집중해봤다. 말랑하고 딱딱한 감촉이 마디마디 느껴졌다. 이건 물렁뼈, 이건 미끈액. 엘의 손에 내 손을 얹고 바라봤다. 우리의 마음은 손에 있을까.

✴︎ 사랑은 그렇다. 하리보 같은 것. 인생도 그렇다. 아무것도 아닌 것.


깨알재미, 작가가 의도했을 거 같은데, “나이트러닝”이 깨알같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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