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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한강을 읽는 한 해 (주제 2 : 인간 삶의 연약함) - 전3권 - 바람이 분다, 가라 + 채식주의자 (리마스터판) + 내 여자의 열매,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ㅣ 한강을 읽는 한 해 2
한강 지음 / 알라딘 이벤트 / 2010년 2월
평점 :
한강을 읽는 한 해 세트 중 두 번째 주제, 인간 삶의 연약함이라는 주제로 묶인 세 권의 책을 만날 수 있는 세트입니다. 바람이 분다, 가라. 채식주의자 리마스터판. 그리고 내 여자의 열매. 세 권의 책은 비극적인 역사적 사건보다 개인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그 소설에서 일어난 사건들은 사회나 나라와 별 상관도 없을 스케일의 일들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바로 그런 작은 스케일이 이야기이기 때문에, 동시에 당사자 개인에게는 얼마나 큰 일이었는지를 역설적으로 뚜렷하게 더욱 부각되는 느낌이 됩니다.
이 세 권의 책은 고통 3부작이라고 불리기도 한다는데, 세 권의 책을 한 권씩 읽으면 어느새 그렇게 불리는 것에 공감하게 됩니다. 사람이 겪는 고통, 사람이어서 겪는 고통, 그리고 사람으로서 어떤 고통을 어떻게 겪어서 다른 사건으로 커지면 이번에는 또 어떤 고통이 찾아오는지. 철저하게 개인 차원에서 일어난 사건들이어서 큰 영향을 주거나 무언가 큰 흐름을 바꾸지는 못하지만, 그래서 어쩌면 어떤 사람에게 개인적으로 일어난 일쯤으로만 여겨지며 이내 잊힐 법한 일들이지만, 그것조차도 당사자에게는 그런 고통스러운 일을 겪었는데 사람들의 관심조차 얻지 못하는 일로 여겨질 지경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 고통은 너무나도 심하기에, 때로는 사람들의 관심조차 얻지 못하고 잊히는 것이 일종의 구원처럼 느껴지기도 할 지경입니다.
심지어 처음에는 나름대로 흔하고 일상적인 풍경 모습처럼 시작하면서, 그 고통은 더욱 심하게 부각되는 면도 두드러집니다. 처음에는 흔한 풍경 속 평범한 사람들이었는데, 그 모든 고통이 시작될 때의 사건만 봐도 겉으로는 어쩌다 잠시 한 번쯤 일어날 법한 해프닝 같은 것이었고, 이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면서 잊히게 될 것만 같았는데, 거기에서 무엇인가가 이른바 일상적인 궤도에서 이탈하는 움직임을 보인 이후, 다시는 그 이전저처럼 돌아가지 못할 정도로 극심한 고통을 겪는 처지가 되어버리고야 맙니다.
만약 처음의 그 해프닝 같은 순간 무언가 어긋났다는 것을 알아차렸다면, 혹시 다른 전개로 이어질 수도 있었을까요? 등장인물들이 그런 고통을 겪지 않아도 되었을까요? 그것은 모를 일입니다. 하지만 한강의 작품 속에서 한 가지만은 감히 확실하다 말해도 될 것 같습니다. 처음에 그 모든 사건이 시작되었을 때보다 그 사건이 점차 진행되면서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한 것이 훨씬 더 큰 영향을 끼쳤으니, 조금 더 일찍 알았을 상황보다 나중에 다른 대처를 했을 상황이 훨씬 더 의미 있었을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한강의 작품 속 고통은 비현실적일 정도의 극단적인 면모와 평범한 사람도 공감할 수 있을 법한 면모가 동시에 나타나는 독특한 면모를 보입니다. 등장인물들이 겪게 되는 사건은 개인에게 일어날 수는 있을 법한 스케일이지만, 너무 극단적이어서 오히려 비현실적으로 느껴집니다. 마치 책을 보기만 하면 모두 이해하는 천재가 갑자기 나타났다는 이야기라도 들은 것과 비슷한 느낌마저 들 정도입니다. 그런데 만약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누구나 겪게 될 법한 고민, 갈등, 나아가 고통을 생생하면서도 입체적으로 와닿게 그려내면서, 그것은 그저 비현실적인 느낌을 줄 정도로 극단적인 상황에서 전개되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런 힘든 일을 겪게 된 사람들의 고통에 대해 공감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됩니다.
특히 그 고통을 더욱 인상적이면서도 생생하게 만드는 요소는, 등장인물들이 나름대로 선의에서 선행을 베풀려던 것이 그 고통을 더해줄 때가 많다는 것입니다. 차라리 대놓고 무시하거나 없는 셈 쳤다면 고통이 더 심해지지는 않았을 상황이 종종 나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런 고통을 겪는 사람을 그저 내버려두면 더 나았을까요? 한강 작품 속에서 고통을 겪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마치 그런 질문을 던지는 것만 같습니다. 그리고 소설이 진행되면서 어느새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 선의조차 없었다면 고통은 더욱 강하고 심해졌을 것이며, 그것만으로도 그 선의는 의미가 있었다는 것을 말입니다. 동시에 그 정도의 선의가 결국 고통을 더욱 뚜렷하게 부각시키는 효과처럼 되어버렸다는 것도 말입니다.
이 세 권의 책에서 일어난 일을 두고, 너무 극단적이니 어차피 현실에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치부하기는 아주 편한 일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극단적인 상황의 고통은 작위적인 설정이 아니라, 그런 극한 상황에서 어떤 심정이 되는지, 그리고 어째서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를 생생하게 묘사하는 것이 어떤 여운을 남기느지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을 이 세 권의 책은 느끼게 해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