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적의 단어들
이적 지음 / 김영사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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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이적의 산문집을 읽게 되었습니다. 이 책은 굉장히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기만의 일상과 생각들을 위트 있게 적어두었습니다. 어떤 주제는 가슴을 먹먹하게 만드는 부분들이 있고, 어떤 주제는 곰곰히 생각해보게 하고, 어떤 것들은 뒤짚어 생각해보게 하는 발상의 전환이 있고, 어떤 것들은 성공한 사람들의 공통점도 찾을 수 있고 그렇습니다. 개인적으로 좋았던 몇 부분을 나누고자 합니다.

 

(1) 시간 - "어린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이제 갈 날이 낼모레구나"라고 말하는 할머니를 보며 아이는 "에이, 할머니, 그럼 인생이 다 합해서 닷새라는 말씀이세요?"라고 놀리듯 물었다. 그러자 할머니가 미소를 머금고 아이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그래. 참으로 그러하구나."

 

저는 이 부분에서 먹먹함을 느꼈습니다. 멀게만 느껴졌던 삶의 여정이 나이가 들수록 어느 순간에 짧게 느껴지더라구요. 여러분들은 이런 시간의 변곡점에 오셨는 지 모르겠습니다. 닷새. 닷새. 정말 닷새라는 시간으로 인생의 시간을 잘 표현한 게 참 와닿았습니다.

 

(2) 리셋 - 고객님께 드리는 것은 다름 아닌 리셋 버튼 입니다. 이 버튼을 누르면 당신과 주변의 모든 상황이 5년 전으로 되돌아갑니다. 당신은 젊어질 것이며 실패는 원점으로 돌아가 재도전이 가능해집니다. 물론 그간 성취가 있었다고 해도 흔적조차 남지 않을 겁니다. 최근 5년 사이에 돌아가신 사랑하는 이가 있었다면 예전처럼 생존해 계실 것이고, 그사이 연인으로 발전한 커플은 다시 남남이 될 겁니다. 그리고 당연히 5년 내 태어난 생명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상태로 돌아갑니다. 당신은 버튼을 누르시겠습니까.

 

이 부분은 가족이서 같이 대화도 해본 주제인데요. 제 결론은 NO였습니다. 왜냐하면 5년 전이면 실제로 제 아이들이 존재하지 않은 상태가 되거든요. 5년 전으로 돌아가 진도준 처럼 사전지식, 과감한 레버리지, 투자로 더 큰 부자가 될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렇게 일군 부와 비교 되지 않을만큼 지금의 자녀들이 더 가치가 높더라구요. 물론 지금 사는 삶도 충분히 행복하구요. '자녀들의 존재 유무와 가치가 이렇게나 큰 것이었구나.' 곰곰히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었습니다.

 

(3) 공포증 - 비행기 추락사고로 죽을 확률이 화장실에서 미끄러져 뇌진탕으로 죽을 확률보다도 낮다는 얘기를 들은 R씨는 비행공포증을 떨치기는커녕 화장실공포증을 새로 얻게 되었다. 변 보는 일이 하늘을 나는 일만큼이나 무시무시해졌다.

 

예전에 다른 서평 쓰면서 뒤짚어 생각해보는 역발상을 참 좋아한다고 했었는데요. 이 부분 역시 그러한 면이 너무 좋았습니다. 사람의 상식을 벗어난 발상의 전환과 재치가 돋보이더라구요. 어딘들 상식을 벗어난 경우와 사람들은 있습니다.

 

(4) 성공 - 싫은 사람과는 같이 일하지 않아도 먹고사는 데 지장이 없는 상태.

 

워런 버핏은 좋아하는 사람들로 둘러 쌓여 일을 하기에 행복하다고 합니다. 찰리 멍거는 백만장가가 되어서도 싫은 사람과 함께 일하는 것은 미친 짓이라고 합니다. 이적 역시 이런 부분에 대해 깨달은 것 같습니다. 굳이 싫은 사람들과 일하지 않아도 먹고사는 데 지장이 없다면, 꼭 큰 부를 이루지 않아도 이적이 말한 '성공'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버핏과 마찬가지로 나는 열렬히 부자가 되고 싶었다. 그건 내가 페라리를 원해서가 아니다. 내가 원한 건 독립이었다. 나는 필사적으로 독립을 원했다.- 찰리 멍거-"

 

찰리 멍거도 독립에 대해 열렬했죠? 위와 같이 일상에서 얻을 수 있는 소재와 가수 이적의 감성, 위트가 합쳐져 좋은 산문들이 나온 것 같습니다. 이적이 못하는 건 뭘까요? 맨날 경제, 경영, 투자 관련 책만 읽다가 이 책을 통해서 쉬어가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늦은 밤, 선선한 봄바람이 부는 느낌이었다랄까요. 제가 말한 주제들 말고도 다양한 주제들이 있고, 각자의 상황과 환경에 따라 와닿는 좋은 산문들이 있을 것 같습니다. 제 경험이 참고가 되시면 좋겠습니다. 전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좋은 책과 읽을 기회를 주신 김영사에도 감사를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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