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음을 한 다음 날에는 늘 속이 괴롭다. 술이 깨기까지 시간도 많이 걸리는데 이건 나이와 함께 점점 더 늘어나는 것이니 어쩔 수가 없다. 마시는 양을 잘 조절해야 하는데 가끔이지만 사람들과의 술자리가 생기면 흥겨운 나머지 어느 즈음에서부터는 그냥 놓아버린다. 어제가 그랬는데 한국의 서민적인 분위가 (값은 실리콘 밸리)가 나는 순대국집에서 일차를 하고 걸어서 다음 술집으로, 그리고 다시 세 번째까지 대충 5-6시간 동안을 달렸다. 겨우 어찌어찌해서 Uber를 잘 타고 집에 와서 대충 씻고 옷도 갈아입고 심지어 같이 마신 사람들이 잘 들어갔는지 서로 확인도 한 것은 기억이 나는데 자려고 누운 다음부터 아침까지의 기억이 사라졌다. 완전히 필름이 끊긴 건 아니라서 bits and pieces로 기억이 나는 것도 있지만 어쨌든 무척 많이 마신 건 맞다.
보통 집에서 혼자 마시면 대략 와인 한 병에 준하는 수준으로 마시는 것이 평소의 주량이다. 먹는 것도 양이 조금씩 줄어드는지 막걸리 이젠 두 병을 채 못 마시고 소주는 이상하게 혼자서 마시면 맛이 없어서 바깥에서 남들과 술자리를 할 때가 아니면 마시지 않는다. 맥주도 많이 줄였는데 사실 와인을 적당히 마시는 것이 다음 날 아침을 생각하면 가장 좋다.
많이 마신 만큼 아침이 늦어졌는데 술이 완전히 깨지 않고서는 운전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확실히 많이 마셨는지 평소보다도 딱 한 시간이 더 걸려 술이 깬 것 같다. 물론 24시간 안에는 검사를 하면 나온다고 하니 조심해야 하지만. 사무실을 이전할 계획인데 지금 사는 곳에서 가까운 곳을 알아보고 있으니 잘 되면 이런 날은 그냥 걸어갈 수 있을 것이다.
어제 술자리에서는 우연히 한 분이 무협소설의 팬이라서 간만에 즐겁게 고룡과 김용, 좌백, 진산, 용대운의 작품세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물론 다른 사람들이 그다지 흥미를 갖는 주제는 아니라서 조금씩만. 고룡의 허무주의, 공식에 입각한 김용의 반듯함, 좌백의 비딱한 작품과 세계관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하류무사가 주인공으로 종종 등장하는 좌백의 특이함에 대해서도 많은 공감을 했는데 헌책방에 발품을 팔면서 짝을 맞춰서 해적판으로 나온 고룡의 작품들을 모두 갖고 있다는 말을 들었는데 나도 기회가 되면 해볼 생각이다. 좌백, 양우생, 와룡생, 고룡 등 이젠 구할 수 없는 작품들을 찾아봐야겠다.
암튼 후폭풍에 시달리면서 오전을 이렇게 보내고 있다.
운동을 할까 생각했으나 술 마신 다음 날까지는 간이 회복할 수 있도록 휴식을 취해야 하므로 걷기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