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빠지는 비밀 심리학 - 지속가능한 연애를 꿈꾸는 당신에게
폴 도브란스키 지음, 나선숙 옮김 / 이레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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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우주가 나를 중심으로 돈다는, 중세 천동설보다 더 지독했던 믿음의 오류로 똘똘 뭉쳐 있던 20대에는 세상 그 무엇도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이 없었다. 모든 것이 다 내 맘대로였고, 좌절이나 실망 같은 건 내 사전에 없는 말이었다.(지금 생각해보니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다. 왜냐고? 내 뜻대로 되는 일만 골라서 했으니까! 내가 어찌해 볼 수 없는 어려운 일 같은 건 아예 쳐다보지도 않았으니까! @@) '내맘대로 생각대로'의 범주 안에는 당연히 연애도 포함되었는데, '다다익선'이라는 신념 아래 닥치는대로 연애를 했고, 내 20대는 '연애생활자의 삶'이었다. 20대 때 내 연애는 늘 현재진행형이었다.(여기서 '닥치는대로'란 아무하고나 발정난 짐승처럼 연애를 했다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가는 상대가 생기면 주저없이 달려들어 마음을 표현하고 그 상대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기를 썼다는 말이다.)

단언컨대, 내 20대는 연애의 시대였다. 모든 에너지가 연애에 향해있었다. 연애로 행복했고, 연애로 아팠으며, 한 연애가 끝나자마자 어느새 다른 연애가 찾아왔다. 제대로 된 연애(란 몸과 마음이 함께 움직여주는, 스스로 생각하기에 '나 진짜 연애하고 있구나'라는 마음이 드는, 주위 사람들도 다 아는 공식적인 연애. 한두 달 짧게 왔다 사라지는 것은 연애가 아니라 바람이라 생각했기에, 연애 지속 기간도 적어도 1년 이상은  되어야 했다. 모름지기 한 사람과 만나 봄-여름-가을-겨울 4계절은 함께 보내야 연애라고 할 수 있다고 믿었다.)를 몇 차례 겪으면서 훌러덩 세월이 흘렀고 30대가 되었고, 연애 또한 계속 되고 있다.

연애 말고도 중요한 것들-일, 친구,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 취미들-이 생기면서 연애가 주춤 뒤로 물러난 적도 있었으나, 내 삶에서 연애는 여전히 중요한 부분으로 자리하고 있다. 연애는 그만큼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연애만큼 사람을 성숙하게 해주는 일이 또 있을까? 연애만큼 흥미진진하고 스릴 넘치고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장르가 또 있을까? 연애만큼 복잡한 고도의 프로젝트가 또 있을까? 연애만큼 기기묘묘하고 스펙터클한(하루에도 열두 번씩 천국과 지옥을 오르내리고 기쁨의 산에 올랐다가 순식간에 절망의 나락으로 곤두박질치는) 놀이동산이 또 있을까? 뭐 아니랄 사람도 물론 있겠지만, 나에게 연애란 이런 것이다. 그리하여 내 꿈은 평생 좋은 연애를 하면서 사는 것. (하지만 어려운 일이다.)

20대 때는 연애가 '그저 열심히, 진심을 다해, 열과 성을 다해' 부딪치면 되는 것이라 생각했다. 좋으면 좋은대로, 싫으면 싫은대로 솔직담백하게 부딪치면 상대에게 그 진심이 통할 거라 믿었고, 전략이나 잔머리는 애초에 내 몫이 아니라 생각하며 살았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성공한 연애 말고도 중간 중간 터무니없이 실패한 연애들이 있었는데, 지금까지는 연애 실패의 원인을 '내 가치를 몰라본 덜떨어진 남자들의 탓'으로 돌려왔다. 그게 마음 편했으니까. 그야말로 '파충류의 뇌'로 무작정 들이밀고 부닥치기만 하는 연애였던 셈이다. 왜 실패했는지, 왜 솔직함에 대한 대답이 그리 실망스러웠는지, [사랑에 빠지는 비밀 심리학]을 읽고 나니 어렴풋이 알 것 같다.

철저히 여성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 전략을 짜고 머리를 쓰는 것은 여성이고 남성의 역할은 크게 부각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처음 이 책은 읽기가 무척 괴로웠다. 읽다 보니 이거 이거, '괜찮은 남성을 낚아채기 위해서 여자는 예쁘고 섹시하고 날씬한 데다가 머리까지 좋고 착하고 사려깊기도 해야 한다'는 어처구니없는 '슈퍼우먼 콤플레스'의 주장 아닌가 싶었고, 군데군데 지은이의 '마초적인 시선'이 노골적으로 읽혀(자신은 마초도 페미니스트도 아닌 휴머니스트라 밝힌 것은, 어느 정도 이런 혐의에서 벗어나려는 수작 아닌가 싶기도 했다) 책을 집어던지고 싶은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초반의 그 괴로움을 꾹 참고 견디며 책을 읽어나가다보니, 조금씩 '그래 맞아. 그렇군. 바로 이거야.' 싶은 대목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지은이가 하고 싶은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남자는 어리석고 바보같은 동물이니, 무조건 오냐오냐 맞춰줘야 한다는 거야? 남자는 무조건 여자 하기 나름이란 거야?'라는 처음의 삐딱한 시선을 걷고 보니, 노력해야 하는 것은 여자 남자 마찬가지이고, 연애란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희생과 노력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파충류 뇌'/'포유류 뇌'/'고차원 뇌' 3가지 뇌는 여자 남자 모두에게 있고, 이 세 가지 뇌가 조화롭게 잘 작동해야 성적 끌림-우정-헌신의 단계로 무사히 넘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사랑에 빠지는 비밀 심리학]은 연애를 앞둔, 연애를 하고 있는 이들에게 '어떻게 하면 연애를 잘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서로 상처 주거나 받지 않고, 섣부른 행동과 그릇된 오해로 연애를 망치지 않고 오래 오래 잘 해나갈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을 던져주는 책이다.

책에 나오는 여러 정신분석학에 바탕한 업계 용어들에 지레 겁먹거나, '나 이런 거 어려워' 하며 그냥 되는 대로 연애 하다 말래, 하지 말고, 편한 마음으로 찬찬히 읽어가다 보면 자신에게 필요한 지점을 만날 수 있을 거라 본다. 소통이 힘든 연인에게는 소통하는 방법을, 연인이 썩 괜찮은 사람이 아니라는 걸 진즉 깨달아놓고도 마음이 모질지 못해 헤어지지 못하고 있는 못난이에게는 헤어짐의 확신을, 자신의 연애 성향을 몰라 번번이 연애의 멘홀에 빠지는 헛똑똑이에게는 '나는 어떤 연애를 하는 사람인가' 하는 고민을 던져주는 책이랄까.

나 또한 책을 읽으며 '섹스 앤 더 시티'의 네 주인공들과 비교해 내 연애 패턴과 연애 방식을 새롭게 깨달을 수 있었고, 지금의 연인과 더 좋은 연애를 하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몇 개의 힌트를 얻었다. 그것만으로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도깨비 방망이처럼 연애 나와라, 뚝딱! 하는 책이 아니라, 고민하고 노력하는 실마리를 제공하는 책이다. 연애 비법이 아니라, 더욱 중요한 기본은 연애에 임하는 나와 그의 자세, 그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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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 길 위에서 펼쳐지는 마이너리그의 향연 - 고미숙의 유쾌한 임꺽정 읽기
고미숙 지음 / 사계절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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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워라 임꺽정

책 표지를 열어 첫 장을 읽기 시작하자마자 벽초의 소설 <임꺽정>이 다시 읽고 싶어졌다. 얼른 책장으로 뛰어갔다. 아뿔싸, 10권짜리 <임꺽정>이 보이질 않는다. 털썩-좌절해 무릎 꿇고 말았다. 기증해버린 것이다! ㅜㅜ 작년 겨울 이사를 하면서 독하게 마음먹고 책 1백여 권을 마포에 있는 '민중의 집'에 기증했는데, 그 안에 <임꺽정>도 들어있던 것이다. 이런 젠장...통크게 기증해놓고 쪼잔하게 다시 찾아올 수도 없고...꺽정이처럼 꺼이꺼이 울고 싶었다. 다시 사야 하나 말아야 하나. 누가 또 기증해주면 좋으련만. 쩝.

 

고미숙표 글쓰기

[임꺽정, 길 위에서 펼쳐지는 마이너리그의 향연]은 고미숙만이 쓸 수 있는 책이다. 자신의 이름을 걸고 글을 써서 책을 펴내는 사람을 일반적으로 작가라 하고, 어떤 책을 써내느냐에 따라 평범한 작가, 개성있는 작가로 나눈다고 할 때 고미숙은 그야말로 개성있는 작가다. 그 누구도 쓸 수 없는, 그 누구도 쓰지 않는 글을 쓰는 작가. 그동안의 다양한 고전 읽기 작업을 통해 '고미숙표 책'의 영역을 확고히 했다. 책에서 밝힌대로 표창의 달인, 칼의 달인, 활의 달인인 꺽정이 패거리처럼 '고전을 엎어치고 메쳐서 책 하나 뚝딱 만들어내기'의 달인인 셈이다.

 

홍명희는 천잴세

애초 출판사에서 원했던 것이 [임꺽정, 길 위에서 펼쳐지는 마이너리그의 향연]을 통해 사람들이 소설 임꺽정을 읽도록 하는 것이었다면, 어느 정도는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나처럼 이미 임꺽정을 읽은 사람도, 책을 읽는 내내 임꺽정을 다시 읽고 싶어 몸이 들썩들썩했으니 말이다. 인용한 한 구절 한 구절마다 어찌나 '재미지던지', 새삼 한국문학사의 천재로 불린 벽초 홍명희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알겠다. 우리 입말이 고스란히 살아있는 문장, 펄펄 살아 뛰는 현재형의 문장, 당장이라도 그 안에서 꺽정이와 운총이가 뛰어나올 것같이 생생한 문장. 홍명희는 진정한 문장가요, 대가다.

 

과거현재 크로스

고미숙은 책에서 끊임없이 임꺽정의 시대와 현재를 비교한다. 주인공들의 태생, 가족관계, 일을 대하는 태도, 배움과 사귐에 임하는 자세, 공동체가 굴러가는 방식, 돈을 바라보는 시선, 세계관과 우주관까지 비교의 대상이 된다. '역사는 진보한다'는 누군가의 믿음을 비웃기라도 하듯, 꺽정이 시대에서 더 나아지지 않은(오히려 형편없이 뒤떨어진) 삶이고, 세상이다. 배움의 즐거움 따위 학벌주의에 잡아먹힌 지 오래고, 전국 팔도를 굴러도 굶지 않을만큼 탄탄하던 공동체정신은 '부부와 자식새끼만 잘 먹고 잘살려고 아등바등하는' 가혹한 자본주의 핵가족 경제로 탈바꿈했다. 

 

나쁜것만 남았어

우정, 의리, 몸으로 부딪치는 사랑 등 '사유와 행위에 손톱만큼도 간극 없던 아쌀한 시대정신' 또한 온갖 잔머리와 계산, 한치도 손해 보려 하지 않는 얍삽함(누구는 합리라 하고 실리라 하는)에 자리를 내주었다. 그야말로 오호, 통재라. 할밖에. 그러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 어떻게 하면 우리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온갖 나쁜 것들로부터 조금이라도 떨어질 수 있을까? 이 나라를 떠나는 것? 돈을 벌지 않고 굶음으로써 자본에 대항하는 것? 어떻게 하면 꺽정이네 패거리처럼 즐겁고 호방하게,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한편 삶을 치열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

 

현실을 어쩔까나

어떻게 하면 그들처럼 치열하게 사랑하고 미친 듯이 놀고 배우며 살 수 있을까? 그 해답을 얻을 수 있을까 하여 부푼 가슴을 안고 책을 읽어나갔는데, 쫌 이상하다. 좋게 말하면 열린 결말이고 못되게 말하면 똥 누고 밑 안 닦은 기분이랄까. 계몽하거나 가르치지 않고 있으니 말이다. 또 하나 갸웃거려지는 지점은, 88만 원 세대라는 말도 눈물 겨운 국민 절반이 비정규직인 시대에 '청석골 두령들처럼 정규직에 목매지 말고 즐겁고 자유롭게 살아라'라는 게 설마 고미숙이 얘기하고픈 결론일까 하는 것. 현실을 어쩌고? 비정규직 하고파서 하는 게 아니고, 80만 원 받고 싶어서 받는 게 아닌, 그마저도 언제 잘릴까 몰라 전전긍긍 애면글면하는 노동대중들의 이 끔찍한 현실은 어쩌고?

 

각자의 방식대로

도둑이긴 했으되 혁명이나 사회 개혁 따위에 관심 없던 꺽정이처럼 우리도 그냥 '뒤틀린 사회 구조'를 깨부수기 위한 그 어떤 작업도 하지 않은 채 그냥 살아야 하는 걸까? 그건 또 아니란다. 고미숙 일파는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방식대로 '즐겁고 유쾌하게 이 지리멸렬한 자본주의를 떠나 사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단다. 그리고 또 우리들에게, '니들 하고픈대로, 니들 생긴 모양대로, 스스로 공부하고 생각하고 깨달'으랍신다. 끊임없이 배우고 모색하고 고민하는 것, 그것이 처음이고 마지막이란다. 그렇게 하여 나를 알고 세계를 알면 길이 보일 거란다. 청석골의 호쾌한 자유분방함이 어떤 형식으로 가능할지 '연구공간 수유+너머' 식구들이 보여줄 세계가 궁금하고, 또한 책을 읽은 이들이 어떻게 '청석골 마인드'와 '접신'할지 몹시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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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인체 상식 여행
북타임 편집부 엮음 / 북타임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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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의학으로는 도저히 고칠 수 없는(하긴 현대 의학으로 고칠 수 없는 병이 어디 그리 많은가 -0-) 지병을 앓고 있다. 이른바 '기능성 위장장애'라는, 기기묘묘하고 껄쩍지근한 이름의 병인데, 위에 특별히 이상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염증이나 궤양 등 딱 떨어지는 질병이면 차라리 속시원하련만) 지독히도 기능을 잘 못해 소화력 꽝에 조금만 수틀려도 트림에 딸꾹질, 끊임없는 뒤틀림으로 하루에도 몇 번씩 괴로운 그런 병이다. 내시경도 두 번이나 했지만 결론은 늘, '특별한 이상은 없으나 위가 소화를 잘 못시키니 음식 조심하시고요~' 정도다.

한의원에서 침을 맞으면서 증상이 조금 나아졌나 싶은데, 여행이다 출장이다 자주 다니면서 침을 좀 끊었더니 요새 다시 속이 뒤틀려주신다. 환장한다. ㅜㅜ 먹는 것 조심하는 것만큼 괴로운 일도 드물다. 조금만 속이 비어도 속이 그악스럽게 뒤틀리기 때문에 밖에 오래 나가있을 때는 가방에 먹을거리를 준비해야 한다. 배고프다고 보채기 전에 달래주어야 하기 때문에.

사람의 몸이 기계 부품처럼 어느 하나만 갈아주면 다시 멀쩡해지고 그런 것이면 좋으련만, 사람은 살아있는 생명체, 노래처럼 '머리-어깨-무릎-발-무릎-발'이 죄다 어떤 식으로든 이어져있는 '유기체'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은 자주 찾아온다. 위장장애가 단순히 위만 아픈 것이 아니라는 깨달음. 소화를 못시키면 당연히 장도 안 좋아지고 트림이 잦다 보니 목도 칼칼하다. 체했을 때 손바닥 발바닥을 누르면 또 어찌 그리 아픈가. 등줄기를 찌르르하게 흐르는 통증은 또 어떻고.

'과도한 건강염려증'과 '몸에 대한 무지' 사이에서 하루에도 열두 번씩 길을 잃는 것이 요즘 사람들이 아닐까 싶다. 이 증상은 저 병이고 이 병에는 저 음식이 좋고 어쩌고 저쩌고...쏟아지는 각종 '의학정보'들만 그대로 따르면 무병장수 2백 살까지도 거뜬히 살 수 있을 것 같지만 실상이 어디 그런가. 먹는 거, 입는 거, 우리가 사는 환경 자체가 건강을 꿈꿀 수 없도록 이미 작동되고 있을지도 모르는 것을.

<재미있는 인체상식여행>은 우리가 다 지니고 있으면서도 늘 잊고 있는 '몸'에 대한 소소한 부분들을 일깨워주는 책이다. 이 책은 거대한 의학 정보로 꽉 차있지도, 백세 장수의 비결을 품고 있지도 않다. 어쩌면 주류 의학계나 건강 분야에서는 평생 다루지 않을 '사소하고 시시껄렁한' 몸의 이야기들, 궁금하면서도 해답을 찾기 어려운 내용을 풀어내고 있다. 가령 왜 매운 음식을 먹을 때면 땀이 나는지(늘 궁금했다! 꺄오~ ><), 머리를 부딪치면 왜 혹이 볼록 솟는지(정말 궁금했다! ㅜㅜ), 흰머리는 왜 나는 것인지, 차를 타면 왜 졸린지 등등.

책에서 결정적인 도움을 받기도 했다. 며칠 전 크게 체해서 고생한 적이 있는데, '밥과 뜨거운 목욕의 관계' 편을 보니 내가 왜 아팠는지 알겠더라. 앞으로는 밥 먹기 전, 밥 먹은 뒤 바로 샤워나 목욕하지 말아야지, 굳게 결심하기도. 그리고 또 하나. 어릴 때부터 늘 밥 먹으면 드러눕는다고 '소 같은 것!'이라 많이 놀림 받았는데, 책을 보고 계속 드러눠있어도 되겠다는 용기를 얻었다. 소화를 돕기 위해서는 밥 먹고 나서 옆으로 누워있는 편이 좋다는 것. (꺄오~선견지명이...><) 단, 잠들면 안 된다. 자면 소화 작용이 멈춰버리므로.

한 번쯤 읽고 내 몸에 대해, 몸을 둘러싼 사소하고도 중요한 것들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도 좋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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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 록밴드를 결성하다 - 사는 재미를 잃어버린 아저씨들의 문화 대반란
이현.홍은미 지음 / 글담출판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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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 록밴드를 결성하다>를 읽는 데 1시간 가량밖에 걸리지 않았다. 이렇게 빨리 읽히는 책은 두 종류다. 무척 재미있어서 책장이 휙휙 넘어가거나 너무 재미없어서 설렁설렁 대충 넘어가거나. 안타깝게도 이 책은 두 번째 경우다. 눈길을 확 끄는 제목과 깔끔한 디자인이 아까울 정도로 내용이 부실해서 읽는 내내 어이쿠, 이런, 하는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책의 큰 틀은 이렇다. 1부-새로운 취미에 빠진 40, 50대 남성들과의 인터뷰 / 2부-피부미용, 성형, 옷, 와인 등 40, 50대 남성들에게 권하는(실제로는 강요하는) 트렌드 소개. 남성들도 멋과 맛을 찾아 움직이는 시류를 타고 한몫 잡아보겠다는 의도가 빤히 엿보였달까. 내용이야 그렇다 치고 1부와 2부가 따로 노는 이 삐거덕거리는 느낌을 어쩔 것인가. 일과 성과에 치어 허덕허덕 살던 중년 남성들이 새로운 취미를 만나 인생의 즐거움과 삶의 생기를 되찾았다는 책의 기획에 충실했더라면 오히려 좋았겠다. 2부를 떼어내고 1부에만 집중했더라면 책 내용이 훨씬 알차질 수 있었을 거란 생각이 든다. 안타까운 것은 또한 여덟 명의 '취미생활자'에게서 어떤 절박함이나 진정성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 (이는 취재 대상자의 문제라기보다는 인터뷰를 풀어낸 글쓴이의 문제로 보인다.)

요트, 패러글라이딩같은 비교적 돈 많이 드는 취미 말고 진짜로 서민 중년 남성들이 할 수 있는 취미를 찾아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크다. 돈도 없고 시간도 없고 제대로 놀줄도 모르는 이 땅의 아자씨들, 쉬는 날이면 드르렁거리며 소파에 드러눠 처자다가 마누라한테 욕 바가지로 얻어먹는 아자씨들, 삼겹살에 쐬주 한 잔이 그저 보약이고 재미인 아자씨들, 어쩌다 자식들하고 좀 친해보려 얼쩡대다가 공부 방해된다고 쿠사리먹고 머쓱해지는 아자씨들,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이 땅의 아저씨들이 이 책을 읽는다면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까? "이야, 이사람들 정말 재미나게 사는걸? 나도 한 번 따라 해볼까?"라는 생각보다는 "어이쿠, 돈 많고 팔자 좋은 사람들 얘기네. 색소폰을 배우기는커녕 색소폰 연주 들을 여유도 없다규~"라고 하지 않을까?

이 책의 대상은 아무래도 한국의 보편적인 40, 50대가 아니라 비교적 성공한, 연봉이 꽤 높고 벌어둔 돈도 있고 집도 있는 중산층 이상의 남자들이다. 1부에 소개된 취미들과 2부에 나온 '꽃중년이 되기 위한 머스트해브' 등등을 연결해보니 알겠다. 비교적 넉넉한 아저씨들의 주머니를 열겠다는 그 마음은 가상하나, 여성잡지나 지하철 무가지 한 켠에 어울릴 법한 가벼운 트렌드를 늘어놓는 것으로 과연 아저씨들의 굳은 심지를 건드릴 수 있을까? 

책이 재미없게 된 또 하나의 큰 이유는 읽는 재미가 덜하다는 것. 이런 종류의 실용서가 가진 큰 미덕이어야 할 '글맛'이 없다. 소박한 즐거움이 없다. 읽다가 아무래도 이상해 들춰보니 아니나다를까, 지은이들이 스포츠신문 기자 출신이다. 스포츠신문을 싸잡아 비하하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가벼운 취재와 발빠른 글쓰기에 오래 젖어있다 보니 이런 글이 나올 수밖에 없겠구나 고개가 끄덕여진다. 신문의 글쓰기와 책의 글쓰기는 엄연히 다른 세계로구나, 하는 하나의 깨달음을 주었달까.

기획의 의도가 빤히 드러나는 실용서의 분명한 한계를 인정한다 해도 안타까움은 여전한다. 조금 더 진정성 있고 감동적으로 풀 수 있었을 내용들이 너무도 가볍게 다뤄진 듯해 안타깝다. 책에 계속 나오는 된장녀, 핸드폰, 와이프 같은 비표준어와 비속어들이 내내 거슬린 것도 그 때문이리라. 조금 더 고민하고 조금 더 숙고했더라면, 그랬더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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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기와 만다라 - 나를 찾아 떠나는 한 청년의 자전거여행
앤드류 팸 지음, 김미량 옮김 / 미다스북스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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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라기보다 군더더기 없는 하나의 예술작품이다'-책 뒤표지에 실린, 미국 필라델피아의 지역 매체쯤 될 거라 짐작되는 '필라델피아 인콰이어러'의 평에 나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군더더기 없는'의 대목에서는 잠깐 고개를 갸웃거리기도 했지만, 뭐 어떠랴. 몇 군데의 군더더기 정도, 가비얍게 무시해줄 수 있을 정도로 괜찮은 걸. 아니, 겨우 괜찮다니. 이 무슨 망발인가. 괜찮은 정도를 5만 배 정도 넘어 훌륭하다. 묵직한 감동과 울림을 주는 이 책, '메기와 만다라'는 예술작품이 맞다.  

지은이 앤드류 팸에게 우선 사과부터 해야겠다. 처음에는 그저 그런 여행기 하나를 세상에 내놓았나 했다. '운 좋은 미국 교포, 팔자 좋아 모국 여행-'의 기획인 줄 지레 짐작하고 읽기 전부터 사알짝 경계한 것도 사실이다. 그 동안 '여행기'라는 장르에 워낙 많이 덴 까닭이다. 세상은 넓고 여행할 곳은 많다. 지구 곳곳을 휘젓는 여행자들도 많다. 좋은 데 여행한 것으로 만족하고 멈춰주면 좋으련만, 여행지에서 맛본 얄팍한 감상을 주체하지 못해 쓰레기같은 여행기를 쏟아내는 이들이 적지 않다. '몇월 며칠에 어디 가서 누구랑 만나 맥주 먹고 놀았다. 풍경이 멋졌다. 감동 짱이다.' 따위의, 초등학생 그림일기도 못한 여행기를 읽다 보면 한숨이 나올뿐이다. 그 풍경들에게 내가 미안하다. 

'메기와 만다라'를 그저 그런 여행기 가운데 하나로 오해하게 된 데는 출판사의 실수가 크다. '진정한 나 / 청년의 자아 찾기 / 자전거 여행' 따위의 틀에 박힌 홍보라니. 책이 품고 있는 가치를 이야기하기에 홍보 문구가 너무 빈약하지 않은가. 이 책을 단순한 여행기의 범주에 넣는 것에 '난 반댈세-'이다. 잘 짜여진 한 편의 장편소설같고, 치밀하게 계산된 영화 시나리오 같기도 하다. 과거-현재가 날실 씨실처럼 촘촘히 엮여 빈틈없는 사유의 궤적을 그린다. 1975년의 베트남과 30년 뒤의 베트남이 무리 없이 녹아드는 과정에서 나는, 앤드류와 숨가쁜 시간여행을 즐겼다. 

그는 답을 알고 있었으리라. 지은이는 자신의 '자아'를 결코 베트남에서 찾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리라. 생에서 가장 중요한 10대 사춘기 시절과 20대의 청춘을 미국에서 보낸 그가 아니던가. 그는 영어로 말하고 영문을 읽고 햄버거와 콜라를 먹고 미국식 사고와 미국식 관계에 익숙해져있는, 그야말로 미국인이다. 누구보다 그 사실을 잘 아는 그가 새삼 베트남으로 떠난 것은, '잃어버린 나'를 찾기 위해서가 아니라 '지금의 나'를 확인하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자신은 미국인이라는, 미국인으로 살 수밖에 없다는 그 뼈저린 현실을 인정하기 위해서.

이 책이 가진 여러 가지 훌륭한 점에도 불구하고 오리엔탈리즘의 폭력적인 시선이 느껴져 가끔, 몹시 불편했다. 그 시선은 베트남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부터 계속된다. 질서 따위는 무시한 채 우왕좌왕 자신만 생각하는 고향 사람들을 경멸어린 시선으로 보고 있는 앤, 사기와 가난이 생활이 되어 비참한 삶을 살아가는 그들을 측은하게 바라보는 앤, 그리고 그런 자신의 시선을 느끼며 당혹해하고 혼란스러워하는 앤. 책 속에는 날것 그대로의 베트남을 직접 부딪쳐 체험하며 느낀 기쁨, 절망, 위안, 실망, 평화, 혼란, 측은함, 미안함, 부끄러움, 경멸, 공감 등 모든 감정들이 고스란히 드러나있다. 앤을 따라 여행하는 내게 베트남 사람들의 목소리와 냄새가 어찌나 생생하게 다가오던지. 그 실감이 너무 두드러져 때로 멀미가 날 지경이었다.

"더 나은 미국인이 되기 위해서", 라는 말로 그는 여행을 마무리한다. 그래. 그것이 맞겠다. 그에게서 '나, 베트남의 뿌리를 발견했어. 그러니 이제 진짜 베트남 사람으로 다시 태어날래!' 하는 결심을 바랐다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었는지. 비록 그가 선택한 삶은 아니었지만, 그의 생은 그곳-미국-에 있고, 그가 앞으로 살아가야 할 남은 생도 거기에 있다. 부모가, 이모가, 누이(형)가, 그의 동생들이 악착같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삶을 살아가고 있듯 그 또한 그렇게 자신의 삶을 살아갈 것이다. 베트남이 그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은 어느 삶도 일방적으로 우월하거나 열등하지 않다는 깨달음, 그것이 아닐까. 그는 1년 동안 베트남의 속살로 들어가 자신의 가장 추악한 부분과 가장 고귀한 부분을 함께 보았고, 그 극단적인 힘으로 또 다른 여행을 준비할 것이다. 여행의 고통이 가져다준 크나큰 선물, 나 또한 그것을 절실히 바라게 되었다. 이 책 '메기와 만다라'는 그 자체로 귀한 삶의 여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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