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국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61
가와바타 야스나리 지음, 유숙자 옮김 / 민음사 / 2002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설국>의 완결판이 나오기까지 13년이 걸렸다고 하길래, 나는 이 작가가 13년을 꼬박 설국을 붙들고 있었나 싶었으나 알고 보니 1935년(36세) 첫 단편 '저녁 풍경의 거울' 발표했고 그 후 이 작품의 소재를 살려 발표한 단편들이 모여 연작 형태의 중편이 되었으며 1948년에 이르러서야 드디어 출간이 되었다는 얘기였다. 그로부터 20년 후(1968년) 노벨문학상을 받게 되었다는 것도 이번에 알게 된 것이긴 하나,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설국으로 노벨문학상을 받았다'는 사실만은 사실 알고 있었다는 말을 굳이 말해야 하는가, 뭐 이러면서 머리를 쥐어뜯는다. 


노벨문학상 뿐만 아니라 국내외 유수의 내로라 하는 상의 권위에 기대어 문학을 읽는다는 것은 사실 좀 비참하다. 그러니 제발 그것만은 하지 말자는 입장이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상을 받을만한 이유가 반드시 있을 테니까 그 이유를 찾아야만 하고 그것이 그렇게 어렵게 찾아헤맬 일이 아니었을 때 독서의 쾌감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내 결론부터 말하자면 쾌감은 조금 있었던 것도 같지만(간질간질한 그런 느낌?) 사실 짜증이 더 많았다.


비약이 워낙 심해서 유치찬란하게까지 느껴지는 대화를 보고 있노라니 내 처지가 왜 이리도 한심하게 느껴지던지. 아니 그보다 먼저 무섭다는 생각. 결말은 또 어떻고. 방화인지 아닌지 그것도 모르지 않나. 고마코가 "죽일 거예요' 라고 느닷없이 말하는 통에 이 작가는 그런 결말로 나아갔던가. 설마. 그렇다면 뭘 숨기고 있지? 무위도식 사쿠라 같은 사마무라 따위 관심 없고 고마코와 요코의 관계 혹시 아시는 분? 다시 처음부터 차분히 읽으면서 사건일지 적듯이 꼼꼼하게 인물의 동선과 대화를 분석해 보라면 못할 것도 없다. 다만 돈을 좀 주면 할 수 있다. 꽁꽁 숨겨놓은 작가의 저 비약적으로 열받게 만드는 재주를 나는 머리 싸매고 잠시 음미해 보는 것으로 이 리뷰를 마칠 것이다. 내 수준이 여기까지 라는 걸 스스로 인정하게 만들고는 결국, 설국 전체를 관통하는 서정의 실체적 아름다움과 맞닿는 그 무지막지하게 쓸어져 내리는 허망함까지 도달해 보란듯이 지금 창밖엔 폭설이 내리고 있다.   


댓글(5)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책한엄마 2017-03-17 17: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서양 사람들이 바라보는 동양에 대한 신비로움이 저 정도였구나-생각했어요.
정작 동양 사람도 이해 못하는 정서라니-ㅎㅎ

컨디션 2017-03-18 19:42   좋아요 1 | URL
아, 그런 것도 있겠군요. 노벨상 심사위원들이 주로 서양권이다 보니 그들이 느끼기에 설국이 뿜어내는 그 아슴한분위기가 얼마나 낯설고 또 신비했을까 하는.. 그런 관점을 지적해주신 거군요.^^

눈 덮인 작은 마을의 풍경과 온천장이라는 특수한 형태의 여관 그리고 게이샤로 이어지는 세계의 묘사가 남성의 낭심(낭만이라고 써야 하지만 그러고 싶지 않아서ㅎ)을 자극하는 훌륭한 요소가 되기 때문에 설국은 적어도 남성독자에겐 가슴 시린 아름다운 소설이지 않을까 싶은데요. 이렇게 본다면 이해 못할 정서도 아니긴 하구요.ㅎㅎ

책한엄마 2017-03-18 20:08   좋아요 0 | URL
낭심..ㅋㅋㅋㅋ
너무 적절한 단어 선택이에요.
최고 최고!!^^

mysuvin 2017-03-26 09: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개인적으로는 소설보다 재미있는 리뷰입니다. ㅎㅎ

컨디션 2017-03-26 13:45   좋아요 0 | URL
아, mysuvin님! 재밌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라울 따뷔랭 - 작은책
장자끄 상뻬 지음,최영선 옮김 / 열린책들 / 1998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따뷔랭의 창조자 라울 자신은 자기 명성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며 살고 있었다.

  사람 자체와 그의 겉모양 사이에 잘못 분배된 무게가, 그런 대로 균형잡힌 이 사람의 마음을

흔들고 있었다. 그것은 비밀의 무게이기도 했다. 하도 엄청나서 그 누구도 짐작조차 못할 비밀.

    그것은 그가 자전거를 타는 법을 모른다는 것이었다. 그는 <따뷔랭>을 탈 줄 몰랐다.

                                                                                                                   -21쪽


     


일단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며..


                  몸빼의 창조자 김씨는 요즘 자기 명성과 조화를 이루며 살고 있다.

            사람 자체와 김씨의 겉모양 사이에 매우 이상하게 분배된 무게가, 그런 대로 균형잡힌 이 사람의 마음을

           흔들던 때가 있었다. 그것은 마법의 무게이기도 했다. 하도 엄청나서 그 누구도 짐작조차 못할 비밀.

                그것은 김씨가 몸빼를 입게 된 걸 모른다는 것이었다. 김씨는 <몸빼>를 입을 줄 몰랐다. 


안녕하세요. 저는 김몸빼입니다.

장자끄 상뻬의 이 작품에 너무나 깊은 감화를 받은 바 그 충격을 못이기고 몹쓸 패러디를..패러디 축에도 못끼지만, 암튼 

하고 말았습니다. 제가 김몸빼라는 이름을 부여받기까지 그 지난했던 과정과 숱한 사연을 이끌고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은 

차마 저도 눈 뜨고 못볼 일이겠으나 그걸 다 풀어놓을 수도 없는 것은 여차저차 하고 저차여차 해서 어물쩍 넘어가려는 수작이겠거니 하지는 말아주세요. 


어느날인가, 그날은 아마도 경칩이었지요. 허리띠를 풀어놓고 밥을 먹기에 딱 좋은 날이었어요. 겨우내 쫄쫄 굶었던 개구리도 이제 입 크게 벌려 밥 한술 먹겠다는데 나라고 못먹을쏘냐 아주 기분좋게 식사를 했습니다. 그날 이후로 이상한 일이 생겼습니다. 갑자기 이유를 알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그날 뭘 먹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평소와 다름없이 밥이랑 국이랑 반찬이랑 너랑 나랑 아마도 그런 것들이었을 겁니다. 저는 그날부터 허리띠를 착용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갑자기 뱃살이 늘어난 것도 아니고 체중이 증가한 것도 아닙니다. 뭐 조금은 늘었겠지만, 겨울을 지냈으니 조금은 늘었겠지요? 힝. 하지만 그걸 가지고 시비를 걸고 넘어지면 저는 뒷목 잡고 쓰러질 거예요.


아무튼 저는 그날 이후로 일체의 다른 옷(하의)은 입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몸빼 외에는 다른 옷이 들어가질 않는 것입니다. 몸빼에 일부러 막 눈을 뜨게 된 것도 아니고 그게 참 그렇게도 절로 된 것이죠. 요즘은 제가 지나가면 동네 사람들이 제 몸빼에 절을 합니다. 절로 된 몸빼라서 그렇게 해야 한다나요? ㅎㅎㅎ 저는 과거에 윗몸일으키기를 했다 하면 300번을 했고 훌라후프는 걸쳤다 하면 밥 숟가락을 입에 물고서라도 놓치지 않았던 괴력의 파이터(?)였지요. 그랬던 제가 이렇게 완전히 몸빼 우먼이 되었으니 세상사 참 고약한 건지 기괴한 건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지만 저는 이제 와서는 이런 생각이 듭니다.

 " 우연찮게 일어난 일. 그 마법같은 일의 불안정성을 껴안는 것이야말로 내가 몸빼를 입는 단 하나의 이유일 것이다."


아 참, 내일은 '우먼몸빼'에서 화보 촬영이 있습니다. 밥을 아주 든든히 먹고 오라는 편집장의 당부가 있었구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카스테라
박민규 지음 / 문학동네 / 2005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일전에 나는 박민규를 '천재'라고 말한 적이 있다. 여기 하나 더 추가하면, 그는 괴물이다. 오늘날(?) 괴물이라 함은, 여러가지 의미로 쓰일텐데 천재가 천재로서 받아들여지듯 괴물도 괴물로서 받아들여질 때가 있는데 그게 바로 지금이다. 


이 책은 가엾고 초라하고 불안한 20대 청년의 삶을 자신의 불알만큼이나 소중하게 얼르고 달래면서 나아간다. 심지어 알차게 어루만진다. 그게 꼭 불알이어서 그렇다고 보진 않는다. 


그리고 이 책은 박민규 특허라 할만한 과감한 행갈이(?)를 여지없이 잘 보여준다. 잦은 행갈이에 대해 말들이 많았는지는 모르겠으나 그가 구사하는 언어의 총량과 배열의 아름다움을 생각해 본다면, 입 다물고 싶다는 생각부터 든다. 왜 그렇게 호들갑스레 자주 행을 바꾸고 또 무슨 도치법을 축지법 쓰듯 하고 하는 그 모든 것들이 단지 재기발랄해 보이려는 얕은 수작일리는 없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처음엔 몰랐는데 점점 든다. 더 심하게 또박또박 말해 보면, 


나는 박민규의 이런 수작이 좋습니다.


또한 이 책은 인간의 뇌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싱싱한 것들로 가득차 있다. 아 싱싱한 것들. 자고로 작가의 상상력이란 이 정도는 돼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런 식으로 사람 약 올리는 재주만 있는 게 아니라(실제로 많은 작가들은 약이 올라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인간의 심금을 울리는 그 재주의 비상함이 나는 정말 갈수록 신기하기만 하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7-03-15 18: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3-15 18: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3-15 18: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3-15 20: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오늘까지 마치지 못하면 난 죽음.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한수철 2017-03-08 2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슨... 실은 날로 먹는 페이퍼ㅎ의 일종일 텐데,

웃음이 푸슬 나버리고 말았습니다. 오늘 처음 웃었습니다. 덕분입니다. (_ _)

컨디션 2017-03-09 00:22   좋아요 0 | URL
이거슬 알아채신 한수철님의 통찰에 깊은 원한을ㅎㅎ

아니구요,

웃음이 푸슬. 아.. 이건 마치 푸른구슬처럼 들리는군요 ^^
 
원티드 (1disc) - 아웃케이스 없음
티무르 베크맘베토브 감독 / 유니버설픽쳐스 / 2008년 11월
평점 :
품절


안젤젤리나 졸리의 긴 얼굴과 긴 머리카락과 긴 허리와 긴 팔다리와 긴 손가락과 긴 발가락이 액션을 만났고 그녀는 세상 모든 스타일리쉬한 액션의 정점을 완성했다. 그리고  제임스 맥어보이는 (졸리에 비해 상대적으로) 짧은 얼굴과 짧은 머리카락과 짧은 허리와 짧은 손가락 발가락은 모르겠고 어쨌든 짧은 팔다리로 정말 우쭐하게 액션을 들이 받았다.


우리 모두는 각자에게 주어진 인생의 변곡점을 휘돌아 나아가는 총알이 되어야 한다. 과녁의 중심은 이마와 심장이다. 단번에 명중시켜라. 목표물을 향해 빠르고 유연하게 날아가라. 정확하게 겨눠라. 단단하게 장전하라. 결사단의 단원이 될 가능성은 천년 전에 출발한 별빛과 너의 눈빛이 허공에서 스파크를 일으켜 한여름밤의 폭죽이 될 확률보다 낮다. 한눈 팔지 말고 한눈 팔아라. 결사단 조직원을 꿈꾸기 이전에 너 자신이 결사단 그 자체가 되어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