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나뭇잎, 이로도리 - 칠순 할머니들이 나뭇잎 팔아 연 매출 30억!
요코이시 토모지 지음, 강지운 옮김 / 황소걸음 / 2009년 9월
평점 :
품절



[기적의 나뭇잎 이로도리]는 따뜻하고 소박하면서도 유쾌하고 즐거운 책입니다. 읽으면 기분 좋아지는, 한 마디로 행복해질 수 있는 책이라 할 수 있겠네요. 어떻게 보면 흔하디 흔한 성공담같은 소재이지만, 이 성공은 평범하고 특별할 것 없는 보통 사람이 이룬 것이기에 더욱 와닿고 뜻깊게 느껴집니다. 갓 스물에 농협 지도원으로 발령받아 깡 산촌에 파견된 요코이시 씨는 첫출근의 포부가 산산이 깨지는 현장을 목격하고 맙니다. 그것은 바로 무기력하고 불평불만으로 가득찬 농촌 사람들의 모습이었는데, 할아버지들은 허구헌날 아침부터 깡술 먹고 행패 부리고, 할머니들은 삼삼오오 모여 며느리 험남이나 해대는, 무기력하고 패배의식에 젖어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그야말로 '구제불능'의 마을이라 생각했지요.

인구는 자꾸 줄어들고 젊은이들은 무조건 도시로 빠져나가 활기와 기운은 찾아볼 수 없고, 해마다 수입도 줄고 연금과 보조금으로 연명해가는 농촌의 암담한 현실은 마치 일본 아니라 우리나라를 보는 듯했고, 평생을 일궈온 땅과 들에서 스스로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해 무기력의 늪에 빠진 농부들의 슬픔 또한 우리나라 어른들을 보는 듯했습니다. 깡산촌인 가미가츠 마을은 감귤 농사를 지어 근근이 먹고 사는데, 그나마 최고의 냉해를 겪어 감귤들이 대부분 말라 죽고 말지요. 이거야말로 그냥 죽으라는 것인가. 마을 사람들은 실의에 빠지고 요코이시 씨는 고민합니다. 과연 이 마을에서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이 죽어가는 가미가츠 마을을 살릴 수 있을까 하고요. 그리고 하나씩 하나씩 마을 살리기를 실천해갑니다.

감귤 말고 다른 작물을 키워 현금을 만들어내고 산촌이라는 마을의 특성을 살린 산나물, 버섯 등 다양한 작물들로 점차 농사를 넓혀가지요. 이렇게 저렇게 궁리하면서 마을 어른들을 독려하고, 자비를 털어 시장과 다른 마을로 현장 조사를 다니는 등 거의 '헌신'에 가까운 실천들을 해나갑니다. 책을 읽는 내내, '요코이시 씨같은 사람이 정말 있다니!' 하는 감탄이 떠나지 않더군요. 그리고 드디어 운명의 '기적'을 만납니다. 바로 요리에 쓰이는 나뭇잎 장식. '츠마모노'라 불리는 요리 장식용 나뭇잎, 꽃, 산나물 등의 사업성을 발견하고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던 그 사업에 뛰어들어 가미가츠를 그야말로 일과 사람, 돈과 활기가 넘쳐나는 마을로 탈바꿈시킵니다.

책은 그야말로 쉽게 읽힙니다. 분량도 많지 않고 글도 아주 쉽게 쓰여져 있어요. 그렇지만 분량이 적다고 해서 별 내용이 없지 않습니다. 오히려 무척이나 많은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한 농업 지도원의 헌신이 이토록 엄청난 결과를 갖고 온다는 놀라운 사실. 언제나 어느 곳에서나, '미래'를 볼 줄 아는 밝은 눈의 선각자들이 헌신적으로 자신을 내던져 이뤄낸 혁명과도 같은 실천들을 통해 다시 한 번 어떤 가능성을 생각해봅니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해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의 농촌, 그리고 몰락해가는 '마을'과 공동체의 가능성을 꿈꿔봅니다. 중요한 것은 무조건 따라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현실'에 걸맞은 가능성을 찾아가는 일이겠지요. 츠마모노는 그야먈로 요리의 장식성을 중시하는 일본 음식문화에서 가능한 사업이 아니겠어요. 가미가츠와 같은 환경이라 해도 우리나라의 산촌은 츠마모노가 아닌, 분명 한국의 현실에 맞는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하겠지요.

이 책이 제시하는 것은 분명합니다. 성공의 아홉 가지 조건에서 제시했듯이, 답은 늘 현장에 있고, 주민들의 눈높이에 맞는 사업이어야 하고, 정보는 열려 있어야 하는 등 확실한 지침도 내려줍니다. 심장에 인공 보조물을 달고도 여전히 열정적으로 가미가츠를 위해 뛰어다니는 요코이시 씨의 바람처럼, 이 세상 모든 나라의 마을들이 각자의 현실과 환경에 맞는 건강한 일을 찾아내고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행복해지는 그 길을 찾을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커먼 웰스 : 붐비는 지구를 위한 경제학
제프리 삭스 지음, 이무열 옮김 / 21세기북스 / 2009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금까지 지구 환경과 경제는 별로 관계가 없는 것으로 여겨져왔고, 경제 개발론자들은 경제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환경 파괴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버릇처럼 되뇌었다. 그 반대편에 선 사람들, 흔히 환경론자 또는 생태주의자로 불리는 이들은,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경제고 나발이고 모든 것이 다 끝장날 것이라고 경고해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환경주의자와 생태주의자들의 경고가 맞다. 환경은 단순히 맑은 물, 깨끗한 공기, 건강한 삶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지구 환경은 곧 인간의 생존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는 것을, 이 책 [커먼 웰스-붐비는 지구를 위한 경제학]은 조목조목 얘기하고 있다. 

처음 책을 접할 때만 해도 별로 기대하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경제학자가 보는 지구는, 경제론자들의 시각과 별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물며 제프리 삭스가, 지구를 망치는 가장 큰 주범인 미국이 모국인 사람임에랴. 하지만 내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단 몇 장으로도 충분했다. '지구=착취, 개발, 이용의 대상'으로 보는 시각을 당장 바꾸지 않으면 정말 돌이킬 수 없는 멸망에 이를 것이라고, 제프리 삭스는 주장한다. 그의 목소리는 절박하고 애처롭다. 그는 애타게 호소하고 있다. 우리 모두 위기를 인식하고 변화해야 한다고. 실천해야 한다고. 그리고 대다수의 보통 사람들이 일어나 정부를, 국가를, 아울러 전 세계를 움직이게 해야 한다고. 

나는 이 책을 통해 전혀 상관 없다고 생각했던 지구와 경제가 어떻게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지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스스로 어설픈 생태주의자라고 생각하며, 나름대로 생태적인 삶을 실천하려고 했던 노력들이 얼마나 좁은 시야에서 비롯된 행동이었는지도 깨닫게 되었다. 문제는 전체다. 어느 한 개인, 한 나라가 아니라 지구 전체의 문제인 것이다. 인간의 삶과 지구의 관계를 뼈저리게 느끼게 해주었다는 것만으로 이 책은 훌륭하다. 단순히 개발 반대로서의 환경 보호가 아니라, 단순히 인간만을 위한 경제발전의 환상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삶이 곧 지구의 운명과 이어져있다는 놀라운 깨달음을 주는 책.

1800년, 화석연료를 발견하면서 인류가 폭발적으로 늘어났고 인간이 자신을 둘러싼 환경을 이용하고 관리하면서 경제 규모가 비교할 수 없을만큼 커지고, 유럽-미국-중국(아시아) 순으로 경제 중심이 바뀌는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몇 가지 사실이 나타난다. 지구가 감당할 수 없을만큼 늘어난 인구, 위험 문턱에 다다른 환경, 뜨뜻해져버린 지구, 무분별한 개발과 활용으로 바닥이 나버리는 모든 것들-화석 연료, 땅, 농작물, 삼림, 바다, 하늘까지-, 우리 인간들이 지금과 같은 속도로 경제활동을 계속해나간다면...상상도 할 수 없을만큼 무시무시한 일이 벌어질 것이라는 암울한 예언들.

그러나 묵시록을 떠받드는 종말론자들처럼, 손놓고 멍하니 '그날'을 기다릴 것인가? 제프리 삭스는 촉구한다. 지금 당장 전 지구의 협력과 공동 행동이 필요하다고. 그것으로 멸망을 막을 수 있다고. 그것은 나라와 나라가, 대륙과 대륙이 손을 잡고 해내야만 하는 힘겨운 실천이다. 아프리카의 인구를 안정시키고, 온실가스를 줄여서 지구 온난화를 막고, 가난한 나라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기술과 원조를 적극 활용해 국제 사회가 함께 돕는 것.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해온 것들이고, 어린아이들도 생각할 수 있는 방법이다. 그러나 부와 권력, 기술을 거머쥔 대자본과 몇몇 제국들은 달가워하지 않는 방법이기도 하다. 

어느 생명이 멸종하는 것이 인간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믿거나, 우리나라의 국민소득이 높아진다면 다른 나라 국민들이 굶어죽거나 말거나 상관없다고 생각하거나, 잘 살고 못 사는 것은 타고난 것이기 때문에 도와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지 않아도 좋겠다. 그러나 단 한 번이라도, 나를 둘러싼 이 지구의 미래에 대해 생각해본 이라면, 멸종 위기에 처한 북극곰의 운명에 마음 아파본 이라면, 먹을 것과 약이 없어 태어나자마자 죽어가는 어린 생명들에 눈물 흘려본 이라면, 이 책은 하나의 울림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시인과 스님, 삶을 말하다
도법.김용택 지음, 이창수 사진, 정용선 정리 / 메디치미디어 / 2009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처음에는 좌담인줄 알았어요. 도법 스님과 김용택 시인. 문학과 종교에서 일가를 이룬 두 동갑내기가 어떤 흥미로운 이야기를 나누었을지 무척 궁금했답니다. 뚜껑을 열어보니 좌담이 아니더라고요. 한 주제에 대해 같은 자리에서 주거니받거니 이야기와 생각을 나누는 좌담의 형태가 아니라서 사알짝 서운하긴 했지만 그래도 다른 데서는 듣기 힘든 두 분의 이야기를 깊이 있게 들을 수 있어 무척 좋은 시간이었답니다. 시인과 스님이 자신의 이야기를, 자신의 삶과 문학과 생각과 세계관을 주욱 펼쳐놓고 있어요. 사실 두 분은 간접적으로만 접할 수밖에 없었지요. 김용택 시인은 시와 글로, 도법 스님은 실상사를 둘러싼 귀농생태환경의 뉴스들로만 보았답니다.

이 책을 보면 김용택 시인이 어떻게 시인이 되었는지, 도법 스님이 어떻게 출가를 하고 종교와 삶을 일치시키는 참불교에 이르게 되었는지 알 수 있답니다. 마치 따뜻한 아랫목에 둥그렇게 둘러앉아 차 한 잔을 앞에 두고 조곤조곤 이야기나누는 기분이었어요. 고즈넉하고 평화로운 산사에서 듣는 어른들의 이야기는, 결코 진부하거나 낡은 것이 아니라 새롭고 신선하면서도 깊은 울림을 주고 있어요. 김용택 시인은 태어나고 자란 진메마을에서 평생을 살며 아이들을 가르치고 시인이 되었습니다. 시인은 자신을 시인으로 만든 것이 '자연'이라고 얘기하고 있어요. 서로 돕고 함께 누리던 아름다운 시골공동체, 자연을 경외하고 거스르지 않으며 지혜롭게 살던 마을공동체의 파괴와 변화를 바라보는 시인의 안타까움이 고스란히 전해집니다.

스님의 삶은 또 어떻고요. 어린 시절 불심이 깊었던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자연스럽게 불자가 되는 것이 자신의 삶이자 운명이라고 받아들였고, 어린 나이에 출가해 진리와 참을 알기 위해 고민했던 시절, 10년 동안 참선에 들었다가 결국 깨달은 것은 '종교와 삶은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것'입니다. 불교가 대중의 삶에서 저 높은 곳에 떨어져 있는 작금의 실태를 안타까워하며 민중의 삶에 뿌리내린 불교, 가난과 자비를 실천했던 부처의 참살이를 따르는 불교, 권위와 권력을 내세우지 않는 불교를 다시 세우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실천하는 삶을 살아왔지요. 조계종 폭력사태를 참담한 마음으로 반성하며, 생명과 평화를 위한 진짜 불교를 실천하기 위해 스스로 몸을 낮추는 스님의 삶은 참 많은 것을 이야기해줍니다.

두 분의 삶, 두 분이 걸어온 길은 다르지만 결국 하나로 모아지지요. 그것은 곧 생명, 사랑, 평화, 자연입니다. 생명 있는 모든 것들의 존엄을 지키고, 인간이 인간을 스스로 파괴하는 이 파괴적인 개발을 막고, 신음하며 피흘리는 자연을 어루만져주는 것. 그것이 두 분이 평생을 걸고 지키고자 하는 신념이자 실천인 것이지요. 시인은 시로, 스님은 종교로. 두 분에게 시와 불교는, 직업을 뛰어넘어 자신의 존재를 치열하게 내건 싸움이자 사랑입니다.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이 참 따뜻해졌어요. 위로 받는 느낌이었어요. 등을 따뜻하게 쓸어주는 손길, 괜찮다 다 괜찮다 하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손길을 느꼈답니다.

삶이 곧 교훈이 되는 사람은 흔치 않겠지요. 제아무리 유명한 인물, 정치인, 기업가라 해도 누군가에게 잔잔한 울림을 주기는 힘들 거예요. 그런 면에서 두 분의 삶은 길고 긴 여운을 남깁니다. 조금 더 낮추고 조금 더 버리고 조금 더 겸손하게 살아야겠구나, 해치지 않고 파괴하지 않고 조심조심 살아야겠구나. 모든 것들을 존중하며 평화로이 살아야겠구나. 다시 한 번 다짐해봅니다. 비록 다짐일뿐이라도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고등어를 금하노라 - 자유로운 가족을 꿈꾸는 이들에게 외치다
임혜지 지음 / 푸른숲 / 2009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웃음/감동/부러움/공감/한숨/희망/절망/시기/질투...

책을 읽는 내내 이런 생각과 감정들이 끊이질 않더군요.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이 사람들, 정말 사는 것 같이 사는구나. 이게 진짜 사람 사는 모습이로구나'였습니다. 가족이라면 허구헌날 모여서 부모는 돈 얘기로 다투고 자식들 성적 갖고 들들 볶고, 어디 땅이 올랐나 집값이 떨어지나만 혈안이 되어 오직 자기들끼리 잘 먹고 잘 살려고 똘똘 뭉쳐 사는 것이 '대한민국 표준 가족'의 모습인 줄만 알았는데, 세상에는 이렇게 사는 가족도 있더군요. 자기비하는 발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겠지만, 새삼 죽으나 사나 '경쟁, 성과, 성공, 돈'에만 눈들이 벌건 대한민국의 꼬라지에 그저 한숨이 나올 수밖에요.

아울러 사람답게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가는 독일사회에 대한 선망과 부러움, 68혁명을 통해 '인간이 주인되는 사회'와 '기회의 평등을 위한 교육 개혁'을 만든 토대가 너무너무 부러웠습니다. 독일뿐이겠어요. 적어도 이 책에 나오는 선진국은 우리 머릿속에 담긴 '1인당 국민소득=선진국'이 아니라, '사람이 사람을 해치지 않고, 못났다고 버리지 않고, 약자를 보듬어 함께 살아가는 나라'임이 분명해졌습니다. 국민소득 2만 달러, 5만 달러, 10만 달러가 된들, 우리 마음과 정신이 비뚤어질대로 비뚤어졌다면 무슨 소용일까요. 갓난아기 때부터, 유치원 때부터, 남을 짓밟고 올라서는 법을 자장가처럼 주입받으며 살고 있는 흉측한 우리의 자화상이 너무도 암울해서 한숨을 몇 번이나 쉬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얘기할 사람들도 있을 거에요. '그게 뭐 어쨌다고? 독일이 별거냐? 우리는 우리 식대로 잘 먹고 잘 살면 되는 거 아니냐? 오바마도 감탄한 한국 교육의 힘을 보아라!'라고요. 근데 아무리 눈가리고 아웅, 해도 아닌 건 아닌 거잖아요. 우리가 그렇게 살고 있다고 해서, 그게 다 옳은 것은 아니잖아요. 변화의 기미도 희망도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그저 체념하고, 납작 엎드려서, 사람들 눈치나 보면서 그렇게 사는 것이 제대로 사는 것은 아니잖아요.

책을 읽는 내내 '그래. 문제의 시작도 해답도 교육이야'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의 독일을, 그나마 합리적인 이성과 사람에 대한 배려가 살아있는 사회로 만든 것도 바로 교육이고, 우리 사회가 요 모양 요 꼴로 돌아가는 것도 바로 잘못 된 교육 때문. 사교육을 때려잡네 마네, 공교육을 살리네 마네 아무리 지랄을 해봐도, '교육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 이상, 절대로 뿌리부터 변할 수는 없을 겁니다. 이명박 정부가 갖고 있는 교육관은 대체 뭘까요? 삽질 잘하는 인력 양성? 땅 파고 건물 짓는 인재 양성? '교육을 솎아내는 것'이라고, 몇년 전 어느 어처구니없는 인사가 말했다는데, 지금 우리나라의 교육은 그야말로 새싹에서부터 솎아내는 작업이죠.

일제고사로 걸러내고, 고교등급제로 솎아내고, 외고특목고로 걸러내고, 수능으로 솎아내고...이렇게 '불량품/하자품/미달품'을 걸러내고 또 걸러내면, 과연 마지막에 뭐가 남을까요? 흠 없고 티 하나 없는 완벽한 인간? 사다리의 끝은 서울대 수석입학생 딱 한 명이겠죠. 경쟁에서 승리한 완벽한 인간. 이명박 같은? @@ 생각만 해도 뇌세포가 파괴되는 기분이 드네요. 절망적입니다.   

지은이에게 편지를 보내고 싶어 책을 뒤졌지만 이메일 주소가 나오지 않더군요. 편지를 보내고 싶어졌어요. 어떻게 하면 이렇게 살 수 있을까? 이렇게 자신의 욕망과 신념에 충실하면서, 나와 다름 사람을 보듬으면서 살 수 있을까? 그저 놀랍고 존경스러울 따름입니다. 단순한 '이상'이 아니라, 현실이기에 더더욱. 말과 생각은 누구나 할 수 있지요. 옳다고 생각하기는 쉽지요. '옳지만, 내가 실천하기는 어려워. 나 대신 누군가 하겟지.'라고 우리 모두 생각하며 미적거리고 도망치고 있을 때, 올바른 실천과 이상을 삶에서 풀어가는, 그 어려운 일을 해내고 있는 '괴짜가족'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어떻게든 괴짜 엄마의 이메일 주소를 알아내고야 말겠어요. 그래서 나중에 독일에 다시 갈 일이 생기면, 꼭 연락 드려 만나보고 싶네요. 한 번만 안아달라고 응석 부리고 싶어요. 그리하여 엄마의 그 뜨거운 정열과 기운을 받고 싶어요. 빠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인생, 어찌하면 좋을까요? - 안젤름 그륀 신부의 人生에 대한 일문일답
안셀름 그륀 지음, 송명희 옮김 / 열음사 / 2009년 9월
평점 :
절판


결국 문제는 '나 자신'입니다. 그것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겠지요. 마음 같지 않게 엇나가는 자식 때문에 한숨과 눈물로 지새는 부모도, 이루어지지 않는 사랑 때문에 가슴 찢어지는 고통으로 식음 전폐하고 있는 여자도, 자기 마음과는 상관없이 나쁜 사람으로 낙인 찍혀 인간관계가 엉망으로 헝클어진 남자도, 모두 알고 있을 것입니다. 문제는 결국 나 자신이라는 것. 문제의 시작도 문제의 끝고 나 자신이라는 것. 그런데 그 사실을 알고 있다고 해서 모든 것이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어떻게?'라는 문제가 또 남지요.

이 책 [인생, 어찌하면 좋을까요?]에는 부모자식/회사생활/인간관계/자신에 대한 자신감 부족 등으로 괴로워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실려있습니다. 상담이 필요한 시대라고들 하지요. 누구는 너무 너무 우울해서, 누구는 자기 이야기를 들어줄 단 한 사람이 필요해서, 또 누구는 자기 스스로 도저히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것 같아서 누군가를 필요로 합니다. 그것이 정신과 의사일 수도 있고, 상담심리사일 수도 있고, 친구나 연인일 수도 있고 때로는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온라인 속 타인일 수도 있겠지요. 오랜 세월 상처 입은 영혼들의 '상담자' 역할을 해온 안젤름 그륀 신부가 전해주는 이야기들은 어디 먼 나라 사람들의 경우가 아니라 바로 여기, 내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신부님이 사람들의 고민을 듣고 이런저런 조언을 해주면서 느낀 하나의 결론은 '해결책이라는 것은 결국 각자가 찾는 것'이라는 확신입니다. '내 말대로 하면 반드시 괜찮아질 것'이라고 이야기하지 않지요. 문제의 해결은 곧 문제를 품은 그 사람이 변해야만 가능하다는 믿음이 신부님 상담의 기본 조건입니다. 신부님이 오랜 세월 품고 있는 상담에 대한 신조는 '좋은 충고는 눈과 같아서 소리없이 내릴수록 더 오래간다.'는 핀란드 속담인데요, 서문에서 밝힌 이 속담에 저 또한 머리를 끄덕끄덕 했답니다.

그래요. 우리는 얼마나 그동안 충고라는 이름으로 남에게 억지로, 빨리 변할 것을 강요해왔던가요. 그 사람이 처한 상황과 마음 상태를 살피지 않은 채 지금 당장 그 자리에서 떨쳐 일어나라고 강요해왔던가요. 반성이 되더군요. 사랑 또는 애정, 관심이라는 이름으로 마음 다친 그들에게 섣불리 충고하고 비판하고 결단을 강요해왔던 지난 날이요. 지켜봐주는 것. 말없이, 오래 오래, 믿음을 갖고 옆에 있어주는 것이야말로 가장 좋은 충고이자 조언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살면서 만나는 수많은 문제들에 즉각 해답을 내릴 수는 없겠지만, 그럴 때면 책에 나온 내용들을 떠올려 보게 될 것 같아요. 이 상황에서라면 그들은? 나는? 어떻게 하는 것이 나에게도 타인에게도 아름답고 지혜로운 일일까를 고민해보게 될 것 같아요. 문제는 결국 '나'를 알고, 나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 그래야 나를 둘러싼 사람들에게도 세상에게도 진심으로 다가갈 수 있을 테니까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