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제스틱 호텔의 지하 매그레 시리즈 20
조르주 심농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예정했던 대로 남은 매그레 경감 시리즈의 두 권 중 한 권을 읽었다. 오전부터 바쁘게 일을 하고 잠시 짬을 내서 하체/어깨를 돌리고 쉬면서 읽기엔 딱 알맞는 내용과 길이. 어쨌든 오늘까지 9일간 계속 책 한 권을 읽었으니까 그것으로 됐다.


주말에는 예전에 1/3까지 읽고 더 이어가지 못한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를 마저 끝내볼까 생각하고 있다. 1/3 지점부터 읽는다고 해도 워낙 긴 책이라서 촘촘한 남은 400페이지 이상을 하루에 읽는 건 쉬운 일이 아니겠지만. 


은퇴하기 전 언젠가의 과거부터 다시 이어지는 매그레 경감의 모험이랄까. 확실히 과거에 쓰인 소설을 읽으면 모든 묘사가 그 시대를 들여다보기에 좋다. 현재의 작가가 조사와 고증을 통해 과거를 무대로 쓰는 것과는 뭔가 다른 느낌으로 아주 생생하고 가깝게 그려지기 때문일까. 


호텔 지하에서 파리에 체류중인 미국인 부자의 부인이 시체로 발견된다. 호텔의 지하는 조지 오웰의 자전소설에서 묘사되는 것처럼 손님이 머무는 지상과 분리된 일하는 사람들의 공간이다. 경찰은 바로 커피매니저를 용의자로 체포하고 판사와 미국인 남편은 이 사람을 유죄로 인정한 분위기다. 사건을 탐문하면 할수록 용의자의 유죄혐의는 확실해보이고 심지어 불리한 증거까지 계속 나타난다. 


매그레 반장은 열심히 발품을 팔고 추리를 해가며 혐의를 벗기려고 한다. 너무 이상하니까. 하지만 용의자는 거의 완전하게 코너에 몰렸고 심지어 용의자를 잘 아는 사람들조차 그가 진범이라고 믿지 않을 수 없을만큼 확실한 증거들이 나온다. 하지만 여기서 포기하면 매그레 경감이 아니다. 


몇 가지 상충하는 증거들과 의심스러운 정황을 파고들자 매그레 반장이 생각했던 방향으로 단서들이 모인다. 그리고 모든 관련자들을 한 자리에 모은 매그레 반장이 사건을 설명해주는 것으로 해피하게 마무리. 


짧은 시간에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이었다. 홈즈나 포와로, 긴다이치 고스케나 아케치 고고로와 같은 신비한 매력은 떨어지지만 뭔가 꾸준하게 사건을 찾아다니고 인간의 심리를 파헤치는 것이 마치 브라운 신부나 캐드파엘 수사처럼 묘한 매력이 있다. 


20권에서 한국출간이 재개된 2017년 당시 역자의 말마따가 75권이 모두 나왔으면 좋겠다만 현재까지는 21권에서 멈춘 상태. 출판사의 이익도 중요하지만 이런 긴 작품을 기왕 시작했으면 끝까지 출판해주어야 하지 않을까. 이렇게 중간에 멈추는 불성실함이라니. 아마 copyright도 거의 끝났거나 끝나갈텐데. 


화요일-수요일-목요일 이렇게 지나고 나면 금요일을 넘어 주말로 넘어간다. 이걸 52번 반복하면 한 해가 지나가버리니 시간은 참 빠르게 흐른다. 시간의 흐름이든, 무엇이든 깊이 들어가다 보면 과학과 철학을 넘어 뭔가 매타적인 영역으로 들어갈 수 밖에 없다는 말에 조금은 공감하게 된다. 인지의 차이로 모든 것이 달라진다니. 하기야 실제로 엄청난 훈련을 받은 군인이 hand-to-hand combat 상황에서 완전히 몰입하면 적의 동작이 slow motion처럼 느리게 보인다는 말도 있으니까.


내일도 열심히.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람돌이 2022-09-13 15: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매그레 시리즈가 75권이나 되는군요. 출판사에서 밀고 전작 출판하기가 쉽지는 않겠습니다. 그래도 출간을 열심히 응원!!!

transient-guest 2022-09-13 23:50   좋아요 1 | URL
쉽지는 않겠지만 이미 황금가지에서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을 완간한 사례도 있으니 그리고 열린책방도 꽤 큰 출판사라서 할 수 있다고 봅니다만 2017년 이후 나온 건 없습니다

얄라알라 2022-09-14 11: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1/3도 채 출간이 다 안된 상황이군요. 저도 바람돌이님의 응원에 힘을 보태겠습니다

transient-guest 2022-09-14 11:34   좋아요 1 | URL
열린책들에서 제 글을 본다면 참 좋겠네요. ㅎㅎ 저는 이렇게 끊어지는 시리즈가 너무 싫습니다.
 
프라하 - 작가들이 사랑한 도시 체코 문학선 1
얀 네루다.프란츠 카프카 외 지음, 이정인 옮김 / 행복한책읽기 / 2011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NFL시즌이 시작된 오늘 생각해보니 일요일에 책을 한 권 읽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오전 10시, 오후 1시, 오후 5시 각각 게임중계가 있고 한 게임당 3시간 정도가 소요되는 미식축구의 특성상 시간을 정말 많이 빼앗길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오늘은 아침에 조금 읽고 우리 팀의 10시 게임이 끝난 오후 1시부터는 다시 책을 잡고 읽어낼 수 있었다. 꾸준함을 유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목표이고 그 다음으로는 보다 더 의미가 있는 책을 한 권이라도 더 읽어내는 것이다. 꾸준함이 유지되어 21권까지 마친다면 일단 원했던 걸 이뤘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지난 한 주간의 생활이 너무 엉망이었기 때문에 이번 주 내내 이를 바로잡아야 한다. 운동도 그렇지만 먹는 것이 진짜 망가졌고 무더위에 시달리면서 여러 가지로 몸이 무거워진 느낌이다. 이걸 던지려면 다시 운동에 힘쓰고 잘 먹어야 한다. 맛은 떨어지고 값은 30-40%가 비싸진 바깥 음식은 최대한 자제하고 좋은 걸 싸갈 생각이다. 일도 많이 해야 하니 그렇게 해서 시간도 아끼는 등 여러 가지로 편하다. 전날 조금 시간을 쓰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프라하에 다녀온 사람에 따르면 정말 가볼만한 곳이라고 한다. 90년대 말에도 이미 관광지로서 명성이 자자했기에 호텔은 비쌌지만 외식물가가 낮았던 당시 매일 저녁을 왕처럼 먹었다고 했다. 그 말을 들은 것이 2000년인데 2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못 갔으니 독만권서는 착실히 이루어가고 있지만 행만리로는 아직 시작도 못한 것이 많이 아쉽다. 


카렐 차페크, 프란츠 카프카를 제외하고는 모두 처음 접한 작가들과 작품들을 적절히 발췌하여 프라하의 요소마다 배치했다. 짧지만 탄탄한 책이고 나로써는 드물게 역자후기와 추천사 비슷한 글까지 읽었다. 도시의 명물에 얽힌 전설 같은 이야기도 좋았고 근대사를 반추하는 이야기도 괜찮았지만 '골렘'이 환상소설다운 명모가 있어 개인적으로는 가장 좋았다. 카렐 차페크는 '로봇'이란 단어를 만든 것으로 유명하고 프란츠 카프카는 더 언급할 필요가 없기에 둘 다 한국어로 번역되어 나온 책이 많지만 나머지의 수록작가들의 경우 번역이 시급하다. 


내 기준에서 옥의 티라면 역자가 밝힌 '중역'인데 예전에 이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의 댓글을 달았다가 뭔가 덕후스러운 일면식 없는 다른 이에게 댓글로 쿠사리를 먹은 적이 있다. 그때만 해도 좀 그런가 싶었지만 지나고 보면 역시 '중역'은 시대적 한계를 감안해주어야 하는 과거가 아닌 지금이라면 좀 반칙스럽게 느껴진다. 좋은 중역이 나쁜 완역보다 좋다는 식의 댓글로 기억하는데 그건 중역과 완역의 비교가 아닌 '좋은' 이란 전제와 '나쁜'이란 기준을 추가하여 어떻게 보면 완전히 다른 기준이 추가된 비교라는 걸 당시만 해도 깨닫지 못했다. 역시 빠른 머리회전과 임기응변에 싸움닭 같은 기질이 필요한 소송전문변호사가 되지 않길 잘했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다.


이제 다시 한 주가 시작되고 자영업자임에도 불구하고 월요일에 대한 부담감에 Sundays Blues를 가진지도 오래다. 늘 일요일 저녁시간이 되면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고 그냥저냥 시간을 쓰게 된다. 구름이 잔뜩 낀 하루였고 한 시간 정도면 해가 질 지금 화씨 80도라서 무척 습하고 덥게 느낀다. 마음 내키는 대로 남은 하루의 시간을 정리하련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tella.K 2022-09-12 14:3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이용복이란 맹인가수가...제목이 생각이 안 나는데
토요일도 싫고 일요일도 싫고 그 사람 만나는 월요일이 젤 좋다고
노래했는데 어떻게 월요일을...? 그러다 참 깜찍한 노래다 싶더군요.

tg님도 월요일 날 만날 수 있는 애인은 없으셔고
월요일 날 좋아하는 일을 정해서 하시면 Sundays Blues를
조금 벗어나 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ㅋ
저는 거의 백수에 가까운 삶을 살다보니 오히려 주말 보다 주초가
낫다고 느낄 때도 있어요. ㅎㅎ

transient-guest 2022-09-13 01:20   좋아요 1 | URL
그럼 저는 일을 할 수 있는 월요일이 젤 좋다고 해야 할까요? ㅎㅎ
기실 한 주의 일을 시작하는 것도 그렇고 보통 정말 바쁜 날이라서 더 그런 것 같습니다. 사람마다 같은 날을 두고도 느끼는 감정이 다 다를 수 있네요.ㅎ

얄라알라 2022-09-12 21:1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방금 전에 김경일 교수의 에세이를 읽다가 한국인들의 ˝우리~˝ 사랑 파트를 생각하고 있었는데, transient님께서도 외국 생활 오래 하셨어도 ˝우리 팀˝이라 하시니 굉장히 정겹게 들리네요^^

8 out of 21 화이팅!

transient-guest 2022-09-13 01:22   좋아요 1 | URL
그게 그러네요. 사실 ‘우리나라‘라는 표현은 정말 한국사람의 표현 같아요. 영어로는 좀처럼 ‘out country‘란 말을 쓰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종종 어색하게 알아들어요 그렇게 말하면. 감사합니다!
 
몽테뉴 여행기
미셸 에켐 드 몽테뉴 지음, 뫼니에 드 케를롱 엮음, 이채영 옮김 / 필로소픽 / 2020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목표의 1/3지점이다. 주말에는 그런대로 긴 호흡의 책도 도전해보겠는데 평일에는 까딱 잘못하면 저녁에 퇴근해서 잠들기 전까지의 4-5시간에 다 읽어야 할 수도 있어서 역시 묵직한 책을 평일에 읽을 엄두가 나지는 않는다. 


Indian Summer인지 Climate Crisis가 불러온 heatwave인지 모르겠지만 이번 주의 무더위는 오늘부터 꺾이는 듯 견디기엔 좀 더 낫다. 그래도 아직 더위의 여파가 있어서 시원하다는 기분은 들지 않지만 다음 주부터는 확실히 달라지는 것으로 예측이 되고 있으니 다행이다. 


이미 오늘 읽으려고 뽑아놓았던 책이다. 몽테뉴의 수상록으로 유명한 그 몽테뉴가 말년에 17개월 하고도 8일간 프랑스에서 독일과 스위스를 거쳐 이탈리아를 여행하고 온 이야기라고 한다. 생전에는 출판되지 않았고 존재는 사후 200년 정도가 지나서 우연히 발견되어 당시 상당히 치밀한 고증을 거쳐 몽테뉴의 원고임을 입증 받았고 출판이 되어 다시 200년이 더 지나서 한국에서 번역이 되었다고 한다. 


목적지까지 가는 속도가 5세기 전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만큼 빨라진 지금도 사실 지구사람들 대다수에게는 여행이란 돈과 시간이 어느 정도는 갖춰져야 가능한 '사치' 아닌 '사치'가 아닌가 생각한다. 바빠서, 돈이 없어서, 여유가 안되서, 등등의 이유로. 술은 마시고 친구를 만날 작은 여유는 가능해도 막상 여행을 하려고 생각하면 걸리는 것이 너무 많다. 근처의 여행은 그 수준 (짧은 거리, 익숙한 그곳, 짧은 일정 등)에 비해 너무 비싸게 느껴지고 아주 조금이라도 그럴 듯하게 일정을 잡아보려면 주머니도 그렇지만 우선 시간을 빼는 것이 쉽지 않다. 


자영업 노동자라고 자신을 규정하지만 어쨌든 이젠 그럭저럭 아쉬운 소리는 안 하고 사는 요즘도 그래서 여행이란 것이 그렇게 쉽게 그냥 맘 내키는 대로 갈 수가 없는 것이 나의 처지라서 너무 안되겠다 싶어서 내년부터는 근처의 가까운 도시부터 하나씩 주말에 가볼 생각이다. Portland나 Seattle처럼 같은 서부에 있어서 비행기로 가면 금방 갈 수 있고 차도 빌릴 필요가 없는 도시 하나씩을 잡아서 말이다. 기왕에 생각난 김에 왜 금년부터 가지 않냐고 물으시면 그건 그 나름대로의 복잡한 사정이 있어서, 하지만 딱히 합리적인 대답을 할 수가 없다. 그렇다. 어른의 사정이란 절대로 쉬울 수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젊은 시절, 모두들 먹고 사느라 분투하는 걸 뻔히 아는데 나이가 들면서 시간이 중요하다는둥 그래도 젊을 때 다녀야한다는 둥 하면서 꼰대스러운 말을 할 생각은 없다. 원래 젊을 땐 시간이 상대적으로 많고 늙어서는 돈이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경우가 많고 이로 인한 서로의 입장의 간극은 영원히 좁힐 수 없기 때문에 그냥 그러려니 할 뿐이다. 사실 늙어서도 못 다니고 젊은 사람도 인생의 방향을 다르게 설정하여 실컷 놀러다니는 경우도 있으니까.


다시 몽테뉴로 돌아와서.


여행을 다니는 내내 나름 명사의 대접을 받고 치안이 개판이었을 당시의 기준으로 보면 큰 말썽이 없이 여행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안전성이 보장되는 신분. 하루 벌어 하루 먹기 바쁜 보통사람의 대다수, 아니 자신이 태어난 곳을 떠나는 것도 그리 쉽지 않았을 대다수의 사람들과는 달리 17개월 8일의 시간을 내서 교통도 좋지 못했을 시대에 여행을 했으니 어찌 글로 남기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문제는 이 글이 신장결석에 좋다는 온천욕과 온천수 드링킹이 반 정도고, 거기서 거의 매일의 대소변을 관찰하면서 돌과 모레가 얼만큼 나왔다는 이야기가 추가되고, 먹고 마시고 잔 이야기를 뺀 나머지가 도시와 문화, 종교에 대한 이야기였다는 것. 의학이 퇴보했던 시대라서 뭔가 치료를 한다는 건 그저 몸에서 빼는 것이니 부항을 뜨거나 먹어서 배출하는 것 외엔 마취가 없는 수술 정도였으니 만성으로 신장결석을 앓는 사람이 온천수 (보통 매우 mineral이 풍부한)를 마시고 당연하게도 그 결과로 마신 만큼의 돌과 모레를 쏟아내는 것에 집착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인가. 


Leisure로써의 여행이란 개념은 극히 일부에게만 해당했던 시대였고 집안이나 배경과 명성이란 것도 결국 소수의 계층에만 적용되었을 터, 몽테뉴가 가는 곳마다 만나는 사람들은 귀족, 주교, 수녀원장 (귀족집안출신의), 영주부인 등이고 이미 어느 정도 서로에 대해 알고 있었고 쉽게 만나고 선물을 주고 받는 걸 본다. 


이 시대 한국은 임진왜란을 7-8년 정도 앞둔 시점이었는데 둘 다 전제왕정국가였지만 뭔가 1982년에 나온 Fast time at Ridgemont High을 보면서 광주를 잔인하게 진압한 신군부 치하의 한국이 떠오르는 것처럼 묘한 기분을 느낀다.


17개월 8일의 여행이란 어떤 의미일까. 지금 같으면 세계일주도 가능할 것 같은 긴 시간인데 그 긴 시간 집을 떠나있으면서도 딱히 집에 가고싶다거나 고향이 그립다는 말은 없다. 심지어 신장결석으로 매일 고통을 받으면서도 말이다. 과연 진정한 귀족의 호화판 여행인가 하면 딱히 그랬던 것 같지도 않지만 (이것 요즘 기준으로 볼때 여행수단이나 묵는 곳, 음식이 별로라서 그런 것 같다) 몽테뉴가 여행을 좋아하긴 했었구나 싶다. 


소설을 읽은 것도 아니고 철학을 (이해하지 못하지만) 읽은 것도 아니라서 뭔가 긴 책을 마구 읽었는데 남는 건 계속된 의문이다. 신장결석이 있는 사람이 온천욕을 하는 건 좋겠지만 왜 온천수를 마실 생각을 했을까, 그것도 엄청 많이. 


지금부터 딱 10년 후엔 나도 17개월 8일의 여행을 할 수 있을까? 아마 못할 것이다. 일단 여행이 그렇게 길다면 정말 곳곳으로 떠돌아 다녀야 하기 때문에. 그리고 아마도 일을 완전히 던지지는 못할 것이라서. 


그저 하와이에서 은퇴를 꿈꾸고 있고 세계여행을 꿈꾸고 있고 그 일환으로 언젠가 Malta에서 교환학생으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지중해에 위치한 작은 공화국이고 성요한기사단의 마지막 거처였던 곳이고, 현재의 기준으로는 꽤 저렴한 체류비용이 요구되니까 이탈리아어를 배운다는 명목으로 학생비자를 받고 작은 아파트를 빌려서 공부하는 틈틈이 지중해에 면한 유럽을 돌아다닐 꼼수를 상상하고 있는 것이다. 


어쨌든 오늘까지 딱 일곱 권을, 한 권씩 매일 읽는 것으로 지난 일요일 세운 목표를 채웠다. 재주가 있는 사람은 quality도 따지고 깊이나 집중력을 따지겠지만 나같은 보통사람은 그저 꾸준함과 양으로 승부할 뿐이다. 뭐라도 해야지.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얄라알라 2022-09-11 13: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의식의흐름기법 여행기인가요?
17개월 8일이라니...요즘으로 이야기하면 단기 이민같은...

당대의 민속의학? 민간요법을 알기에 좋은 자료가 숨어 있을 것 같아요

9월 중순을 향해 가는데 heatwave를 의심할 만큼 더운 날씨라 하시니 기후이상을 실감하게 됩니다
한국은 다음 태풍 이야기가 솔솔 나오고 있어요

transient-guest 2022-09-11 13:38   좋아요 1 | URL
정말 이렇게 매번 확인을 주시니 제가 21일의 프로젝트를 꼭 해낼 용기가 납니다. ㅎㅎ
감사합니다.

제 글이 의식의 흐름에 가깝고 여행기는 매우 단순하게 매일의 여정을 기록합니다. 민간요법과 정식의료 모두 포함된 것 같고 사실 이 당시 의술이 별볼일이 없었기 때문에 오히려 민간에 전승되어온 것들이 더 나았을지도 몰라요. 아프면 그냥 사혈하는게 거의 전부였거든요.

여기도 켈리 남부에서는 태풍이 만들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냥 하루를 살아내는 것이 전부인지도 모르겠어요.

2022-09-11 13: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9-11 14: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최소한의 이웃 - 허지웅 산문집
허지웅 지음 / 김영사 / 2022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요즘 너무 많이 밖으로 다니고 놀았던 탓일까. 금요일이 힘들게 느껴지는 건 쉽지 않은데. 뭘 읽을까 고민하기도 전에 하루가 다 지나가버린 나에게 마침 최근의 주문박스가 도착했고 허지웅의 따끈따끈한 글을 읽기로 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너무 많이 나와는 다른 하지만 나쁘지 않은 사람들이라서 만나서 노는 즐거움 뒤에는 더욱 여러 가지로 생각이 많아지고 힘이 든다. 뭔가 북적대다가 잔잔하게 모든 것이 가라앉고 나면 허탈하고 허무하기 짝이 없으니 좋고 싫음을 떠나서 어린 시절부터의 고향친구를 만나는 것과는 확실히 다르다. 


이제 나에게 다시 더 집중하려고 한다. 바깥으로 사람을 만나는 건 낮의 시간에 조금씩 짬을 내서 하고 저녁과 밤, 그리고 새벽의 소중한 시간은 되도록 나를 위해 비워놓아야지 싶다. 일을 열심히 하되 이제 남은 삶은 끝없이 배우고 수행하고 기도할 수 있도록 슬슬 준비를 시작할 때가 되긴 했다.


COVID-19의 시작에서 최근 언제까지의 시간에 쌓인 묵직한 이야기들을 쉽지만 매우 지혜롭게 풀어놓았다. 고통스러운 치료를 받았던 만큼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아직 거기에 있기엔 너무 젊은 나이라서 더욱 사유가 깊어진 느낌이다. 


한창 그의 필력이 그를 세상에 드러내던 시절의 날카로움과 냉소(?)어린 독설의 흔적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처절하리만치 터프한 젊은 시절의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속에서 쌓인 것들을 많이 내려놓았다고 하면 맞을까. 이젠 조금씩 많은 것들과 화해를 하고 조금 더 넓고 멀리 바라보는 듯한 글에서 그 또한 40대 중반에 접어들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나 또한 누군가에게, 되도록이면 많은 사람들에게 아주 최소한이나마 이웃이 되어주었으면 좋겠다. 


이제부터 지난 한 주간의 시간을 뒤로하고 다시 구도자의 수행을 재개하기로 한다. 되도록이면 분위기에 취해 많은 말을 하지 않고 가능하면 남의 말을 많이 듣고 생각하고 배우고자 한다. 어차피 말을 많이 직업인데 공사를 떠나 일이 아닌 자리에서는 말을 좀 아껴도 좋겠다. 묵언하심이라는 말도 있으니 그저 조용히 다른 이들의 말을 듣고 살피면 큰 실수는 하지 않을 것이다.


갑질은 비슷한 사람들끼리 부대끼면서 더 많이 일어나는 듯한 글이 기억에 남는다. 부자는 어차피 대우를 돈으로 사니까 그럴 필요가 없다고 한다. 어떤 항공사 집안사람들을 보면 꼭 그런 것 같지도 않지만. 어쨌든 비슷하게 얽혀 사는 사람들끼리 role을 바꿔가며 갑을병정 놀이를 할 필요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송곳을 타인에게 찌르는 것으로 자신의 상처를 보듬는 것 같고, 그걸 대물림해서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한 희망은 별로 없다는 생각이다. 


사람이나 문명의 존속 같은 것에는 점점 관심이 줄어들고 있다. 그저 사는 동안 잘 살다 가야지 하는 생각만 한다. 사람에 대한 보편적인 애정은 크게 키우되 순간의 집중은 스스로에게 할 일이다. 모든 것인 자기자신과의 관계에서 시작된다고 보니까. 


내일은 모처럼 하루를 full로 제대로 보내보려고 벼르고 있다. 일찍 일어나서 운동을 하고 하이킹을 하고 책을 보다가 저녁 해질녘에 잠깐 또 걷고, 그렇게 조용히 알차게 지낼 생각이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tella.K 2022-09-10 18: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목의 뜻이 무엇인지요...? (갸웃)

transient-guest 2022-09-10 23:35   좋아요 2 | URL
지난 토요일부터 21일간 하루에 책 한 권을 읽는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매일 한 권 읽으면 하나씩 빼는 의미로 그리 썼습니다 즉 어제 여섯 권을 읽은 것입니다

얄라알라 2022-09-10 23:5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곧 7 out of 21....항상 처음이 어렵지, 일단 반환전 돌고 나면 ~~~

대단하십니다. 응원의 박수 짝짝짝~~


허지웅님 초기(?) 글에서는 날카로운 송곳이 살아 있던데, 점점 온화해지는 것 같아요. 참 글도 잘 쓰시고요^^

transient-guest 2022-09-11 00:41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평일은 확실히 힘들던데 다음 주에도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허지웅도 유시민선생처럼 나이를 들어가면서 더 포용하고 이해하고 화해하는 것 같습니다 그의 경우 특히 최근 큰 일을 겪으면서 많은 생각을 한 것 같아요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사상 / 2009년 1월
평점 :
예약주문


어제의 무더위를 끝으로 이젠 가을로 들어간다고 한다. 오늘의 최고온도는 화씨 94도로 나오는데 이번 주간 화씨 111도까지 경험하고 나니 조금 나은 것 같다. 한 여섯 시 반 정도면 나가서 걸어도 괜찮을 것 같아서 오늘부터 다시 열심히 걷기로 했다. 달리기는 한번 멈추고 나니 다시 시작하는 것이 참 어렵다. 아무래도 몸이 이걸 고통으로 느끼기 때문에 더욱 그런 것 같은데 하루키가 달리기를 멈추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한다. 내가 2017-2018년에 열심히 달리다가 중간에 다시 멈추고, 이후 다시 열심히 해서 막판 피크 때 머신에서 6마일을 계속 달리다가 다시 멈추고. 이후 COVID-19 으로 모든 것이 shutdown 된 2020년 3월부터 열심히 걷다가 달리기로 업그레이드 하고 또 엄청 끌어올려서 한번에 7마일까지 달려본 후 2021년에 다시 멈춘 후에는 좀처럼 새롭게 달리기를 할 생각을 못하고 있다. 하루키가 말했듯이 몸을 다시 만드는 것이 참 힘든 것이다. 오죽하면 수십 억씩 버는 운동선수들이 부상을 당한 후 rehab을 할 때 한 번은 가능하지만 두 번은 어렵다는 이야기를 할까. 나 또한 달리기를 다시 시작할 때마다 몸이 고통을 겪다가 조금씩 익숙해지는 그 과정의 지난함을 두세 번 정도 겪었기 때문에 이번에는 엄두를 못 내고 있는 것이다. 


달리기에 대한 이야기가 주된 테마인 것은 여전히 그렇다. 하지만 이번에는 읽으면서 계속 나이를 먹어가는 것에 대한 이야기로 나에겐 보였다.사실 책이야 한번 나오고 나면 그대로 계속 존재할테니 당연히 내용이 바뀌었을리가 없다. 요즘 특히 느끼지만 결국 읽는 내가 변한 탓에 같은 책이 이렇게 다르게 다가오는 것이다. 


꾸준함을 이기는 것이 없다. 성향상 남과 싸우는 것도 별로 안 좋아하고 승부를 내기보다는 혼자 묵묵히 자신의 시간에서 자신과 시간을 보내는 것을 더 즐긴다. 하루키와 나도 이렇게 비슷한 점이 있다. 물론 그는 나보다 훨씬 더 질기고 성실하게 살아왔으니 나 또한 그를 따라 성실하고 질기게 살아가려고 노력하고 있다. 계속 달려온 사람과는 달리 나이를 먹고 갑자기 무리한 달리기를 하면 무릎이 박살날 수 있으니 마라톤에 도전할 것 같지는 않지만 다시 한번 꾸준히 달려보고 싶어진다. 십 년이면 많은 것을 바꿀 수 있으니 50대 중반의 건강은 지금부터 노력을 해야하는 것이다. 좋은 부분과 나쁜 부분 모두 지금의 나는 30대 중반부터의 습관에 따라 만들어진 것이니 지금부터는 조금 더 건강하게 조금 더 절제하면서 즐겁게 열심히 살아가려고 한다.


마라톤을 달리다 못해 울트라 마라톤을 달리고 철인3종을 해내는 하루키를 보면 사람은 확실히 그 겉모습만으로는 평가를 할 수 없다. 말수도 적을 것 같고 YouTube에 올라온 동영상을 보면 말투도 씩씩하다기 보다는 조근조근한 스타일 같다. 그런데 그 속에는 이런 엄청난 끈기와 수양과 절제의 결과가 들어있는 것이다. 


Boston 근교에 체류하던 95년 무렵의 하루키가 강을 따라 달리는 사진을 보니 지금부터 조금씩 꾸준하게 노력해서 달리기를 다시 살려내고 언젠가 Boston에 놀러가면 나도 한번 강을 따라 달려보고 싶다. 2018년 Honolulu에서 일주일 정도 연초에 휴가를 다녀왔는데 그때가 한창 몸상태가 좋을 때라서 와이키키 뒷 편에 있는 운하비슷한 걸 끼고 매일 5-6마일을 걷고 달린 기억이 난다.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나만의 달리기를 말할 날이 왔으면 좋겠다.


어제보단 낫다고 하지만 방금 점심을 사러 나갔더니 여전히 뜨거운 것이 장난이 아니다. 그래도 오늘은 꼭 저녁에 나가서 걷고 잠깐이라도 달려볼 것이다. 그 전에 어깨는 여전히 아프지만 압박붕대로 감더라도 아주 천천히 무리가 가지 않게 gym에서의 운동도 할 것이다. 그렇게 해서 한 주간의 막행막식을 바로잡는 계기로 삼을 것이다.


여기까지 쓰니 이 책은 또다시 달리고 열심히 살겠다는 각오를 다지게 했으니 뭔가를 배우고 느끼고 싶다면 좋은 작가의 책을 찾아 읽는 것이 더 나을 것 같다. 


물론 모든 것은 시의적절하게 필요할 때가 있으니 자계서도 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만 워낙 사기꾼이 많은 시장이라서 자칫하면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사람이 여기 저기서 가져온 걸 적당히 버무려서 그럴듯한 소리를 짓고 data로 증명하지 못하는 가정과 자기확신의 확대재생산에 놀아나기 십상이다. 무지성하게시리.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