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내가 너무 좋아했던 형이 한분 있었다.  형이 우리학교에 어학연수를 온 것이 계기가 되어, 꾸준히 연락을 주고 받으면서 내가 한국에 올때마다 형을 만나곤 했었다.  형은 내가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다양하고, 가끔은 괴짜같은 방식으로 이를 풀어내도록 도와주곤 했었다.  98-9년인가부터 4-5년 연락이 끊겼다가, 형과 같은 학교 출신의 지인에게 형의 소식을 듣고 연락을 하게 되었었다.  그때 난 한창 로스쿨에서 '피똥'을싸며 고생을 하고 있던 시절이었는데, 형은 그새 자기의 꿈을 이루어 방송국 PD가 되어 있었다.  그것도 벌써 불멸의 이순신 같은 대작의 조연출을 맡고 있는. 

 

2004년 여름이었나?  한국에 있는 로펌에서 인턴쉽을 하면서 졸업논문을 준비하던 때라, 두어달을 역삼동에 있는 작은 원룸에서 지낼때였는데, 그 바쁜 와중에도 형은 시간을 내서 나를 만나주곤 했었다.  그때 형과 마지막으로 했던 술자리에서 형은 당시 강한척을 하면서, 속을 닫고 살아가던 나를 안타깝게 바라보면서 참으로 많은 이야기를 해 주었던 것 같다.  압구정동에 있었던, 로데오 거리 어디엔가 세 거리가 교차하는 지점의 바 야외 테이블에 앉아서...

 

그리고 일년이 지나서 나는 로스쿨을 졸업하고 변호사 시험을 본다.  나에게는 시험과 취업 사이의 공백기간이었던 그 무렵, 형은 또다시 화려하게 한 계단 더 자기의 꿈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방송국에서 공모한 영화제작에 감독으로 뽑혔던 것이다.  형이 항상 꿈꾸었던, 프랑스 영화처럼 아름다운 영화 시나리오를 만들고, 형은 스탭과 배우를 섭외하고 그 여름/가을에 영화를 찍기 시작했다.  영화내용은 아주 잘 알고 있는 것이, 내가 그 영화 번역을 도와주었기 때문인데, 형은 갖 학교를 졸업한 나에게 '영화가 완성되면 이미 아시아권하고 동구권에 배급이 되기로 했으니까, 네가 시나리오 번역도 도와주고, copyright 자문도 해주라.  이거 잘 되면 계속 entertainment쪽 일도 할 수 있을거야'라면서.

 

내가 본, 지금도 속속들이 내용을 기억하는, 그리고 주연배우들이 누구였는지도 기억하는 이 영화.  '피아노 포르테'는 그러나 작품화되지 못했다. 

 

당시 방송국에는, 어느 직장이나 그렇지만, 심한 파벌싸움, 그리고 언제나 있는, 밑에 사람을 밟는 상사... 그런것들이 있었나부다.  그런데 하필 이런 자들이 형을 방해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한창 영화를 찍어가고 있는데, budget를 cut해버린것.  당시 형은 사비를 털어가면서 영화를 찍고 있었는데, budget cut이 나오자, 동분서주하면서 외부투자까지 유치를 했는데, 이걸 그 상사가 veto한 것이다.  역시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배우섭외와 맞물려 소속사로부터 무언가를 받은 정황이 유추된다. 

 

정말이지 순수했던 형의 마음은 다년간의 방송국 생활 - 거기는 정말 험한 곳이기도 하지 않은가 - 에도 그런 일에 무디어지기엔 너무도 여렸던 것 같다.  계속되는 압력, 터무니없이 낮아진 budget, 내 기억에는 약 3-40%로 깎인, 으로 대충 영화를 하나 만들어 버리라는, 그리고 데리고 있던 사람들에 대한 미안함, 자기 자식같은 시나리오를 깎아내고 떨어내라는, 이미 지칠대로 치쳤던 형의 마음은 이를 견디어 내지 못했다.

 

이 일련의 과정을 나는 정확하게 알지는 못한다.  그해 가을 번역된 시나리오를 형에게 보내주고나서 수 개월 후.  신문에 'xxx PD' 자살미수로 중태라는 글이 뜬 것이다.  유서를 보면 심각한 심리적-정신적 공황상태였다고 한다.  형의 친동생 말에 의하면 그 유서에는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이 어떻게 형을 방해했는지도 나와있다고 한다.  난 아직 그 유서를 보지 못했지만, 작은 힘이나마 생기면 꼭 보았으면 한다.  꼭. 

 

아산병원에서 내가 본 형의 모습은 너무 불쌍했다.  전두엽이 상해서 튜브를 끼고 도우미 아주머니의 손으로 하루에 몇 번씩 자리를 바꾸어가며 누워있는 형의 모습에는 고작 몇 달전만에도 의욕에 넘쳐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던, 그리고 언제나, 어떤 이야기를 해도 귀기울여 들어주던 형의 잔상만 남아 있었다. 

 

그후에도 가끔 난 형의 꿈을 꾼다.  망가진 몸의 겉모습은 반 식물인간 상태이지만, 이 몸에 trap된 형의 정신을 만나는 건지도 모르겠다.  내 꿈에서 형은 항상 생전의 모습으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한다.  기적같은 일이지만, 손상된 전두엽이 마치 끊어진 전기회로가 갑자기 다시 connect되듯이 돌아오기도 한다고 하는데, 형의 몸이 그렇게 회복되었으면..

 

정말이지 오랫만에 본 '고즈넉하다'는 표현을 보니 형이 생각이 났다.  형의 시나리오에서 처음으로 접했던 말인데, 번역하느라 꽤 고생했던 기억이 난다.  내가 유일하게 기댈 수 있었던 사람.  형이 보고 싶다.

 

형이라면 지난 4년간 이루어진 총체적인 국부의 수탈과 5류인들의 발호, 그리고 이제서야 터져나오고 있는 방송국 직원들의 항의파업에 대해 참 많은 이야기를 했을 것 같다.  아니, 형도 거기에 동참하였거나, 이미 방송국을 떠나있었을지도 모른다.  한창때 꿈꾸던 유학 - 내가 있는 곳에 와서 같이 공부하고 일하고 술마시고 토론하면서 한 시절을 보내자던 - 생활중이었을 지도 모른다.  그때를 대비해서 내가 했던 말이라고 고작 '형 내가 밥주는거랑 잠은 재워줄께.  근데, 담배는 꼭 나가서 피워야 한다...'였는데, 지금 떠올려보니 왠지 슬프다.

 

(1)

  • 고즈넉하다[고즈너카다]

    [형용사]

    • 1.고요하고 아늑하다.
    • 2.말없이 다소곳하거나 잠잠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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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사르 2012-06-01 2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마음이 다 아프네요. 형의 꿈이 전두엽을 떠나 어느 누구의 꿈에 닿아 있을까요..
'고즈넉하다'란 단어는 형 가슴에 아직도 남아 있을 거에요. 아주 고즈넉하게 말이죠.

transient-guest 2012-06-01 21:13   좋아요 0 | URL
고즈넉하게 저를 바라보면서 가끔 이야기를 해주지 않을까 해요. 우리 젊던 시절의 그 마음 그대로, 그 다짐 그대로 살고 있냐고. 아우.. 눈물이 날 것 같아요.
 

처음에는 그냥 재미로 시작해 본 알라딘 블로그였는데, 하나씩 둘씩 내가 읽었던 책들의 리뷰를 올리면서, 조금씩 기능을 익혀가면서, 페이퍼를 써보기도 하고, 잡다한 내 이야기나 일상의 푸념을 올려보기도 하면서, 정을 붙이게 되었다.  한동안 싸이월드라는걸 좀 하다가 던져버리고 (로그인 아이디와 패스워드가 뭔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페북과 트위터는 그냥 걸쳐만 놓은 상태인터라, 내면의 배출구라 할 수 있는 것은 알라딘 블로그 밖에 없다.  사무실 홈피야 보여주기 위한 역할에 충실하게 블로그화를 지양하고 있고, 정보위주의 기능성에 포커스를 두고 있어 더욱 그런 듯.

 

가장 최근에 배운 기능은 TTB광고설정이라는 건데, 실제로 이걸 통해서 무엇을 팔아보겠다는 생각보다는 남들이 하는 것을 보니 나도 해보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사실 TTB로 판 책은 거의 없다고 생각된다).  그러다보니 자주 바꾸기 보다는 그냥 생각나면 한번씩 내용을 업데이트 하는 것이 다인 것이 나의 TTB광고이다.  오늘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꽉 찬 - 아니 저녁시간에 잠시 눈을 붙이고 다시 미국 시간에 맞춰 상담대기 및 업무처리를 하여야 하는 정말 꽉 찬 - 그런 날인데, 내용을 보면 지금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앉아있는 시간이 더 많을 듯.  정말이지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지, 왜 하려는 것인지?  Just drag me out to the gutter and shoot me!!

 

어찌했든, TTB업데이트에 대해 조금 이야기하자면, 셜록 시즌 1과 2는 내가 이리도 늦게지만, PS3를 사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영국 드라마이기에 그 감동(?)을 조금이나마 나누고 싶어 넣게 되었다.  원래 영화를 모으는 것도 책 이상 좋아했었다.  내가 10-20대를 burning하면서 모은 것들은 (1) 책, (2) 음악, (3) 영화, 그리고 (4) 게임소프트였는데, 이제는 아마도 다른 것들의 수집은 거의 잠정은퇴수준이고, 책과 음악은 간간히 사들이고 (책의 경우 간간히는 아니지만 - more like 미친듯이?), 있기에 최근의 셜록 시즌 1과 2는 실로 오랫만의 구매인 셈.

 

노르웨이의 숲은 익히 알려진 대로, '상실의 시대' by 하루키의 원제인데, 이번에 의역보다는 원문의 뜻을 살린 - 즉 일어의 뉘앙스를 그대로 살리려고 노력했다는 - 번역이라는 선전에 혹해서 구매했다.  셋트로 되어있어, 두 번 구매를 해야하는 번거로움을 피할 수 있으니 이 또한 플러스.  읽는 방법은 두 가지를 생각해 놓았는데, (1) 햇살이 따사로운 날, 뒷뜰에 있는 테이블에 기대 앉아서 오후를 즐기면서 pint의 에일과 함께, 아니면 (2) 밤에 한껏 감상에 취해, 또는 오귀스트 뒤팽처럼 밤의 미에 취해 싱글몰트 한잔과 함께 지나간 시간을 추억하면서 읽을 생각이다.  묵직한 하드커버로 구성된 점도 또한 마음에 든다. 

 

고리오 영감은 내가 너무도 좋아하게된 작가 - 앞서의 글에서는 누락됐지만 (나이가 들면서 퇴행하는 머리는 정말 큰 문제) 전작하고 싶은 그!  오노레 드 발자크의 작품들 중 내가 접한 첫 작품.  혹 모르는 분들이 있다면 나누고 싶다.  남겨놓은 발자크 평전 - 츠바이크가 썼다는 것에 더욱 중요한 - 과 함께 읽으면 좋겠다.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는 우주의 향기를 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또 막연하지만 별에 대한 무엇인가를 느끼는 사람이라면 입문서로써 손색이 없다.  거장의 작품이라서라기 보다는, 그냥 '우주'라는 그 자체로 좋다.  가끔 꾸는 꿈속에서 나는 거대한 우주전함의 star screen룸에서 벽과 천정의 스크린을 내려 투명한 창 사이로 쏟아지는 별빛을 보곤 하는데 - 은영전의 주인공이 된 듯한 착각 - 이를 떠올리게 하는 표지 디자인도 좋다.

 

은영전을 쓰고 나니, 정성을 다해 정본으로 완역된 은하영웅전설을 빼놓을 수가 없다.  내가 가지고 있는 판은 예전에 나온 을지 아니면 서울 둘 중 하나의 본인데, 최근에야 이들 모두 copyright을 제대로 violate한 물건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도 양웬리 준장의 독설에 열심히 밑줄을 그어가며 읽은 나의 소중한 카피인데, 그 덕에 완역본은 조금 더 있다 구매해도 될 것이라 생각된다.  물론 eventually 사들여져 내가 guardian of knowledge로서의 임무를 완수하는데 모자람이 없도록 할 것이다.  (내가 썼지만, 참 4차원해보인다). 

 

혼자 책 읽는 시간은 책을 통해 구도에 이르는 길을 보여주는 것 같다.  한국어 책만으로라면 나도 하루에 한 권을 읽는 것은 너끈히 해낼 수 있으나 - beauty of self-employment! - 니나 상코비치처럼 끝내주는 리뷰를 매일 생산하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된다, 적어도 지금의 내 수순이라면.  이 책 역시 혹 덜 알려졌다면 나누고 싶은 마음에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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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사르 2012-05-31 1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라딘 좋지여? 고즈늑하면서 나무책장의 매캐한 냄새가 나는 그런 공간 같애요.

저와 겹치는 책도 보이네요.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는 정말 소장용으로 완벽한 책 같애요. 사진들은 또 얼마나 그리 멋진지.
은하영웅전설은 조기품절 될까봐 발매되자마자 질렀던 책이네요. 이제 중간쯤 봤을래나요.
하루키작품도 절판되기 전에 저도 빨랑 질러야겠어요. (노르웨이의 숲이 예전에 나온 상실의 숲과 같은 거였군요. 아..)
토마스만의 마의 산은 무려 두번이나 읽었는데 여전히 어렵던데요..ㅠ.ㅠ

다른 책들은 안 읽어봤네요. 근데 TTB에 있는 책들은 왠지 눈이 더 가는 경향이 있어요.

transient-guest 2012-05-31 22:18   좋아요 0 | URL
핫! 부럽습니다. 은영전 최근본은 정말이지 언제나 사게 되려는지? 하루키는 당분간은 절판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만, 국내 출판시장을 믿을 수가 없죠..ㅋ 마의산은 정말이지 선생님을 찾고 싶다는...

달사르 2012-06-01 21:10   좋아요 0 | URL
'고즈늑' 틀린 단어는 일부러 안 고칠게요. 이 단어 덕에 형의 사연을 알게 되어서 왠지 그대로 놔두고 싶어요.

이진 2012-05-31 2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TTB하고 싶은데 아직 나이가 안 되서 못하고 있네요, 허허...
셜록은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영드라는데 보고싶네요.
요새 일드만 보느라 슬슬 지겨워지고 있던 차인데 말입니다. ㅎㅎㅎ

transient-guest 2012-05-31 22:19   좋아요 0 | URL
TTB가 나이제한이 있군요. 몰랐네요.
셜록은 셜록홈즈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정말이지 실망하지 않을 것 같아요...
최근의 일드는 그저...고독한 미식가를 보고 또 보고.. 뭔가를 먹으면서 '우마이' (제대로 들은건지요?) 한다는거죠. 비루는 삿뽀로가...ㅋ

blanca 2012-06-01 1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발자크에 반가워 댓글 남깁니다. 전작을 해 보려고 시도했었어요^^;; <골짜기의 백합>도 너무 좋았어요. 츠바이크의 평전은 아직 읽어보지 못했어요. 저는 영화에 자주 나오는 그 긴 나무 그네를 흔들면서 책을 읽는 꿈을 꾼답니다.

transient-guest 2012-06-01 17:20   좋아요 0 | URL
발자크의 삶 그 자체가 하나의 작품같아요. 츠바이크가 쓴 평전을 읽고나서 더욱 그의 작품세계에 대한 흥미가 높아졌답니다.

북극곰 2012-06-07 17: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츠바이크는 저도 아주 좋아하는 작가!
<마의 산>은 대학 1학년때 정말 오기로 끝까지 읽었던 책.
(그때는 왜 책을 오기로 읽었을까요? ㅎㅎ)

저는 작가를 좋아해도 전작을 읽지는 않았는데요,
그러다보니 너무 대충 겉만 핥고 가는 것 같아서 저도 전작주의로 가 볼까 해요.
존 스타인벡의 작품을 두 권 주문햇는데욧, 왜 아직 안 오는 걸까요?
안달안달 조바조바...하는 중입니다. :)


transient-guest 2012-06-08 01:03   좋아요 0 | URL
츠바이크의 다른 책들도 읽어보려 합니다. 나치독일에서 브라질로 망명-자살로 생을 마감한 안타까운 작가라서 더욱...

전작은 최근에 조금씩 해보고 있습니다만, 완성하기가 쉽지는 않네요. 생각해보니 옛날에 모아 읽은 김용의 작품들은 거의 전작을 해본것 같아요. 스타인벡은 저도 전작을 준비중입니다. 헌책방가서 눈에 보이는대로 사 모으고 있죠. 그리 멀지않은 살리나스 근방에 기념관 있어서 한번 가보려고 해요.
 

'전작주의자'라는 표현은 고 이윤기 선생의 모든 작품들 - 창작 및 번역 포함 - 을 섭렵하고 급기야는 생면부지의 작가를 결혼식에 주례로 모시고 평생 스승으로 받들었던 조희봉씨가 처음으로 쓴 표현이다.  이는 한 작가의 모든 작품을 읽는 것의 말하는데, 앞서 조희봉씨가 그랬던 것처럼 특정 작가의 그야말로 모든 것을 읽고 모으는 것이다.  수필, 소설, 시, 비평 같은 창작부터 번역이나 평역같이 그 작가가 관여했던 모든 것을 읽어내는 것인데 은근히 수월치가 않을 수도 있는 것이, 작품을 구할 수가 없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고, 아무리 뛰어난 작가라도 여러 편을 거듭 읽어내면 약간은 지겨워 질 수도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어쨌든, 고 이윤기 선생의 모든 작품을 섭렵하고 주례로 모시는 능력에는 비할 수가 없겠지만, 최근 나에게도 전작을 원하는 작가들이 몇 생겨 언급해본다.

 

1. 김탁환 - 불멸의 이순신을 보고나서 시작된 이 작가의 전작주의는, '압록강'같은 이미 절판된 작품들에 막혀 약간은 주춤한 상태이다.  현대소설의 특성상, 역시 구성과 내용이 눈에 익어 여러 작품을 읽고 나면 조금은 진부한 느낌이 드는 것도 이 작가의 전작의 방해하는 요소가 되고 있다.  헌책방을 순례하면서 천천히 마무리 할 수 있기를...

 

2. 니코스 카잔차키스 - 그리스인 조르바 이래, 나의 화두가 되어가고 있는 작가.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 알렉산더, 및 몇 편의 기행문을 읽은 것이 다다.  아직은 쌓여있는 작품이 많은데, 구매에 관련된 이슈가 있어, 역시 조금은 주춤한 상태.  이는 사무실이 정상화되면서 해결될 것으로 보인다.

 

3. 무라카미 하루키 - 한국에서의 유행보다 훨씬 늦게 일본소설을 접했다.  다른 작가들처럼 하루키도 가벼운 작품으로 생각되어 몇 가지 유명한 장편과 단편 모음집을 읽고 한동안 잊고 있었는데, 최근에 다시읽기를 하면서, 피츠제럴드의 지나가버린 과거에 대한 향수-아쉬움이라는 테마가 떠오르게 하는 그의 작품의 강한 향기에 취해, 이제 전작을 시도하게 되었다.  일단 손이 닿는 대로의 작품들을 구매했는데, 가지고 가는 것이 관건이다.

 

4. 셜록 홈즈 - 본격적인 셜로키언이 되기에는 한참 부족하지만, 홈즈가 나온 모든 작품들을 모으고 읽고 보는 것이 일차적인 목표이다.  이미 다양한 영문버전의 홈즈를 구입했고, 국문판의 일부는 보관함에 모셔놓았다.

 

5. 아이작 아지모프 - SF계의 거장.  더 무슨 말이 필요할까?  헌책방에 가면 항상 가장 먼저 하는것이 SF section의 A section을 뒤져 새로운 (?) 헌책이 들어왔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현재 다양한 초기작들과 모음집을 보유하고 있다.

 

6. JRR 톨킨 - 반지의 제왕 시리즈의 밑그림에 해당하는 작품들, 미완성본, 문학론 등이 있다.

 

7. RA Salvatore - Drrizt Do'Urden의 모든 모험

 

8.  쥘 베른 - 역시 국문과 영문을 포함하여 다양한 책을 가지고 있는데, 해저2만리 같은 경우는 다양한 일러스트와 책구성을 볼 수 있는 3-4가지 판본을 가지고 있다.

 

이외에도 생각해보면 모으고 있는 작가의 작품들이 있지만, 대략 여기까지가 이닌가 싶다.  한 작가에 깊이 빠진다는 것은 그만큼 실망할 수도 있는 준비를 하는 것이기도 하고, 그 작가의 내면 깊숙히 들어가는 작업이기도 하다.  한 두 작가정도는 시도해봄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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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사르 2012-05-30 1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달사르입니다. 저도 최근에 전작주의자가 되고픈 작가님(오에 겐자부로)이 생겨서 이것저것 책을 모으던 중이었어요. 그래서 괜히 더 반갑네요.

이번에 중고서점 뒤적이다가 아이작 아시모프의 <파운데이션>을 발견해서 구매충동에 좀 망설였더랬죠. ㅎㅎ 새로운(?) 헌책이란 표현에 왕공감입니닷. 무라카미 하루키도 어찌 보면 가벼운 듯도 한데 또 어찌 보면 아주 깊이 있는 느낌도 들어서 저도 역시 이분의 전작을 챙겨야겠다, 라고 생각하구요. 아..니코스 카잔차키스..맞네요. 이분 책은 <그리스인 조르바>밖에 읽어본 게 없지만 언젠가는 나머지 책도 꼬옥 읽어야지..하는 분이지요.

transient-guest 2012-05-31 02:07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오에 겐자부로는 아직까지 접할 기회는 없었던 작가이지만, 저도 관심을 가지고 있는 작가에요. 워낙 많은 책에서 언급이 되었기에 유명한 작가라는 것은 알고 있어요. 작품세계가 궁금하네요.

아이작 아시모프는 정말이지 국역판은 많이 구하기 힘든 작가인거 같아요. 영문판은 동네에 있는 Logos란 헌책방 (Santa Cruz에서 아주 오래된 헌책방이에요. Borders의 맹공을 이겨내고 꿋꿋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에서 나오기만 하면 일단 집어온답니다.

니코스 카찬차키스는 제 기억에 이윤기님을 언급한 책에서 처음 알게되었던 것으로 기억해요. 집에는 아버지가 보시던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이 있었던 것도 생각나네요.ㅋㅋ

절판되는 책도 있고, 또 한 작가의 작품을 모두 읽는다는 것은 살짝 '실망'할 수도 있어서 전작이 쉬운일은 아닌 것 같아요. 하지만, 그 과정 자체에도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성지순례같이요.ㅎ
 

일신상의 일로 일주일이라는 짧은 스케줄의 한국방문중이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책을 구해가려고 생각하고 있다.  일단 기존에 이미 구매되어 있던 이순신 장군 전서 (6권)는 무게만 대략 10kg이 넘을 것 같아 hand carry가 좋을 것 같고, 나머지 괴도신사 뤼팽 전집과 이런 저런 책들 6-7권이 있으니 이 역시 challenging하다.  무게제한이 심해서 예전처럼 무엇을 가지고 간다는 것이 상당히 어렵기 때문. 

 

일단 이번의 구매는 추리소설/사회인문의 책이냐, 아니면 과감하게 하루키 문학이냐로 고민하고 있다.  얼마전 젊은 시절 읽었던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와 '해변의 카프카'를 다시 보면서, 이 작가의 전작을 읽을 마음이 생겼기에 항상 생각하고 있었던 바, 셜로키안이 되기위한 준비와 이 사이에서 고민을 하고 있다.  캐드펠 시리즈는 절판이고 책 양도 만만하지 않기에 이번에는 어려울 것 같고, 그저 위의 선택 사이에서 고민 중인 것이다.

 

책 때문에 아직도 가끔은 한국 생활을 꿈꿀 때가 있다.  이미 practice분야가 정해졌기에 이는 쉽지 않겠지만, 1-2년 정도 계약직으로 대우만 좋다면 책은 쏠쏠하게 사 모을 수 있을 것 같다.  인터넷 서점을 이용한 DC구매와 주말을 이용한 헌책방 순례는 정말이지 나의 로망이 아닐 수 없다.  또 다른 기회에 한국에 일주일 정도 머무르게 된다면 시간을 좀 내 맘대로 써서 원하는 것을 하고 싶다. 

 

고민이구나 고민.  오늘이나 내일이면 결정을 해야 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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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사르 2012-05-30 1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짧은 스케줄이어서 책 구매의 짜릿함이 더 크겠습니다. 헌책방 순례는 성과가 좀 있으셨나요? 저는 시골인지라 헌책방이 없어서 인터넷중고를 이용하긴 하지만 그래도 마음 속 로망은 역시나 헌책방 순례지요!

transient-guest 2012-05-31 02:10   좋아요 0 | URL
헌책방순례는 아쉽게도 또 미뤄지고, 알라딘 중고를 이용해서 상당히 많은 책을 꽤 저렴하게 살 수 있었어요. 이번에는 요코미조 세이시 작품을 조금 사고 나머지는 모두 하루키로 채웠네요.ㅎㅎ 그래도 한국에 계시면 다양한 헌책방 초이스도 있고, 인터넷 구매도 쉬울테니 부럽습니다.ㅎ
 

가카는 왜 이걸 팔지 못해서 안달이 났었을까?  아하...파는게 아니구나.  사실은 사는 것이었지.  즉 사지 못해서 안달이 난것이었다고 추정된다. 

 

민영화를 할 때의 대의는 항상 투명화와 효율이다.  그런데, 민영화가 되어 좋은 것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  또한 performance가 좋은 공기업의 경우 굳이 민영화가 필요하지 않다고 본다.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민영화하였다고 바로 투명화와 효율로 이어진 사례가 얼마나 있는가? 

 

투명화와 효율.  참 좋은 말이긴 한데.  가카의 정부가 효율적인 경우는 (1) 사익에 관련된 일처리, 그리고 (2) 정적 및 바른말 하는 사람들을 탄압할 때 뿐이었던 것 같다.  특히 (2)의 경우는 군 (정권), 관 (검찰), 민 (유사언론)의 합동작전이 얼마나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이루어지던지 찬탄을 금할 수가 없었다. 

 

미국 대선이 곧 온다.  공화당의 후보 밋 롬니의 부상에는 그가 과거 성공한 경제인이었었다는 부분이 컸다고 본다.  그런데 나는 이 시점에서 가카가 오버랩 된다.  물론 밋 롬니와 가카와는 큰 차이가 있는 것은 주지할 수 없는 사실이고 밋 롬니의 경제적인 성공 또한 가카의 화려한 과거와는 큰 차이가 있다는 것도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내세우는 '성공한 경제인' = '경제부활 대통령'이라는 공식에는 의문이 드는 것이다.  한번 보았으니까 그런 것일까?

 

그냥 이런 저런 생각이 들었다.  정권말기이니까, 잘 막아내서 그만 좀 사들이게 하자.  이것은 국민의 몫이고 앞으로 한국 경제를 위한 일이다.  결국 투표와 올바른 사회인식이 답인 듯.  요즘 어린 사람들 중에도 가카를 찬양하는 사람들을 보곤 하는데, 이건 보수/진보 또는 단순한 정치적인 성향을 뛰어넘는 그 무엇이 있는 것 같다.  또라이즘 같은. 

 

굳이 말하자면 난 보수에 가깝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나를 좌향으로 볼 것 같다.  그게 문제가 아닌가 싶다.  불의한 사람들이 보수의 탈을 쓰고 물타기를 하고 있는 현실에서는 좌파가 득세하면 피해를 보는 카톨릭 성직자들조차 (일부이기는 하지만) 좌파로 몰아간다.  황당 그 자체가 아닐 수 없다. 

 

마사오-전두환-노태우-기명사미-가타로 이어지는 공화당-민정당-신한국당-한나라당-새누리당의 계보는 왜 간과되고 무시될까?  영어표현으로 산수만 조금 해도 알 수 있는 일이거늘.  내 평생 대구를 갈 일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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