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는 내가 거의 모든 작품을 읽은 몇 안되는 작가들 중 하나이다.  물론 김용의 모든 작품은 독파한지 오래지만, 그건 좀 안 넣어줄 것 같으니까 패쓰.  같은 의미로 이런 저런 소설들은 논외로 치고, 소위 '문학' 내지는 그 근처라도 가있다고 봐줄만한 작가들 중에서는 유일한 것 같다.  물론 문학의 대가들의 책은 언젠가는 모두 재독/삼독씩 하리라 마음을 먹고는 있지만, 그나마 근처에라도 가고 있는 작가들은 도스토옙스키나 카잔차키스 정도라고 하겠다 (책을 구하고 있다는 이야기, 운이 좋으면 한 두권씩 꾸준히 읽어나갈 수 있다는 이야기 정도로 해석하면 된다).


하루키의 작품은 모두 번역되어 있고, 에세이들도 절판이나 품절을 거쳐 재발간 또는 재편집된 것들이 많아서 기실 이분의 작품을 모두 읽는 것은 한국인에게는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게다.  다만, 이런 저런 과정에서, 시간을 거치며 에세이에 주력하는 듯한, 또는 계속 같은 글모음에 신간 한 두개씩을 섞어서 다시 출판되는 등, 구매자로써는 다소 실망스러운 모습에, 또는 작가로서의 한계가 보이기 시작하는 모습에 그의 책을 읽지 않게 되는 사람은 많이 있는 듯 하다.  


나는 쉽게 실망하는 편이 아닌 것 같다.  거기에 워낙 얕은 reading을 하는터라 정치적으로 너무 엉뚱한 짓을 하거나 하지만 않는다면 예전부터 읽어온 작가를 밀어내지는 않는다.  호모엑세쿠탄스 이후의 이문열 작품은 없지만, 그 이전까지 갖고 있는 책을 굳이 가져다 버리는 수고는 하지 않았던 것이 그 좋은 예가 될 것이다.  그러니까, 하루키가 어느 날 자고 일어나서 '나는 아베의 개로 살겠다'던가, 갑자기 '대동아 전쟁은 하나님의 뜻'이라는 미친 소리를 하지 않는 이상에야 그의 책을 읽지 않을 이유는 없다.  더구나 그 책이 그간 구하기 어렵던 초기작품들 중 하나라면 말이다 (그래도 '6.25가 하나님의 뜻'이라거나 '게으른 조센징'운운한다면 그의 책을 다 가져다 버리고 만나면 한번 시원하게 두들겨 팰 것 같다.  잘 뛰는 그는 아마도 장거리 달리기로 멀리 달아나겠지만). 


이번에 재발간된 '중국행 슬로보트'는 그렇게 비교적 초기에 구입해서 보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큰 감동이나 새로운 느낌을 받지는 못했다고 하겠다.  이미 하루키의 책을 많이 여러 번 읽었기 때문인지, 신선함보다는 역시 훗날 장편으로 발전한 여러 습작노트 같다는 느낌을 받았을 뿐이다.  이럴 때마다 하는 생각이지만, 하루키는 참 운이 좋은 작가, 아니면 최소한 특이한 작가, 또는 팬층이 두터운 작가이다.  습작까지 팔 수 있으니까.  보통은 한 작품으로 유명해지고 나서 한참 시간이 흐른 뒤에 작가의 문학인생을 기념하는 의미로 이런 습작모음이 출판되는 형태가 더 일반적일텐데, 하루키는 뒷날 보면 습작이 분명해 보이는 책을 먼저 발표해서 팔고, 이들에서 다룬 모티브를 장편화해서 다시 팔고, 그 사이사이에 마라톤을 뛰고, 고양이와 놀고, 파스타를 만들어 먹으며, 재즈를 듣고, 맥주와 위스키를 마시면서 에세이를 써 판다.  What a wonderful life가 아닐 수 없다.  


그렇게 '중국행 슬로보트'를 보는 틈틈히 '천황과 도쿄대 2'를 읽으면서 (이건 2권짜리 책이지만 두께로만 보면 어지간한 책 10권도 될 분량이다), 엘러리 퀸의 'Z의 비극'을 읽었다.  이로써 'X, Y, Z'의 비극을 모두 읽은 셈인데, 전작 두 편은 4년 정도 전에 읽었기 때문에 생각이 나지 않는다.  나이와 스트레스 그리고 알콜이 선사한 망각일게다.  


영국풍의 이야기만 보다가 오랫만에 미국풍의 이야기를 본 셈인데, 이 또한 참 좋다.  흑백차별이나 전반적인 백인대세의 시절이라는 점, 그리고 여권이나 사회평등의 관점에서 보면 별볼일 없는 시절이 (1930년대) 주무대가 되지만, 우리 시대에는 볼 수 없는 여러 가지 담론이나 사회상이 무척 재미있다.  


얼마 전부터 다른 출판사에서 엘러리 퀸 전집이 나오는데, 하드커버풍의 양장이 맘에 쏙 들어 몇 권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내가 읽은건 동서DMB, 그러니까 동서미스터리문고의 일반판인데, 이상하게 이 문고의 책이 맘에 든다.  일단 책에서 풍기는 종이냄새가 요즘의 그것과는 다르게, 내가 어릴 때 맡았던 책냄새와 같은 점에서 좋고, 오래된 책들이라서 그런지 값도 좋다.  한 200권인가 하는데, 다른 시리즈와 겹치기는 하지만, 한 권씩 다 사들일 생각이다. 


전집류가 나오기 전, 이렇게 명작을 엄선하여 모아놓은 기획은 그 자체로도 참신할 뿐만 아니라 여러 작가들을 두루 소개해주는 등 매우 큰 역할을 했기에 동서 DMB는 잊을 수 없는 문고라고 하겠다.  여기에 같은 출판사에서 기획한 동서동판의 고전 시리즈도 좋은 가격으로 하드커버 책을 구하려는 사람에게 알맞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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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서재의 방문자 숫자가 말도 안되게 껑충 뛸때가 있다.  마치 예전에 싸이월드를 하면서 방문자 숫자를 헤아리는 마음이 절로 나게 한다.  요즘 한국이 매우 더운 탓인지, 월드컵 탓인지, 이곳 시간으로는 오전, 한국 시간으로는 깊은 밤을 지나 새벽이 한참이 시간대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클릭질의 흔적을 볼 수 있다.  ergo "밤을 잊은 그대에게."  불특정 다수에게 그냥 던지는 한 마디인 것이다.


이곳, 그러니까, 미국이라고 하면 대한민국에서 경험할 수 있는 모든 날씨, 그 이상의 것을 볼 수 있는 넓은 권역을 포함하니까, 말 그대로 이곳 SF일대의 여름은 일단 습하지 않다.  여름에는 거의 비를 볼 수 없는 다소 dry하고, 거기에 바다에서 가까운 일부 지역은 해양성으로 해는 뜨겁지만 하루 중 선선한 시간대에는 거의 여름을 느끼지 않고 산다.  더위를 많이 타는, 게다가 한국을 떠난지 오래되어 이미 열대지방의 여름으로 바뀐 한국의 계절에 적응하기 힘든 나로써는 이곳의 날씨가 꽤 마음에 든다.  LA처럼 무식하게 덥지도 않고, 뉴욕이나 DC처럼 보다 예전의 한국 여름과 같이 습하지도 않은 이 날씨는 그러나 한 가지가 부족한데, 이는 내가 기억하는 예전 한국 여름의 낭만이다.


기억이라는 것은 참 이상하다.  시간이 지날만큼 지나면 어지간히 힘들었던 일들은 모두 잊혀지고, 그 시절의 아스라한 잔영만 '좋았던 옛 시절'의 설탕가루를 뒤집어 씌운 아름다운 기억만 남는다.  누군가의 말처럼 그렇게 윤색되는 것인데, 정확성의 유무와는 별개로 그리 나쁜 현상만은 아니다.  과거를 돌아볼 때, 예전의 안 좋은 것을 기억하고 끄집에 내는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이고, 피곤하며 파괴적일 수도 있기 때문인데, 과거의 나쁜 기억에 얽매여서는 절대로 앞으로 나갈 수 없음은 익히 알고 있음이다.  


내게는 한국의 여름하면, 장마나 태풍으로 인한 장대비가 시원하게 내려주는 늦은 오후나 저녁의 풍경과 한밤중의 빗소리가 떠오른다.  내가 마지막으로 한국의 여름을 경험한 것은 2004년의 일로 이미 10년이 훌쩍 지나가버렸기 때문에, 아마 지금의 날씨는 그때와는 또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무더운 낮을 지나서, 편안하게 집안에 틀어박혀 있을 무렵의 장대비는 먼지를 가라앉히면서 풍기는 냄새로 시작해서 귓전을 때리면서 치맥을 생각나게 하는 등 오감을 잔뜩 건드려준다.  


그렇게 빗소리를 들으면서 tv나 라디오를 배경으로 깔아놓고 책을 읽으면서 시간을 보내면 으례 배가 고파지게 마련이다.  이때 이곳에서 할 수 있는 일이란 기껏해야 마트에 가서 무엇을 사오거나 drive-thru밖에 없지만, '배달민족'의 후예답게 한국, 그것도 대도시에는 24-7으로 판을 치는 수 많은 먹거리를 골라, 심지어는 맥주와 함께 배달을 시킬 수 있어서 좋은 것이다.  그렇게 배가 부르는 대로 치킨이던 중국음식이던, 정체불명의 '까스'들이던 시켜서 한상 펼쳐놓고 맥주캔을 따는 순간 적어도 그 잠깐의 시간속에서는 더 이상 부러울 것이 없다.  생각해보면 치킨이나 중국음식 보다는 이곳에서 자주 접하기 어려운 '까스'들이 술안주로는 제격이었던 것 같다.  달러 기준으로 그리 비싸게 느껴지지 않았고, 개인적으로 모자라느니 넘치는 것을 선호하는 편이어서 항상 모든 것이 다 포함된 '정식'을 시켜 맥주와 함께 배둘레민족에게 조공으로 바쳤던 것.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니 2004년이면 law school 마지막 학년을 남겨둔, 그러니까 그 뒷날의 bar exam과 취업 등 오만가지 잡스러운 일들이 닥치기 전, 그야말로 내 청춘의 마지막이었구나 싶다.  그때까지는 내가 사랑한 김모형도 건강하게 자기의 일을 하고 있었고, 방송국 PD로써 어려운 스케줄에도 여러 번 만나서 술 한잔 하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비슷한 기질의 사람이라서 항상 웅심을 키울 수 있는 대화를 하고 꿈을 꿀 수 있었던 형인데, 이런 사람을 살면서 다시는 만날 수 없으리라 생각하면 참 울적하다.


무더운 여름이고 열대성 스콜이 쏟아지는 황당한 기후로 변한 한국이지만, 그래도 여름은, 아니 정확하게는 여름의 장마가 쏟아지던 늦은 저녁부터 새벽까지의 시간은 그렇게 나에게는 또하나의 이상향으로 남아 있는 셈이다.  


지금도 잠못이루로 뒤척이는 이가 있다면, 한번 정도 그렇게 시원하다 못해 머리가 뻥 뚫어질 것 같이 차가운 맥주를, '까스'정식을 안주삼에 한밤중에 즐겨보는 것은 어떨까?  책도 한 권 있으면 좋겠는데, 이럴때엔 깊은 철학이나 문학보다는 가벼운 추리소설, 그저 읽고 있는 것만으로도 신이나고 가슴이 두근거리는 그런 책을 한 권 벗삼아 그렇게 더위를 잊어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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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14-06-19 14: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샌프란시스코에서 로스앤젤스까지 있는 해안산맥에 동물들이 많이 살더군요.몇 년 전 동물의 왕국에서 로스앤젤스 근교에 쿠거가 살고 있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샌프란시스코 부근 산에도 쿠거가 사나요?

transient-guest 2014-06-20 01:28   좋아요 0 | URL
흔히들 mountain lion이라고 부르는 쿠거는 물론 이곳저곳에서 잘 살고, 가끔 자기 구역으로 들어온 하이커나 바이커를 공격하기도 합니다. 깊은 산속을 하이킹 할 때에는 그래서 단체로 다니라고 권하죠. 쿠거 외에도 bobcat이라고 조금 더 작고, 덜 공격적인 녀석도 본 적 있습니다.

노이에자이트 2014-06-20 14:27   좋아요 0 | URL
그러고 보면 미국엔 맹수가 꽤 많이 사는군요.

transient-guest 2014-06-21 02:23   좋아요 0 | URL
땅이 넓어서 자연상태로 남아있는 곳도 많구요. 여기서는 뭐니뭐니해도 그리즐리 곰이 최고의 맹수지요.

노이에자이트 2014-06-22 00:48   좋아요 0 | URL
캘리포니아에서는 그리즐리 곰이 멸종되었다고 들었습니다.최근에 다시 번식에 성공했나요?

transient-guest 2014-06-22 05:48   좋아요 0 | URL
주로 몬타나주 같은 산간주에 많은 것으로 압니다. 이쪽에는 요세미티 국립공원이 가능성이 있네요.

2014-06-20 01: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6-20 03: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 책이 나온 시점을 보니 2012년이다.  그때가 어떤 시기였던가.  그래 아마도 가카치세 말년.  시민운동가 박원순의 서울시장 당선 이후 정권교체에 대한 기대가 모아지던 그때.  그리고 한창 healing이 코드였던 그때.  안철수가 청춘콘서트 전국투어를 하면서 인기몰이를 하고, 이런 저런 사회의 명사들이나 작가들이 다양한 의미의 위로를 사회에 뿌려주던 그 시점이 아니던가?  


내 기억이야 늘 가물가물해서, 가끔씩 상담 중에 빤히 알고 있는 사실을 살짝 잊어버리기도 하는 등 그리 믿음직스럽지는 못하지만, 이 책도 그 때 '김난도'의 책과 함께 꽤나 회자되었던 것 같다.


김연수 작가는 한국 문단에서 그 또래를 대표한다고 할 수 있는 유명인기작가이자 이제는 40대를 넘어 중진을 향해 가는 작가라고 할 수 있다.  나 역시 그의 책 몇 권을 읽어본 바 있는데, 매우 유명하고 좋은 평을 받는 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나의 마음에는 그리 와 닿지는 않았던 것을 기억한다.  그래서 그랬을까.  이 책도 그리 가슴에 들어와 주지는 않았던 것이.  


어디에 연재되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이 그렇게 한 꼭지씩 엮어진 이 책의 글에서 내가 기억하는 것은 하루키를 연상시키는 달리기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그렇게 달리는 그 자체로써 보람을 느끼는, 그러니까 인생도 그렇게 사는 것 자체에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말하는 듯한, 그런데 같은 얘기를 여러 번 하는 것 같은 그런 에피소드와 감상 다수.  조금 읽다가는 끝내 집중력을 지키지 못하고, 흥미도 느끼지 못하고, 하지만, 그래도 어지간하면 한번 읽기 시작한 책은 끝을 보는 편이라서 건성으로나마, 그렇게 무의식에 남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읽어냈기에 나의 감상은 많이 뒤틀렸을 수도 있겠다.  아니, 어쩌면 나는 아직 '김연수'의 코드에 적응하지 못한 것일수도.  연초인가 작년 언젠가 있었던 출판사의 사재기의 대상이 하필 '김연수'였다는 점도 그의 탓은 아니라고 믿지만 왠지 좀 '그렇다'...  그렇게 그냥 '김연수'라는 작가를 알기 위해 읽은 책이 하필 이 책이었을까...별로 위로도 받지 못하고, 아니 위로를 받기에는 너무 늙은건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원래 예전에 구했던 것이 남의 손에 들어가버렸고, 이번에 다시 구한 책이다.  제목도 그럴 듯 하고, 워낙 책 이야기는 계속 읽으려고 하는 터라서 보게 되었다.


왜일까.  이번에는.  

이 책 역시도 그리 큰 감동을 주거나 깊이 다가오지 않았던 까닭은 무엇일까.  말하자면 문학작품 열 몇가지를 철학적인 테마와 짝지워 이야기를 하는 방식은 나름대로 참신하다고 생각함에도 불구하고.


역시 철학은 아직 나에게는 무리인가보다.


이런 저런 사회가 어쩌고, 윤리가 어쩌고, 인간상이 어쩌고...이런 불확실함만이 확실한 시대를 살아가는 나에게는 그렇게 마음을 가라앉히고 차분하게 이런 이슈들을 성찰하고픈 욕구가 없나보다.  조금 더 즉각적이고 현실적인 이야기는 바로 들어오지만, 뭔가 여기서 한 계단 올라가 있는 이야기는 그렇게 두루뭉실하기만 하다.  


책은 여러 번 읽어야 하는 것임이 분명하다.  이렇게 아무것도 느낄 수 없어 역시 건성으로 읽은 책도 훗날 어느 특정한 시기에 읽으면 이번에는 느낄 수 없었던 무엇인가를 나에게 줄 수도 있음이다.


범인을 plain site에 두고 다른 이를 범인처럼 포장하는 정도에서 멈추지 않은 교묘한 장치.  아무리 현대의 추리물과는 달리 다소는 엉성할 수 밖에 없는 시대적인 한계가 있겠지만, 이번의 결말은 훌륭했다.  


사회상이 반영될 수 밖에 없는 사건구성이나 트릭, 나아가서는 통념상 가능한 플롯을 비롯한 시간차를 느낄 수 밖에 없는 작품속의 세계관이나 인간상.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읽어도 얼마든지 그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아니 아련한, 한번도 살아보지 못한 시대와 나라의 모습에서 향수를 느끼게 하는 크리스티의 작품은 역시 timeless classic으로써 손색이 없다.



주중에 게을렀던 탓에, 그리고 싸구려 음식을 먹고 탈이 나서 이틀간 업무를 거의 보지 못한 탓에 주말에는 일처리 몇 가지를 끝내려고 했으나 딱 두 건 정도만 겨우 손을 대고, 책을 보다가, TV를 보다가 그렇게 보냈다.  뭐 그런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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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17 11: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6-18 03: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늘 고민한다.  책을 읽고 사들이는 것만 보면 남부럽지 않은 '독서' 내지는 '장서가'라고 할 수 있겠지만, 과연 그것으로 무엇을 하는지에 대한 고민은 그렇게 언제나 현재진행형이다.  소설을 쓰는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읽은 것을 잘 남기고 싶은 바램, 그리고 어떤 책을 읽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때문에 나는 다른이들의 독서를 들여다보기를 종종 즐긴다.  특히 명사나 어떤 분야의 전문가의 독서를 들여다보는 것으로 나의 독서를 견주어보고 내가 모르는 책이 많다는 사실에 새삼 놀라기도 한다.  그 무엇보다도 이런 나의 탐닉은 일종의 자기위안의 면이 강해서 마치 긴밀한 독서와 더도 덜도 아닌 지적 자위와의 경계에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일단 이런 책을 읽으면 기분이 좋아지니까 말이다.  


아직까지 보존되어 제한적으로나마 개방되는 다윈의 서재가 있다는 점은 아쉽고 놀랍다.  한국에도 찾아보면 고서당이나 서실이 남이있겠지만, 정부나 학계차원에서 얼마나 관심을 갖고 지원하는지는 모르겠다. 대학이 사기업의 거대한 boot camp로 바뀌어 가기 시작한지도 이미 10여년이 넘은 나라에서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  그런 점에서 요즘의 인문학과 과학서적 및 강연과 관심은 그만큼 큰 위기를 보여주는 것 같다.  대중의 관심은 늘 일시적이기 때문에 결국 이들의 노력으로 적은 숫자나마 깨인 사람들을 남길 수 있다면 그 나름대로의 성과가 될 것 같다.  


과학과 공학이 없이는 제반산업이 육성될 수 없고, 인문학 없이는 사회 자체가 유지되지 못한다고 믿는 나에게 모든 학업과 학문은 취업관문으로 일통되는 듯한 한국의 현 상황은 미지수를 넘어 망국의 조짐이라고 밖에 보이지 않는다.  평균의 학생은 그러니까 12년의 공부를 통해 대학교에 진학하여 다시 4-6년간 취업스터디를 하고 시험을 통해 기업에 입사한다는 건데, 이런 현실은 아무리 자기계발을 하고 독서경영을 하며 마음을 다스려도 더 나아지지 않는다.  깨어난 시민의식으로도 바꾸기는 어렵다고 보며, 유일한 것은 대안적인 삶을 찾아 그 틀의 바깥으로 나가버리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내부에 남아서 구조를 바꾸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고, 그렇게 내버려두지도 않을 것임이 분명하다.


대담형식을 취하고 있는 이 책의 저자는 그간 podcast로 익히 들어온 과학입담의 장대익 박사이다.  과학을 재미있게 풀어가는 그의 입담에 관심을 갖도 본 책인데, 내용은 뭐랄까, 내가 기대한 것과는 좀 멀다.  일단 역사적인 사건사실을 제외하고는 모두 저자의 창작인데, 문제는 이 다양한 인물들의 목소리가 내게는 모두 한 사람의 것으로 들린다는 점.  그러니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등장한다 해도 그들이 말하는 톤과 구성, 박자까지 모두 같게 느껴지기 때문에 색다른 재미를 느끽기는 어렵다.  하지만, 여기서 거론된 책들은 모두 특정분야를 비전문인이 독서를 통해 접할 때 가장 기본적으로 보아야 할 것이기 때문에 자연과학을 책으로 공부할 때 좋은 시작점이 되어줄 것 같다. 


지금까지 계속 이어서 듣고 있는 김갑수의 podcast를 통해 그를 알게 되었다.  전 재산이 3만장의 LP와 6종의 고급 음향기기라는 그가 쓴 2007년의 책 이야기를 시작으로 그의 책과 만나게 되었는데, podcast를 통한 재미있는 강의가 그 시작이었음이다.


그런데, 이 책에서 다루는 이야기들 중 내가 본 책은 거의 없다.  아니 그 존재조차 알지 못하던 책들이 거진 대부분이다.  그러니 어떤 공감이나 이에 기반한 재미를 느끼지는 못할 수밖에 없다.  


다만 이 책에서도 역시 구해봄직한 책들을 여러 권 찾게 되었는데, 이는 소소한 수확이라고 하겠다.  그 밖에도 김갑수가 생각하는 책에 대한 이야기, 그 깊음과 덧없음, 그리고 가끔 밑줄을 긋게 만든 그의 이론까지가 이 책을 읽은 후 남은 것들이다.  


작년 12월에 나온 책이고 알라딘 주문목록에서도 겹치지 않았음을 확인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 표지와 내용이 너무 낯이 익다.  내 기억이 잘못된 것인지 아니면 워낙 유명한 사진이라서 그러는지 알 수가 없다.


책을 읽지 말아야 하는 이유를 필두로 7가지의 메인테마와 부제를 통해 책과 책읽기에 대한 깊은 이야기를 풀어내는 정수복님은 '책인시공'으로 처음 접한 바 있는데, 그가 이야기를 풀어내는 솜씨가 워낙 훌륭하고 좋은 말씀이 많은데다가 차분한 그의 톤이 좋아서 다른 책들도 구할 생각을 하고 있다.  


결론은 좋은 책을 잘 읽자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만은 없는 책에 대한 깊은 고민을 느끼게 하는 책이다.  


책을 읽고나서 바로 리뷰를 해봐야 좋은 글이 나올 수 있고 적절한 인용도 가능한데, 일주일 전의 기억을 되살리는 것이 새삼 버겁다.  원래도 내용을 잘 잊어버리고 정리하는 일도 연습이 부족하여 늘 비슷한 이야기만을 하게 되는데, 이 점은 반성해야 할 부분이다.  세 권 모두 상당히 좋은 책이고, 책고민에 대한 다른 관점에서의 이야기를 볼 수 있었다.  


탐정이라기 보다는 life를 arrange해주는 특별한 업종에 종사하는 파커 파인의 이야기 모음집이다.  진지한 추리를 읽다가 식상할 무렵이면 이렇게 한 권씩 튀어나오는 단순한 사건기술이 맘에 든다.  


우연을 가장한, 당자자는 전혀 알 수 없는 교묘한 조작으로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꾸어 놓은 기술은 물론 지금 시대라면 훨씬 더 큰 장치와 노력 그리고 이에 상응하는 댓가가 필요하겠지만, 이 시대에는 꼭 그렇지만도 않았을 것이다.


책이 재미있었기 때문에 엉덩이 아픈 것을 참고 자전거를 굴릴 수 있었다. 



계속 읽고 또 읽었으면 좋겠다.  좋은 책 나쁜 책을 가리는 것은 나중의 일이고, 일단은 책을 잡고 읽어야 한다.  내가 본 모든 책에 관한 책은 그렇게 말하는 것 같다.  이론적인 기술에서 책을 구별하거나 특정한 방법론적인 접근을 설파하지만, 책을 읽는 인구가 점점 줄어들고 있는 이 시대에는 사치가 아닌가 한다.  자꾸 읽고 또 읽고 그렇게 나아갔으면 좋겠다.  비록 뒤에 남는 것은 엄청난 종이더미뿐이라고 해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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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gettable. 2014-06-12 1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치인데 돈이 별로 안드니(정말??) 권장할만한 사치네요. ㅋㅋ 요즘 실내자전거 하나 사서 집에서 타고 놀고 있는데 이거 운동 엄청 되는 기분이네요.

transient-guest 2014-06-13 01:23   좋아요 0 | URL
책에 미치면 돈이 많이 들죠..ㅎㅎ 그래도 남는게 하나 없는 것 같은 다른 사치보다는 좀 나은 편? TV보면서 또는 책보면서 자전거 슬슬 타는거 좋죠. 다만 부하를 좀 걸어줘야 운동이 된답니다.ㅎㅎ 편하면 운동효과가 없어요...
 

입버릇처럼 문학을, 좀더 깊이 있는 독서를 해야한다는, 철학과 과학을 파고 들어야한다는 말을 한다.  그런데 현실은 판타지와 추리소설이나 에세이 또는 현대소설류를 더 많이 읽게 되는 것 같다. 워낙 늦게 문학에 눈을 떴기에 어릴 때 스펀지가 물을 흡수하는 것처럼 쉽게 읽지 못하여 더욱 더딘 읽이 때문에 고전문학을 섭렵하려는 시도는 느리게 조금씩 진행되고 있고, 철학이나 과학은 말만 그렇지 무엇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자연과학은 현대 지성인의 필수교양분야라는 다치바나 다카시의 말에 공감하여 그리 생각하고 있고, 철학은 무엇인가 근원적인 것에 대한 궁금증 때문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시작이나 과정이나 끝이나 별볼일이 없을 것 같다.


그래도 책을 읽지 않으면 불안하고, 계속 내 흥미를 끄는 책들은 계속 나오기 때문에 어떤 때에는 확실히 관성적으로 책을 읽는 나 자신을 본다.  이래도 되는건지 모르겠다.  이런 것도 일종의 강박관념이 아닌가 싶다.  기실 안 읽어도 잘 사는 사람은 많은데 말이다.  실제로 주변에서 나만큼은 커녕 내 반만큼도 읽지 않는 사람들이 더 많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연간 독서량이 채 열 권도 되지 못한다.  이렇게 보면 참 외로운 행위를 즐기는 셈이다.  한국에서는 자계서의 영향도 있고 인문학 열풍이 불어서인지 이런 저런 독서모임도 많고 강연도 많아서 나이에 맞는 그룹을 찾아 책읽기를 나눌 수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여기는 일단 그런 모임도 적거니와 죄다 여자들뿐이다.  남자가 book club에 들어가는 것은 자신이 게이임을 인증하는 정도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일반적이다보니 나 같은 straight는 더더욱 이런데 활동하기가 꺼려진다.  그래서인지 나의 독서와 책수집은 늘 혼자만의 것이다.


정확히는 이 책이 아닌 두 번째 편을 읽었다.  지난 번에 포스팅 할 때만해도 뜨지 않던 상품인데, 이 표지는 첫 권의 표지이다.  


확실히 키쿠치 히데유키의 작품의 최고봉은 Vampire Hunter D시리즈가 아닌가 싶다.  기존에 있던 뱀파이어 모티브를 빼면 거의 순수하게 창작된 세계관인데, Wicked City나 다른 작품에서 보는 포르노그라피적인 부분이 배제되어 훨씬 깔끔하게 내용을 전개시키는 걸 본다.  Wicked City는 그런 점에서는 낮은 점수를 줄 수 밖에 없는데, 물론 재미가 없어서는 아니다.  다만 두 번째 권을 읽으면서 벌써 진부함을 느끼는 것을 보면 완성도가 좀 떨어진다는 생각을 하게된다.


첫 권에서 맺어진 인간 Black Guard요원과 마계의 Black Guard요원 Makie 사이에서 태어날 아이를 둘러싼 전쟁이 주된 내용인데,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일본에 모인 세계 최고의 정예요원들이, 주인공보다 강함에도 불구하고 하나씩 죽어나가는 걸 보면 뭔가 설득력도 떨어지고, 큰 재미를 주지는 못했다.  다음 권이 지금까지 나온 마지막 편이다.  그걸로 끝.


작년 할인 때 구입한 60여권 중에서 이제 겨우 1/3을 넘겼다.  exclusively운동할 때만 읽는 책이 되어버려서 그런 진도가 나온 듯.  왠지 이 녀석을 다 읽고 마저 남은 전집까지 다 보아야만 다른 작가의 전집을 사들일 수 있을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


이번 작품에서도 절묘한 배치로 인해 범인이 누구인지는 전혀 종잡을 수 없었다.  어떻게 보면 독자에게 두뇌싸움을 거는 소설이 아니라서 그저 방관자의 입장으로 극화를 즐기는 것이 더 보통의 크리스티 작품인데, 여기에 더해서 독자에게도 clue를 완전히 숨겨버리기 때문에 그래도 추리를 해보게 된다.  독자가 모든 것을 알기 때문에 발생하는 서스펜스와는 또 다른 재미가 있다.


다만 트릭을 장치함에 있어서 너무 중구난방인 점이 있었고, 그것을 마지막에 거의 데우스 엑스 마키나 수준의 인물을 범인으로 만드는 것은 좀 심하지 않았나 싶다.


글을 쓰는데 도움이 될까 싶어 읽었다.  저자 '이승우'라는 소설가는 전혀 모르는 사람이고 그의 작품을 접한 바도 없지만, 나이로 보건데 어느 정도 원로의 위치에 있는 사람일 것으로 생각된다.


그의 말에 모두 동의하지는 않지만, 잘 쓰기 위해서는 잘 읽어야 한다는 말.  그러니까 책을 많이 읽은 사람만이 좋은 글을 쓸 수 있다는 말에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이런 점에서 요즘 유명한 몇 소설가들은 좀 반성해야 할 듯.  글을 업으로 삼는 사람이라면 가장 기본으로 여겨지는 고전문학 정도는 읽어주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렇지 않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작가들을 보면 비록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이지만 그 변명이 궁색하기 짝이 없다는 생각을 한다. 


그 외에도 약 열 단계로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를 정리해 놓았는데, 철저한 밑그림 그리기가 중요하다는 이야기나 발상의 중요성, 구상과 구성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는 부분에도 동의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보면 무라카미 하루키 같은 작가의 작품은 다음 작품을 위한 밑그림 같은 것이었을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종종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다시 다음 작품에서 심화되거나 expand되어 또다시 베스트셀러가 되었으니 그야말로 참 행복한 작가가 아닌가 싶다.  


전체적인 느낌은 상당히 보수적인 냄새가 나지만, 새겨들을 말이 많이 있고, 합리적이라 생각되는 조언이 풍부하여 짧지만 꽤나 알찬 구성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하는 일에도 어느 정도 적용할만한 충고는 고맙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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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14-06-11 16: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승우 씨는 광주의 모 대학 교수에 재직 중인 유명한 소설가입니다.르 클레지오와도 친분이 있지요.중단편도 재밌고, 특히 신과 인간의 문제를 다룬 작품은 기독교 문학적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한국의 기독교 문학에 관심이 있으면 황순원, 백도기 작품과 함께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transient-guest 2014-06-12 01:32   좋아요 0 | URL
진짜 모르는 작가인데, 의외로 최근에 읽은 독서평론책들에서 많이 거론되네요. 노자님 말씀처럼 매우 유명한 소설가인가봐요. 다음에 책을 주문할 때 좀 찾아봐야겠네요.

2014-06-12 22: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6-13 01:34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