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프로이트의 여동생
고체 스밀레프스키 지음, 문희경 옮김 / 북폴리오 / 2013년 12월
평점 :
절판
프로이트의 여동생
이 책에 맨 첫 장. 빨간색 종이 한 면에 단 한 문장이 써져 있다.
‘내 삶이 시작하는 순간 고통이 있었다.’
프로이트의 여동생인 ‘아돌피나’는 어렸을 때부터 엄마에게 ‘널 낳지 않았으면 좋았을걸.’ 이라는 말을 듣고 산다. 그래서 자연스레 자신의 존재가 엄마에게는 불행을 뜻한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엄마가 날 미워하는건, 날 사랑해서야’ 라면서 엄마를 미워하기보다는 이해한다. 젊은 나이에 아빠에게 시집와서 자신의 꿈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던, 그래서 그 스트레스를 자신에게 풀뿐 엄마가 날 싫어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엄마가 자신에게 ‘널 낳지 않았으면 좋았을 껄’ 이라는 말을 들으며, 자신은 괜찮다고 생각했지만, 무의식적으로 존재의 무의미를 느낀 그녀는 ‘내 삶이 시작하는 순간 고통이 있었다.’ 라는 생각을 잊지 못한다.
불운한 어린 시절로 그녀는 진정한 사랑을 하지 못한다.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아 본적이 없어서, 사랑보다는 ‘연민’을 느끼면서 자신과 비슷한 존재로 ‘위안’을 찾을 뿐이다.
그래서 자신의 그림자 같은 ‘라이너’를 만나게 된다. 그녀의 그림자, 라이너의 그림자, 둘은 그림자였기 때문에 서로 ‘위안’을 줄뿐이고 사랑을 하지 못한다.
특히, 라이너는 부모한테 버려진 기억이 남아서 ‘나란 인간은 태어날 가치가 있었을까?’ 라는 질문의 답을 찾으려고 여행을 떠난다. 그러나 그곳에서 찾아낸 것은 ‘존재의 무의미’ 였다.
“넌 내가 위안을 받으러 왔다고 생각하겠지. 난 위로 받으려는 게 아니야. 아직 살아있는 자들이나 그런 걸 찾지.
내 안에 모든 것이 죽었어. 벼랑 끝에 서있을 때 날 잡아준 너의 그 사랑으로 안 돼”
“내가 자주 묻던 ‘나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의 답을 이제 알았어. 난 아무것도 아니야.”
‘아돌피나’는 라이너의 아이를 가지고 있는 상태였지만, 라이너에게는 아이가 삶의 의미가 되어주지는 못했고,
아돌피나 앞에서 강에 뛰어 내려 자살한다.
‘인간은 그림자의 꿈’
이라는 말을 남기고서 말이다.
아돌피나 낙태 수술을 받기로 마음을 먹는데, 자신의 오빠인 ‘프로이트’에게 부탁한다면서 이렇게 말한다.
“이미 지나간 건 바꾸지 못하고 부당하게 당한 사람은 그저 상실감을 안고 살아갈 뿐이야 (…)
상처받은 사람들이 잃어버린 걸 되찾는다고 해도, 그건 삶에서 성취해서 보상 받는게 아니라, 그저 위안일 뿐이야.
어느 한 순간에 잃어버린 건 두 번 다시 돌려받지 못해, 잃어버린 그것이 사라진 순간에 필요했던 거니까.”
라이너를 잃고, 사랑도 잃고, 아이마저 잃은 아돌피나는 자신의 삶이 결코 행복하게 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을 예감하고
구스타프 클림트의 누나인 ‘클라라’가 입원해 있는 ‘둥지’라고 하는 정신병원으로 들어간다.그녀는 ‘클라라’를 문병을 왔을 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널 보고 싶은 마음은 크지만, 여기 오는 게 무서워” 라고 말이다.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자신에게 광기가 존재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광기’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가득한 ‘둥지’ 속에서 ‘광기’가 무엇인지 찾기 시작한다. 그리고 클라라는 ‘멀쩡한 사람은 어슷비슷 정상이고, 미친 사람은 제 가끔 미쳤다.’ 고 한다.
초반을 읽을 때, ‘프로이트’ 가 ‘인정머리 없는 놈’ 인줄 알았다.
하지만, 아돌피나가 오빠에게 느낀 이중적임 감정과 같이 ‘지그문트’도 약간은 그런 감정을 가졌던거 같다. 아돌피나와 누이들을 놔두고 망명했지만 진짜 '프로이트'는 돌아올 생각이였던거 같기도 하다. 픽션일지라도 아돌피나의 꿈에서 프로이트는 미안하다고 한다.
그녀가 둥지에 있을 때, 가끔씩 문병도 오고 ‘둥지의 축제’때 와서 술에 만취한 채 보여준 모습은 굉장히 의외였다.
‘‘아아 내동생……아아 내동생’ 이라는 말에 담긴 무언가를 애통해 했다.
오빠는 내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어릴때 오빠가 남몰래 내 이마에 입을 맞추던 기억이 났다.‘
어릴 때 부터 아돌피나에게 제일 힘이 되고, 위안이 되어주는 존재였으며 오빠인 ‘지그문트’ 였다.
꾀 시간이 흘러간 후 집으로 돌아온 아돌피나는 오빠와 어릴적부터 꿈꿔왔던 ‘베네치아’에도 왔지만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다.
‘지금은 존재의 사이, 삶과 죽음 사이에 과도기에 있어서,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니에요.’
‘세상에서 얻을 수 있는 유일한 위안은 아름다움’ 이라고 말하던 아돌피나는 없었고,
인생의 마지막을 수용소의 ‘가스실’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그녀는 죽어가면서 ‘죽음’을 생각한다.
‘나는 죽음을 기다리면서 이런 말을 되뇌었다. 죽음은 그저 망각일 뿐이라고 말하면서 내가 잊어버릴 일들을 되뇌었다.’
지그문트, 라이너, 사라, 클라라 같은 소중한 사람들의 기억도 모두 잊으려 한다.
그리고 마지막에 이렇게 말한다.
‘엄마가 했던 말, 널 낳지 않았으면 좋았을 껄. 내가 태어난 사실도 잊을 거야 ’
그녀는 죽음 앞에서도 그녀의 첫 고통인 ‘엄마의 말’을 마지막에 잊는다.
이 소설은 300페이지 밖에 안되는 소설이지만, 정말 한 여인의 인생을 전부 다 본듯 했다.
그리고 이 책속에 담은 삶과 광기와 사랑에 대한 통찰은 굉장히 색달랐고 읽는 내내 감동 그 자체였다.
자신의 우상같은 프로이트가 자위하는 모습에 엄청난 충격을 먹기도,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의 눈 앞에서 자살하고,
그리고 수용소에서 '가스실'에서 죽음을 맞기까지 인생의 쓴맛만 봤다. 그녀의 인생에서 이것이 '행복' 이다 라고 느낀적이 없다.
그 누구도 원망하지도 않고, 그 누구도 진심으로 사랑해주지도, 여자로서의 자긍심을 잃어버릴 때에도 '죽음'을 택하진 않았다.
하지만 그녀의 삶은 영롱하다.
자신의 학문으로 간접적인 영원한 불멸을 꿈꿨던 잘난 프로이트는 마지막에 숱한 병치레로 힘든 죽음을 맞이하고,
클림트는 역시 뇌졸증으로 힘든 죽음을 맞이한다. 아돌피나에게 비수같은 독설을 날린 그녀의 어머니는 제일 증오한 아돌피나 옆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참 아이러니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