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츠제럴드, 글쓰기의 분투 - 스콧 피츠제럴드는 ‘이렇게 글을 씁니다!’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래리 W. 필립스 엮음, 차영지 옮김 / 스마트비즈니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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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츠제럴드, 글쓰기의 분투 -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 래리 W. 필립스 엮음 | 차영지 옮김 | 스마트비즈니스, 2025.04.28>


#위대한 개츠비 로 널리 알려진 피츠제럴드.
그러나 나는, 그의 이름보다도 그의 문장을 먼저 사랑하게 된 사람이다.

그의 글에는 한 인간이 품을 수 있는 상실의 결이, 너무도 아름답게, 때로는 가볍고 찬란하게, 때로는 뿌연 안개처럼 마음 깊은 곳으로 스며든다. 그리하여 그 문장들은 내 안에 머물고, 아주 오랫동안 사라지지 않는다.

이 책은 그가 글쓰기를 하며 겪어야 했던 수많은 고투와 절망, 그리고 다시 쓰기를 멈추지 않던 끈질긴 사랑의 기록이었다. 누군가에게 띄운 편지로, 혹은 문학의 언어로 남겨진 그의 생각은, 나의 어느 고요한 시간들과 겹쳐졌다.

그의 글을 좋아한다면, 이 책을 사랑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이 책은 단지 ‘잘 쓴 문장들’의 모음이 아니라, 한 사람이 자신의 삶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무엇을 사랑하며, 어떻게 견뎌냈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내밀한 고백이기도 했다.

글쓰기라는 일이 곧 살아가는 일이라는 듯이.
인생이란 결국, 나만의 소설 속에서 주연과 조연을 오가며 살아내는 일이라는 듯이. 그의 문장들 안에는 삶을 바라보는 맑고도 슬프고 애절한 눈이 있었다.

✴︎ “과거에는 행복이 종종 너무나도 황홀한 경지에 이르렀다. 어찌나 황홀한지, 내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에게조차 나눌 수 없었고, 오직 조용한 거리와 골목을 거닐며 홀로 그 감정을 흩어 보내야 했다. 증류된 작은 조각만이 남아, 책 속 짧은 문장으로 정제되었다.” (158쪽)

그 조용한 골목을 걷는 이의 마음으로, 나도 피츠제럴드의 다른 책과 함께 이 책 역시 오래도록 품고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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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통찰, 철학자들의 명언 500 - 마키아벨리에서 조조까지, 이천년의 지혜 한 줄의 통찰
김태현 지음 / 리텍콘텐츠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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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통찰, 철학자들의 명언 500 - 김태현 (지은이) 리텍콘텐츠 2025.04.21>

어릴 적부터 명언을 꽤 좋아하는 편이었다. 친구들과 교환일기를 쓰거나 편지를 주고받을 때, 뭔가 멋있어 보이고 싶을 때면 꼭 명언 한 줄을 끼워 넣곤 했다.

“How many a man has dated a new era in his life from the reading of a wise saying.”
“한 줄의 명언을 읽음으로써 자신의 삶에서 새 시대를 본 사람이 너무나 많다.”
— 프롤로그 중에서

책은 총 4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삶과 처세에 대한 통찰’, ‘사유하는 인간에 대하여’, ‘대문호들이 전하는 철학적 교훈’, ‘생각의 폭발을 이끈 동양의 철학자들’로 나뉘어 있다.

이름은 익숙하지만 정작 깊이 들여다본 적 없는 철학자들의 사유를 명료하고 간결하게 풀어내어, 명언이라는 형태를 통해 생각의 폭을 넓혀준다.

모든 문장을 다 소개할 수는 없지만, 각 장에서 인상 깊었던 문장들을 하나씩 적어보자면

+ 후기 스토아 철학을 대표하는 세네카는 ‘자기통제’를 이상적인 인간의 덕목으로 보았다.
“부탁할 게 없다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 생각해 본 사람은 거의 없다.” (30)

+ 알베르 카뮈는 죽음을 인식하면서도 살아가려는 인간, 온 힘을 다해 반항하는 존재로서의 인간을 긍정했다.
“자살이란 자신의 인생에 가치가 없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이다.” (86)

+ 모든 것은 마음가짐에 달려 있다고 말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최고의 복수는 상처를 준 사람을 닮지 않는 것이다.” (114)

+인간 내면을 날카롭게 통찰한 톨스토이 역시 깊은 울림을 준다.
“깊은 강물은 돌을 집어던져도 흐려지지 않는다. 모욕을 받고 이내 발칵하는 인간은 작은 웅덩이에 불과하다.” (150)

+ 서양에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이 있다면, 동양에는 한비자의 제왕학이 있다.
“눈에 비치는 것은 적다. 눈에 비치지 않는 것까지도 꿰뚫어볼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 (192)

총 500개의 주옥같은 문장이 담긴 이 책은, 하루에 한 문장이라도 소리 내어 읽다 보면 내 생각의 틀이 조금씩 바뀌어 있지 않을까 기대하게 만든다. 그래서 또 열심히 필사를 하고 있다. 천천히, 천천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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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으로 읽는 인상파 - 터너에서, 모네, 고흐까지
야마다 고로 지음, 허영은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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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으로 읽는 인상파 - 야마다 고로 (지은이), 허영은 (옮긴이) 한스미디어 2025-03-11>


그림에 대해 잘 모른다. 아니, 읽으면 읽을수록 더 모르게 된다. 그래서 화가의 이야기를 읽는다. 그러면 뭔가 알 것 같다가도, 결국엔 또다시 ‘모르겠다’로 끝나는 게 나와 미술의 관계다. 그렇기에 이 책은 처음 보자마자 읽고 싶었다. 내가 좋다고 느끼는 그림들이 대부분 인상파에 가까운 것 같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일본 아마존 미술사 분야 1위, 500컷이 넘는 그림 자료 수록—이것만으로도 이미 소장가치는 충분했다. 그리고 다 읽고 나서 든 생각은 이랬다. 정말 한 권으로 충분했다.

사실 “한 권으로”라는 말이 붙은 책 중, 정작 한 권으론 부족하다고 느껴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이 책은 달랐다. 정말 ‘한 권’으로 인상파를 꿰뚫게 된다. + 대화형식이라 진짜 이해 쏙쏙!!

인상파의 출현 이전, 터너에서 시작해 밀레, 쿠르베, 마네, 부댕, 그리고 인상파의 탄생을 이끈 숨은 주역 바지유, 그 이후로 모네, 르누아르, 시슬레, 피사로, 드가, 카사트, 모리조, 카유보트. 인상주의 이후 새로운 물결로 이어지는 쇠라, 세잔, 고갱, 고흐까지.

‘농민화가’로 익숙한 밀레. 하지만 그는 사실 농민을 의도적으로 그리려 했던 건 아니었다. 야외 풍경화를 인상파보다 먼저 시도했고, 당시의 정치적 흐름 속에서 농민화가로 자리 잡게 된 화가.
모네의 이야기 또한 흥미로웠다. 거의 수행하듯 수련을 반복했던 모네. (개인적으로 가장 눈길이 머무는 그림은 언제나 모네의 것이었다. 빛과 자연, 밝은 색감을 확실히 선호하는 내 취향이 반영된 결과일까.)

인물화를 그리고 싶었던 르누아르. 그의 그림 뒤에 숨겨진 인물의 삶에 관한 이야기들도 흥미로웠다. 의외로 르누아르의 그림은 그림마다 느낌이 꽤 다르다는 인상도 받았다.

가장 인상적이지 않다고 평된 인상주의자 시슬레의 그림은, 생각보다 꽤 좋았다.

드가는 시력이 좋지 않아 자연광을 꺼렸고, 인공조명 아래에서 뛰어난 데생 실력을 살려 발레리나를 그렸다. 여성에 대한 두려움, 다소 기괴한 조각들까지. 내게는 ‘신사적인 변태’라는 인상으로 각인되었다.

카사트는 아이의 귀여움을 따뜻하게 담아낸 여성 화가였다. 그녀의 그림에는 온기가 있어 좋았다.

포스트 인상파 화가인 쇠라는 점묘법으로 새로운 스타일을 창조했고, 세잔은 “그림과 현실은 다르다”는 구분을 세워 근대 회화의 아버지라 불리게 되었다. 학창 시절, 세잔의 그림을 보며 ‘왜 이게 멋지다고 하는 걸까’ 의아했는데, 이제는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 가장 재미있었던 건 고갱과 고흐의 이야기. 계속해서 놓치기만 했던 고갱의 인생, 고통과 고뇌로 점철된 고흐의 삶. 책을 덮고 나서도 오래도록 여운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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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이어준 다섯 가지 기적
모리사와 아키오 지음, 이수미 옮김 / 문예춘추사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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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이어준 다섯 가지 기적 - 모리사와 아키오 (지은이), 이수미 (옮긴이) / 문예춘추사, 2025-05-15>


여러 번 다녀왔던 일본 여행에서, 내겐 잊을 수 없는 풍경처럼 남아 있는 것들이 있다. 지하철 안, 조용히 문고판 책을 읽고 있던 사람들의 모습. 물론, 스마트폰을 바라보는 이들도 많았다. 하지만 그곳의 공기는, 우리나라의 지하철과는 조금 달랐다.

나는 지하철을 타면 무심히 둘러본다.
책을 읽는 이가 눈에 띄면, 이유도 없이 가슴이 뭉근해진다. 그 순간, 이 세상에 아직 따뜻한 것들이 남아 있다는 걸 느끼는 것만 같아서. 괜히 반갑다.

책을 읽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은 나라. 그런 일본이기에, 책 자체에 관한 이야기들도 많다. 책을 매개로 이어지는 인연을 다룬 영화들도 자주 접할 수 있다.

그래서였을까. 이 책도 본능적으로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병든 아버지를 위해, 단 한 사람만을 위해 쓴 이야기가 베스트셀러가 되었던 소설가 스즈모토. 하지만 이후 그는 더 잘 팔리는 장르, 미스터리로 방향을 틀었고, 삶은 점점 가난해졌다. 아내와는 이혼했고, 사랑하는 딸 마이에게 양육비조차 제대로 건넬 수 없는 처지가 되어버렸다. 그런 그에게, 과거의 따뜻했던 한 권을 떠올리며, 다시 비슷한 책을 써보자고 편집자 나오가 손을 내민다. 절망의 끝자락, 자신을 구원했던 바로 그 책처럼. 그리고, 그 책의 표지를 맡게 된 북디자이너 데쓰야. 그는 시한부 선고를 받았지만, 이 책을 읽고 은퇴했지만 마지막으로 디자인을 하기로 한다. 또 한 사람, 아직 취업이 확정되지 않은 서점 점원 코코미. 그리고 그 서점에 찾아온 손님 겐타로.
그렇게 책은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고, 작은 기적들을 만들어낸다.

나는 이 책을 단숨에 읽어버렸다.
책이 만들어내는 세계가 어쩌면 이렇게까지 따뜻할 수 있을까. 읽는 내내, 세상은 여전히 살 만한 곳이라는 믿음을, 다정하게 건네받았다.

특히 데쓰야와 그의 아내 시짱의 이야기를 따라가면서는,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독자였던 아버지 가즈나리와 아들의 이야기에선 웃고, 울고, 다시 웃으며, 그렇게 책장을 덮을 수 있었다.

나는 이런 이야기가 좋다.
평범해 보이지만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내는 사람들.
그리고 그 일상을, 한 권의 책이 다정하게 껴안아 주는 순간들이 곳곳에 스며들어 있는. 개인적으로는 해피엔딩을 참 좋아한다. 이 책 참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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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부서진
조수경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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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부서진 - 조수경 (지은이) 문학과지성사 2016-10-27>


요즘 문학과지성사 50주년 기념으로 책들을 찾아 읽고 있다. 도서관 서가에서 빨간 네모에 하얀 글씨를 찾아내는 일은 이상하게 마음을 기쁘게 한다.
이걸 계기로 몰랐던 작가들을 하나하나 알아가는 중이다.
조수경 작가의 이 소설집은, 인간 본성의 약한 틈, 교묘하게 비틀린 감정들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어쩌면 심리적 폭력처럼 느껴지는 이야기들.

우리는 책을 통해 활자만을 읽을 수 있다.
영상이 아니기에, 어떤 눈빛으로, 어떤 표정으로 말했는지 알 수 없다. 그 빈 공간을 내 상상으로 채운다.
내가 그려낸 행간이 섬뜩할수록, 어쩌면 그 공포가 내 안에 원래 있었던 것 아닐까, 그런 의심을 하게 만든다.
왜 제목이 《모두가 부서진》인지, 이제는 알 것 같다.
모두 부서져 있다.
각자의 방식으로.
미묘하게, 처절하게.

인상깊었던 몇가지 단편만 적어보자면,

<유리〉
두 권의 소설집을 낸 작가. 누군가가 아는 체를 한다.
초등학교 6학년, 모두가 예뻐했던 특별한 아이, 서유리.
부유한 줄 알았던 그 아이는, 사실 같은 대문만 이용했을 뿐이었다. “구렁텅이로 내몰아놓고, 너는 어떻게 살고 있었을까?” 께름칙하고, 공포스러운 기운이 천천히 스며든다.

〈마르첼리노, 마리안느〉
충격적이었다.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다만 인간은 생각보다 훨씬 잔인할 수 있다는 것.

〈떨어지다〉
초등학교 친구 돌김, 빡구, 맛세이. 서른을 앞둔 나이에 운석을 찾으러 떠난다. 어쩌면 실현 불가능한 희망을 향한 처절한 발버둥처럼 느껴졌다.

〈할로윈 - 런, 런, 런〉
좀비랜드라는 놀이공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미래. 남자친구 수한은 현실에서는 다정하지만, 꿈속에서는 살인마다. 꿈이 거짓이고 현실이 진짜지만, 두려움은 꿈보다 더 또렷하다.

〈오아시스〉
10년 전, 서로를 열렬히 사랑했던 신입생 커플, 행복도 결국 끝나버리고 만다며 기꺼이 불행을 선택하는 사람이었던 그녀. 불안 안에 머물러야 하는 사람이라는 걸 인정하고 나는 미국으로 도망쳤다. 그리고 자신을 찾아온 그녀. ​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나 스스로에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도 이미 오래전에 부서졌던 건 아닐까.’ 그리고,
‘그래도 괜찮아. 라고 스스로에게 답해주었다. 우리는 각자 저마다의 방식으로 조금씩 부서져 있다.

✴︎ 가족애 앞에 남녀 간의 사랑은 먼지와도 같다는 것을, 아이를 잃고 난 지금에야 알게 된 것이다. (66)

✴︎ “사람들이 좋아하는 건 좀비가 아니야. 사람들이 좋아하는 건 공포지. 공포를 던져주면, 그냥 믿는 거야. 아무런 의심도 없이.”(145)

✴︎ 그녀로부터 도망친 나는 또 다른 그녀를 찾아다녔다. (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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