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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의 길 - 사회주의 계획경제의 진실, 자유주의시리즈 60 ㅣ 나남신서 1157
프리드리히 A. 하이에크 지음, 김이석 옮김 / 나남출판 / 2006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1980년대 레이건과 함께 신자유주의 물결을 일으킨
영국 대처 수상의 사상적 근거가 되었으며 ..
소련을 비롯한 동유럽 공산권 국가의 지식인 계층이
공산주의 경제 체제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시장에 관심을 가질 때
비밀스럽게 구해 읽고 토론했던 책이 바로 이 책 하이에크의 '노예의 길' 이었다고 한다 ..
아마도 20세기 후반 사회주의 몰락과 자본주의 확산에
가장 크게 기여한 책 중의 하나가 아닐까 생각한다 ..
나는 그 동안 하이에크와 그의 책을 별로 탐탁치 않게 생각해 읽지 않았는데 ..
그 이유는 무차별적이고 급속한 신자유주의 확산을 추구하는 세력들과 ..
깊이 없어 보이는 공모씨 같은 인물이 하이에크를 자주 언급하였기 때문이다 ..
하지만 읽어보니 정말 뛰어난 책임에 틀림없다 ..
특히 그의 사상이 복잡계와 진화론에 대한 인식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점은
뜻밖이었고, 그래서 더욱 흥미로웠다 ..
진화론과의 보다 직접적인 연계는 그가 말년에 쓴 '치명적 자만'이라는 책에서
보다 명확히 드러난다 ..
책이 출간된 1944년은 2차 세계대전 후반으로
영국이 전시 계획경제 체제에 있었고 ..
전후에도 계획경제 체제가 이어지고 사회주의가 확산될 분위기였다 ..
독일에서 히틀러의 나찌즘이 확산되는 과정을 생생하게 체험했던 저자는
이런 분위기가 결국은 파시즘과 사회주의 독재로 이어질 수 밖에 없음을 직감하고 ..
영국과 세계가 그러한 전철을 밟지 않을까 우려되어 이 책을 쓴 것이라 밝히고 있다 ..
책을 통해 하이에크는 개인주의와 자유주의, 그리고 경쟁을 한없이 옹호하며 ..
계획과 사회주의의 두려운 결과에 대해서는 끊임없이 경고한다 ..
아래는 책에 담긴 하이에크 사상의 핵심 개념들이다 ..
먼저 그가 말하는 개인주의는 자기중심주의나 이기주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
개인주의는 다음과 같은 기본적 사실로부터 출발한다 ..
우리의 상상력의 한계로, 우리는 우리들의 가치척도 속에
사회 전체의 필요들 가운데 일부분 이상을 포함할 수 없으며,
또 엄격하게 말해서 가치의 척도들은 개인 각자의 정신 속에서만 존재하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개인들마다 다르고 또 상충될 때가 많은
(각 개인들이 지닌) 가치의 단편적 척도 이외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
이 사실로부터 개인주의자들은 개인이 정해진 한계 안에서는
다른 사람의 가치나 선호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의 가치와 선호에 따라 행동할 수 있어야 한다 ..
즉 이 영역들 안에서는 개인의 목적체계가 최고의 선이며,
다른 그 누구의 그 어떤 지시에도 종속되지 않는다 ..
개인주의 입장의 본질은 바로 개인을
자기 자신의 목적에 대한 최종적 재판관으로 인식하는 것,
즉 가능한 한 자신의 견해가 자신의 행동을 지배해야 한다는 믿음이다 ..
개인의 인지적 한계에 대한 하이에크의 통찰이 담겨 있는 부분이다 ..
한편 하이에크가 말하는 자유주의의 기본원리는
우리의 문제를 푸는 데 가능한 한 최대한 사회의 자연발생적 힘을 이용하고,
가능한 한 최소한에 그치는 강제력에 의존해야 한다는 것이다 ..
스스로 질서가 생겨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복잡계 연구와 맞닿아 있는 부분이다 ..
그가 말하는 자유주의가 자유방임은 아니다 ..
자유주의는 인간 노력들을 조정하는 수단으로
경쟁의 힘을 가능한 한 최대한 잘 활용하자는 것이지
그냥 그대로 놔두라는 것이 아니다 ..
이는 유효한 경쟁이 창출될 수 있는 곳에서는 다른 그 어떤 방법보다도
경쟁이 개별적 노력의 좋은 길잡이가 되어준다는 확신에 기초한 것이다 ..
자유주의는 경쟁이 대개의 경우 가장 효율적이라는 이유뿐만 아니라
더 크게는 강제적이고도 자의적인 간섭 없이도 우리의 행위들이 서로 조정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에 경쟁을 우월한 방법으로 간주한다.
하지만 자유주의는 경쟁이 유익하게 작동하려면,
세심하게 배려된 법적 틀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
그리고 만약 경쟁이 유효해지도록 하는 조건들을 창출하는 것이 불가능한 경우라면,
다른 방법에 의존해 경제활동의 길잡이로 삼아야 한다는 사실도 부인하지 않는다 ..
그래서 국가는 경쟁이 최대한 효율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조건을 창출하는 일,
경쟁이 유효하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을 때에만 경쟁을 대체하는 일을 해야 한다 ..
이에 비해 사회주의는 미리 알 수 없는 결과들을 창출하는 자생적 힘들을 배제하고,
그 대신 모든 사회의 힘들을 의도적으로 선택된 목표로 향하도록
집단적이고 '의식적'인 명령을 내리는 방식으로 대체한다 ..
사회주의란 바로 '계획경제' 체제로 모든 경제활동이 통제되는 중앙지시체제이다 ..
하지만 계획은 독재로 귀결된다 ..
왜냐하면 독재는 강제력을 행사하고 이상을 집행하는 데
가장 효과적인 도구일 뿐 아니라,
대규모 중앙계획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본질적으로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결국 계획경제를 추구하면 의도하지 않아도 전체주의를 초래하게 된다 ..
경제활동을 계획하려는 민주적 정치인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독재권력을 행사하든지 아니면 경제계획을 포기하든지 선택에 직면하게 된다 ..
마찬가지로 전체주의 독재자는 곧 통상적 도덕가치들을 무시하든지 아니면
계획에 실패하든지 선택해야 하는 상황을 맞게 될 것이며 ..
그래서 가장 사악한 자들이 전체주의로 향하는 사회에서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고 하이에크는 말한다 ..
실제로 우리 주위의 전체주의 사회를 보면
비록 그 시작은 선의를 가진 인물이 주도했을지라도
결국은 사악한 독재자가 권력을 장악하는 것으로 끝나고 마는 것을 볼 수 있다 ..
하이에크의 놀라운 통찰이 특히 돋보이는 부분이다 ..
계획은 민주주의와도 서로 충돌한다 ..
경제활동의 지시를 위해 자유를 억압할 필요가 있으나
민주주의가 자유의 억압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
그러나 민주주의가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는 수단으로 작용하지 않는 한,
민주주의는 전체주의체제 아래서도 지속될 수 있다 ..
비록 민주적 절차를 통해 어떤 일을 하기로 결정하였더라도,
그 일의 달성을 위해 권력의 사용이 반드시 필요하며,
권력의 사용이 확고한 규칙들에 의해 제약될 수 없는 상황이라면,
그 권력은 틀림없이 자의적이 될 수밖에 없다 ..
사회계획이 지향하는 하나의 목적체계에 모든 사람이 봉사하도록 만드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모든 사람이 이 목적체계를 신봉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
그래서 선전(propaganda)이 필요하고 .. 지배적 교리가 나오게 되고 ..
공식적 견해에 대한 옹호만이 유일하게 허용되며,
통제 받지 않는 학문분야는 실종되고 ..
진리와 사상의 자유가 종말을 맞게 된다 ..
하이에크는 경쟁이든 계획이든 이 두 가지는
모두 완전하게 시행하지 못하면 시원찮고 비효과적인 도구가 되고 만다고 말한다 ..
이 두 가지는 동일한 문제에 사용되는 대안적 원칙들이며 ..
이 두 가지 원칙을 혼합하는 것은 그 어느것도 작동하지 않게 하고,
그 중 한가지 시스템을 일관되게 적용하였을 때에 비해 더 못한 결과를 초래한다 ..
한편 자유사회에서는 법의 지배(rule of law)라는 원칙이 준수되어야 한다 ..
법의 지배란 정부가 모든 행동에서 미리 고정되고
선포된 규칙들에 의해 제약되는 것을 의미한다 ..
이 규칙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개인들은 상당한 확실성을 가지고
당국이 주어진 상황들 아래에서 자신의 강제력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에 대해 예측할 수 있게 되고,
이런 지식의 기초 위에서 자신의 일들을 계획할 수 있게 된다 ..
국가는 단지 일반적 유형의 상황에 적용되는 규칙을 확립하는 일에
그 자신의 임무를 제한하여야 하며,
특정한 시간과 장소에서 일어나는 상황들에 따라 변화하는 모든 것에 대해서는
각 개인들에게 사적 자유를 허용해야 한다.
왜냐하면 각각의 개별 경우에 관련된 당사자들은
이 상황들을 다른 그 누구보다 충분히 더 잘 알 수 있고,
거기에 자신들의 행동을 적응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
따라서 계획된 사회에서는 법의 지배가 유지될 수 없다.
일반적 규칙은 세세하게 미리 알 수 없는 상황에서도
작동할 수 있도록 제정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일반적 규칙이 특정 목적들 혹은 특정한 사람들에 대해
미치는 효과는 미리 알 수 없다.
입법자가 편파적이지 않을 수 있는 것은 바로 이런 의미에서만 가능하다.
국가의 모든 행동이 입법에 의해 정당하게 권위를 인정 받기만 한다면
법의 지배의 이상은 보존된다는 믿음은 법의 지배의 의미를 완전히 잘못 이해한 것이다 ..
히틀러가 그의 무한정의 권력을 완전히 합헌적 방식으로 획득한 것처럼 ..
민주주의는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완전한 독재조차 합법적 제도로 만들 수 있다 ..
법의 지배는 모든 것이 법에 의해 규제되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반대로 국가의 강제력이 미리 법에 의해 정의된 경우에 한해서 사용될 수 있고,
그 강제력이 어떤 방식으로 사용될 것인지 미리 예측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
한편 자유를 보존하려면 일정한 정도의 보장은 필요하다 ..
대개의 사람들은 단지 위험이 너무 크지 않은 동안에만
자유 속에 필연적으로 내재된 위험을 기꺼이 감수하려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 ..
하이에크는 제한된 보장과 절대적 보장을 구분한다 ..
제한된 보장이란 모든 이들에 대해 주어지는
생존을 위한 일정한 최소한의 확실성에 대한 보장이며 ..
이는 반드시 필요하다 ..
하지만 절대적 보장 즉, 주어진 생활수준의 보장,
혹은 어느 한 사람이나 집단이 다른 사람이나 집단에 비해 누리는
상대적 지위의 보장은 주어져서는 안 된다 ..
쉽게 말해 자유경제에 수반되는 소득의 가변성 ..
즉 경쟁사회에서는 일상사처럼 일어나는 소득감소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경제적 보장 계획은 주어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
보장이 주어지는 경우에도 보장은 시장의 외부에서 마련되어야 하며,
경쟁은 방해 받지 않은 채 작동되도록 놔둬야 한다.
자유는 단지 가격을 지불하고 얻을 수 있을 뿐이다.
마지막으로 하이에크는 복잡한 문명사회가 지탱할 수 있기 위해
우리가 받아들여야 할 것을 말한다 ..
우리 주변의 세계가 더 복잡해 질수록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가운데
끊임없이 우리의 개인적 꿈들과 계획들에 영향을 주는 힘들이 있게 되며 ..
그 어떤 사람도 이 힘들에 대해 점점 더 완전히 이해할 수 없게 된다.
변화를 결정하는 것은 매우 복잡한 상호연관성들이지만,
이것들은 불가피하게 각 개인들에게는 숨겨진 알 수 없는 것인 반면,
그 영향을 받은 사람들은 모든 책임을 명백하고 피할 수 있는 당장의 원인에 돌리게 된다 ..
우리의 문명과 같은 복잡한 문명은 필연적으로
각 개인이 그 원인과 속성에 대해 그 자신이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변화에
그 자신을 적응시키는 것에 기초하고 있다 ..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순응하기를 거부하게 되면,
이것이 우리 문명의 파괴를 초래할 수 있다 ..
독립심, 자조, 기꺼이 위험을 감수하는 태도,
다수에 대항하여 자기의 소신을 지키는 각오,
기꺼이 자신의 이웃과 자발적으로 협력하려는 태도 ..
이 모든 것들이 본질적으로 개인주의 사회의 작동에 원천이 되는 미덕이다 ..
20세기 최고의 책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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