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 매일 읽는 긍정의 한 줄 긍정의 한 줄
린다 피콘 지음, 유미성 옮김 / 책이있는풍경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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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어머 어쩜 책이 이렇게 깜찍할 수가!"

[365 매일 읽는 긍정의 한 줄]을 처음 만났을 때의 소감입니다. 누구든 그런 느낌을 받지 않았을까요? 주머니에 쏙 들어가게끔 작고 깜찍한 크기에 꾹꾹 누르면 기분 좋아지는 폭신폭신(!)한 표지, 빨간 리본으로 묶여 마치 선물 포장같은 디자인. 책의 첫인상은 참 예쁘고 귀엽더군요. 마치 달력처럼, 일기처럼 1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의 '좋은 글귀'들이 적혀 있기 때문에, 들고 다니면서 짬짬이 읽기 좋게끔 만든 편집자들의 노력이 돋보이는 디자인이었습니다. 일단 책 만듦새부터 칭찬 안 할 수 없겠네요. 내용에 맞게 책의 구성의 고민하는 편집자들의 자세랄까요. ^^
그리고 내용으로 들어가보면, [365 매일 읽는 긍정의 한 줄]이란 제목에서 우리는 미리 짐작할 수 있습니다. 책에 어떤 내용들이 펼쳐질지요. 이 책을 읽는 방법은 세 가지입니다. 책을 손에 넣자마자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에 죽- 읽어가는 방법(여느 책처럼) 하나, 날짜에 맞게 그 날 그 날 한쪽씩 펼쳐보는 방법 둘, 갖고 다니면서 눈 감고 아무 데나 펼쳐 읽는 방법 셋. 어느 방법을 택하든 상관 없습니다. 어떻게 읽든 좋습니다. 이런 다양한 읽기 또한 이 책이 갖는 또 하나의 매력이니까요.
책에 실린 구절들은 유명인들의 잠언이나 격언도 있고, 오래 구전돼온 속담이나 민담도 있고, 지은이가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도 있습니다. 어떤 내용이든 우리 삶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는 공통점이 있겠지요. 격언이나 속담을 읽자마자 삶이 확 바뀐다거나 당장의 어려움이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찬찬히 그 구절을 들여다보면서 내 삶을, 내 상황을, 내 마음을 한 번 더 생각하고, 격언의 내용과 내 삶을 일치해보고자 노력하게 해주는 것이 이런 글들의 구실이 아닐까요. 물론 구절마다 다 눈에 번쩍 뜨이는 것은 아닙니다. 

뭐 이런 하나마나한 소리를 하나? 싶은 구절들도 있었죠.
'하루하루 충실히 살라'(조너선 스위프트), '행복은 마음먹기에 달려있다'(에이브러햄 링컨), '오랫동안 선행을 하다 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좋은 사람으로 인식될 것이다'(루이스 오친클로스) 같은 구절들이 대표적인 '하나마나 들으나마나한 고리타분 잠언들'이라 하겠습니다. 

새삼스럽게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평범함 속에서 진리를 발견하게 해주는 구절들도 있어요.
'기적은 하늘을 날거나 물 위를 걷는 것이 아니라, 땅에서 걸어다니는 것이다.'(중국속담)는 읽자마자 마음에 딱 꽂히더군요. 그래, 맞아, 그렇지. '잡초는 변장한 꽃이다.(제임스 로웰)', '질투는 어떠한 기쁨도 주지 않는 악이다.'(화자 미상) 같은 구절들. 평범함, 소박함, 치장하지 않은 진실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멀리 떨어져있었는지...><

뒤통수를 쿵-하고 치는, 멍때리고 있던 영혼이 살짜쿵 흔들리는 글귀를 만날 때면 얼마나 반갑던지! 바로 이 구절 말입니다. '똑바로 본다고 해서 모든 것이 변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똑바로 보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바꿀 수가 없다.'(제임스 볼드윈) 아, 지금같은 험하고 미친 시대에, 정신 바짝 차리고 스스로 똑바로 서서 가라는, 준엄한 경고로 들려서 적잖이 위안이 되었습니다. '그곳을 빠져나가는 최선의 방법은 그곳을 거쳐 가는 것이다.'(로버트 프로스트)라는 글귀 또한, 어려움을 어떻게든 피해보려는 나약한 마음에 꾸지람을 내려주었습니다. 

또한 남달리 예민한 촉수로 시대를 보고 인간을 살핀 예술가와 천재들의 말들이 유독 많이 보여 좋았습니다.
'나는 실패해 본 적이 없다. 다만 효과가 없는 만 가지 방법을 찾았을 뿐이다.'(토머스 에디슨), '경험은 우리에게 발생한 일이 아니라, 그 일에 대처하는 우리의 행동을 의미한다.'(올더스 헉슬리), '일관성은 상상력이 없는 사람들의 마지막 피난처다.'(오스카 와일드), '가을은 모든 잎이 꽃이 되는 두 번째 봄이다.'(알베르 카뮈-이 얼마나 시적인 구절이랍니까. 캬아...@@)

그리고 이 책을 통틀어 가장 감명 깊고, 슬프고, 가슴 먹먹했던 한 구절. 바로 이 구절.
'찾아나서고 있다. 노력하고 있다. 혼신을 다해 일하고 있다.' 빈센트 반 고흐의, 피를 토하는 듯한 한 구절입니다. [반 고흐 영혼의 대화]라는 책을 읽으며 인간 고흐의 숭고한 삶과 치열한 예술을 엿보며 펑펑 울었던 저로서는, 이 구절을 보자마자 가슴이 턱 막히더군요. 역시 빈센트. 구구절절 말하지 않아도, 화려하게 수식어를 붙이지 않아도 오직 그림만 그렸던 그의 삶이 절로 펼쳐졌습니다. 그래, 고흐만큼의 치열함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나 스스로에게 '찾고, 노력하고 혼신을 다했노라'고 말할 수 있어야겠구나,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저에게는 이 한 구절만으로도 이 책[365 매일 읽는 긍정의 한 줄]이 참 좋은 책이 되었습니다. 여러분들도 모두 이 책 속에서 '나만의 꼭 한 구절'을 찾아보시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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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스바루 - 뉴욕 촌놈의 좌충우돌 에코 농장 프로젝트
덕 파인 지음, 김선형 옮김 / 사계절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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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굿바이, 스바루]란 제목은 이 책이 이야기하고 싶은 모든 것을 담고 있습니다. 스바루는 책에 나온 대로 '잔고장 없이 튼튼하기로 소문난 일제 자동차로, 주인공과 12년 동안 고락을 함께 했던 친구'입니다. 자동차, 현대 사회를 상징하는 대표 주자이지요. 극과 극의 평가를 받는 물건이기도 하고요. 편리함, 기술의 총체, 빠르고픈 인간의 욕망의 발현이 긍정적인 평가라면, 그 뒷면에는 화석 에너지를 미친 듯이 잡아먹어 지구를 파괴하는 장본인, 거리에 공해를 뿌리고 다니는 독극물, 공동체를 파괴하는 이기적인 물건, 편리함의 얼굴을 뒤집어쓰고 사람의 건강을 야금야금 해치는 기계라는 부정적인 평가가 뒤따릅니다. 요즘은 긍정보다는 부정적인 평가가 압도적인 것 같고요. 심지어 '자동차 버리기 운동' 같은 것이 벌어질 정도이니까요.

나라가 작고 대중교통이 굉장히 잘 발달한 우리나라의 경우(물론 서울-수도권의 경우이지만. 다른 지역으로 가면 시내버스 타기 힘들어요. ㅜㅜ) 개인 자동차 없이도 충분히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미국같이 땅덩이 큰 나라에서 자동차는 사람에게 두 번째 발이나 마찬가지라더군요. 자동차로 몇십 분을 달려 월마트로 간 뒤, 미로같은 쇼핑몰을 누비고 다니며 필요도 없는 물건들을 양팔 가득 사들고 나와 온 집안에 쟁여놓은 뒤 결국 다 못 쓰고 버리는 삶. 그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표준 미국인'의 삶입니다. 열여섯 살만 되면 당연히 운전면허를 따야 하고, 성년이 되면 개인 자동차를 선물받는 나라 미국. 미국인의 삶에서 자동차란 '탈 것' 이상의 의미, 삶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일 겁니다.

그 점에서 아쉬웠어요. 저는 제목만 보고, 덕 파인이 '자동차가 아예 없는 삶'을 사는구나 싶었거든요. 거기가 미국, 그것도 사막 지대의 농장이란 사실을 알지 못한 채 말이예요. 이왕 생태적인 삶을 살기로 결심했으니, 자동차까지 버렸으면 얼마나 좋으랴 싶지만, 그것은 내 바람일뿐, 그 보고 죽으라 할 수는 없으니까요. 석유가 아닌 폐식용유 자동차로 바꾼 것만으로도 대단한 용기요 혁명적인 시도인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탄소 배출량 세계 1위, 지구 온난화의 주범, 북극곰과 투발루(남태평양에 있는 작은 섬으로, 해수면이 높아져 나라가 거의 가라앉을 위기에 처했지요. 투발루 사람들은 '기후 난민'의 신세가 되어 다른 나라들로 망명을 떠나야 한답니다. ㅜㅜ) 주민들의 평생 보금자리를 빼앗는 데 가장 공헌한 미국에서 말이죠.

책에서 덕 파인의 생태적인 삶은 아직 시작과 실험 단계입니다. 사랑스러운 염소 두 마리는 아직 새끼를 낳지 않았고, 자급자족은 텃밭에서 자라는 채소들로 시작했지요. 태양열 장치는 여전히 보강해야 하고요. 집도 농장도 생활도, 끊임없이 가꾸고 고치고 만들고 손질해줘야 합니다. 아니, 애초에 생태적인 삶에 완성은 없겠지요. 물건을 싸서 쓰고 필요없어지면 버리고 또 사다 쓰는 '월마트형 소비 생활'을 벗어나려는 시도만으로도 불편함에 한 발짝 다가서는 길임을, 덕 파인이라고 왜 모르겠습니까? 그 편이 훨씬 싸고 편하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요.

하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가 이렇게 값싸고, 편하고, 손쉽게 '사고 쓰고 먹고 버리는' 삶을 아무런 의심과 반성 없이 계속해나간다면, 우리의 삶은, 우리의 지구는 조만간 끝장나버린다는 사실입니다. 북극이 녹는 것은 북극만의 일이라고요? 투발루가 가라앉는 것은 투발루 사람들의 운이 없어서라고요? 아직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정말 슬픈 일입니다. '아무리 위기라고는 하지만, 설마 나 살아있는 동안에 지구가 멸망하기라도 하겠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정말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나와 여러분 덕에 석유 재벌들, 월마트같은 대형 쇼핑몰들은 미친 듯이 돈을 벌고, 우리가 먹고 쓰는 물건을 만들어내는라 노예노동에 시달리는 수많은 지구촌 사람들은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니까요.

누구나 다 귀농/귀향을 꿈꿀 수는 없습니다. 먹고 사는 문제가 걸려 도시에서의 삶을 죽어도 벗어나지 못하는 이들도 있을 겁니다. 모두들 때려 치고 덕 파인처럼 시골로 달려가 농장을 만들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삶에서도 분명 '바꿀 수 있다'는 사실 아닐까요? 조금 비싸더라도 유기농과 친환경 농산물을 먹고, 가급적이면 출처 불분명한 수입 농산물 말고 우리나라, 가까운 지역에서 난 먹을거리를 찾고, 스티로폼 상자에 텃밭도 가꿔보고, 패스트패션 같은 건 멀리 하고, 급한 일 아니면 자동차는 되도록 타지 말고, 대형 마트 습관적으로 가지 말고...등등...

덕 파인도 얘기하고 있잖아요. 환경을 이야기하는 후보를 선거에서 뽑아라! 삶에서 실천할 수 있는 생태 방안들을 실천하라! 라고요. 저는 미국식 삶, 미국식 생각들을 참으로 싫어하고 경멸하는 사람이지만, 요거 하나는 참 부럽더군요. 땅덩이가 넓으니 나만의 농장을 가질 수 있다는 것. 온 나라 땅덩이 전부가 '투기'라는 쇠사슬로 친친 동여매진 우리나라에서는, 꿈도 꾸지 못할 일이니까요. 생태란, 친환경이란, 결코 멀지 않다는 것을 많은 이들이 깨닫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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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이로운 꿀벌의 세계 - 초개체 생태학
위르겐 타우츠 지음, 헬가 R. 하일만 사진, 최재천 감수, 유영미 옮김 / 이치사이언스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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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가 문득 집안을 둘러보았습니다. 부엌 찬장에는 꿀이 있고 침실 화장대 위에는 자그마한 프로폴리스 농축액 병이 놓여있네요. 피곤해서 입가에 염증이 생기거나 피부에 뾰루지가 날 때 상비약으로 씁니다. 뿐인가요, 목욕탕 세면대 위에는 프로폴리스 성분이 들어있는 치약과 비누가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선물 받은 수삼을 잘게 썰어 꿀에 재어놓았습니다. 몸이 허하다 싶을 때, 뭔가 쌉쌀하면서도 달콤한 것이 먹고 싶을 때 간식처럼 퍼먹고는 하지요. 생각해보니 먹는 것, 위생과 미용에 필요한 여러 가지를 꿀에서 얻고 있더군요. 정확히는 벌을 키우는 사람들의 노동에서, 더 자세히는 꽃꿀을 모으느라 애쓰는 꿀벌들의 노동에서 얻는다고 해야 할까요.

저는 꿀을 무척 좋아합니다. 지구상 꿀을 가장 좋아하는 생물인 곰 '푸'에는 결코 미치지 못하겠지만, 꿀을 굉장히 좋아해요. 술 진탕 마시고 난 다음 날 뜨끈하게 끓인 북어국 한 그릇 밥 말아먹고 들이켜는 꿀물 한 사발처럼 시원한 것이 또 있을까요. 여름이면 날마다 토마토를 갈아 마시는데요, 거기에 꿀을 한 숟가락 정도 넣어 같이 갈면 그야말로 최고의 맛이 탄생합니다. 신선하고 달콤한 나만의 토마토주스랄까요. 이렇게 꿀을 즐기기만 해왔지, 그 꿀을 나에게 전해주는 일꾼들인 꿀벌의 생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별로 없었습니다. 사실 그렇잖아요. 도시민들의 비극 가운데 하나는, 내가 먹고 있는 것이 어디서 만들어져서 어떻게 내 밥상까지 전달되는지를 잘 모르는 것 아닐까요.

[경이로운 꿀벌의 세계]는 그야말로 꿀벌에 대해 알 수 있는 책입니다. '우리가 꿀벌에 대해 알고 싶은 두세 가지 것들'이라는 제목을 덧붙여도 될 것 같아요. 두세 가지 것들이 아니라 수백 가지 것들이긴 하지만요. 꿀벌과 사랑에 빠진 나머지 전 생애를 꿀벌 연구에 바친 위르겐 타우츠는 아마도 '꿀벌주의자'가 아닐까 싶네요. 이 책에는 꿀벌을 '일개 곤충' 운운하며 무시하는 사람들이 뜨끔할 내용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꿀벌은 곤충이되 단순하고 멍청한 곤충이 아니요, 포유동물과 같은 수준의 두뇌와 행동을 보이는 '초개체 생물'입니다. 초개체란 말 그대로, 하나하나의 개체가 모여 유기적으로 거대한 집단을 이루며 '전체가 마치 하나의 개체처럼 행동하는' 생물을 말합니다.(저도 이 책 덕에 처음 알게 되었네요.) 지구상에 초개체 생태 동물은 몇 없습니다. 꿀벌, 개미 정도이지요.

하나로 떼놓고 보면 지극히 작고, 약하고, 하찮아 보이는 꿀벌은 거대한 꿀벌 군락으로 살아갑니다. 그야말로 커다란 집단인 것이지요. 여왕벌-일벌-수벌들은 각자 자신의 역할을 해나가며 벌집이라는 사회를 유지하고 발전시켜 갑니다. 꿀벌의 성공은 우연이 아니라 지식으로 전달되는 고도 진화의 산물이지요. 여왕벌의 혼인비행에서부터 '필요한 순간에' 벌들을 부화시켜 새로운 구성원을 채워나가는 일, 분봉 시기를 정확히 알고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는 일, 사회를 유지하고 키워가는 일 모두가 고도로 발달된 '꿀벌 두뇌'의 '짓'입니다. 꿀벌은 우왕좌왕하지 않고 우발적으로 행동하지 않지요. 꽃을 찾아 날아가고, 그 꽃의 위치를 동료에게 전달하고, 꽃꿀을 모아 집에 저장해두는 일련의 행동들이 철저히 계산되어 있습니다.  

지은이는 꿀벌이 사라지는 현실을 안타까워합니다. 어떤 생물인들 안그렇겠습니까만, 지구상 모든 꽃들이 사랑하는 '평화로운 씨앗 전달자'로서 꿀벌의 위치는 이 생태계에서 가히 독보적인 존재입니다. 자연 생태계에도 그렇고 인간에게도 그렇고, 그야말로 '백익무해'한 존재인 꿀벌. 내가 아무것도 모르는 채 꿀만 핥고 있을 때 꿀벌들은 묵묵히 자신들의 생(인간의 눈으로 보기에 짧은 생이지만, 그들에게는 아마도 충분히 만족할만한 시간일)을 살고 있었습니다. 지구를 더욱 아름답고 평화롭게 만들어주면서 말이지요. 앞으로 산이나 들로 놀러가서 혹시 꿀벌을 만난다면, 다른 눈으로 바라봐주세요. 아, 그리고 그들을 쫓으려고 팔을 휘젓거나 큰 소리를 지르지는 마세요. 그러다 물리는 수가 있어요. 꿀벌은 진동과 바람, 움직임에 반응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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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언론인의 고백 - 위선과 경계 흐리기, 특종이 난무하는 시대에 저널리스트로 살아간다는 것
톰 플레이트 지음, 김혜영 옮김 / 에버리치홀딩스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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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fessions of an American Media Man :

마지막 책장을 덮고 표지에 쓰인 원제를 보니 책을 읽는 내내 고개가 갸웃거려졌던 이유를 알 것 같다. '언론인의 고백'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기는 하지만, 사실 책의 지은이는 언론인이 아니었던 것! 언론인이라는 말을 들을 때 우리가 제일 먼저 떠올리는 영어 단어어는 저널리스트(journalist)다. 다른 말로는 리포터(reporter) 정도랄까. 그런데 media man은 대체 뭘까. 사전을 찾아보니 대중매체, 매체라는 뜻이란다. 우리가 흔히 쓰는 매스미디어, 의 그 미디어 맞다. 여기서부터 사알짝 속은 기분이 든다.

[어느 언론인의 고백]이라는 책은 제목에서 독자들로 하여금 사뭇 진지한 저널리즘을 상상하게 했으나, 내용은 그렇지 않았다는 게 맞겠다. 아무래도 내 머릿속에 든 언론인의 범주가 너무 좁은 탓일까.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언론인은 누구인가. 알리는 사람이다. 무엇을? 세상의 진실을. 전쟁터를 누비고, 기아의 참혹함을 전달하고, 폭력의 현상을 고발하는 것. 내가 알고 있는 언론인의 모습이다. 이 책에도 나오는 워싱턴포스트의 두 기자들-워터게이트 사건을 폭로해 미국의 정치 지형을 바꾼-, 1980년 광주에서 군홧발에 처참히 짓밟히는 민중의 모습을 담은 몇몇 외신 기자들, 삼성왕국의 추악한 뒷모습을 집요하게 쫓은 MBC 이상호 기자, 죽음의 현장을 넘나들며 분쟁지역을 취재하는 전문기자와 프리랜서들...내게 떠오르는 '언론인'의 모습이다.

톰 플레이트가 살아온 30년은, 분명 이들 기자들과는 다른 삶이다. 취재하고 캐내는 기자로서보다는, 일찌감치 '고위직'에 올라 편집하고 관리하는 일을 해왔다. 스스로가 밝히고 있듯 엉뚱하고 재기발랄한 지은이는 미국의 주류 언론들을 여러 군데 거치면서 편집자로서의 능력을 인정받으면서 착실히 경력을 쌓았다. (이쯤에서 '상업주의'와 떼려야 뗄 수 없는 미국 언론이 어디 언론이냐...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나오는 것을 간신히 참으며...) 애머스트와 프린스턴(책에는 학벌 이야이가 왜이리 많이 나오는지! 자신의 학벌을 왜이리 강조하는지! 이 아저씨, 조금 속물스럽다는 느낌도 받았다. 잘난 체와 있는 체도 어쩌면 미국인의 하나의 특성 아닐까...;;) 로스앤젤레스와 뉴욕을 오가며 살아온 이 사람, 전형적인 주류 백인 남성이다.

그것은 곧, 그의 시각이 '미국'이라는 틀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것. 스스로가 인정하듯이 미국 언론은 자신들만의 시각에서 벗어나기 싫어하고, 또 그것이 옳다고 믿는다.(어리석은 미국 백성들이 기독교와 물질만능에 빠져 부시 같은 대통령을 뽑고도 부끄러운 줄 모르듯이!) 톰 플레이트는, 일찌감치 미국 언론의 '미국적 사고에 치우친 시각'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해왔고 그 하나의 방법으로 '아시아'에 눈을 돌렸다. 그리하여 자타가 인정하는, 미국 내 아시아통이 되었다는데. 불행히도 그의 칼럼을 한 번도 읽어본 적이 없다. 스스로가 자부하듯 '아주 오래 전부터 아시아에 관심 갖고, 아시아를 좋아하며, 아시아를 제대로 이해하려 노력해온' 몇 안 되는 미국 언론인인 그가 쓴 아시아의 칼럼은 어떤 내용일지 궁금하다.

꽤 두꺼운 책이지만, 글을 재미나게 잘 써서인지 술술 잘 읽히는 반면에, '내가 읽은 내용이 뭐였더라?' 하는 느낌도 든다. 서문에 밝혔듯 교훈이나 훈계를 늘어놓으려 하지 않아서일까. 그냥 자기가 살아온 삶. 병아리 언론인이었던 중고딩 시절부터 대학언론, 인턴 시절을 겪으며 칼럼니스트로서 세계 지도자들을 만나 인터뷰하고, 이런저런 언론사를 거치며 경험한 이야기들이 가볍게 펼쳐진다. 목숨 걸고 취재하지 않으니 인생의 큰 위기가 없고, 스스로 자신의 삶에 만족하는 모양인지라 깊은 반성이나 깨달음도 그닥 없다. 모르고 있던, 세계 언론의 중심이라는 미국 언론-언저리-의 모습을 대충 본 것으로 만족해야 하지 않을까. 적어도 제목이 주는 기대에는 못 미치는 것이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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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의 비상을 위한 천 번의 점프 - 최고에 도전하는 김연아를 위한 오서 코치의 아름다운 동행
브라이언 오서 지음, 권도희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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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라면 그저 국가 대항 축구(월드컵)나 올림픽의 야구같은 '인기종목'에만 쏠려 있던 사람들의 관심이, '피겨스케이팅'이라는 '생소한' 운동에 모이기 시작했다. 눈 밝은 사람들은 일찌감치 2005년, 2006년에 알아보았고, 사는 게 바빠 TV 볼 시간도 없던 사람들까지 피겨스케이팅 앞에 모이기 시작한 것은 2008년 이후일 것이다. 누가 뭐래도, 김연아 덕분이다. 김연아 현상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김연아를 통해 우리는 오래 전부터 있어 왔으나, 있는 줄 몰랐던 '피겨스케이팅'을 보고, 느끼고, 관심 갖고, 심지어 즐기게 되었다.

어느 분야의 천재들이 이룬 업적은 개인의 재능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때로 천재들은 자신의 재능을 통해 그 분야를 세상에 알리는 역할을 한다. 아인슈타인 이후, 물리학에 관심없던 대중들이 시간의 상대성을 자신의 삶에 적용시키기 시작했고, 서태지 이후에 댄스음악이 한국 대중음악의 중심 자리를 차지했다. 바이올린과 첼로가 아무리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악기라 해도, 장영주나 장한나의 연주 이전에 그 악기들에 별 관심이 없었던 것처럼, 피겨스케이팅 또한 김연아를 통해 비로소 우리에게 '보이기' 시작했다. 피겨스케이팅의 '피'자조차 모르는 사람일지라도, 트리플엑셀이나 엣지 아웃 같은 전문 용어를 알지 못해도 사람들은 김연아의 경기 장면에 열광한다. 정확하고, 반듯하고, 경쾌하고, 완벽하며 무엇보다 아름답기 때문이다.

하지만 천만다행으로, 천재들은 혼자서 천재인 경우가 드물다. 천재들의 옆과 뒤에 누군가 있었다는 사실은 우리같은 평범한 사람들에겐 하나의 위안이다. 천재를 알아보고 천재를 키우고 뒷받침해준 이들. 그들은 부모일 수도 있고, 친구나 동료일 수도 있고 스승일 수도 있다. 어찌 됐든 천재를 천재이게 해주는 그들-'천재의 조력자'의 공로야말로 대단하지 않은가. 그들을 갈고 닦아 세상에 내보냈으니 말이다. 김연아에게는 천재적인 조력자이자 조련자인 어머니가 있고, 또 한 명의 스승 브라이언 오서가 있다. 김연아의 모든 경기에서 역동적이고 활달한 표정과 몸짓으로 즐거움을 주던 오서 코치. 히딩크 감독 이래로 아마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는 외국인이 아닐까 싶은데, 때맞춰 절묘하게 그의 자서전(?)이 나와 주었다.

많은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할, 김연아의 '일거수 일투족'을 기대한 이라면 조금 실망할 수도 있겠다. 이 책은 분명 브라이언 오서의 자서전이다. 김연아가 아니라! 책에는 네 살 때 처음 스케이트를 신고 '그저 재미로' 스케이트를 타던 브라이언 오서가 스케이트에 푹 빠져 '미스터 트리플'이라는 별명을 달게 되는 과정, 세계적인 선수가 되어 케나다 명예의 전당에 오르고, 급기야(!) 김연아와 운명적인 만남을 하게 되었는지의 과정이 잔잔하고 소박하게 드러나 있다. 오서는, 자신을 피겨의 세계로 이끌어준 훌륭한 스승과 마찬가지로 '연아에게 딱 맞는' 스승이 되고자 하고, 진심으로 피겨를 사랑하고 즐기는 연아가 가장 아름답게 날아오르도록 훌륭한 조력자가 되고자 한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가장 뜨거운 사람인 김연아. 그를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고 있는 오서 코치의 이런저런 생각-피겨스케이팅에 대한 사랑, 노력과 성공에 대한 신념, 인생에 대한 깊이 있는 시각-들이 담겨 있는 책 [한 번의 비상을 위한 천 번의 점프]는, 한 번쯤 읽어볼 만하다. 책을 읽고서 다시 한 번 느낀 점은, 천재란 그저 훌륭한 재능을 타고나 아무 노력도 하지 않은 채 뛰어오른 사람이 아니라, 재능을 갈고 닦기 위해 미친 듯이 노력하고 넘어지고 깨지는 사람이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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