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기적의 비밀]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경제기적의 비밀 - 이스라엘은 어떻게 벤처 왕국이 됐을까?
이영선 지음 / 경향BP / 2012년 12월
평점 :
품절


"이스라엘은 어떻게 벤처왕국이 됐을까?"라는 부제를 달고 있지만, 이 책은 경제 서적이라기 보다는 이스라엘에 대한 사회문화에 대한 서적으로 보는게 가까울 것 같다. 이 책의 전반은 이스라엘의 문화와 민족적 특징들을 나열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이스라엘의 벤처기업문화를 설명하고 있긴 하지만, 개인적으로 이스라엘의 몇 몇 문화들이 더 눈에 들어온다. 경제 발전이라는 것이 단순히 경제적 능력이나 환경이 아니라 그 사회가 가지고 있는 분위기나 문화가 좌우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기후에 따라서 각 지역의 삶의 행태나 철학들이 차이가 나는 것처럼, 사회 문화가 가지고 있는 힘이 가장 강력한 경제의 힘이 되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좋아하지 않는다. 인상적인 "탈무드"와 유대인들이 만들어 낸 다양한 문화 상품들은 이스라엘에 좋은 감정을 만들 수도 있었겠지만, 국제 사회의 뉴스에서 접하게 되는 이스라엘과 관련된 정보는, 결코 그 나라를 좋은 시선으로 보게 만들지 않는다. 단순히 남의 나라 이야기라고 치부하고 넘어갈 수도 있지만, 어떤 면에서는 도를 넘는 듯한 무자비함은 그들이 증오를 내뿜는 테러리스트들과 무슨 차이가 있는지 모르겠다. "눈에 눈, 이에는 이"라는 식의 그들의 잔인함과 폭력성이 정당화되는 국제사회의 또 다른 모순은, 국제사회에 힘의 논리가 얼마나 작용하는지 잘 보여준다.

 

이스라엘의 야만성은 팔레스타인 어린이들을 향해 총을 난사한 사건을 비롯해, 과연 정상국가의 군인으로써 할 수 있는 행위인가 의문이들 만한 것들이 많다. 하지만, 그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국민의 분리를 위해 장벽 설치를 가로 막던 미국의 여대생을 중장비로 깔아 뭉게 죽인 사건이다. 그들의 적대국 사람이 아니라 평화운동가인 평범한 여대생을 충분히 힘으로 끌어낼 수 있었음에도 죽음으로까지 몰고 갔던 사건이다. 외교적 문제로까지 비하 될 수 있는 사건으로 기억하는데... 시간이라는 지우개 여대생의 죽음을 점점 잊게 만들어 버린다.

 

이스라엘이 가지고 있는 이런 폭력성은 어떤 면에서 이해할 수도 있다. 수 많은 적대국으로 둘러 싸여 언제든 전쟁에 노출된 국제적 현실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방어적 논리로 충분히 설명 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방어적 폭력성이라는 것은 때론 그 한계를 쉽게 넘어 버린다. 전쟁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가 스스로에 대한 방어를 넘어서 공격적 폭력성으로 변하는 것은 한 순간이기 때문이다. 팔레스타인 어린이를 무자비 하게 총을 쏘기도 했던 그들의 모습은 두려움과 공포가 만들어 낸 잔혹한 폭력성의 형태이다. 이런 표면적인 것으로 이스라엘의 모든 것을 이해한 다는 것은 너무나 성급한 일반화 일수도 있다. 그래서 이스라엘에 대해서 전반적으로 설명하는 이 책이 어떤 점에서는 반갑게 다가온다.

 

특히 이 책의 내용 중에 인상적인 것은 문화의 다양성이 넘치는 이스라엘의 인구구조다. 2천년의 떠돌이 생활로 인해서 같은 정서나 문화를 완전히 공유하지 못하는 다양한 지역과 국가 출신의 유대인들이 유대교라는 하나의 가치로 뭉쳐있다는 점이다. 이런 출신지역에 따른 다양성이 가지고 있는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다양한 갈등을 이 책은 보여준다. 출신지역에 따른 갈등이 문제가 되기도 하지만, 문화적 다양성에 대한 무한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 국가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이스라엘은 러시아출신 유대인의 힘으로 기술적 비약과 경제성장을 이뤄냈다. 이는 경제와 생존이라는 가치가 더해지면서 필요성에 의한 것이다. 뒤집어 생각하면, 생존이라는 가치에 모든 것을 걸고 있는 이스라엘이 문화적 다양성을 어떻게 보면 많이 억누르고 있는 듯하다. 이 잠재력이 폭발할 때는 아마도 이스라엘은 더 무시무시한 국가가 되지 않을까?

 

하지만, 이스라엘은 분명한 한계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주변국과 팔레스타인에 대한 무관용의 원칙이 과연 얼마나 통할 수 있는 것인지 하는 것이다. 미국과 전세계의 유대인 네트워크의 힘을 바탕으로 국제관계에서 강력한 힘 발휘하고 있긴 하지만, 상대방의 분노를 자극하는 그들의 행위는 언젠가 그대로 되돌아 올 수 밖에 없다. 에이미 추아는 "제국의 미래"라는 책을 통해서, "관용"이라는 힘을 설파하고 있다. 세계를 지배했던 제국들의 힘은 단순한 힘이 아니라 "관용"이라는 가치라고. 계속해서 적을 만들고 상대방의 분노를 쌓아가게 만드는 이스라엘의 정책은 자신들의 우군들이 사라지는 순간에 힘을 잃을 수 밖에 없다. 언제까지 2차 대전 때 학살 당한 유대인에 대한 미안함 만으로 국제사회는 이스라엘을 감싸지 않을 것이다. 이 책을 통해서 보여지는 이스라엘이라는 사회와 문화는 분명 지금까지는 성과를 보여왔다. 하지만 이 책이 보여지는 또 다른 내용은 분명 그 한계도 같이 보여준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3-02-24 11: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당신의 인생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당신의 인생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 하버드 마지막 강의, 마지막 질문
클레이튼 M. 크리스텐슨 외 지음, 이진원 옮김, 이호욱 감수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2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자기계발서들은 읽을 때는 희망과 용기를 준다. 때론 그것이 위로가 되어서 나도 할 수 있는 생각으로 자신의 인생에 대한 열정을 잠시 불사르게 만든다. 하지만, 자기계발서를 소비하는 대부분의 독자들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경우가 많다. 읽으면서 느꼈던 희망과 용기로 지금 보다 나은 자신의 삶을 원했지만, 아직 제자리에 머물고 있는 자신을 보고는 다시금 그들은 다른 자기계발서를 통해서 위안과 자신도 뭔가 노력이라는 것을 하고 있다는 자기 변명을 만들어 간다. 그렇게 자기계발서를 소비하는 사람들은 그것의 무용성을 깨닫기 전까지 다람쥐 쳇바퀴 돌 듯 한다. 대부분의 자기계발서들은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명언사전에서 봤을 법한 말들을 그럴듯하게 포장해 놓는다. 읽는 그 순간에는 독자를 매혹시키버리는 화려한 수사와 성공담은 그 찰나의 순간만 남을 뿐이다. 결국에 저자가 아니라 ''라는 인간에 그것이 바로 적용될 가능성은 지극히 없다. 저자와 ''가 그 당시 공유하고 있는 하나의 가치는 책밖에 없기 때문이다.

 

경제학을 전공했지만, 자기계발로 유명한 한 강사의 경우만 보더라도 그의 가치는 언제나 '성공'이다. 그가 설파하는 자기계발의 가치에는 기본적으로 신자유주의와 적자생존의 가치를 강하게 내포하고 있다. 성공을 위해서 경쟁의 최고에 올라야 한다는 냉혹한 적자생존의 정신을 그대로 설파하고 다닌다. 이러한 자기계발의 방향성은 미국의 영향을 많이 받은 듯한데, 그 강사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분위기도 그렇다. 철저하게 성공이라는 가치만 추구하게 만들어 경쟁이라는 가치가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때때로 무엇보다 우선되어야 할 가치로 보이게 만들어 버렸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는 원하든 사람이든 원하지 않든 사람이든 성공을 위한 경쟁에 몰아넣는다. 그 경쟁에 점점 힘겨워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스스로 경쟁의 경로를 벗어나기 위해서 때론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높은 자살율과 함께 늘어나는 묻지마 범죄의 증가는 '성공'이라는 가치를 바탕으로 한 적자생존 사회에 나타나는 위험신호가 아닐까?

 

왜 우리사회의 분위기는 성공과 경쟁을 강조하는 것일까? 인류의 민주주의 발전 과정을 연구한 것을 보면, 초기 인간들에게는 생존의 가치가 가장 높았다고 한다. 인간이 무리 생활을 하게 된 이유도 척박한 자연환경에서 생존을 위한 방편이었다. 농업 사회로의 전환은 생존에 필요한 식량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변화였다. 산업화 과정을 통해서 인간은 물질의 풍요를 누리게 되었고, 그 때부터 인류에게 생존의 가치는 점차 약해진다. 하지만, 미국에서 20세기 초에 시작된 자기계발의 탄생과 열풍은 대공황으로 인해 생존의 가치가 다시금 주목 받았기 때문이라고 보여진다. 경제위기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생존 가치는 어떤 가치보다도 중요했으니까. IMF이후에 우리나라의 자기계발서 열풍은 경제위기로 인해 생존가치가 절실하게 중요해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 이후의 트라우마랑 변한 사회구조가 가지고 있는 현실은 여전히 우리사회에서 생존의 가치를 높게 취급하게 만들고 있다. 결국 경제와 주변 환경이 생존을 최고의 가치가 되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도 우리가 생존이라는 것을 삶의 최고의 가치로 여길만한 환경일까? 우리는 이미 IMF를 극복했고, 지금의 경제 발전 상황은 눈부시기만 하다. 그럼에도 생존이 삶의 최고 가치가 되는 것은 경제 지표가 보여주지 못하는 이면, 즉 눈부신 경제의 성과가 사회 전반에 골고루 퍼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현실은 생존이라는 것이 차지하는 가치를 높이고 있다. 문제는 이로 인해 우리 사회는 경제는 발전하나 문화나 사회는 오히려 퇴보하고 있는 경향을 보여주는 것이다. 산업화는 경제 외에도 다른 문화적 가치를 변화 시킨다. 권위와 과거 폭압에 대한 향수는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를 퇴보 시켰다. 파시즘의 등장이 우려되는 "일베"라는 집단이 맹위를 떨치기 시작하고 있고, 사회 전반에 일어나는 민주주의의 후퇴는 바로 현실이 되고 있다. 과거의 향수에만 목메는 기성세대와 증오의 파시즘으로 무장하고 있는 젊은 극우집단의 성장은 80년대 거품이 무너지면서 몰락하고 있는 일본의 모습과 다른 것이 없어 보인다.

 

생존의 가치를 최고로 치는 사회 분위기의 급격한 확산을 바탕으로 경쟁과 성공 만을 맹목적으로 추구하는 삭막한 사회 분위기는 더 강화될 수 밖에 없다. 이로 인해서 우리는 가장 중요한 자신에 대한 것을 잊어버린다. 산업화 이후에 후기 산업사회는 "자기 표현의 가치를 확대시킨다"고 한다. 이는 "권위로 부터 해방"을 가져오면서 민주주의 가치가 더 확대된다고 한다. 이로 인해 "개인적인 안전과 자율성은 자아중심주의를 감소시키고 인류 중심주의를 증가시킨다."고 한다. 일반 적인 예로 과거 산업화 시대에나 용인될 수 있던 4대강 사업 같은 대규모 토목사업이, 많은 국민들의 저항과 반대에 직면했던 현상으로 볼 수 있다. 산업화 시대였다면 성장과 발전이라는 가치로 치장되어서 환영 받았을 정책이지만, 지금은 인류의 미래를 위한 환경이라는 가치가 더 중요해지면서 4대강 사업은 환경재앙이라는 시선으로 보는 것이다.

 

문제는 우리 사회는 유교적 관습과 공동체 의식이 강해서 "자기 표현의 가치"로 전환에 실패한 측면이 보인다. 지금 유행해야 될 자기 계발서들은 "성공"이라는 가치가 아니라, "자기"라는 가치이다. 그런데 내가 하고 싶은 것, 내가 되고 싶은 것, 내가 표현하고 싶은 것이 사회적으로 쉽게 표출되고 인정받을 수 있는 사회로의 전환이 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시골 의사 박경철은 "모든 방황에는 의미가 있다. 지금 이 순간, 우리가 고민하며 방황하고 노력하는 것은 바른 길을 찾기 위한 여정이다. 인생은 고민의 연속이지만 그래도 계속방황하며 노력하는 것, 주저않지 않는 것, 그것이 바로 실존이고 나의 삶을 증명하는 유일한 길이다."이라고 했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는 반항이라는 것을 쉽게 허용하지 않는다. 반항이란 바로 자기 표현의 한 형태임에도.

 

이로 인해서 우리는 자신을 제대로 바라보는 힘을 가지지 못한 경우가 많다. 부모가 정해 놓은 꿈을 자신의 꿈인냥 살아가고, 남들의 시선에 맞춰서 자신의 꿈을 만들어 간다.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라고 했고, 몽테뉴는 이 말에 "자기 일을 하려는 자는 먼저 자기가 무엇인가, 그리고 자기에게 적당한 일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한다. 자기를 아는 자는 남의 일을 자기 일로 혼동하지 않는다."라고 의미를 부여한다. 생존의 가치로 무장한 "성공"이라는 놈을 향한 치열한 경쟁과 질주로 우리는 얼마나 "자기"라는 존재에 대해서 무심했고 무관심 했는지를 생각해 봐야 한다. 대부분의 자기계발서들이 놓치고 있는 가치를 우리는 다시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자기를 알고,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추구하는 것. 이것이 자기계발의 시작이고 꿈의 시작이다. 결국에 수 많은 자기계발서들이 강조하는 목표나 꿈이라는 것은 바로 그것인데, "자신"이라는 존재의 가치보다는 "성공"이라는 결과의 가치에 방점을 찍는다. 그래서 우리는 자기계발서를 그저 소비할 뿐이다.

 

 자기계발서가 유용하기 위해서는 바로 "자기표현의 가치"아래서 "자기"라는 존재를 제대로 파악해야만 하는 것이다. 이 책도 초반부에는 바로 그런 가치의 중요성을 설명한다. 저자는 추상적인 담론에 불과할 수도 있는 자기계발이라는 분야에 그는 경영학적 담론을 붙여서 설명한다. 인센티브 이론과 동기 이론을 설명하는 부분은 바로 "자기 표현의 가치"가 왜 물질적 댓가나 성공보다 더 유용한지를 보여준다. 결국 우리는 자기를 표현할 수 있는 가치를 중심에 두고 그것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물론 이 과정에서 자신의 꿈을 명확히 못할 수도 있다. 그래서 저자는 "중요한 건, 자신의 재능, 관심, 우선순위가 진가를 발휘하기 시작하는 곳이 어디인지 알 때까지 계속해서 뭔가를 시도하는 것이다."라고 조언한다. 이는 "타협"과 안주가 만들어내는 습관과 타성에 젖어서 때론 목적을 상실하는 이들을 위한 아낌 없는 조언이다. "자기 표현의 가치"를 끊임없이 탐구하고 포기 않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좋은 조언이 담긴 책이다. 경영학의 결과물들을 바탕으로 한 설명들은 추상적이기보다는 상당히 구체적이다. 그래서 이 책은 "생존의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보다는 "자기표현의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실용적으로 다가 올 것 같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3-02-24 11: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낯선 사람 효과]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낯선 사람 효과 - 《80/20 법칙》리처드 코치의 새로운 시대 통찰
리처드 코치 & 그렉 록우드 지음, 박세연 옮김 / 흐름출판 / 2012년 11월
평점 :
절판


개인적으로 낯가림이 심한 성격이다 보니, 인위적으로 인맥을 쌓는다는 것이 그렇게 좋아 보이지 않는다. 나 같은 성격을 가진 사람들이 인위적으로 인맥을 쌓는 것도 어렵지만, 그렇게 쌓은 인맥이라는 것을 유지하는 것도 쉽지 않다. 인맥을 만들어라는 말은 그런 성향을 가진 사람들에게 유리한 말이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고역이다. 그러다 보니 책 제목부터 마음에 안 들었다. 인맥 관련 자기 계발서들을 보면 흔히 나오는 내용을 가지고 "낯선 사람 효과"라는 거창한 이름을 붙여서 책 한 권을 다시 만들어 내는지. 책 제목에서부터 실망을 하고 한 장 한 장 넘겨가면서 본 책의 내용은 그 첫 인상을 저버리지 않는다. 인맥을 강조하는 다른 책들에 비해서 이 책은 어느 정도 학문적인 성찰을 갖추려는 노력은 있었으나 약한 고리의 인맥을 강조하는 일반적인 자기 계발서들을 벗어나지 못한다.

 

하지만, 뒤로 갈수록 처음의 실망은 점점 상쇄되어 간다. 저자는 자신의 주장을 뒤로 가면서 체계화 한다. 단순하게 인맥으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인맥을 네트워크라는 관점으로 접근하고 있다. 네트워크 관점으로 접근하면서 저자는 인맥을 관계라는 단순한 관점을 넘어서 사회적 연결망이라는 거대한 형태로 만들어 설명한다. 이러한 거대한 설명은 약한 연결이라는 인맥이 만들어낸 개인들의 성공담을 나열하는 초반 책 내용과 비교하면,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관점의 전환이라고 할 수 있다.

 

개인적 관계에서 시작하는 책의 앞부분은 설렁설렁 읽고 넘어가다 보면, 허브에 대해서 설명하는 부분부터는 개인이 아니라 사회라는 관점이 들어가기 시작한다. 저자는 약한 연결이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가 동시에 균형을 이루어야 된다고 말한다. 강한 연결, 허브, 약한 연결이 조화를 이룰 때 네트워크의 효과가 극대화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은 사회적 현상을 설명하는데도 유용하게 작용한다. 이를 설명하기에 앞서 저자는 "역사를 통해 인류가 일구어 낸 진보의 기반에는 전문화라는 개념이 있다. 개인은 허브 속에서 남들보다 더 잘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고, 마찬가지로 허브는 네트워크 속에서 가장 뛰어난 분야에 주력한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허브는 잘못된 집단 사고를 유발하기도 한다. 흔히 조직의 논리를 앞세워 부정과 부패를 눈감고 때론 옹호하는 형태의 조직이나 기업들이 바로 그런 잘못된 집단 사고의 한 형태다. 이로 인해 "사람들은 거대한 외부의 압력과 사회적 시스템 속에서 살아남고 인간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종종 자신의 가치관을 저버린다. 이처럼 조직 시스템은 개인의 정체성을 왜곡"하기도 한다고 한다. 사람들은 다양한 형태로 자신만의 허브를 창조하기도 하고, 이동하기도 하지만, 강력한 "허브의 중력"은 허브의 울타리 안에서 머무르게 만든다. 그럼 인해서 사람들은 "허브"를 통한 네트워크의 힘을 극대화하지 못하고, 허브 안에 갇혀 버린다고 한다.

 

이러한 관점을 바탕으로 저자의 아주 독특한 현상 분석이 나온다. 가난한 지역이 왜 가난을 벗어나지 못하는지를 저자는 약한 고리와 네트워크의 관점에서 설명한다. 저자는 마크 그라노베터의 "하위계층일수록 강한 연결의 빈도는 더 잦다."라는 말은 인용하면서 "이 말은 가난할수록, 불안감이 높을수록 사람들은 가족이나 이웃, 또는 자신이 속한 조직과의 강한 연결에 더 집착한다는 뜻이다."라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가난한 사람이 가난을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네트워크의 관점에서 바라볼 때 가난한 사람들은 돈을 버는 과정에서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지인 및 외부인과의 약한 연결로부터 소외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같이 읽은 "2013-2014 세계경제의 미래"을 보면 "신흥국의 1인당 국민소득을 끌어올리는 가장 큰 요인은 도시화"라고 했는데, 오히려 이 책에서 도시에 존재하는 다양한 허브와 약한 연결로 이루어진 네트워크가 만들어내는 경제적 효과의 가치를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가난한 사람들이 강한 연결로 뭉쳐진 공동체 속에서 가난을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와는 반대로 도시가 가지고 있는 약한 연결과 다양한 허브가 만들어내는 새로운 기회가 경제 성장을 이끌어 내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큰 병폐로 떠오르고 있는 자살자의 증가 역시 강하든 약하든 연결고리가 점점 끊어지고 있어서 생기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만든다.


초반의 개인적 인맥에 대한 이야기를 넘어서 독특한 해석이 더해져 만들어낸 사회적 현상과 문제에 대한 저자의 접근은 상당히 설득 있게 다가온다. 특히 지금 우리 사회에서 조금씩 나타나고 있는 이주 노동자에 대한 불편한 시선과 목소리를 비롯해, 남성들의 강한 여성혐오 경향등을 보면 이상한 강한 고리가 우리 사회의 역동성을 상당히 짓밟고 있는 것 같다. 경제가 좋지 않으면 당연히 나타나는 현상이기는 하지만, 이런 현상이 대단한 이성의 골격을 갖춘 것처럼 퍼져나가는 것이 우려스렵다. 결국 그것은 우리 안에 존재하는 약한 연결을 단절시키고, 강한 고리만을 남겨두게 된다. 이것은 우리 사회의 다양성을 좀 먹기 시작해 결국에는 역동성마저 죽이는 폐쇄적인 악순환의 고리로 빠뜨리지 않을까?

 

이 책의 저자는 "빈곤이란 특정한 지역에 갇혀 있고, 자유롭게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자본과 자산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수준에도 도달하지 못하는 경제적인 상태를 말한다. 다시 말해 빈곤은 다각화된 네트워크, 경제적, 사회적으로 활동적인 사람들과의 연결이 부족할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이라고 말한다. 경제적 문제만 그런 것이 아니다. 정치를 비롯한 사회적 문제에 대해서 우리는 아직 다각화된 네트워크를 만들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그런 네트워크의 태동마저 막고 있다. "단일 민족"이라는 강한 연결의 끈을 비롯해, 극단적인 이분법적 정치적 사고를 비롯한 배타적 혐오 정서는 결국에 정서적 빈곤으로 우리를 몰아 넣을 것 같다. "공감의 능력은 '지적 유연성과 자기 방향성'을 동시에 창조한다. 그리고 서로 다른 환경 속에서 다양한 태도들 중 적절한 한 가지를 선택할 수 있는 여유를 준다."는 저자의 말 처럼. 우리는 단순히 개인적인 인맥의 확장이 아니라, 타인에 대한 공감을 바탕으로 지적 유연성과 자기 방향성을 키워 스스로가 네트워크의 허브를 창조하기도 하고 약한 연결의 고리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댓글(1)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3-01-21 09: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2014 세계경제의 미래]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2013-2014 세계경제의 미래
해리 S. 덴트 & 로드니 존슨 지음, 권성희 옮김 / 청림출판 / 2012년 11월
평점 :
절판


영국의 경제학자 멜서스는 자신의 저서 "인구론"을 통해서 머지 않아 인류가 식량 부족 사태에 이를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인구 증가 속도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것에 비해서, 식량 생산 증가 속도는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한다고 했다. 폭발적인 인구증가 속도에 비해서 식량생산 증가가 그것을 따라잡지 못하기 때문에 식량 부족 사태는 일어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의 주장은 지금까지도 실현되지 않았다.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할 것이라던 식량 생산량의 증가 속도는 인구 증가 속도를 뛰어 넘었다. 지금 현실은 식량의 부족에 의한 것이 아니라 경제력의 차이로 인해 발생하는 빈곤이 존재할 뿐이다. 멜서스가 세웠던 기본 전재의 오류로 인해서 그의 주장은 결국 터무니 없는 것이 되어 버렸다. 하지만, 인구와 식량의 상관관계를 경제학적으로 설명했던 그의 시도는 충분히 존중 받을 만하지 않을까?

 

경제적 현상을 인구 상황과 관련해서 설명하려는 시도는 많다. 인구의 고령화에 대한 연구도 그렇고, 우리나라 부동산 시장에 대한 접근 또한 인구 구조의 변화를 기본 바탕으로 하고 있다. 고령화에 대한 문제는 경제적 문제를 넘어서 다른 사회적 문제까지 내포하고 있을 정도로 복잡하기까지 하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 세상은 단순히 인구 구조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부동산 문제의 경우 경제의 수요 법칙을 적용해 단순하게 설명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부동산 폭락론을 내세우는 사람들의 경우 인구 구조를 그 중심에 두고 부동산 거품의 붕괴를 예측하고 있다. 상당히 많은 거품이 있지만, 폭발적인 수요에 의해서 치솟았던 부동산 가격은 수요 인구의 감소로 하락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특히 거품이 너무나 많이 낀 현실에서 젊은 세대의 경제력으로는 지금의 부동산 시장을 뒷받침 할 수 없다고 말한다.

 

반대 측에서도 인구 구조 변화를 바탕으로 반박한다. 중대형 부동산에 대한 수요는 줄어 들것이라고 그들도 동의는 하지만, 1인 세대의 증가로 인해서 소형 부동산에 대한 수요는 오히려 증가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인구 변화에 대한 수요의 변화, 즉 중대형 부동산에서 소형 부동산으로 수요만 변화할 뿐 부동산 시장에 대한 침체는 없을 것이라는 것이다. 지금 어느 쪽이 맞다 틀리다라고 쉽게 단정하기 힘들어 보이지만, 중요한 것은 인구 구조의 변화가 경제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것은 사실인 것 같다.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은 인구구조의 변화는 경제의 다양한 변수 중에 하나일 뿐이다. 저마다 어떤 현상을 설명할 때 어느 정도의 가중치를 부여할 뿐 그것에 모든 가치를 부여해 경제 현상을 설명하지 않는다. 많은 경제학자들은 심리와 유동성이라는 관점에 더 가중치를 부여한다. 그래서 요즘 같이 경기가 침체 일 때는 소비심리를 개선하고,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해서 경기를 활성화 시키려고 경제학자들이나 정책 당국자들은 노력한다. 거기에는 인구 변화에 대한 의미를 전혀 부여하지 않는다. 인구 변화라는 것은 시간을 두고 천천히 일어나는 변화로 그로 인한 현상을 쉽게 예측하거나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인 것 같다. 뿐만 아니라 미래보다는 현실의 삶에 급급한 사람들의 심리 또한 한 몫을 차지한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는 인구 변화에 대해서 가장 큰 가중치를 부여하고 경제 현상을 설명한다. 그는 각 나라의 경제성장에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이 인구 구조의 변화에 따른 것이라고 말한다. 경제 발전의 초기에 즉 베이비 부머들이 학교에 들어갈 시기에 집중적으로 인프라가 투자되면서 경제 성장의 기틀이 마련되고, 그렇게 마련된 경제 성장의 기틀을 바탕으로 교육 된 인력들이 사회에 진출하면 그 동력으로 경제 성장을 급속하게 진행되었다고 말한다. 이렇게 경제의 주력이 된 베이비 부머들이 왕성한 소비는 경제에 연료 역할을 했다고 한다.

 

이 책의 저자는 이를 바탕으로 재미있는 한 가지 주장을 한다. " 2007년까지는 베이비부머들의 수요가 늘어남에 따라 소비를 위한 '연료'가 필요했고 그 연료가 바로 신용, 즉 빚이었다. 신용을 창출하는 역할을 하는 산업은 놀라울 정도로 늘어난 신용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적정 수준 이상으로 가동되어야 했다. 이런 점에서 신용 버블은 수요를 증가시킨 원인이 아니라 수요가 증가함에 따라 나타난 결과였고 따라서 베이비부머들의 수요가 정체되면서 저절로 꺼지기 시작했다." , 신용 버블은 가장 왕성한 소비를 할 시기에 들어선 베이비 부머들의 소비에 대한 수요 때문에 생겼다는 것이다.

 

이런 저자의 관점은 지금 시행되고 있는 수 많은 경기 부양책들에 대한 회의적 시각의 바탕이 된다. 아무리 유동성을 확대 공급하고, 경기 부양을 위해서 소비 심리를 띄운다고 해도, 경제에 활력을 부여할 큰 축인 소비는 쉽게 살아날 수 없다는 것이다. 가장 왕성한 소비를 하던 베이버 부머들의 은퇴시기가 다가 오면서 어쩔 수 없이 소비를 줄 일 수 밖에 없는 시기가 오는데, 유동성을 확대해서 인위적으로 경제를 부양한다고 하더라도 더 이상 소비자들이 지갑을 열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지금 일시적으로 경기가 소비가 회복되고 경기가 살아난다고 하더라도, 향후 소비 감소로 인한 경제 침체는 필연 일 수 밖에 없다고 한다. 현실의 작은 변화에 대해서 정책 당국의 개입으로 어느 정도 변화를 줄 수는 있지만, 미래를 보는 큰 관점에서는 인구의 변화에 따라서 변화할 수 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이를 바탕으로 전 세계적 경제 상황과 흐름을 분석하고 있다. 앞으로 미국과 함께 세계 경제를 이끌 중국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시선을 보인다. 과잉 투자된 인프라와 중국의 인구정책이 만들어낸 인구 구조의 변화는 중국이 가지고 있는 경제 성장 잠재력의 한계를 설명한다. 대신 인도를 주목한다. 앞으로 중국의 인구를 뛰어 넘을 것으로 예측되는 인도의 인구 증가 속도는 중국을 뛰어 넘는 성장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물론 인구 구조가 경제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저자도 책에서 보여준다. 단순히 인구가 많다고 해서 성장 잠재력이 큰 것이 아니다. 비슷한 인구 구조를 가지고 있더라도 서로 다른 경제력을 보여주는 사례들도 이 책에 소개되고 있다. 서로 다른 성장 잠재력을 가지고 있더라도, 인구 구조의 변화는 그 나라의 경제 발전에 원동력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이 책에서 보여주는 저자의 주장은 단순하면서도 명쾌하다. 그렇지만, 체계적인 논리의 전개는 상당한 설득력을 가진다. 멜서스가 인구론에서 했던 주장이 그 당시 상당한 설득력을 얻었지만 나중에 그의 전재가 처음부터 잘못되었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그가 틀렸다는 것이 증명 된 것처럼, 이 책의 저자의 주장이 지금 상당한 설득력을 갖지만, 후에 틀렸다는 것이 증명될지도 모르겠다. 그 만큼 인간 사회에는 다양한 변수들이 많고, 어떤 것을 주장하기 위한 전재조차도 너무나 다양한 논리와 설득력이 필요하다. 뿐만 아니라, 현재를 개선해 보다 나은 미래를 만들려는 인간의 끊임없는 노력이 저자가 주장하고 있는 현실을 극복할지도 모른다. 경제 성장에 집착하는 지금의 풍요로운 경제를 넘어서 삶의 질을 더 중시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시대가 올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인구 구조의 변화에 따른 사회변화나 현상에 대해서는 끊임 없이 주목해야 할야 할 것으로 보인다. 수 많은 요인들 중에서도 장기적이면서도 큰 사회적 변화를 이끌어내는 가장 큰 힘이 바로 인구가 아닐까?



 


댓글(1)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3-01-21 09: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중산층이라는 착각]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중산층이라는 착각 - 대한민국 양극화 쇼크에 관한 불편한 보고서
조준현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2년 9월
평점 :
품절


대선이 다가온다. 정치에 관심 없는 사람들은 시큰둥한 반응을 보일지 몰라도, 그런 무관심에도 대선은 모두의 삶에 가장 큰 영향력을 주는 행사 중에 하나다. 정치는 경제와 사회 모든 부분에 가장 밀접하게 관계되어 있지만, 무관심한 사람들은 그런 관계를 잘 알지 못한다. 그러다 자신의 삶에 예기치 않은 영향을 받으면 그 때 서야 정치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된다. 그렇다고 정치병 환자처럼 맹목적으로 어떤 세력을 지지하는 종교가 되어서는 안된다. 정치와 투표란 결국에 자신의 이익을 위한 행위이고, 이 이익이 사회를 위한 이익이 된다. 그래서 나의 소중한 주권을 행사할 때 흔히 말하는 계급이익 투표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투표라는 고귀한 주권행사를 단순하게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행사하라는 이야기는 얼핏 이기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한 국가를 이루는 가장 큰 계급 집단이 바로 대다수의 국민들이 속해 있는 집단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개인의 이익이 국민의 이익으로 연결된다고 생각할 수 있다.

 

지난 대선의 화두는 경제였다. 추악한 도덕성에도 불구하고 많은 국민들이 MB를 선택한 이유는 경제였기 때문이다. MB정부을 마무리하는 지금 시점에서 우리의 선택은 과연 옳았는가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노무현 정부의 경제를 실패로 규정했던 사람들은 폭등한 부동산과 양극화의 확산이었다. 그럼 노무현 정부의 경제를 실패로 규정했던 많은 국민들은 과연 MB정부의 경제는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겉으로 보면 부동산은 안정적이고, 양극화는 노무현 정부에 비해서 개선되었다. 단순한 겉보기는 MB정부의 경제는 어느 정도 성공을 거뒀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MB 정부는 부동산을 안정시킬 의도를 전혀 가지고 있지 않았다. MB정부 내내 계속된 부동산 부양책은 그들의 속샘을 그대로 보여준다. MB를 지지했던 사람들 중 다른 부류의 집단은 부동산 가격의 안정에 실망을 드러내기도 한다. 그럼에도 부동산이 가격이 연착륙하고 있는 이유는 전 세계 경제 여건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을 노무현 정부와 연결시켜 생각하면 같은 답이 나온다. 세계 자본 시장에 대한 개방도가 높은 우리나라는 노무현 정부시절 전 세계의 버블의 영향으로 부동산 가격이 폭등했고, MB정부 때에는 전 세계의 버블이 꺼지면서 부동산 가격이 안정되었던 것이다. 결국 부동산의 문제는 자본시장의 개방도가 큰 영향을 미쳤을 뿐, 정부의 정책은 한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MB정부에서 양극화는 개선되었던 것일까? 우선 노무현 정부의 양극화 확대의 가장 큰 원인이 무엇인지부터 본다면 MB정부의 양극화 개선 원인 또한 같이 볼 수 있다. 노무현 정부의 양극화에 큰 핵심은 부동산 같은 자산 가치의 폭등이었다. 흔히 말하는 가진 사람들의 자신이 버블에 의해서 폭등하면서, 자신을 많이 가지지 못한 서민들의 소득은 그대로 인 반면, 자산을 많이 가진 사람들의 가치는 폭등하게 된다. 이 차이로 인해서 계층간의 심리적 박탈감과 거리감을 확대되고 양극화도 확대된 것이다. 반면 MB정부의 양극화 개선은 노무현 정부와는 반대의 상황에서 개선된 것이다. 버블의 붕괴로 인한 자산 가치의 하락으로 인해서 양극화가 개선된 것이다. 어떻게 보면 MB정부의 경제 계획은 완전히 실패한 정책이다. 단지 외부의 상황에 의해서 자신의 의도와는 전혀 반대로 경제가 작동하면서 통계적 속임수로 사람들을 기만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이런 통계적 속임수가 대중들에게 통한다는 것이다. 실패한 경제에 대한 책임을 어떤 정부에서는 대단히 강하게 묻고, 이번 정부에서는 아예 관심 밖이다. 잔 짜여진 선거 전략 프레임으로 인한 것일 수도 있고, 자신에게는 관대하고 남에게는 냉정한 어떤 집단의 이중성을 보는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인지 이번 대선은 특별한 화두가 없어 보인다. 여성을 위해서 아무 것도 한 것이 없는 독재자의 딸이 언제부터 여성을 위했다고 여성 대통령이라는 구호를 내세우는 우스운 상황에 MB가 써먹었던 참여정부 책임론을 아직도 거론하는 이상한 집단과 그것이 통하는 현실은 참 우습기만 하다. 그렇다고 다른 한 쪽의 구호나 프레임 또한 인상적이지 않다. 정권교체의 당위성을 명확하게 설정하지 못한 그 집단은, 정권교체라는 구호만 내세울 뿐 설득력을 가지지 못한다. 아젠다와 비젼의 설정과 제시에서 심각한 한계를 보이는 것 같다. 결국 이번 선거는 이상하게 미래의 새로운 정부에 대한 싸움이 아니라 단순히 MB정부와 노무현 정부의 싸움인 것 같다.

 

이런 이상한 프레임의 대결은 우리가 선택해야 할 다른 가치에 대해서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게 만든다. 이는 우리의 현실을 착각하게 만든다. MB정부의 경제실정에 대한 기본적 가치 평가를 제대로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최근에 나온 한 자료에 의하면 MB정부 들어서 모든 계층의 실질 소득이 하락했다고 한다. 양극화나 지니계수의 개선이 보여주는 이면 즉 우리나라 국민들의 실제 호주머니에 들어오는 돈이 줄어들었다. 747공약을 내세우며 출발했던 자칭 타칭 경제전문가라는 사람이 만들어낸 결과다. 우리는 착각하고 있다. 언론과 정부가 만들어낸 통계자료에 의해서 자신의 현실과 위치를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정치권에서 만들어낸 프레임 싸움에 매몰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현실과 사회의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고 이해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흔히 말하는 대다수의 서민들의 현실에 대해서 알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인 책이다.

 

이 책은 진짜 현실과 마주했을 때의 두려움 때문에 애써 외면했던 우리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과거 같으면 그런 현실을 당사자의 책임이라고 돌렸던 많이 이들이 이제는 이런 현실이 사회의 책임이라는 것을 느끼는 것도, 우리가 외면했던 현실이 조금씩 늪처럼 우리의 발목을 잡아 끄는 것을 알기에 더욱 공감하면서 읽을 수 있는다. 언론에 보도되어서 쉽게 잊혀졌던 것들이 이 책을 통해서 생생하게 우리가 기억하기 싫은 것들을 떠올리게 만든다. 문제는 그런 현실을 우리가 바꾸지 못하고 순응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의 저자는 "양국화는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이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고 가진 것을 서로 나누면서 함께 살아가고자 하는 마음이 사라진 곳에서 온다."고 한다. 일베라는 쓰레기 집단의 등장. 남성연대라는 이상한 집단이 탄생하고 거기에 열광하는 찌질한 남성들의 등장. 이러한 것들은 결국 우리 사회에서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문화가 사라졌음을 보여준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존중과 배려이지 시기와 질투 그리고 비난이 아닌데 우리는 증오의 정치 프레임 속에서만 살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원하는 정치적 변화 사회적 변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정치권이 만들어낸 프레임이 아니라 스스로가 정치에 대한 프레임을 만들고 정치권에 요구할 수 있

어야 한다. 때만 되면 나오는 색깔론이나 근거도 없는 네거티프에 일희일비 하지말고, 자신의 계급이익은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물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착각에서 깨어나야 한다. 그 시작은 대다수 서민들이 가지고 있는 스스로가 "중산층이라는 착각"이 아닐까?

 

 


댓글(1)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2-12-11 10:18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