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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미치지 않을 수 있겠니? - 김갑수의 살아있는 날의 클래식
김갑수 지음 / 오픈하우스 / 2014년 8월
평점 :
단도직입적으로, 매우 straight하게 말해서, 이 책은 참 지겨운 책이 되어버렸다. 몇 가지 원인으로 추정되는 것들이 있다.
1. 힘겹게 쓰인 책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했다. 내용을 억지로 채웠다는 뜻이 아니라, 달변가인 김갑수씨가 막상 글을 쓰면서는 생각보다 고심하고 고민하면서 조금씩 써내려간 것이 아닌가 싶다는 것이다. 아니면 말고.
2. 매니악한 취미. 그를 아는 사람들은 이미 잘 알고 있겠지만, 음반과 오디오기기, 그리고 커피에 미쳐 살아가는 김갑수씨의 책이니만큼, 클래식 이야기와 가끔씩 커피 이야기를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난 '작업실'어쩌고 한 책보다 훨씬 더 음반과 가수, 작곡가, 연주가, 지휘자의 이야기로 두꺼운 책 한 권을 채웠는데, 이게 상당히 고난이도인 것이다. 독재정권의 근대공립학교 교육의 햇살을 받고 자라난 사람처럼 나도 대략의 유명한 이름은 알고 있다. 슈베르트, 베토벤, 슈만, 쇼스타코비치, 차이코프스키, 하이든, 모차르트 등등. 그런데 이분은 유명한 고전음악의 대가의 곡을 그냥 듣는 것이 아니다. 연주자나, 악단, 음반, 지휘자, label등의 변별요소들과 유명한 곡을 곱하면 나올 엄청난 종류의 음반에서 이것 저것 빼들고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게다가 흥미로운 그의 신변잡기는 거의 빼놓고, 음악이야기만 하니 정말 미치겠더라. 음악을 들으면서 읽는 것도 아니고, 도통 reference가 되지 않는 주제의 책을 읽어내는 것은 고역이었다. 물론 그의 탓이 아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워낙 모르는 것이 많은 내 탓이다.
3. 그의 상태. 끄트머리로라도 40대라고 주장할 수 없게된 50대의 늘어짐. 그의 지인이 아니라서 속사정을 알 수는 없겠지만, 그간 July Hall을 드나드는 인간들 중 일부에겐 꽤 여러 번 데인 것 같다. 'PS. 나이 들면 절대 연애 감정 풍지 말자. 야나체크처럼 망신만 당한다. 앞에서 웃고 딴데 가서 비웃고 흉보는 젊은 그녀들' pg. 209
아직 조영남처럼 완전히 모든 것을 던지지도 못했고, 그처럼 완변하게 자기자신에 빠져 있지도 못한 일견 순수해보이기까지 하는 김갑수의 속맘. 근데, 나이가 들면 사실 아리따움, 아니 어쩌면 젊음 그 자체에 끌려 어린 처녀들이 예뻐보이기는 할게다. 다만, 거기서 멈춰야지. 그녀들이 반한건 김갑수씨의 지식과 커피, 클래식 음악, 그리고 무엇보다 이런 것들이 다 모여있는 그의 서식처, July Hall이지 김갑수씨가 아닌게다.
아! 이 매니악한 아저씨의 책을 읽으면서 갑자기 문학수 기자의 책을 들춰내다가 아마존과 알라딘에서 거금을 들여 reference된 CD를 주문했다. 스트리밍과 다운로드가 양분한 음반시장에서 점점 처리된 재고때문에 좋은 음반을 괜찮은 가격에 구할 수 있다고 한 김갑수씨의 말에 혹해서, 이리 저리 뒤적거리다가 결과적으로는 '괜찮은'가격인지 알지도 못하면서 여러 음반을 사들인 것. 애꿎은 지갑만 가벼워졌다.
정말 김갑수처럼 작업실을 하나 갖고 싶다. 여기에 내가 가진 책과 음반, 영화, 게임소프트를 몽땅 때려박아 놓고, 가끔씩은 두문불출하고 싶다. fancy한 기기도 필요없고, 멋진 커피머신도 필요하지 않다. 그저 그렇게 세상에서 인공적이지만, 잠깐이라도 격리되어 지내고 싶은거다.
책에서 언급된 것들은 정말 좋은 음반일것이다. 김갑수씨의 안목을 아니 믿을 도리가 없는 것이다. 상당히 주관적이지만, 요즘 세상에 그렇게 전투적으로 음반을 듣고, 클래식을 호흡하면서 사는 사람이 몇명이나 되겠는가? 일전에 문학수 기자의 책을 바탕으로 5-6장의 CD를 사들여 해당하는 항목에 맞춰 정리했다. 꽤 재미있는 작업인데, 다음 주에 resume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