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일이 있어 2박3일의 일정으로 나성에 다녀오게 됐다.
지난 번 등록한 글로벌 엔트리로 게이트를 쉽게 통과하니 어차피 셀프로 짐도 부치고 표도 뽑았기 때문에 상당히 빨리 내부로 들어와 한 시간 정도 탑승시간이 남게 되었다. 이걸 노리고 일찍 나온 건데, 시간이 이렇게 남았으니 마침 오늘은 성패트릭의 날이기도 해서 공항 바에 앉아 맥주를 한 잔 마실 여유를 갖게 되었다.

원래 비싼 것이 공항에서 파는 모든 것이지만 4년 만에 와서 보니 정말 많이 비싸지긴 했다.
시에라 네바다 파인트 한 잔이 세전 무려 10불 99전. 여기에 근 10퍼센트의 세금과 15퍼센트의 팁을 추가하면 맥주 한 잔이 물경 만 오천 원이 넘을 것이다. 아침을 먹고 나온지 얼마되지 않았고 해서 덕분에 안주로 먹으려던 매우 guilty 한pleasure 베이컨 세 조각을 포기할 생각이다. 작년에 건강검진수치가 좀 별로였기에 이후 지금까지 모든 햄과 소시지 등 가공육을 완전히 끊어버린 바, 이럴 때가 아니면 사실 먹기 어려운 음식인데…

늘 노트북을 챙겨야 했고 아무리 가벼워도 기본적인 무게와 충전기 등으로 가방이 무거웠었는데 이번에는 가볍게 테블릿을 하나 가져왔고 짧은 여행이라서 책도 얇은 것으로 한 권 가져왔기에 짐이 가볍다. 

지인과 마시려고 와인을 두 병 챙긴 덕분에 가벼운 핸케리로 기내에 들고갈 짐도 부쳤기 때문에 더더욱 이번 여행은 일단 가밥다. 

오늘밤 내일밤 이틀간의 술자리가 예정되어 있으니 간에는 좀 미안하지만 이것도 간만의 일이라서 기대하고 있다. 지인과 만나는 것이 그의 결혼식 이후 코로나가 터지는 등 여러 가지로 시간이 걸린 탓에 무려 4년 만이니 할 이야기도 많을 것이다.  우리 동네와는 달리 나성엔 한국사람이 많아서 사우나도 여러 곳에서 매우 합리적인 가격으로 갈 수 있어서 이틀 동안 그간 못한 공중목욕도 실컷 할 것이다. 

항상 나보다 앞서 먼저 미래에 가있었던 지인이지만 지금은 내가 도달하기엔 거의 불가능한 수준으로 많은 것을 일군 형이라서 그리고 항상 이런 저런 고민을 나눌 수 있는 25년 넘게 알고 지낸 사이니 얼마나 할 이야기가 많을까.

내가 먼저 공항에 도착하니 나성공항에서 조금 기다리는 동안 책을 읽고 또 한 잔을 할 여유가 있고 이후 목욕하면서 술을 깨고 밤에 또 마실 수 있으니 이런 도락의 시간은 즐길 수 있을 때 만끽하는 것이 좋다. 

이건 나만의 느낌이지만 미국에서 보면 공항의 바가 이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미어터지고 라운지 같은 경우 아예 긴 대기시간을 잡고 술을 마시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걸 보면 목적지도 중요하지만 그 전에 시작부터 즐기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한국처럼 늘상 바깥에서 술을 마시는 건 보통의 중상층의 문화가 아니라서 그런 것도 있을 것인데 암튼 공항의 바와 라운지에서 아침부터 술을 마시는 사람들이 엄청 많은 건 사실이다. 기껏해야 맥주 한 잔 라운지에서 마시는 것이 고작인 것이 한국공항에서 본 건데 (더구나 음식점이나 바에서 술 마시는 사람은 거의 못 봤다) 여긴 공항에서부터 즐기자는 것 같다. 한껏 풀어지자는 거다. 

그나저나 아침부터 알딸딸하게 취해보는 것이 얼마만인지…

지인이 비행기가 연착된다고 해서 먼저 사우나에 들어가서 기다릴 생각인데 나성엔 한국상권이 강해서 그런지 24시간으로 영업허가를 받은 곳이 많다. 정식 라이센스가 있는 바도 새벽 2시가 최대치인데 자본과 문화의 위력은 역시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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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여행
출장이지만 지인과 만나는 자리
공항은 언제나 날 설레이게 한다
아무리 비싼 공항 물가라도 맥주 한 잔이 빠질 수 없다

잠시 후
두 잔을 마셨더니 얼굴이 빨개진듯
술냄새가 나니 마스크 쓰고 비행기 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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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18 12: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3-18 14: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픈 날은 쉬어야 한다. 주 69시간의 합법노동시간을 향해 달려가는 한국에서조차 아픈 날은 병가를 사용하든, 월차를 내든, 뭔가 수단을 써서 쉬게 되어 있다. 앞으로 점점 더 나빠지겠지만 어쨌든 그렇다. 이건 내용에 따라 차이가 있을지언정 대다수 국가들이 비슷하다. 아프면 어차피 일을 제대로 못할 수도 있고 너무 아프면 장기적으로 노동력의 사용도가 떨어지기 때문이고 산업혁명 이래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지난한 투쟁의 결과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법칙에서 자영업자가 제외된다는 건 어쩜 그리 다들 같은 것인지. 대타가 없으니 문을 닫으면 그만큼의 일과 손해가 고스란히 다음 날로 옮겨지는 자영업자는 답이 없는 것이다. 


불규칙한 날씨와 격무와 스트레스가 겹친 지난 주 드디어 금요일 밤을 시작으로 요즘 코로나와 함께 맹위를 떨친다는 감기가 와버렸다. 어쩐지 지난 주 내내 마른 기침이 나오긴 했다. 주말엔 그래도 운동도 하고 쉬면서 이겨보려고 했지만 날씨도 계속 구렸고 이런 저런 일처리 끝에 결국 제대로 감기로 한 course를 넘어가야 하는 몸이 되어버렸다. 


하루 이틀 푹 쉬면 많이 좋아질 것 같다만 어디 그게 내 마음대로 되는 일인가? 내 두 손으로 하는 일만큼 버는 재미와 보람이 있지만 그만큼 어렵고 힘든 때가 종종 있다. 대타가 없는 커리어라는 건. 어쩌면 이것 때문에 이렇게 지쳐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휴가를 떠나도 일을 완전히 놓을 수는 없다는 것. 어찌 보면 그렇게 틈틈히 일하면서도 회사를 굴리고 일을 해나가고 벌어들인다는 의미로도 해석될 수 있지만 달리 보면 휴가를 떠나면 멀리 떠나서 일을 하고 조금 게으름을 부릴 수 있는 정도까지만 쉴 수 있다고도 볼 수 있다. 


1차, 그리고 2차에 맞춰 조금씩 떠날 수 있는 준비가 제때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너무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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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라디오 2023-03-07 15: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영업자는 아파도 못 쉬고 힘들죠ㅠ

아플 때는 푹 쉬는 게 답입니다. 푹 쉬시고 건강, 컨디션 회복하시길!

transient-guest 2023-03-08 02:11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아프지 않으려고 노력하는데 가끔은 이렇게 답이 없는 날이 있네요.
 

어느 정도는 사람이 하는 일이란 것이 공평(?)한 면도 있어서 몸이 덜 힘들면 그만큼 머리와 가슴이 더 힘든 경우가 종종 있는 것 같다. 부모를 잘 만나서 편하게 사는 사람이나 사시오패쓰가 되어 호의호식하는 경우, 아니면 일종의 민간병기처럼 키워졌다가 어찌어찌해서 삶을 세탁하고 양아치부인이 되어 12시에 만나요 3300원 8만주 때려주셈으로 용산의 개집에서 일상을 유지하는 사람들의 경우는 제외하고 그냥 보통의 사람들을 비교할 때 그런 것 같다는 말이다. 


오늘이 딱 그런 날이었는지. 좀 속상한 일이 있었다. 구차하게 늘어놓긴 뭐한 이야기지만 내가 이해하고 최대한 배려하는 선에서 일단락을 졌으나 여전히 속이 안 좋다. 운동을 하드하게 쳤어야 하는데 월요일 점심과 저녁운동을 세게 달린 몸상태를 회복해야 하고 또 워낙 바쁜 일정 탓에 스트레스를 고스란히 끌어안고 퇴근하게 생겼다. 지천명이 눈 앞인데 아직도 마음을 다스리는 일은 너무 어렵다. 


딱 술을 마셔하는 날인데 한동안 너무 자주 마셔서 그런지 몸을 좀 케어할 필요가 생긴 터라 주중에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아니면 음주를 조심하려고 지난 주부터 결심을 했기 때문에 패쓰. 사실 지난 주의 술자리가 하필이면 재의 수요일에 있어가지고서 사순절 첫 날부터 달린 것에 대한 약간의 죄책감(?)도 있고 사순절 동안에는 가능하면 혼술은 하지 않으려고 생각을 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어쨌든 곱게 집에 들어가서 마음을 가다듬고 책을 보다 자는 것이 오늘을 푸는 최선의 방법이다. 원래 자면서 다 잊어버리는 것이니까.


가끔 책은 읽어 뭐하고, 운동은 왜 하나 싶은 날이 있다. 이곳에서는 찾을 수 없는 '심야식당'속의 낡고 허름안 모옥의 선술집에서 혼자 앉아서 맥줏잔을 기울이고 싶은 저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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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3-03-02 21: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푹 자고 나면 좀 잊어지기도 하고, 또 한잔의 술에 좀 풀리기도 하고 그냥 그런게 사는거지요. 내일은 또 내일의 태양이 떠오른다고 스칼렛이 막 부르짖었잖아요. 푹 쉬세요.

transient-guest 2023-03-03 01:55   좋아요 1 | URL
네 푹 자고 일어나니 또 새로운 하루네요. 어쨌든 다른 길이 없으니 계속 꿋꿋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지금의 제 모습은 10년 전 살아온 삶의 결과이고 또 다음 10년의 삶을 결정하는 것은 지금의 삶이니 열심히 살아야죠. 감사합니다
 

과음을 한 다음 날에는 늘 속이 괴롭다. 술이 깨기까지 시간도 많이 걸리는데 이건 나이와 함께 점점 더 늘어나는 것이니 어쩔 수가 없다. 마시는 양을 잘 조절해야 하는데 가끔이지만 사람들과의 술자리가 생기면 흥겨운 나머지 어느 즈음에서부터는 그냥 놓아버린다. 어제가 그랬는데 한국의 서민적인 분위가 (값은 실리콘 밸리)가 나는 순대국집에서 일차를 하고 걸어서 다음 술집으로, 그리고 다시 세 번째까지 대충 5-6시간 동안을 달렸다. 겨우 어찌어찌해서 Uber를 잘 타고 집에 와서 대충 씻고 옷도 갈아입고 심지어 같이 마신 사람들이 잘 들어갔는지 서로 확인도 한 것은 기억이 나는데 자려고 누운 다음부터 아침까지의 기억이 사라졌다. 완전히 필름이 끊긴 건 아니라서 bits and pieces로 기억이 나는 것도 있지만 어쨌든 무척 많이 마신 건 맞다. 


보통 집에서 혼자 마시면 대략 와인 한 병에 준하는 수준으로 마시는 것이 평소의 주량이다. 먹는 것도 양이 조금씩 줄어드는지 막걸리 이젠 두 병을 채 못 마시고 소주는 이상하게 혼자서 마시면 맛이 없어서 바깥에서 남들과 술자리를 할 때가 아니면 마시지 않는다. 맥주도 많이 줄였는데 사실 와인을 적당히 마시는 것이 다음 날 아침을 생각하면 가장 좋다. 


많이 마신 만큼 아침이 늦어졌는데 술이 완전히 깨지 않고서는 운전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확실히 많이 마셨는지 평소보다도 딱 한 시간이 더 걸려 술이 깬 것 같다. 물론 24시간 안에는 검사를 하면 나온다고 하니 조심해야 하지만. 사무실을 이전할 계획인데 지금 사는 곳에서 가까운 곳을 알아보고 있으니 잘 되면 이런 날은 그냥 걸어갈 수 있을 것이다.


어제 술자리에서는 우연히 한 분이 무협소설의 팬이라서 간만에 즐겁게 고룡과 김용, 좌백, 진산, 용대운의 작품세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물론 다른 사람들이 그다지 흥미를 갖는 주제는 아니라서 조금씩만. 고룡의 허무주의, 공식에 입각한 김용의 반듯함, 좌백의 비딱한 작품과 세계관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하류무사가 주인공으로 종종 등장하는 좌백의 특이함에 대해서도 많은 공감을 했는데 헌책방에 발품을 팔면서 짝을 맞춰서 해적판으로 나온 고룡의 작품들을 모두 갖고 있다는 말을 들었는데 나도 기회가 되면 해볼 생각이다. 좌백, 양우생, 와룡생, 고룡 등 이젠 구할 수 없는 작품들을 찾아봐야겠다. 


암튼 후폭풍에 시달리면서 오전을 이렇게 보내고 있다.


운동을 할까 생각했으나 술 마신 다음 날까지는 간이 회복할 수 있도록 휴식을 취해야 하므로 걷기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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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23-02-24 09:2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무협소설 팬 만나면 걍 시간이 후루룩~~~ㅎㅎ
와룡생, 고룡, 양우생, 김용 등등....저도 한 때 무협 매니아여서 그 느낌 확~ 오네요..ㅎㅎ
근데 제가 읽었던 모든 작품을 통털어서 가장 재밌었던 작품은 소슬이라는 작가의 <아! 북극성>이었습니다. 아주 오래전에 중원문화사에서 출간됐던 건데, 당시 김용의 <아 만리성>이 매우 인기를 끌었는데, 그 타이틀에 맞게 출간된 저작같습니다만...어쨌든 흡입력이 엄청난 작품이었습니다. 지금까지도 무협소설 넘버원의 흡입력이라고 저는 기억하고 있습니다...물론 문학적인 완성도는 김용의 의천도룡기와 천룡팔부였습니다만..^^

transient-guest 2023-02-25 03:00   좋아요 0 | URL
그쵸. 책 이야기 하다가 보면 그것도 팬층이 갈리는 판타지나 무협지를 술자리에 이야기하면 진짜 시간이 빨리 갑니다. ㅎㅎ 저는 소슬이란 작가는 처음 들어봅니다. 찾아보니 대만무협계에서 생몰연대를 알 수 없는 신비의 작가라고 하네요. 말씀하신 작품의 원제는 ‘철골유정전‘이라고 나와있네요. 아마 당시 소오강호가 ‘아 만리성‘으로 나와서 유명했기 때문에 비슷하게 간 것 같습니다. 김용의 완성도 높은 ‘정파‘소설과는 다른 많은 작가들의 작품도 그 재미가 대단하니 더 많이 구해서 읽고 싶어요.ㅎ

stella.K 2023-02-24 10: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젠틀맨이시군요. 일일히 전화하셔서 잘 들어갔는지 확인하시고. ㅋ
이야기 코드가 맞는 분이있으면 정말 지루하지 않죠. 괜히 제가 다 입꼬리가 올라가네요.🤭
술은 마시는 것도 중요하지만 해장도 중요하다는데 아픈 속 잘 달래시기 바랍니다.^^
(근데 써 놓고보니 이렇게 써도 되나 싶네요. 암튼.ㅋ)

transient-guest 2023-02-25 03:03   좋아요 1 | URL
아무래도 많이 마시고 가니 다들 서로 조금씩 챙기는 것 같습니다. ㅎㅎ 책 이야기를 하다보면 진짜 시간가는 줄 모르는 것 같아요. 해장은 pho가 최고인데 어젠 일하고 피곤하기도 해서 그냥 적당히 이것저것 먹었네요. ㅎㅎ 나쁘다고는 하지만 언제 한번 술 마시고 다음 날 해장하면서 해장술도 마셔보고 싶습니다.ㅎㅎㅎㅎ

고양이라디오 2023-02-24 18: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술자리의 흥겨운 분위기 부럽습니다ㅎㅎ 전 술을 잘 못 마셔서 숙취때문에 요즘은 거의 안 마시는데

마시는 양 조절하다가 어느 순간 놓아버린다는 말씀 참 공감이 가네요ㅎ

transient-guest 2023-02-25 03:04   좋아요 1 | URL
안 마시면 좋지만 마시면 더욱 좋아서..ㅎㅎㅎ 사실 조금씩 양과 빈도수는 줄여가고 있어요. 이게 많이 쌓이면 여러 가지로 몸과 정신의 건강에도 문제가 되는지라...ㅎ 자리가 흥겨우면 근데 술이 잘 들어가서 가끔 오버하게 되네요.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