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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양장)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윤성원 옮김 / 문학사상사 / 2006년 3월
평점 :
오늘부터 9월 24일까지 하루에 한 권의 책을 읽는 것에 도전하기로 했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고 그저 시간이 좀 났기 때문인데 이런 도전은 숱한 독서인들이 이미 성공적으로 마친 바 개인적으로 리셋의 의미를 두고는 있지만 뭔가 대단한 건 아니다. 어떤 이는 벌써 여러 번 일년 365일 간 매일 한 권의 책을 읽고 리뷰를 남긴 바 있으니까 더더욱 21일 21권이란 건 일단 숫자로 보아도 그다지 큰 의미는 없어 보인다.
첫 번째로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를 읽은 건 내 독서인생의 큰 전환점이었던 2012년의 마음으로 돌아가기 위함이다. 당시 여러 가지의 일이 한꺼번에 닥친 시기를 살아내고 있었고 어쩌면 가장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었던 나는 직업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바닥을 치고 있었다. 그런 내가 여기까지 오는데 큰 힘이 된 전투적이고 꾸준한 독서를 시작한 2012년 남들은 이미 다 읽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전작을 축으로 삼아 미친듯이 읽고 구한 그 시절의 간절한 마음을 담아 지난 10년에서 앞으로의 10년으로 나아가는 힘으로 삼고자 한다.
이 책은 이미 네 번째가 아니면 다섯 번째 읽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늘 그 시기의 화두에 맞춰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너무도 익숙한 그대로의 이야기지만 읽는 내가 늘 달라져 있는 것이 이유가 되지 않을까.
대학을 다니는 화자가 방학 동안 Jay's Bar에서 쥐란 친구와 만나 매일 맥주를 마시고 그 나이와 시대에 맞는 뭔가 그럴듯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20대에서의 인생과 개똥철학을 논하고 어떤 여자를 만나다가 방학이 끝나 다시 도쿄로 돌아와 30대를 맞이하고 결혼을 하고 안정적인 보통을 삶을 살면서 그 시절 한때의 사람과 장소와 경험을 회상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이 심플하고 짧은 이야기로 무라키미 하루키는 '군조 문학상'을 받고 본격적인 작가의 길을 걷게 되었다는 의미를 넘어 이 책에서는 작가로서 하루키의 왕성한 시기에 나온 작품들의 모티브가 된 많은 테제들이 이미 등장한다. 하루키의 팬이라면 읽을 때마다 다른 작품으로 파생된 '쥐', '양', '우물', '우물에 빠진 남자', '자살한 여자친구', '재즈', '클래식', 'LP', '맥주,' '버번 위스키,' 등이 점차 선명하게 하나씩 들어오게 된다. 읽으면서 계속 다른 작품들을 떠올리게 할 정도로 말이다.
나의 20대를 돌이켜 보면 아무것도 모르고 내가 생각하는 미래의 내 모습을 믿어 의심치 않고 그 밖의 것에는 눈길을 주지 않으려 노력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지금도 어렵지만 그땐 전혀 몰랐던 인간관계의 어려움, 연애, 주고 받는 것이 뭔지 모르고 내 중심적으로 해석해나가던 인간관계, 허제, 겉모습, 비교우위, 뭔가 깊이 있는 듯, 하지만 실제의 경험에 바탕하지 아니했던 인생관 등등. 그야말로 부끄러움 90에 그리움 10인데 그 10은 젊음의 무한한 가능성에 매긴 점수일 뿐 당시의 나보다 지금의 내가 여러 면에서 훨씬 나은 사람 같아서 그 젊음을 제외하고는 그다지 그립지 않은 시절이다.
Jays Bar는 아니지만, 손쉽게 구하기 좋은 맥주를 마시면서 칩과 육포를 안주 삼에 참 많은 술을 마셨고 술을 마시지 않을 땐 가끔 인적이 끊긴 깊은 한밤 중의 Pier에 나가서 바다 공기를 마시거나 나중에 달리기를 하게된 3-4학년의 어느 지점에서는 앞이 캄캄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track을 달리다가 안개를 뚫고 눈 앞에 나타난 사슴에 놀라기도 했다. 본격적인 목적의식을 갖고 삶에 달려든 4학년 시절에는 졸업을 준비하면서 인턴으로 뛰고, 알바를 다니고 하면서 진짜 하루의 자는 시간을 빼곤 뭔가를 열심히 하면서 살기도 했으니 지금보다 못하다고는 하지만 어쩌면 내 인생에서 내가 가장 빛나던 지기는 그때가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가능성을 제외하곤 아무것도 없었지만 뭔가 이룰 것이라는 강력한 믿음과 의지가 늘 함께 하던 세기말 그때의 내가.
세기말을 훌쩍 넘어 밀레니얼을 지나 금 세기 세 번째 decade의 초입인 지금의 나는 그때보다 거의 두 배의 나이를 먹어가고 있고 커리어나 금전적으로나 심지어 신체의 능력까지도 그때의 나보다 훨씬 나아진 모습이다. '쥐'같이 개똥철학을 논하던 친구들도 하나 둘 씩 삶 속으로 사라져버렸고, 차도 여러 대를 갈아탔고, 사는 곳도 많이 바뀌었고 재즈와 클래식을 즐기고 '우물 속으로 사라져 버리고 싶은 건' 내 자신이 되어버리기도 했지만 다행스럽게도 '자살한' 과거의 여자친구 같은 건 없다.
안정적인 은퇴를 꿈꾸며 노력하면서,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부지런히 세상을 봐야 한다는 강박관념 같은 것이 생겨버렸는지 내년부터는 근처의 안 가본 곳부터 하나씩 짧게다도 다녀올 결심을 해버린 나는 이제 앞으로 살아갈 날들이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에 비해 짧아지는 것이 거의 확정될 반 세기의 나를 향해 가고 있다.
지금까지 살아온 모습보다는 더 나은 모습으로 살아가기 위해 발버둥치는 자신의 모습에서 장년에서 노년으로 가는 자의 안쓰러움을 본다.
점점 과거에 즐긴 많은 것들이 재미없어지고 처음 만나는 사람과의 대화에서 (특히 한국 사람) 왜 늘 돈 얘기와 골프 얘기가 주요 테마가 되는지 이상하게 생각되는 요즘이다. 다른 건 몰라도, 심지어 비디오 게임은 더 이상 즐기지 않게 되더라도, 책을 읽는 것, 글을 쓰는 것, 몸을 쓰는 것, 여행과 정신, 그리고 영혼의 수양은 끊임없이 이어지기를.
아무것도 모르던 그 시절을 함께했던 수많은 인연들에게도 축복을. 이제는 어느덧 우리는 모두 같은 곳을 향해 가고 있음을 새삼 떠올리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