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보니 바쁜 와중에 오후는 재택근무를 하게 되었다. 점심약속이 집 근처였기 때문에 식사 후 잠깐 만난 사람들과 커피를 마시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나니 다시 운전하고 사무실로 갔다가 돌아오기엔 시간이 조금 애매해진 것이다. 운동을 갔다가 집으로 가면 진짜 일 할 시간이 남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에 그냥 돌아와서 메일 몇 개를 쓰고 나니 막상 일은 손에 잡히지 않는다. 천상 오늘의 일을 내일로 미뤄버리는 것으로 결론이 나버렸고 덕분에 커피를 한 잔 내려 마시면서 책을 보고 있다. 


수많은 명작을 낸 Patricia Highsmith의 유명한 시리즈 첫 권. 구판절판 후 작년에 새롭게 나온 것을 구했다. 영문판으로는 3부작으로 나온 책을 갖고 있는 것으로 기억하는데 지금은 어디엔가 깊이 파묻혀 있어 당장은 확인이 불가능하다. 다섯 권으로 이우러진 시리즈의 첫 작품은 The Talented Mr. Ripley로 영화화된 바 있고 이 외에도 Replay's Game, 그리고 태양의 가득히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된 바 있는데 Ripley's Game은 두 번째 아니면 세 번째 이야기 같고 태양은 가득히는 첫 번째 작품을 영화로 만든 것으로 알고 있다. 뉴욕에서 형편없는 삶을 살고 있는 리플리는 아주 우연한 기회에 선박제조업의 그린리프씨의 아들을 미국으로 다시 데려오라는 부탁을 받고 이탈리아로 가게 된다. 리플리 인생역전의 시작은 그렇게 아주 작게 시작되나 아마 무척 창대할 것으로 보이는 바 남은 이야기들이 어떻게 펼쳐질지 너무 궁금하다. 당시 맷 데이먼과 쥬드 로, 귀네스 펠트로, 필립 시모어 호프만, 거기에 젊은 시절의 케이트 블랜쳇, 잭 데번포트까지 지금보면 엄청 호화로운 출연진을 자랑하는 영화도 다시 보고 싶어진다. 이럴땐 역시 physical media를 많이 가진 사람이 유리한 것이 넷플릭스 등등 OTT마다 라이센싱이 나뉜 탓에 이젠 한 곳에서 모든 영화를 스트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요즘 영화를 몇 편 집중해서 보니 그 나름대로의 맛이 있어 영화에 미쳐 매일 극장에 가던 대학생시절이 떠오른다. 


필력과 썰이 대단하다. 천편일률적으로 뻔한 소리만 늘어놓을 수도 있었을 테마임에도 불구하고 아주 재미있고 쉽게 포인트를 잡아 중세 유럽의 상징적인 사건과 인물에 대한 일러스트레이션이 좋다. 저자는 원래 유명하고 책도 여러 권이 있는데 이번에 시험삼에 구해보니 다른 책들과 그가 번역한 책들도 모두 구하고 싶어졌다. 예전에 암흑시대로 잘못 알려진 중세는 기실 그렇게 단적으로 구분지을 수 없다는 건 나중에 이런 저런 경로로 지식을 얻어 알게 되었다. 중세에도 오랜 평화와 발전된 생산력으로 안정적인 인구증가가 이루어졌고 이를 통해 중세의 르네상스라고 부르는 시기가 먼저 왔으며 이후 다시 지구가 소빙하기에 들어가면서 우리가 생각하는 중세유럽의 '암흑기'가 찾아온 것이다. 이 책에서도 그 부분을 분명히 하는바 다채로운 모습으로 중세의 굵직한 이야기를 보고 나면 진짜 역사책을 보고 싶어질 것이 분명하다.


첫 권과 마찬가지로 이야기가 많이 장황한 탓에 두 번째는 읽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 몇 번인가를 내려놨다가 다시 잡고 지난 주말에 끝낼 수 있었다. 가스등시대 영국 런던을 대표하는 커플(?) 홈즈와 왓슨의 이야기는 언제 봐도 즐겁기 때문에 팬이 많고 코넌 도일의 원작 외에도 엄청 많은 노작과 파생작이 있기 때문에 평생 읽어도 다 못 볼 것이다. 원작의 작품과 연대기를 보충하거나 그 사이사이의 이야기를 파고드는 경우도 있고 아예 새로운 이야기도 있으며 심지어 SF와 호러까지 영역이 확장되어 있는 그야말로 셜록 홈즈는 하나의 장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Denis O Smith의 작품은 부연설명이 너무 많았다는 단점이 있지만 또다른 홈즈세계관의 모습을 그려낸 의미가 있다.


와인을 마시기 시작하면서 맥주나 위스키는 잘 안 마시고 있고 소주는 한국사람들과 어울릴 때만 마시고 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그 세계관이 무척 일본스러우면서도 깊고 웅장한 니혼슈의 세계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 문제는 이곳에서 좋은 니혼슈를 구하는 것이 꽤 어렵다는 점. 이제 갓 시작하고 있고 자주 마실 여건은 아니라서 구보타 만쥬, 다사이의 준마이 다이긴조 니혼슈를 몇 번 마신 것이 전부인데 맛이 깊고 양조장마다 차이가 느껴져서 무척 신선하다. 이 부분도 책을 더 구해서 볼 생각이다만 선택에는 신중해야 할 것이다. 책의 반은 같은 책 일본어버전으로 꾸민 어학목적이 더 강하게 보이는 책은 피할 생각이다. 입문서로 나쁘지 않고 subtle하지만 중요한 포인트를 잘 전달하는 책이지만 분량과 구성은 좀 불만이 있다. 사케로 보통 알고 마시는 발효주와 일본에서도 쇼추로 불리는 증류된 독한 술까지 쭉 돌아보고 싶다.


어떤 시인이 무슨 시를 썼는지 모르겠으니 내가 책을 산 이유는 오래된 책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이 책의 반 정도는 오래된 사람에 대한 이야기로 보이는 바 달리 흥미가 가지 않았기에 건성으로 읽었다. 책에 대한 이야기는 좀 나았지만 전혀 모르는 저자의 이야기에는 딱히 흥미를 가질 수 없었기 때문이다. 우연한 첫 만남은 좀 그랬으니 언젠가 두 번쨰 만날 때의 다른 느낌과 다른 모습을 기대해본다.



열심히 책을 사고 영화를 구하고 음반을 구하는 건 내 자신의 만족과 미래를 위함이면서 내가 사랑하는 industry가 계속 유지되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다. 당장 아마존에서 사면 훨씬 더 싸게 구할 책도 종종 서점에서 구하는 것과 같은 이유다. 온라인커머스에 잡혀먹힌 끝에 Best Buy에서도 이젠 매장에 영화와 게임을 전시하지 않게 되었다. 그런 일이 서점에서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란 보장이 없다. 책 없는 서점은 얼마나 삭막한 곳일까. 생각하기도 싫은 끔찍한 미래가 어느 날 문득 고개를 들면 가까이 다가와 있을까 두려운 아저씨의 넋두리다. 


한 주를 잘 보냈으니 내일까지 마무리를 잘하고 늘 긍정적인 생각을 갖고 열심히 살다보면 그 하루하루의 삶이 compound되어 좋은 날을 맞을 것이라 믿고 있다. 결국 인생이나 주식이나 모두 compounding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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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24-03-15 09: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덕분에 리플리 시작합니다. 책 표지가 너무 예뻐서 영문판인가 했더니 한글판이네요. 장바구니에 담아갑니다.

transient-guest 2024-03-15 10:23   좋아요 1 | URL
안녕하세요?
리플리 시리즈는 소장가치도 있고 일단 재밌습니다 님께서도 즐겁게 보시면 좋겠습니다

blanca 2024-03-18 09:04   좋아요 1 | URL
덕분에 정말 너무 재미있게 읽고 있어요! 감사합니다. 곧 2권 들어갑니다.
 

모든 것이 북확실해보이는 요즘이다. 오늘 부패한 극우성향의 판사들이 다수가 되어버린 연방대법원에서 트럼프의 피선거권을 박탈할 수 없다는 판결을 내리는 것으로 미국의 민주시민들에게 역대급 빅엿을 먹였다. Insurrection Clause의 적용여부만 판단했다고는 하지만 법으로 그의 행위를 Insurrection으로 규정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가 주도한 사실상의 쿠데타시도가 사라지는 것이 아님을 그들이 왜 모르겠는가. 트럼프가 지명한 법관들은 말할 것도 없고 Clarence Thomas라는 희대의 부패한 악당판사를 대법관자리에서 내칠 방법이 없는 것이 너무도 이상하다. 민주주의국가에서 어찌 종신직이 보장된 정부의 자리가 있을 수 있는 것일까. 이대로 승세를 타고 트럼프가 다시 대통령이 된다면 두 번의 임기를 넘어 독재자가 되려할 것임은 너무도 자명한 일인데. 정말이지 트럼프가 정치일선에 나선 이래 전 세계에서 비슷한 레벨의 또라이들이 그간 너무도 당연해서 법제화하지 않았던 사실상의 관습법을 깡그리 무시한 정치를 하고 있으니 그가 빨리 죽어버리는 것만이 세상을 구제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닌가 생각한다. 검은 놈이나 흰 놈이나 나쁜 놈은 그냥 나쁘다. 














작가의 작품 넷을 모두 읽었다. 홈즈시리즈는 워낙 홈즈를 좋아해서 코넌 도일의 원작 외에도 다양한 비공식/공식적인 노작을 구해서 보는 터 호로위츠의 작품도 즐겁게 읽었다. 하지만 맥파이 살인 사건도 그랬고 이번의 작품 또한 재미는 대충 평균치의 어느 정도로 느껴진다. '중요한 건 살인'에서는 흥미롭게도 작가자신이 등장하여 현실과 소설, 혹은 소설과 현실의 사이에서 이야기를 펼쳐나가지만 이런 시도는 아주 신선한 것이 아니라서, 그리고 추리소설이라면 일단 그 자체에 충실하게 접급해야 할 것이나 결정적인 변수가 내 생각에는 본격적인 추리에서 이 작품을 다소 멀어지게 만든 것이 아닌가 싶다. 어디까지나 개인의 의견이지만 완전히 상상해야만 떠올릴 수 있는 단서가 사건해결에 있어 핵심정보가 된다면 조금 unfair하다는 생각이다. 홈즈시리즈나 더 써주었으면.



'마의 산'을 세 번의 시도 끝에 완독한 이래 작가의 작품들은 꾸준한 관심을 갖고 읽는다. 같은 출판사에서 기획한 다섯 권의 단편 전집에서 두 번째로 최근에 엮어진 책을 구해 읽었다. 워낙 이런 저런 판본으로 흩어져 있기 때문에 다른 경로로 이미 읽은 작품도 있었지만 기억이란 것이 가물가물하여 읽을 때마다 새롭게 느껴진다. '마의 산'에서 느껴지는 긴 호흡과는 차이가 있지만 분명히 그 모티브로 생각되어 짧게나마 '마의 산'에서의 요양원이 떠오르는 것도 있고 '부덴부르크가의 사람들'이 떠오르는 작품도 있었다. 앞으로도 계속 포기하지 말고 기획한 시리즈를 마무리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나오다 마는 시리즈만큼 독자를 실망시키고 농락하는 것 같은 경우가 없기 때문에. 기실 시리즈가 이어지고 있음에도 중간중간 절판되어버리는 책이 있는 시리즈로 종종 짜증이 나고 있어 더더욱.
















이들 외에도 소소하게 읽은 가벼운 소설이 좀 있으나 굳지 남기지는 않기로. 추리소설도 즐겁고 에세이도 좋고 하루키가 직접 선별한 그가 애정하는 피츠제럴드의 후기작품모음도 훌륭했다. 이 나이가 되어 말하기엔 좀 뭣하지만 세상이란 것이 거칠고 힘들기에, 게다가 세상이 좋아지기는 커녕 점점 더 나쁜 쪽으로 가는 것 같아 늘 불안한 시절에 책을 벗삼아 잠시 위안을 받곤 한다. 책이 쌓여가는 속도가 읽는 속도를 훨씬 앞지른 것이 이미 오래지만 그래도 그렇게 쌓아논 책을 하나씩 뒤적거리다가 잘 만나지는 어느 날 단숨에 읽어버리는 경험을 몇 번 하다보면 아무리 안 읽어지는 책이라도 해도 손쉽게 포기하지 못하고 한쪽에 쌓아놓게 된다. 요즘 사들이는 속도가 너무 빨라진 것에 비해 읽는 속도가 형편없이 느려진 탓에 여기저기 틈에 박아놓은 책을 뽑아서 보면 안 읽은 책이 많다는 걸 새삼 느끼지만 그래도 읽는 행위 이상 사들여 쌓는 행위를 멈출 수가 없다. 


바쁜 와중에 잠깐 숨을 돌리려고 이번에 다시 나온 리플리시리즈 전권에서 첫 번째인 The Talented Mr. Ripley (재능 있는 리플리)를 펼쳤다. 멧 데이먼, 존 말코비치, 그리고 알랭 들롱이 떠오른 것은 영화의 영향일 것이다. 


윤석렬의 한국도 그러하겠지만 미국 역시 마찬가지로 트럼프와 극렬지지자들만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다. 대법관들, 주와 시정부 곳곳의 극우분리주의자들, 차별주의자들, 의회 등등 곳곳에서 나쁜 짓을 하는 걸 방관하거나 조장하는 자들이 있다. 오로지 자신들의 권력과 부를 위해. 참담하고 암울한 심정이다. 트럼프는 절대로 당선되어서는 안될 사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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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수 2024-03-05 13:3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트럼프 당선이 거의 확실시 되어가는 분위기던데요. 피선거권 박탈은 어려울 거 같았어요
우울하네요. 트럼프나 바이든이나 임기 중 사망한대도 전혀 이상하지 않으니...
저도 홈즈 시리즈는 너무 좋아해요~~^^
세상사가 힘들고 머리가 복잡할땐 역시 추리 소설이 최고 같아요^^

transient-guest 2024-03-06 02:39   좋아요 2 | URL
이대로 가면 트럼프가 될 확율이 매우 높죠. 트럼프가 있어 바이든이 있고 바이든이 있어 트럼프가 있는 정치의 공존이 기괴합니다. 둘다 너무 늙었고 트럼프는 실제로 치매나 정신분열초기증상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말도 있는데 말이죠. 트럼프가 되면 죽을 때까지 권력을 잡고 있으려 할겁니다. 그야말로 모든 면에서 퇴보하는 최악의 미국과 미국에 영향권하의 나라들을 보게 될 것 같아요. 저도 추리소설이나 다른 light한 책을 보면서 머리를 식힙니다. ㅎ

stella.K 2024-03-05 16:1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동감입니다. 어쩌자고 트럼프가... 유구무언입니다. 도대체 미쿡이 어찌되려고 그러는지 모르겠습니다. 죽을 때까지 배 두들겨가며 잘 살다 죽을텐데 늙으막에 나라 말아먹을 일있는지. 참 인물이 그렇게도 없는지. 선거 막판에 뭔가 기적같은 반전이 일어나 주면 안될까 안타깝게 지켜보고 있습니다. 쩝

transient-guest 2024-03-06 02:41   좋아요 2 | URL
진짜로 극우는 세상에 쓸모가 하나도 없네요. 이게 무슨 세계적인 상황인 것 같기도 해요. 어디서나 지금 극우가 득세하는 걸 보면서 조금씩 광기와 혼란의 시대를 거쳐서 다시 큰 전쟁으로 가는 건 아닌가 싶네요. 일단 social mobility가 너무 없고 부익부 빈익빈이 심해지는 세상에서는 판을 흔들어서 리셋하려면 대재난급의 자연재해나 큰 전쟁밖에 없는 것 같아요. 뭔가 대반전이 나오든 아니면 반트럼프의 이탈표가 나와서 이기든 기적을 바라고 있습니다.

얄라알라 2024-03-06 10: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트럼프 경선 승리 기사가 아침 깨보니 속보로 나와 있더라고요^^;;;
정치에 관심조차 돌리게 만드는 세상..책으로 마음을 달래시는군요.

transient님 리뷰 보니, 초딩 때 멋모르고 전집으로 읽었던 셜록홈즈 시리즈 이제 읽어야 내용을 알 것 같아요. 토마스 만의 단편선은 보티첼리의 표지와 어울리는 내용인지? 갑자기 소설류 읽고픈 욕구 자극 받고 갑니다.

transient-guest 2024-03-06 11:36   좋아요 1 | URL
오늘 Super Tuesday라고 여러 주가 한꺼번에 경선을 하는 날인데 아마 트럼프가 거의 공화당표는 다 가져갈 것 같습니다. 이상한 시대에 이상한 현상을 보면서 살게 되네요. 관심을 끄진 못하고 열심히 들여다보고 있지만 답답한 마음은 어쩔 수가 없어요.

홈즈나 동시대를 무대로 하는 소설은 나이를 먹어가면서 더욱 그 맛을 알게 되는 것 같아요. 전 그냥 19세기말에서 20세기초의 이 시대를 좋아합니다. 사실 그다지 합리적이거나 평등한 사회는 아니었지만 그냥 소설속의 무대로는요. ㅎㅎ
 

생각보다 책을 많이 읽지 못한채 벌써 자유시간 2주차를 맞고 있다. 원래의 계획은 일-운동-독서로 흘러가는 것이었는데 일-운동-술/독서로 가는 바람에 그렇게 되어버렸다. 오늘부터 마음을 다잡겠다고 생각하고는 있다. 더구나 내일부터 사순절의 시작인 재의 수요일이라서 뭔가 40일간의 목표로 술을 줄이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희생이라면 희생이니까. 아예 안 먹을 수는 없을 것이니 혼술을 줄이거나 멈추고 누군가 부르거나 자리가 만들어질 때만 먹는 것으로 40일을 보내려고 하는데 이건 기실 매 사순절마다 목표로 잡았었지만 한번도 성공하지 못했던 바, 이번에도 제대로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나이가 들어버리니 노는 것이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뭘 해도 딱히 즐겁지 않고 할 것이 없으니 모이면 그저 술이다. 난 골프도 안 치니 사람들과 어울릴 접점이 부족한 것도 문제. 물론 골프를 쳤다면 라운딩 후 술을 마시는 코스를 충실히 따라갔을 것이라서 뭐 그리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넷플릭스에서 시즌 1을 끝으로 취소되어 아쉬운 시리즈를 책으로 읽고 있다. 지금은 네 번째까지 왔는데 위의 이유로 진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어느 특정한 시대에 갑자가 유령이 출몰하고 나타나는 것에서 나아가 사람을 해하기 시작한 것이 어언 60여년. 영적으로 예민한 탤런트가 있는 아이들이 agent라는 이름으로 각종 심령문제해결회사에 소속되어 전국적으로 이를 해결하는 시대. 닿으면 죽을 가능성이 매우 높아서 목숨을 걸고 싸우는 그들의 무기는 각종 철제도구, 소금, 화염, 은으로 만든 금제도구들. 네 번째 권에서는 보다 더 큰 음모가 드러날 것 같은데 아직 도입부에서 머물러 있다. 처음에 맛을 들이는 지점까지 시간이 걸렸지만 한번 세계관에 몰입이 되면 멈추지 못하게 하는 매력이 있다.


속초의 동아서점에서 책을 팔면서 살아가는 저자의 일상의 이야기.


지브리의 수장 미야자카 하야오에게 영향을 준 동화이야기. 


속초에 가면 꼭 한번 가서 책을 사오고 구경하고 싶은 서점.


블루레이로든 뭐든 모든 작품을 소장하고 싶은 지브리. 


뭔가 많이 남은 건 없지만 속초의 동아서점의 이야기에서는 상당히 성공적으로 지역사회에 자리를 잡았음에도 불구하고 뭔가 고단한 12시간이 넘는 자영업자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금정연의 글을 간만에 읽었다. 수많은 책의 세계로 다시금 분파된 나의 book multiverse. 서경식 선생은 작년 12월에 소리소문 없이 돌아가셨다고 해서 이제는 그의 새로운 글이 더 이상 나오지않을 것이니 무척 서글퍼진다. 


오늘은 일단 so far so good. 재택근무중인데 이것도 잘 연습해야 게으르지 않게, 편한 환경에서 일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한다. 2-3년 후에는 일주일은 켈리포니아에서 일주일은 다른 곳에서 살면서 일할 수 있는 셋업을 할 것인데 잘못하면 엉망이 되어버릴 것 같아서 지금부터 부지런히 재택이든 회사근무든 차이가 없도록 연습하고 있다. 


이제 운동하러 갈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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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24-02-14 10: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일주일 만에 운동했더니 슬슬 뛰는데 심박수가 어찌나 올라가는지... 후회했어요. 꾸준히 운동하시는 모습 바람직합니다. 이제 운동을 며칠만 쉬어도 얼마 없는 근육이 빠져나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요.

transient-guest 2024-02-14 15:19   좋아요 1 | URL
꾸준히 하셔야죠 ㅎㅎ 저도 이렇게 일주일에 4-5일 이상 운동한 것이 15년이 되었지만 2-3일 안 하면 다시 하기 싫어지더라구요, 힘도 빠지고. ㅎㅎ 쉬었다가 하실땐 확실히 주의해서 페이스조절해야 부상위험이 낮은 것 같네요. 잘하지는 못해도 꾸준하게는 하자가 거의 삶의 모토이자 실제 지금까지 오게된 원동력 같아요.
 

여러 가지로 한가한 한 주간이 될 조짐은 이미 지난 주에 있었다. 조금 일찍 퇴근할 생각도 했으나 오후 5시에 확인한 구글맵은 7시가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도 통상의 시간보다 두 배가 넘는 시간이 걸려랴 집에 도착할 수준의 정체를 보여주고 있다. Youtube의 playlist에서 night studies나 haunted library음악을 찾으면 무척 멜랑콜리한 연주가 반복되는데 그 탓인지 뭔가 적적함이 가득한 사무실이다. 잠을 많이 못자서 그런건지 살짝 우울하기도 한 시간.

 

책의 우주에서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평생 다 사들일 수 없을만큼 많은 책을 갖고싶어하고 다 읽을 수 없을만큼 많은 책을 사들이는 것이 책을 읽는 사람이자 모으는 사람의 숙명이다. 정확하게는 장서가인지 애서가인지 독서가인지 알 수 없을만큼 매우 모호하고 흐릿한 경계에서 이렇게 살다가 날이 차서 받아둔 가는 날이 오면 다 접어두고 떠나게 될 것이니.


형의 때아닌 죽음을 계기로 가장 심플하고 고요하면서도 사람들 속에 머물 직업으로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이 된 작가가 살아온 지난 시간의 이야기. DC에 머물던 98년엔 관심을 갖지 않았기에그곳의 미술관과 박물관을 가지 못했고 관심을 갖고 알아가려 노력하는 지금은 고작 인근의 미술관을 가는 것이 전부인 지금이다. 언젠가 기회를 만들어 DC도 NY도 아니 가보지 못한 여러 곳을 내 눈에 담기 위해 열심히 일하고 미래를 위해 나름대로의 뽕밭을 가꾸는 지금 가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가능성의 차원에서 만들어지지 못하여 실체화되지 못한 내 삶의 다른 path에 대한 막연한 그리움(?)을 느낀다. 지금의 삶이 그다지 못한 것도 아니고 필경 여느 사람들이 볼때 부러워할 직업과 배움의 수준, 게다가 자리도 잘 잡혀 괜찮은 수입을 올리는 지금의 모습이지만 가보지 못한 곳은 항상 'what if'를 떠올리게 한다.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하면 안될 것만 같은 책이다. 그저 가슴아픈 이야기가 아릅답게 그려진 것에서 위로 비슷한 것을 받고 약간의 감동을 받았단 말을 할 수 있을 뿐이다. '토와', 그리고 '정원'. 늦게 시작된 새로운 삶. 그 안에서 만나는 사람들, 강아지, 그리고 이어지는 일상에서 다시금 알게된 사랑. 무척 추상적으로 책의 이야기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것들을 적어봤다. 


미국식으로 지어진 주택은 보통 앞이 개방되어 있고 집을 중심으로 양옆으로 담을 둘러 주택의 뒷면이 개인적인 공간이 된다. 한국이나 일본, 중국의 경우 그 반대의 컨셉으로 집앞의 대문을 중심으로 담을 두르고 본채와 대문사이에 정원이 위치하는 경우가 많다. 예전에 그 이유 비슷한 것에 대한 설명을 들을 기억이 있는데 동서양의 문화 혹은 삶 아니면 철학이 달라서 그랬다는 취지였던 것 같다. 앞뜰의 포근함도 뒷뜰의 private한 느낌 이상 좋을 것 같아서.


현재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아니 정확하게는 세계정세를 2000년도 훨씬 더 전의 시대에 비춰보는 기회가 된 책읽기. 2013년, 2017년의 11권짜리보다 이렇게 여섯 권으로 정리된 것이 보기에 더 깔끔한 것 같아서 욕심이 난다. 


누구든 읽으면 가져가는 것이 있을 것이다. 




헌책방에서 모은 이야기 두 번째. 짧게 이미 썼지만 이 시리즈가 계속 주기적으로 나왔으면 좋겠다. 열 권이 될 무렵, 계획하는 것들이 잘 이루어진다면 아마도 은퇴 혹은 반 은퇴에 가까이 왔을 나의 미래엔 어쩌면 이상북스에서 책을 사고 주인장과 짧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지도. 평소에 무슨 이야기꺼리가 생기는 삶은 아니지만 이 시리즈에 한 숟갈 보탤 뭔가가 그땐 떠오를지도 모른다. 


표지의 그림이 너무 맘에 들어서 다음에 사무실을 옮기면 이런 구조로 방을 배치해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벽은 책으로 두르고 이렇게 가운데 책상이나 넓은 탁자가 있으니 뭔가 안정적인 나눔의 지향성이 보인다. 책과 이야기를 책에 둘러싸인 공간에서 나눈다고 해야하나. 



글을 끼적이는 20분이란 시간동안 다들 무사히 집으로 가셨는지 맵의 모습이 순식간에 바뀌었다. 이젠 대충 15분이면 집에 도착할 수 있는 수준으로 차가 빠졌으니 나도 퇴근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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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4-01-24 17:4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그렇지요 모든 걸 언젠가는 다 두고
떠나게 될 텐데도 책에 대한 집착을
버릴 수가 없네요. 고저 숙명이지요.

오늘도 서점 포인트와 카드 쓰면
만원 준다고 해서 부랴부랴 츠바
이크의 마리 앙투아네트 평전을
사왔네요. 시기적절한 책이라는 생
각이 들어서 말이죠.

헌책방 이야기, 땡기네요.

transient-guest 2024-01-25 04:32   좋아요 2 | URL
다른 건 몰라도 책과 영화는 포기하기 어려울 것 같아요. 게임은 팔아버릴 생각도 하고 있는데 말이죠. ㅎㅎ 츠바이크가 평전이 또 기가막히죠. 저는 전에 읽었습니다만 말씀처럼 아주 적절한 시기의 책이네요. 더 많은 사람들이 찾아보려나 궁금하네요 ㅎㅎ

이상북스의 주인장 이력도 특이하고 얻어지는 사연도 재미있습니다

2024-01-26 23: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1-27 03: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1-27 14: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1-28 01:4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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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산 건 2017년의 판본인데 개정판이 여섯 권으로 2023년에 나온 것을 알게 됐다. 2017년 본에서는 중간중간 에디팅의 문제가 있었던 듯, 문장과 단어가 이상하게 섞여 있거나 전혀 맞지 않아서 원문의 뜻을 이해할 수 없는 경우가 매 권마다 있었는데 개정판에서는 이를 바로잡았을지. 오탈자를 떠나서 이런 수준과 깊이의 책을 edit하는 사람은 단순히 에디터로서의 자질뿐만 아니라 보다 더 높은 수준의 역사적인 지식이 필요할 것으로 생각되는데 2017년의 판본에서의 오류들을 보면 다른 건 몰라도 이런 면에서 에디터의 실력이 많이 아쉬게 느껴진다. 


지난 해 10월부터 읽기 시작해서 금년 1월에 끝났으니 시간이 많이 걸린 셈이다. 물론 중간에 다른 책도 읽었고 바쁘기도 했으나 속도가 많이 떨어진 것이 티가 난다. 집중력이 자꾸 떨어지는 건 아무래도 폰도 더 많이 보고 마음도 정신도 여러 가지로 복잡한 날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예와 형식을 갖추었지만 주나라 이후 열국으로 분열하여 제후들이 다투기 시작한 춘추시대에서 하극상과 무자비한 전쟁으로 패권을 다투는 경과 공들의 시대, 그리고 이를 통일하는 진나라에서 고작 15년만에 진승과 오광의 역성혁명이 시작되어 초한쟁패를 통해 한나라에 의해 대체가 되는 과정을 통해 다양한 역사의 사실들과 평가를 볼 수 있었다. 지금의 정치상황에 대입해도 낡은 느낌이 전혀 없는 것이 몇 천년을 지나고 나라와 인종과 문명을 바꾸어가더라도 사람이 하는 일은 결국 다 비슷한 것이란 생각이 든다. 


역사를 공부하고 읽는 사람은 많지만 이를 올바로 배워 현실에 적용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일 것이다. 아니 읽는 것보다는 많이 읽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사람에 따라서는 그냥 안 배우고 안 읽고 사는 것이 그 사람을 위해서나 다른 이들을 위해서나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는 생각을 종종 하는 요즘이다. 


공원국 선생의 책은 여러 차례 읽었고 아직 구하지 못한 몇 개의 저서도 마저 구해볼 계획이다. 해박한 지식을 쌓은 공부, 그보다 더 위대한 현장탐사와 탐방이 곁들여졌으니 두고두고 읽어볼 만하다.


늘 '협'에 대한 환상을 갖고 사는 바 이에 대해 다뤄준 부분들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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