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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티프래질 - 불확실성과 충격을 성장으로 이끄는 힘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 지음, 안세민 옮김 / 와이즈베리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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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 1994"라는 드라마가 대단한 인기다. 드라마를 좋아하는 나로써는 분명 호기심이 많이 갈 작품이긴 하지만 보지 않는다. 내 취향을 잘 아는 내 친구가 얼마 전, 이 드라마를 왜 안보냐고 물었다. 나는 그 친구에게 "젊은이는 희망에 살고, 늙은이는 추억에 산다."라는 프랑스 속담을 응용해 이렇게 말했다. "난 아직까지 추억보다는 꿈을 먹고 살고 싶거든". 90년대의 추억을 자극하는 그 드라마의 재미는 보지 않아도 주변에 들리는 이야기 만으로 충분히 알 수 있다. 그럼에도 그 드라마가 나의 흥미를 끌지 못하는 것은 추억에 묻혀 현실을 잊어버리기 싫기 때문이다. 그깟 드라마 한번 본다고 현실을 잊기는 하지 않겠지만, 지금 우리사회 전반에 보이는 퇴행적 현실은 추억보다는 꿈과 희망이 더 필요한 시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탐욕이 MB정권이라는 희대의 사기꾼 정권을 탄생시켰다면 박근혜 정권은 기성세대의 추억으로 만들어졌다고 생각한다. 더 이상 희망이나 꿈을 꾸지 않은 기성세대들이 자신들의 추억을 현실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이러한 현실은 젊은이들의 희망과 꿈을 짓밟고 있다. 청년실업의 장기화는 물론이고, 청년정신의 상실로까지 나타난다. 추억으로 현실을 사는 사람들은 자신이 가졌던 젊은 시절의 희망과 용기를 과소평가하고 현실을 과대평가해 버린다. 그래서 자신의 자식들이 현실에 안주해 편안하게 살기를 바란다. 공무원이라는 직업이 사명감 없이 그저 안정된 것을 추구하는 우리세대 젊은이들에게 인기를 얻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게 조금씩 꿈과 희망으로 사는 젊은이들이 줄어든다. 너도 나도 현실에 안주하려고 하다 보니 우리 사회의 역동성이 조금씩 사라지고 있다. 그렇게 우리 사회의 계층은 고착화 되어가고, 젊은 이들의 꿈과 희망은 절망으로 바뀌어간다.


"안녕하십니까"라는 대자보의 열풍은 바로 현실이 되어 버린 기성세대의 과거 추억에 대한 갑갑함과 반발의 표현이랄까? 태어나서부터 민주주의를 경험했던 세대와 소수의 민주투사들에 의해서 수동적으로 민주주의를 체험하기 시작하기 시작했던 기성세대 간의 인식차 때문이다. 왜 이런 인식차이가 발생할까? 기억의 왜곡이 가장 큰 문제가 아닐까? 인간은 스스로가 나쁜 기억을 좋은 기억으로 바꾸는 경향이 강하다. 나쁜 기억마저도 우리는 그것을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한다. 젊은 시절에 불합리에 저항했던 세대가 기성세대가 되면서 꼰대가 되는 이유 또한 바로 그 때문이다. 이 책의 저자는 "경험법칙은 경험을 통해 찾아낸 방법으로 대상을 단순하게 만들어 실행에 옮기기 쉽도록 해준다. 그러나 경험법칙의 중요한 장점은 사용자가 이런 법칙이 완벽하지 않고 편리한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고는, 그 장점에 속아 넘어가지 않는다는 데 있다. 이런 사실을 잊어버리면 경험의 법칙은 위험해진다."라고 말한다. 즉 우리가 직면한 추억의 현실화는 저자가 말하는 경험법칙이 만들어낸 장점을 잊어버림으로써 나온 것이다.

 

그렇게 대부분의 사람들은 프래질하다. 경험의 법칙의 중요한 장점을 잊어버리고 경험의 법칙에 의존해 그것을 나쁜 현실로 만들어 버리니까. 같은 성공의 반복된 경험은 나중에 커다란 실패로 이어진다. 환경의 변화에 따른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같은 방식을 고수하다 결국에 실패하기 때문이다. 이른바 경로 의존성이라고 하는 인간의 심리. 이것은 바로 우리를 프래질하게 만든다. 민주주의 후퇴와 과거로의 회귀는 추억을 좋아하는 꼰대들에게 그저 추억일 뿐 다른 충격에는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다. 블랙스완과 같은 예측하지 못하는 충격에만 부러지는게 아니라, 작은 충격에도 무너진다. 소수의 시민들의 희생에 의해서 독재가 무너지고 민주주의가 왔듯이, 시민 위에 선 과거의 추억에 기댄 정당성 없는 권력이락 작은 충격에도 프래질 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그들이 휘두르는 것은 공권력과 언론을 이용한 탄압이다. 자신의 불법을 감추고 자신을 반대하면 공권력으로 탄압하는 그렇게 그들은 자신들의 프래질한 권력을 유지한다.

 

하지만, 저자는 "하향식인 모든 것은 대상을 프래질하게 만들고 안티프래질과 성장을 가로막는 반면, 상향식은 적당한 스트레스와 무질서가 존재한다면 대상을 번창하게 만든다."라고 주장한다. 하향식의 무자비한 권력의 프래질은 꿰뚫어 보고 있다. 북한 서열 2위라는 장성택의 숙청은 하향식 절대 권력의 프래질함을 그대로 보여주는 사건이 아닐까? 정당성과 정의를 상실한 권력은 프래질하고 그 프래질함은 블랙스완이 아니라도 쉽게 깨어진다. 반대로 시민 개개인은 안티프래질한 경향이 강하다. 추억이 아니라 희망과 꿈을 위해 사는 사람들은 어떤 고난에도 쉽게 깨어지지 않는다. 그들이 모두 안티프래질하다 단정할 수 없지만, 분명 그들 중 많은 수는 "안티프래질은 회복력 혹은 강건함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회복력이 있는 물체 충격에 저항하면서 원상태로 돌아온다. 반면, 안티프래질한 대상은 충격을 가하면 더 좋아진다."라는 저자의 주장에 일맥상통한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의 상상할 수 없는 희생속에서 사회는 안티프래질하게 변화해 왔던 것이다.

 

과거의 역사를 잊어버리고 그것을 추억으로 삼는다는 것 그것은 바로 우리가 프래질하다는 반증이 아닐까? 그것은 우리가 현실과 불의에 그저 타협하고 있다는 사실의 반증이 아닐까? "타협은 묵인과 같은 의미다. 내가 인정하는 단 하나의 근대 명언은 조지 산타야나가 했던 말이다.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진실함을 가지고 세상과 세상 사람들을 판단할 때, 그 사람은 도덕적으로 자유롭다.' 이것은 목표일 뿐만 아니라 의무가 되어야 한다."한다는 저자의 주장은 바로 상식이 통하지 않는 사회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문제를 제대로 보여주는 것 같다. 영화 "변호인"에 대한 열풍을 단순히 노무현의 향수라고 치부하고 싶은 집단이 존재하겠지만, 이것은 바로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진실함"에 대한 시민들의 열망이 아닐까? 어떻게 보면 우리 사회에 안티프래질을 추구하는 열망을 살아 있는 것 같다.

 

교육이라는 문제에서도 우리는 프래질화 현상에 직면해 있다. 잘못된 정보를 교과서로 만들어서 그것을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강요한다. 학생의 다양성을 존중하려던 교육제도가 갑자기 학생의 통실성을 추구하려는 교육제도로 강제되고 있다. 이 책의 저자는 "아이들의 삶에서 변화의 가능성을 줄이려는 시도는 아이들을 이른바 '문화적으로 세계화된 위대한 사회'에 가두고 다양성과 차이를 줄이는 결과를 초래한다."라고 경고하고 있다. "유기체와 동적 시스템의 경우, 정상 상태는 일정 정도의 가변성, 무작위성, 정보의 지속적인 교환, 스트레스를 요구한다. 이것은 가변성을 잃어버리면 곧 죽음을 맞이한다는 의미다."라는 저자의 주장을 우리 사회 시스템은 현실에 강요하고 있다. 민주주의란 "시스템 내에서, 멸종을 불러오는 극단적인 충격이 아닌 어느 정도의 잡음과 동요가 빈번할수록 적자생존과 무작위적인 돌연변이의 효과는 다음 세대의 특징을 규정짓는 데 더 많은 역할을 한다." 중요한 체계다. 하지만, 지금 우리의 민주주의는 오히려 반대로 가고 있다. 사회의 다양성은 그렇게 무너지고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대리인들에 대한 강력한 비난을 한다. 리스크를 스스로 지지 않고, 이득을 취하는 위선적인 대리인들이 시민을 기만하고 세상을 안티프래질 하고 만든다는 것이다. 미국발 경제 위기에 중요한 역할을 한 파생상품과 그것을 팔아서 이득을 취한 집단이 바로 리스크를 지지 않고 이득을 취한 사악한 대리인들이다. 그들은 어설픈 합리주의로 세상을 속인다. 저자는 "어설픈 합리주의가 갖는 오류는 인간사에서 두 번재 유형의 지식 즉 학문적 지식의 역할과 필요성을 과대평가하도록 만들고 체계화할 수 없는 것, 더욱 복잡한 것, 직관적인 것, 경험에 바탕을 둔 것을 과소평가하게 만든다."라고 한다. 자신의 말에 대한 책임을 괴면으로 일관하는 정치인 평론가 그리고 학자들이 바로 그들이다. 4대강 사업은 찬성해 학자적 양심을 팔았던 그들은 지금 거기에 대한 책임조차 없다. 우리의 자연은 그들의 행위로 인해서 프래질해졌는데도 말이다. 바로 이것이 우리 사회의 대리인들이 얼마나 사악한 집단인지를 바로 보여주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합리주의가 더욱 세련되기 위한 유일한 조건은 우리가 모든 것을 알고 있지 못하다고 믿고 행동하는 것이다. 세련되고 싶다면, 자신이 세련되지 않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라고 말한다. 블랙스완 처럼 우리가 알지 못하는 현상은 언제든지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가 "나는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안다."라고 했던 교훈을 이제는 다시 생각해봐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어설픈 학문적 권위와 합리주의를 앞세워서 거짓말을 일삼는 대리인들에 대해서 우리는 경계해야 한다. 그것은 우리와 사회를 프래질하게 만드는 사악한 집단이다. 프래질한 현실을 타게하기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할까? 저자는 "당신이 위험을 무릅쓰고 위엄 있게 운명을 맞이한다면, 자신을 작아 보이게 만드는 행동을 할 수 없다."라고 말한다. 그것이 우리를 안티프래질하게 만드는 첫 걸음이지 않을까?

 

이 책은 실제로 방대한 분야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렇게 정치적인 현실에 대한 리뷰가 되어 버린 것은 이 책을 읽으면서 교차하는 지금의 현실이 책에 그대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사회현상은 바로 저자가 경계하고 있는 프래질화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이렇게 책을 읽은 것이 저자의 주장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그 만큼 이 책의 내용은 때론 복잡하고 방대하다. 하지만, 현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책 속의 세상만 바라보면 제대로 책을 읽은 것이겠는가? "범죄를 중단시키지 않는다면, 당신도 공범자다."라는 저자의 말처럼 세상을 패래질하게 만드는 것들에 대해서 침묵하고 순응하면 공범이 되는 것이다. 그러지 않기 위해서 "당신이 위험을 무릅쓰고 위엄 있게 운명을 맞이해야"하지 않을까? 지금 당장은 안녕하지 못할 수 있다. 하지만, 앞으로는 안녕해야 하지 않을까? 지금은 위험을 무릅쓰는 용기가 필요한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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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코머핀 2013-12-22 2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서평 잘 읽었습니다 ^^
 
[제6의 물결]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제6의 물결 - 자원 한정 시대에 어떻게 성장할 것인가
제임스 브래드필드 무디 & 비앙카 노그래디 지음, 노태복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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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저성장으로 인한 해소되지 않은 청년 실업은 세계 곳곳에서 커다란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이민자에 대한 반감이 증가하고 있고, 인종혐오 범죄까지 발생하고 있다. 최근 호주에 워킹홀리데이를 떠났던 여대생의 무참함 죽음은 거기서 끝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세계 곳곳에서 이런 범죄는 점점 증가할 것이다. 멈추지 않는 폭주기관차 처럼, 이미 세계는 점점 보수화를 넘어서 극우화로 치닫고 있다. 이런 이야기가 먼 나라 이야기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우리나라도 결코 그런 현실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교과서라고 부르기에 민망한 것을 좌편향 교과서에 대응한다는 명목으로 극우정치인과 정권에 의해서 교과서로 채택되는 나라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일베라는 쓰레기 집단에 정권과 여당의 필요에 의해서 선량한 보수네티즌이라는 역겨운 타이틀을 그대로 받아 쓰는 앵무새 언론이 판을 치는 그런 나라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경제의 풍요가 사람의 시민의식과 정신을 성숙시키기도 하지만, 경제의 상대적 박탈감은 시민의식을 좀 먹고, 인간 정신을 퇴화 시킨다.

 

인간 정신에 대한 도덕적 이야기로 그것을 되살린다는 것은 공허한 메아리 밖에 되지 않는다.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보지 않고 분노를 약자에게 쏟아내는 그런 약자들이 스스로를 과연 되돌아 볼까? 이미 귀를 닫고 자신이 믿고자하는 것만 듣고 말하고 보는 그런 사람들에게 말이다. 결국 경제에 대한 상대적 박탈감의 증가를 해결하고 좀 먹어가는 시대정신과 시민의식을 되살리는 첫걸음은 경제에서 시작할 수 밖에 없지 않을까? 비록 탐욕스러운 경제가 인간의 가치를 훼손하고 망가뜨렸지만, 경제의 침체는 타인에 대한 관용과 인간의 정신마저 갈아 먹는 아이러니 한 상황에서 우리의 선택은 경제일 수 밖에 없어 보인다.

 

그래서 너도 나도 경제를 살려야 한다고, 그래도 저마다 자기가 경제를 살릴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경제를 잘 안다는 대통령은 사기를 가장 잘치는 대통령이었고, 경제 민주화를 하겠다는 대통령은 자신의 공약을 없던 것으로 해버렸다. 그녀가 같이 내놓은 "창조경제"라는 말은 실체가 없다. 많은 시민들은 그녀에게 물었다. "창조경제"가 뭐냐고. 그럼 그녀는 침묵한다. 그녀 조차 그것을 설명할 수 없으니까. 그녀 주변의 내시들이 창조경제란 것에 이런 저런 설명을 붙이기는 하지만, 그저 공허한 말만 남발할 뿐이다. 가끔 한 개인이 이뤄낸 업적을 그녀가 치하하면서 이것이 "창조경제"라는 구호를 붙이면 앵무새 언론과 내시들은 "창조경제"에 대해서 완벽하게 이해라도 한 듯 맞장구를 치며 칭송한다. 그럼에도 시민들이 느낄만한 경제의 개선은 쉽게 눈에 띄지 않는다. 단지 몇 몇 개인의 조그만 성공을 정책의 방향 때론 성공으로 과대포장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녀의 내시들과 앵무새 언론은 열심히 "창조경제"를 설파하기 바쁘다. 불법 행위로 오너가 구속된 한 기업은 정권의 호혜를 받기 위해서 열심히 "창조경제"에 대한 광고를 해대면서 딸랑이를 흔들기에 바쁘다. 그들이 설파하는 창조경제란 그저 공허하게 다음 물결에 대한 추상적 기대 뿐이다. 누가 모르는가 산업혁명이나 정보통신 혁명 같은 거대한 물결이 경제의 비약적으로 성장시킬 거대한 원동력이라는 것을. 그런 식의 창조경제라면 중고등학교 때 배운 것만으로도 누구나 이야기 가능한 것들이다. 그럼에도 그것이 마치 대단하다는 식의 이야기는 그들의 최고존엄의 말씀이라면 절대적 가치를 매기는 전형적인 꼰대들의 행동들이다. 어떻게라고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그들은 불과 몇년 전까지 존재하지도 않는 "낙수효과"라는 말로 시민을 기만했던 바로 그들이다. 그렇게 그들의 사기기법은 변화하고 있다.

 

차라리 이 책이 그들이 말하는 창조 경제에 가까운 것 같다. 자원의존적인 지금의 경제체제 대한 제대로 된 분석으로 시작해서 다가올 경제의 신 패러다임에 대한 조심스러운 접근은 상당히 구체적이다. "창조경제" 처럼 "6의 물결"이라는 말로 말장난 하지 않는다. 물론 이 책이 예측하는 "6의 물결"이라는 것이 대부분의 다른 예측처럼 실현되지 않을 가능성도 높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으로 살아가는 우리에게 구체적으로 다가올 미래와 현실을 보여준다. 이 책이 현실적인 이유는 "자원 소비에 과도하게 중독된 세계에서 벗어나 자원 효율성이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되는 세계로 전환되는 혁명이다." 라는 저자의 주장을 바탕으로 현실을 생각해보면 쉽게 공감할 수가 있다. 소비전력이 작은 전자제품을 선호하기 시작하는 소비형태가 이미 현실에서 나타나고 있으니까. 얼리어답터들의 블로그에 전자제품리뷰에 필수적으로 보이는 것이 "소비전력"을 직접 측정해서 평가하는 부분은 좀처럼 빠지지 않는다. 그만큼 에너지 효율성을 중시하는 소비자들이 점점 증가하고 있다는 것을 엿볼 수 있다.

 

이러한 트렌드의 변화는 거대한 물결이 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시대 정신의 반영이라고 할 수 있다. 한정된 자원에 대한 마구잡이식 소비에 대한 시민의식의 발현이랄까? 결국 이러한 흐름에 따라서 경제도 따라갈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저자들은 "자원 효율성은 제6의 물결에서 핵심이다."라고 말한다. 쓰레기 재활용 기술을 비롯한 에너지 효율성 그리고 물의 사용에 대한 효율성까지 전방위에 걸쳐서 일어날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은 실제로 그런 사업을 진행하는 기업들 사례를 보여주면서 아직은 미미하지만 시장과 기술은 이미 변화가 큰 물결을 주도할 것으로 본다. 저자들이 물결을 일으키는 3가지 요소 중 마지막 "제도"가 뒷받침되어 준다면 가능성은 더 클 것으로 보고 있다. 즉 거대한 물결은 시장, 기술 그리고 제도가 뒷받침되어야 하며, 지금 기술과 시장의 조그만 물결이 태동하고 있는 수준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자원 효율성은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지구 온난화와 환경 파괴 문제에 대해서도 좋은 대응역활을 한다. 그 만큼 오염배출물을 줄이고 낭비하던 자원을 재활용함으로써 자원을 채취하기 위한 환경 파괴문제도 줄여버린다. 강물을 파서 콘크리트로 자연을 바꾸면서 '그린'이란 거짓말을 했던 과거 정권에 비하면 이것이 제대로 된 '그린'이 아닐까? 바로 이게 경제의 변화에 대한 패러다임의 전환이다. 과거의 패러다임에 '그린'이라는 글자만 붙여서 마치 대단한 패러다임의 변화인 것처럼 말하던 사기꾼의 거짓말이 아니라.

 

여기에 저자들은 서비스 산업에 대한 패러다임의 변화를 주목한다. 우리의 최고존엄께서는 서비스 산업에서 시간제 일자리 창출을 "창조경제"의 하나로 선택한다. 신자유시대의 저주같은 "민영화"에 대한 환상도 이 시대에 다시 불러들였다. 그것이 "창조경제"라고. 하지만, 그들이 말하는 서비스 산업과 민영화는 결국에 실패했던 과거를 반복하는 것 뿐이다. 그것은 미래나 새로운 물결이 아니라 "창조경제"라는 말로 포장된 사기술일 뿐이다. 이 책의 저자들은 그런 패러다임과는 다른 새로운 전환을 주목한다. "6의 물결에서 성공은 기업과 국가가 경쟁우위의 원천을 제품에서 서비스로 얼마나 효과적으로 이동시키느냐에 달려 있다."고 그들은 말한다. 서비스업을 아주 단순하게 생각하는 최고존업과 사기꾼들에서는 절대로 볼 수 없는 발상이다. 하지만, 이것이 그렇게 갑자기 생겨난 발상이냐면 그것 또한 아니다. 이미 우리나라에서 많은 기업들이 이런 방식으로 서비스업을 발전시키고 있다. 코웨이 같은 기업이나 이동통신 회사들은 이미 저자들이 말한 방식의 서비스 패러다임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기업들이 아직도 이런 서비스업에 대한 패러다임으로 전환하지 못하는 이유는 "제품이 아니라 서비스를 파는 일은 많은 기업에게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여전히 벅찬 일이다. 여러 서비스를 묶어서 시행하려면 똑똑한 비즈니스 모델이 필요할 뿐 아니라 정보를 통합적으로 관리하는 완전히 새로운 사고방식도 요구되기 때문이다." 즉 아직 이런 흐름에 대해서 많은 기업들은 막연하게 인식하고는 있지만, 새로운 사고방식으로 전환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창조경제"를 그렇게 설파하는 최고존엄 조차 "창조경제"를 모르는데 그녀의 내시들은 얼마나 알 수 있겠는가? 어떻게 보면 이 책이 가지고 있는 한계이기도 하고 우리가 찾을 수 있는 가능성이기도 하다. 하지만 자신의 입맛대로 교과서를 가르치고 다른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을 적으로 낙인 찍어버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런 세상에서 그런 새로운 사고방식이 나타날까? 다양성이야 말로 창조의 가장 큰 힘인데... 그들이 생각하는 창조는 최고존엄에 대한 절대복종 뿐인데 무슨 창조경제가 나타나겠는가? 창조를 추구하면서 창조를 말살하는 아이러니한 현실을 우리는 살고 있다.

 

"6의 물결"에 디지털은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저자들은 말한다. 자원의 효율성 확보를 위해서 물질적인 것은 지역적이 되겠지만 정보는 여전히 디지털화 되어서 국제화되어 있다는 것이다. 저자들은 "계장화, 지능화, 상호연결성"이라는 세가지로 인해서 앞에서 이야기한 자원의 효율성과 서비스 산업과 결합하게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결국 이러한 것들의 융합은 " 더 많은 선택의 기회와 정보가 주어지면, 소비자들은 이용 가능한 선택사항을 더욱 다양하게 활용할 것이다. 이처럼 증가한 소비자의 힘을 인정하지 않고 늘 똑같은 획일화된 제품이나 서비스만을 제공하는 회사들은 시장점유율의 감소를 목격하게 되"는 시대의 변화로 이끌 것이라고 한다. "창조경제"라는 허황된 사기술이 아니라 과거의 정책을 말만 바꾸어서 재탕하는 사기술에 언제까지 속아야 할 것인가? 우리가 진정 주목해야 할 "창조"의 시작은 패러다임의 거대한 전환이다. 변화에 거부감을 극복하고 그 변화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해야 하는 것이다. 이 책은 시장과 기술의 변화에 대한 조그만 기회가 되어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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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코머핀 2013-12-22 1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확인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

은빛연어 2013-12-22 18:17   좋아요 0 | URL
주말에도 고생 많으시네요^^
 
[트렌드 차이나]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트렌드 차이나 - 중국 소비DNA와 소비트렌드 집중 해부
김난도.전미영.김서영 지음 / 오우아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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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공장에서 이제는 세계의 소비시장으로 변해가고 있는 중국 경제의 위상변화는 우리의 경제 전략에 대한 변화도 유발한다. 값싼 노동력을 이용하려던 고민은 어떻게 중국의 수 많은 소비자를 사로잡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으로 바뀌고 있다. 그 만큼 급속한 경제성장으로 인한 중국의 풍부한 소비력은 세계경제의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래서 많은 다국적 기업을 비롯해 우리나라의 기업들도 중국의 노동력이 아니라 거대한 시장을 주목하고 있다.

 

세계화로 인해서 지구는 평평하다고 하지만, 보이지 않는 거대한 장벽이 시장과 시장 사이에 존재한다. 국경의 의미는 약해졌다고 하지만, 사회주의 노선을 고수하고 있는 중국의 시장은 보이지 않는 장벽과 더불어 보이는 거대한 손 또한 존재한다. 중국 시장에 대한 두 가지 장벽은 기업들의 진출에 장애물이 되고 있다. 시장의 보이는 손에 대해서 진출 기업들이 어떻게 다룰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보니 거기에 적을 할 수 밖에 없다. 인터넷의 비검열 원칙을 추구하던 구글이 중국정부에 백기를 들어 투항했던 사건만 봐도 중국시장의 보이는 손에 대해서 알 수 있다.

 

어절 수 없는 장벽은 뒤로 하고 중국의 소비자를 사로잡기 위한 기업들의 역량은 보이지 않는 시장의 장벽을 넘기 위해서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이 보이지 않는 장벽을 뚫어야지만 중국 시장에서 높은 점유율을 차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장벽은 단순히 글로벌 기업이라고 쉽게 넘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 나라에서 많은 글로벌 기업들이 실패했던 현실은 바로 중국 시장에서도 글로벌 기업이라고 쉽게 진출할 수 없다는 단면을 보여준다. "빅맥이냐 김치냐"라는 책은 바로 이런 보이지 않는 장벽에 대한 사례를 보여준다. 그 책의 저자들은 글로벌 한 것만이 아니라 그 지역적인 가치에 대해서 섬세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한다.

 

"트렌드 차이나"는 바로 그 지역의 트렌드와 성향에 대해서 섬세한 접근을 한다. 중국이 가지고 있는 문화적 지역적 가치를 소비 트렌드로 분석해 중국의 시장에 대한 섬세한 접근이 필요함을 보여준다. 중국 시장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우선 중국시장에 대한 오해를 깨는데서 시작한다. 그 첫번째가 "단일 시장의 신화". 영토가 넓고 여러 민족이 공존하기 때문에 중국이라는 시장을 하나의 시장으로 보면 위험하다는 것이다. 그 두번째가 '보편적 가치에 대한 신화'. 소비자를 세분화 해서 접근해야 된다는 것이다. 그 다음으로는 '후진 시장의 산화'. 선진국에 유행했던 트렌드가 현재의 중국에서도 통한다는 생각이다.

 

이런 잘못된 오해를 깨면서 중국시장에 대한 본격적인 섬세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과정을 거치고 난 후 저자들은 소비자의 유형을 나눈다. 그 기준을 소득, 소비의 자기 타인 지향성을 바탕으로 6가지 형태의 소비자로 나눈다. 이렇게 나눈 소비자의 특징과 소비성향을 나열하면서 기업들이 어떻게 그 소비자들에게 접근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이렇게 세분화되는 소비자 만큼 기업들은 특정 집단을 목표로 브랜드와 제품을 판매해야 되는 것이다.

 

이후 중국 소비자들이 가지고 있는 소비 성향을 분석한다. 저자들은 7가지 맥락으로 그것을 설명한다. 다민족국가, 도가와 유학적 전통, 사회주의 이념, 동생자 정책, 급격한 시장 개방, 각종 안전사고, 매체 다변화를 꼽는다. 이런 7가지 맥락을 통해서 자연지향, 향유지향, 조화지향, 기능효능지향, 목적실리지향, 개성지향으로 중국적 가치관이 형성되었다고 본다. 이런 가치관을 통해서 본질을 찾고 중국 소비자의 성향을 분석한다. 어떻게 보면 서로 어울리지 않는 대립적인 가치관도 있을 만큼 중국인의 가치관과 소비성향은 너무나 복합적이다. 뿐만 아니라 트렌드의 급속한 변화까지 더하면서 중국의 소비 시장의 소비자들은 점점 까다롭게 변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이런 복잡한 트렌드 분석을 통해서도 중국 소비자에게 완전하게 접근할 수 있다고 쉽게 장담할 수 없다. 그래서 저자들은 "변덕스러운 소비자의 모순된 소비가치를 끊임없이 추적하고 대응해나가는 공감능력이야말로 변화무쌍한 현대 중국 시장의 트렌드 쓰나미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필수 해법이다."라고 말한다. 즉 중국을 시작을 바라 볼 때 단순이 이득이라는 관점으로 접근한다면 트렌드를 쉽게 따를 수가 없을 것이다. 중국 소비자에 대한 관계를 넓혀가고 공감할 수 있는 능력에 트렌드를 이해하는 힘이 됨을 저자들은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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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코머핀 2013-11-18 2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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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따르는가 - 스티브 잡스의 사람 경영법
제이 엘리엇 지음, 이현주 옮김 / 흐름출판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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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적 신이 아닌 인간이기에 그 사람에 대한 평가는 상반되는 경우가 많다. 선과 악이 공존하고 빛과 어둠이 공존하듯 대부분의 사람은 빛과 어둠이 공존한다. 빛이 강한 사람은 좋은 평가를 받고, 어둠이 강한 사람은 나쁜 평가를 받는다. 여기에 대한 평가 또한 사람마다 다르다 보니 끝임없는 논쟁적 인물이 존재하기도 한다. 그 중에 개인적으로 갸우뚱 하게 만드는 인물 중에 하나가 스티브 잡스다. 잡스에 대해서 객관적으로 썼다는 전기를 읽어도 보고, 애쉬튼 커쳐가 출연한 영화 "잡스"를 봤지만, 여전히 그의 경영능력에 대해서 의문이 가시지 않는다.

 

그가 지금까지 이뤄왔던 결과만 보면 그는 대단한 경영자임에는 틀림없다. 시가총액 1위의 기업을 창업하고 죽기 전까지 경영하기 했으니까. 하지만, 그가 애플을 키워오는 과정에서 틀려왔던 이런 저런 잡음들은 그의 인간적 매력은 물론이고 경영능력이 존재하는지 의문이 들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는 누구나 칭송해 마지 않는 혁신적인 제품을 세상에 내놓지만, 실제로 그 혁신은 이미 존재했던 것을 재창조한 것이 대부분이다. 애플은 그의 친구 스티브 워즈니악의 작품이고, 마우스와 GUI인터페이스는 제록스 연구소의 작품이다. 그렇다고 그가 뛰어난 공학자여서 직접 제품을 개발했던 것도 아니였다.

 

모두가 감탄해마지 않는 제품의 디자인도 그렇다. 그의 미적감각이 뛰어나다는 것은 모두 인정하지만, 그는 뛰어난 디자이너가 아니였다. 그렇다고 모두 그의 인격이 고매해서 직원들이 스스로 따르는 경영자 또한 아니였다. 괴팍한 성격으로 유명했던 그는 애플에서 쫓겨나기도 했을 정도로 독불장군적 성향을 보이는 인물이다. 자신의 지시에 따르지 않는 직원에 대해서는 심한 모욕적인 말도 거침없이 쏟아내 모욕을 주던 그런 인물이었다. 그렇게 대외에 알려진 그의 이야기만 보면 스티브 잡스의 능력에 대한 의구심은 커진다. 그럼에도 그를 추종하는 직원들이 넘쳐나고, 그를 추종하는 소비자들이 넘쳐난다. 왜 그를 따르는 것일까?

 

스티브 잡스를 지근거리에서 봐왔던 제이 엘리엇은 나와 같이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았는지, 세간에 알려진 잡스에 대한 이야기와 평가에 대해서 바로잡으려고 노력한다. 그 과정을 통해서 스티브 잡스가 가지고 있는 경영능력과 매력을 들어낸다. 잡스가 가지고 있는 성격적 결함과 기이한 행동에 대해서 자신만의 해석을 덧붙여 좋은 방향으로 해석한다는 점에서 그의 시각이 잡스의 정확한 모습을 보여준다고 할 수 없다. 그가 잡스의 복심까지 모두 알고 있다는 듯 자의적 해석을 붙이지만, 그가 보여주고자 하는 잡스의 참모습에 공감이 가지 않기도 한다. 하지만, 이 책은 잡스가 가지고 있는 경영능력의 핵심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분명 잡스는 뛰어난 공학자는 아니였다. 하지만, 그는 어떤 공학기술이 가지고 있는 잠재력을 꿰뚫어 봤다. 그는 직접 디자인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유능한 디자이너는 아니였지만, 뛰어난 미적감각으로 대중들이 열광할 디자인을 주도했다. 잡스가 가진 이런 감각을 가진 사람은 많이 있을 수도 있다. 잡스의 능력은 그 분야에서 천재라고 감히 말할 수 있을 만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잡스가 위대한 경영자가 된 이유는 무엇일까? 제이 엘리엇은 다른 뛰어난 인적 자원을 제대로 이용하는 스티브 잡스의 능력에 집중한다.

 

스티브 잡스가 제시하는 장기적 비전은 구성원들을 흥분시키고 열정을 가득차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그것은 스티브 잡스가 가지고 있는 제품에 대한 신념과 괘를 같이 한다. 소비자를 만족시킬 수 있는 완벽한 제품을 추구하는 신념은 그것을 만들어내는 팀원들로 하여금 보람과 만족을 느끼게 만든다는 것이다. 어쩌면 스티브 잡스의 화술이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도 같지만, 그의 화술은 겉만 번지르한 수사가 아니라 진심에서 나온 신념과 열정이 담긴 것이었다. 저자는 "강요된 열정이 아니라 진정한 열정은 감지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들에게로 옮겨간다. 따라서 주변 사람들 역시 열정적이 되고, 그 덕분에 더욱 협력적인 팀이 탄생한다."라고 말한다.

 

그럼 열정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자기 자신을 위한 열정일 수도 있고, 타인을 위한 열정일수도 있다. 하지만, 자기자신의 위한 열정은 타인을 흥분시킬 비전을 제시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열정을 전염 시킬 수 없다. 스티브 잡스의 열정은 스스로에게 만족을 추구한 것이 아니라 고객을 감동시킬 만족을 추구했다. 그 기준치에 대해서 스스로에 대한 만족치가 소비자가 생각지도 못했던 높은 만족치였기에 그가 내놓는 제품들은 감동적인 혁신이었고 시대를 앞당긴 혁신이었다. 그것은 돈을 많이 버는 기업이 아니라 고객을 만족시키려는 그의 단순한 목표였기 때문이다. 다른 이를 위한 열정은 바로 주변 사람도 반할 수 있는 열정을 만들어 준다. 그것이 어쩌면 돈을 목표로 하는 다른 기업가와는 열정의 힘이다.

 

그렇다고 단순히 타인을 위한 열정을 만들어야 한다고 만들 수 있을까? 제이 엘리엇은 이 책의 마지막에 스티브 잡스가 스탠포드 대학 졸업식에서 했던 연설문을 그대로 옮겨서 보여준다. 스티브 잡스가 지고 있는 매력과 열정은 어디서 왔는지를......그 연설의 마지막 부분을 인용하면, "아직 목표를 찾지 못했다면, 계속 찾으십시오. 안주하지 마세요. 마음의 일들이 모두 그렇듯, 그것을 찾았을 때 그 사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위대한 관계가 그렇듯, 해가 거듭될수록 점점 더 좋아질 것입니다. 진정으로 만족을 느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자신이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자신의 연설대로 삶을 살아온 잡스의 매력과 열정에 어떻게 감화되지 않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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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코머핀 2013-11-18 2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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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경영/자기계발 주목 신간 작성 후 본 글에 먼댓글 남겨 주세요.

 자기 인생의 주인은 자기 자신이라는 명제는 절대 변하지 않는 사실이지만, 사람들은 때론 이것의 의미를 확대 해석하는 것 같다. 무식한 군대에서나 통하는 하면 된다는 식의 맹목적인 믿음을 자기 인생에 대입해 버린다. "욕망" 그 절제하지 못하는 불꽃으로 스스로를 태우면서 스스로 산화한다. 자신도 통제하지 못하는데, 주변환경도 스스로 예측하고 통제할 수 있다는 착각에 자각하지 못했던 일을 당하게 된다. 아무리 통계학이 발전하고 눈부신 속도의 슈퍼 컴퓨터가 엄청난 속도로 계산을 한다해도, 기상청의 예보는 빗나가기 마련이고, 유능한 경제학자들의 예측은 빗나간다. 소뒷걸음 치다 예측이 맞은 어중이 떠중이 예언가 예측자의 다음 번 예측은 언제나 빗나가고, 주식에서 큰 돈을 벌었던 어중이 떠중이는 어느 순간엔가 알거지가 되기 십상이다. "블랙스완"은 경제 현상에 대한 명확한 설명 뿐만 아니라, 우리의 인생도 설명해 준다. 요즘은 그 극단성이 너무 증가해서 불확실성에 사람들의 스트레스나 불안감은 증가하고 있다. 나심 탈레브는 이 책을 통해서 우리에게 어떤 생존의 비결을 이야기 해줄까? 



 성장의 둔화, 자원의 고갈, 지구 온난화 같은 문제들로 인해서 "골디락스"는 이제 동화책 속에나 전해지는 이야기가 되는 것이 아닐까? 여전히 정치꾼들과 사악한 기업들은 대중들을 향해서 성장의 망상을 심어주면서 산업화 시절의 향수와 구호로 향수에 취해서 현실을 잊게 만들려고 노력중이다. 하지만, 그런 향수가 없는 젊은 세대들은 88만원 세대라고 불리며 여전히 생존에 힘겨워하고 있다. 기성세대의 향수에 취한 선택이 젊은 세대에게는 현실의 절망감만 키워간다. 시대가 지난 정부의 경제정책은 결국에 향수에 취한 기성세대에게도 고통으로 되돌아 올 수 밖에 없다. 당장 눈 앞에 터진 고령화 문제는 풍요로운 노년을 바라면 피와 땀을 흘렸던 그들의 청춘을 허송세월이라 한탄하게 만들것이다. 과거의 영광에 취해서 살는 일본의 경제의 몰락은 유신시대의 망각에 취해있는 우리의 기성세대에게 타산지석이 되어야 할텐데... 망각의 거짓이 깨어지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환경의 변화에 가장 잘 적응하고 대응하는 종이 살아남는다고 하지 않았던가? 우리는 향수가 아니라 새로운 물결의 거친 파도를 향해서 당당하게 걸어나가야 한다. 앞으로 다가올 새로운 거대한 물결 그것은 무엇일까라는 궁금증에 이 책을 주목해 본다.



 기술의 발전으로 상상할 수도 없는 양의 데이터를 이용해서 활용하기 시작한다. 소위 말하는 빅데이터. 단순히 데이터를 수집에 차곡차곡 쌓아 놓는다고 빅데이터가 되는 것은 아니다. 데이터를 가공해 그것을 정보롤 바꿔야만 빅데이터가 진정한 가치를 가진다. 빅데이터를 정보로 바꾸는데 핵심이 되는 학문이 통계학이 아닐까? 그렇다고 평범한 우리들이 빅데이터를 모으고 그것을 통계학으로 가공할 일은 거의 없다. 하지만, 통계학은 어떤 결정을 내리고 사회 현상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도구이지 않을까? 딱딱한 학문적 접근이 아니라, 현실의 사례를 통해서 쉽게 접근하는 이 책은 통계적 사고력을 개발하고 이해하는데 힘이 되어주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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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코머핀 2013-11-06 19: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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