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사회학자가되어]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어쩌다 사회학자가 되어 - 피터 버거의 지적 모험담
피터 L. 버거 지음, 노상미 옮김 / 책세상 / 2012년 5월
평점 :
절판



이 달의 신간추천목록을 작성하려, 한달 동안 새로 나온 책을 훑어보고 있던 중에

단연 내 눈과 맘을 사로잡는 책이 있었으니, 바로 이 책'어쩌다 사회학자가 되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이중전공 과목인 사회학에 푹 빠져 본 전공을 제쳐두고 더 열심을 내어

공부했던 나의 전력 때문이리라. 1학년 신입생 시절, 심리학과 사회학 두 과목 중에

택일해 수강했어야 하는 선택의 기로에서, 다른 모든 친구들이 심리학을 택할 때

나와 몇몇 소수의 친구들만 사회학을 택했더랬다. (사회학은 딱딱해 보이는 반면에

심리학은 재미있어 보인다는 것이 다수 친구들의 선택 이유였지만 난 단언할 수 있다.

사회학은 심리학만큼 재미있다. 아니 어쩌면 심리학보다  더 재미있다고.)


심리학이 인간의 내면을 연구하는 학문이라면, 사회학은 막연히 사회를 공부하는 것일 거라는

얄팍한 배경지식만으로 첫 수업에 들어갔던 나는 수업계획표에 적힌 배울 내용을 보고

한 눈에 반해버렸다. 꽁트부터 시작해 맑스니, 베버니, 뒤르케임이니 하는 사회학자들의

사상을 둘째 치고(이들을 이해하는데는 상당한 세월이 흐른 후였고, 지금에서도 난 다 이해

했다고 할 수 없지만), 그들이 건드렸던 사회의 여러 모습들; 노동, 종교, 이주, 교육, 시민, 성

등등의 각종 문제들을 배우는 것이 그렇게 흥미로울 수가 없었다. 사회학 입문을 듣고나서

난 결정했다. 내가 대학에 와서 배워야 할 내용은 다 여기있구나. 무릎을 탁 치며

이중전공으로 삼을 것을 말이다.


비록 학문에 대한 흥미와 학점은 비례하지 않았지만, 사회학에 대한 관심과 열정은

그 누구 못지 않았다고 자신할 수 있는 나는 이 책의 제목을 본 순간, 흡사

사회학 입문 첫 수업을 듣던 순간과 비슷한 감정을 받았다. 어쩌다 들었던 사회학 수업이

만들어놓은 지금의 내 모습처럼, 이 책의 저자 역시 '어쩌다'라는 그 순간의 선택이

그로 하여금 이 책을 쓰게 만들었을 것이리라. 

궁금해 견딜 수 없었다. 저자는 어쩌다가 사회학을 만나게 되어서

어쩌다 사회학자가 되어 어쩌다 이런 책을 쓰고,

나는 또 어쩌다 이 책을 이렇게 만나게 되었을까.


오스트리아 출신인 미국 사회학자인 저자 피터 버거는 루터파 사제가 되려다

이주한 미국 사회부터 알아야겠다는 생각에 사회학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사회학에

발을 내딛었다며 자신과 사회학의 첫 만남의 순각을 회고했다. 

사회학을 공부하면 내가 살고 있는 이 사회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으리란

자그마한 믿음을 내가 가졌던 것처럼 저자 역시 막연히 사회를 알 수 있수 있을 것만 같은 예감에 사회학을 선택한 것이다. 

사회학을 공부했다고 해서, 발 딛고 서 있는 이 세상을, 내가 속한 이 사회를 

좀 더 잘 이해하고 깨달을 수만 있다면- 이 얼마나 환상적인 이야기인가.

사회를 알고자 할수록 알 수없는 미지의 영역은 불어나기만 하고,

도저히 갈피가 잡혀지지 않는 미궁 속으로 떨어지는 느낌을 받았던 나는 

내가 사회학자가 될 운명은 아니라는 걸 직감적으로 알아차렸던 것 같다.

이런 지나한 과정마저도 즐기고 결국에는 이겨내는 사람, 그런 사람들이 사회와 사람을 

연구대상으로 삼는 사회학자가 되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피터 버거는 내가 생각해왔던 사회학자 상에 딱 들어맞는 그런 사람이었다.


자서전이라기엔, 사회학자로서의 피터버거의 모습이 중점적으로 다뤄져있긴 하지만

그래도 난 감히 이 책을 피터버거의 자서전에 버금간다고 말하고 싶다.

어쩌다 사회학의 세계에 발을 내딛은 저자는 사회학자가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사회와 사람을 끊임없이 탐구하고 성찰하려는 열망은 절대 그저 주어질 수가 없다.

사람과 그 사람들이 살아가는 사회를 사랑하지 않고서는, 지속적인 관심을 쏟아부을 수가 

없다. 저자는 늘 그것에 관심을 두고 항상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며 질문을 던지고

그 대답을 찾기 위해 사회현상을, 사람들을 공부해나갔다. 

사회학자라는 직업적 지위는 단지 저자의 꿈을 뒷받침해주었던 수단에 불과한 것이었다.

사회학자 피터버그 안에는 피터버그라는 한 인간이 있었다.

그 인간은 젊어서도, 늙어서도 한결같이 세상에 대한 질문을 멈추지 않는다.

그래서 그는 사회를 구성하는 그 모든 것들과 대화를 시도한다. 

사회학을 알고있든, 모르든 간에 이 책을 집어든 독자라면 누구든, 피터 버거가 나눈

세상과의 대화속으로 초대받은 것이다. 그리고 기꺼이 그 대화속에 끼어든다면 좋겠다. 

피터버거가 어쩌다 사회학자가 되었다고 고백한 이 한권의 책을 통해 

우리들에게 바라는 것이 있다면 이것일지 모른다. 

당신이 살고 있는 세상을, 당신이라는 사람과 이야기하고 싶은 저자의 빛나는 눈망울과

그가 누빈 세상 속 흔적을 공유할 수 있는 값진 기회가 이 책 한 권에 다 들어있다.


보다 살아있는 사회학을 접하고 싶은 분들, 

사회학이 뭐하는 학문인지 알고 싶으신 분들,

사회학이 무엇이든 관심없고, 세상과 사람이 궁금한 분들,

모두에게 추천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 책과 혁명에 관한 닷새 밤의 기록
사사키 아타루 지음, 송태욱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2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기도하는 그 손을 잘라버리라는, 프울 첼란의 <빛의 강박>(1970)의 시구를 인용한

이 도발적인 제목의 책은 구성과 내용에서도 그  참신성이 돋보인다.


책과 혁명에 관한 닷새 밤의 기록이라는 부제처럼, 책은 2010년 6월부터 7월에 걸쳐

5일 밤동안 글로써 이야기를 풀어나가는데 그 독특한 문체와 그것이 담고 있는 이야기는

저자와 함께 독자마저 밤을 지새우며 기어코 책을 읽어내려가도록 만드는 힘이 있다.

2년전 여름밤에 쓰인 이 글들을 2년 후 여름인 지금 이 때 읽는다는 짜릿함도 느낄 수 있다.


마치 녹취록을 풀어낸 듯한 이 책은 책과 혁명에 대한 주제로, 역사적 인물들과

종교, 철학, 사상이론을 함께 다루고 있음에도 그리 어렵거나 난해하지만은 않다.

반복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저자는 간결한 문체를 통해 끊임없이 일관된 주제를 향해

독자들을 이끌어 올리는 일관성을 책 전반에 걸쳐 보여주고 있다. 


얼핏 보기에 연관성을 퍼뜩 떠오르기가 힘든 책과 혁명이라는 두 키워드는 그 일관성으로

하여금 동의어로 묶이게 된다. 텍스트로 이루어진 책을 '읽는' 그 행위는 그 자체로 혁명의

도화선이 될 수 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그러나 읽는다는 것이 그저 도처에 널려있는 

정보를 눈으로 보고, 그 하나로 모든 것을 설명하려는 독선이나 오만이 아니라,

'제대로' 읽는 조건 하에서 혁명은 가능하다. 제대로 읽는다는 것에 대해 저자는

읽을 수 없는 것이라는 역설적 표현을 그치지 않는다. 왜냐하면, 제대로 읽어버린다는 것은

미쳐버리는 것이기에 그런 미치는 경지에 도달하지 않은 모든 읽기의 행위는

읽는다고 표현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읽음, 텍스트, 책을 둘러싼 모든 것은 '문학'이라는 큰 범위에 속하게 된다.

텍스트를 읽고, 제대로 깨달아 미쳐버린 이들은 현대에서도 그 이름이 기록된

역사적 인물이 되었고 그들의 혁명으로 지금이 만들어진 셈이다.

마르틴 루터도, 무함마드도, 니체도, 도스토옙스키, 프로이트, 라캉, 버지니아 울프 등도

그런 의미에서 모두 혁명가이면서 문학자였다는 것이 저자의 표현이다.

이들은 책을 고쳐읽으며, 고쳐 썼고, 그 행위는 법을 고쳐쓰는 것이었고

법을 고치는 것이 결국 혁명이라는 고리로 계속 이어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혁명이라는 것은 폭력에 선행하는, 아니 폭력을 수반하지 않아도 되는

성질의 것임에도, 혁명은 역사적으로 대개가 투쟁과 혈을 그 대가로 치뤄왔다. 

이는 제대로 '읽음'이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인 것일까. 제대로 읽기만 했어도,

일어나지 않았을 비극들은 그래서 안타까울 뿐이다. 


경어체와 나에게 직접 말하는 듯한 생동감으로 가볍게 책을 읽어내려가던 나의 마음가짐이

점점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책을 읽는 것이 혁명이라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제대로 읽었다고 할 수 없다고.

제대로 읽는다면 미쳐버리는 것이라고. 

반복되는 책의 한 문장 한 문장이, 읽는다는 행위를 그 무엇보다도 숭고한 행위로

만들어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여태껏 책을, 문장을, '제대로' 읽었던 적이 있던가.

그랬다면 나는 내 안에서 작은 혁명을 일으켰을지도 모를 일인 걸 보면, 아직은 아닌 것 같다.


무함마드가 천사를 통해 신의 계시를 받았을 때 받았던 첫마디처럼,

이 책 역시 나에게 이 한마디를 강렬하게 각인시킨다.

읽어라-. 


이 여름, 책을 제대로 읽고 싶은 모든 이들이 본격적으로 책을 읽기 앞서

읽어볼 책으로 추천하고 싶다. 단 한 문장이라도 가볍게 지나칠 수 없도록,

되짚고, 반복하고, 곱씹어 책을 읽는 경험이 이 여름밤의 기록을 통해 가능해질 것만 같다. 

 


첫째 밤 문학의 승리 2010년 6월 15일

둘째 밤 루터, 문학자이기에 혁명가 2010년 6월 28일 

셋째 밤 읽어라, 어머니인 문맹의 고아여 2010년 7월 6일

넷째 밤 우리에게는 보인다 2010년 7월 15일 

다섯째 밤 그리고 380만년의 영원 2010년 7월 25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인문/사회/과학/예술 주목 신간 작성 후 본 글에 먼댓글 남겨 주세요.

 

 

1/ 그들이 살았던 오늘(이제 역사가 된 하루하루를 읽다)
0.0 | 네티즌리뷰 1건 김형민 저 |웅진지식하우스 |2012.06.11

 

역사책에 나오는 암기식 날짜가 아니라, 단정히 정돈된 연도표에 나열된 숫자가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들이 오늘오늘을 치열하게 살아낸 기록을 담은 오늘의 역사책.

의미없는 하루를 그저 흘러보내는 나도, 이 책과 함께라면 그들이 살았던 의미있는 오늘을

더불어 살아가게 될 것 같은 느낌.

 

 

 

2/철학을 낳은 위대한 질문들 (모든 위대한 사상은 질문에서 시작되었다)
사이먼 블랙번 저 | 남경태 역 | 휴먼사이언스 | 2012.06.25

 

위대한 질문들 시리즈 중 철학 편. 철학이 밥 먹여주냐는 질문이 어느새 그럼 밥은 왜 먹나. 하는 질문으로 바뀌게 된, 그리고 그렇게 바뀌고 있는 인생의 기로점에 서있는 사람들에게 제격일 책.

내가 지금 고민하는 것들이 결코 쓸데없는 것이 아니라, 위대한 생각을 낳은 사상가들이 품은 질문이라면 그것만으로도 감격하게 될 듯. 나의 생각의 지표를 위대한 질문을 통해 확인받고 싶다.

 

 

 

 

3/20대=독립은 끝났다 (새로 쓰는 20대의 사회학)
리처드 세터스텐, 바버라 E. 레이 저 | 이경남 역 | 에코의서재 | 2012.06.20

 

영어덜트 현상이 비단 한국뿐만이 아니라는 사실에 일단 안도감을. 왜 이렇게 독립하지 못하는, 몸은 다 큰 무늬만 어른들이 늘어갈까. 분명 개인적인 사연도 있겠지만 사회가 만들어낸 사회적 유예집행도 분명 존재할 터. 사회학, 심리학, 경제학, 교육학 등의 각 분야별 전문가들이 그 구조적 원인에 대해 분석한 책. 내가 지금 이러고 사는 이유도 이 책을 보면 좀 더 확실하게 답할 수 있게 될까.

 

 

 

4/

 

 

4/가장 인간적인 인간
브라이언 크리스찬 저 | 최호영 역 | 책읽는수요일 | 2012.06.18

가장 인간적인 인간 경연대회에서 가장 인간적인 인간으로 꼽힌 브라이언 크리스찬의 저서.

인간적인 경연대회도 신기한데, 가장 인간적인 인간이 가장 인간적인 인간을 써낸 책이라니,

궁금해서 당장 책을 펼쳐보고 싶다. 늘어만 가는 비인간적인 것들 틈바구니 속에서 인간들은

어떻게 인간다움을 지켜낼 수 있을까. 그러기 위해서 우선 인간적인 것이 무엇이지,

가장 인간적인 인간에게 들어보는 것도 좋을 듯 하다.

 

 

 

5/말의 가격 (돈에 갇힌 미디어와 언론 그리고 민주주의를 구해낼 방법들)
앙드레 쉬프랭 저 | 한창호 역 | 사회평론 | 2012.06.11

 

말에 가격을 매길 수 있을가. 말은 곧 생각. 그렇다면 생각에 값을 매길 수 있을까? 얼토당토 않는 소리라고 손사래 치기 이전에 지금의 우리 현실을 직시해본다면, 손 대신 고개를 끄덕이게 될 것이다. 매체를 통해 퍼져나가는 글에는 이미 가격표가 딸려 있는 것일 수 있다. 다양한 생각을 담은 글과 말의 실종은 곧 민주주의의 실종. 초유의 파업사태를 맞은 한국 언론 사회와 연관지어 읽고 새각해보면 좋을 책.

 

 

 

 


0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0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김수영을 위하여]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김수영을 위하여 - 우리 인문학의 자긍심
강신주 지음 / 천년의상상 / 2012년 4월
평점 :
절판



이 책을 읽으며 세 가지 점에서 놀라웠다. 


하나는,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저자의 글재주에 있었다. 주변사람에게서 작가 '강신주'씨의 글솜씨에 대한 칭찬은 들어왔던 터였다. 머리말만 읽고도 나는 절로 감탄이 나왔다. 대단한 글솜씨였다. 말의 형식은 현학스러움에 절어있지만 실상 그 내용은 비어있는, 뭔가 사기를 당한 듯한 느낌을 주는 글이 있는가하면, 글이 담고 있는 내용은 굉장한데도 글이 그 무게를 감당하기에는 너무 가벼운 느낌을 주는 경우도 있다. 이 글은 글의 형식적 측면에서도 나무랄 데 없이 잘 읽히는 깔끔한 문체와 더불어 그 글들이 담고 있는 내용 또한 울림을 주고 있다. 이는 아마도, 강신주라는 작가와 김수영라는 시인의 삶이 혼연일체된 듯한 완벽한 만남에서 기인한 듯 하다. 


두번째는, 시인 김수영의 재발견이었다. 김수영 시인의 대표시인 <풀>을 처음 접했던 건, 교과서와 문제집에서였다. 시인의 삶과 생애는 생략된 채, 시의 프로필을 암기해야 했던 주입식 국어교육의 피해자가비단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그 시를 토해낸 시인의, 그 시인만의 삶을 알지 못한 채, 그 시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그리고 시인의 의도한 바를 '고를 수 없다'. 그런 점에서 놀라웠다. 내가 익숙하게 잘 안 다고 생각했던 시들도, 그 시인이 어떠한 인생 속에서 뱉어내고 토해낸 것인지를 처음으로 알게 된 순간이었고, 그 순간마다 전율을 느꼈다. 시처럼 솔직하고 진솔한 말의 모음이 있을까. 고르고 골라, 거르고 걸러, 그렇게 정제된 시어 하나하나는 자신을 만들어낸 주인의 생애만을 오롯이 담고 있었다. 마치 충신처럼 혹은 자식처럼, 그렇게 시들은 자신을 키운 주인을, 자신을 낳은 부모를 그리고 있다. 그 삶을 들여다보지 않고서는, 절대 시는 읽힐 수가 없다는 진리와도 같은 이 명제를 나는 이 책을 통해 실감했던 것이다.


세번째는, 강신주와 김수영의 교감이었다. 이 둘은 분명 만난 적도, 대화를 나눈 적도 없는, 철저히 다른 시대를 살아갔고 살아가는 사람들일 터이다. 하지만 이들은 마치 원래 알고 있던 사이인 마냥, 이 책을 통해 둘 만의 교감을 다른 이들에게도 알리고 있는 듯하다. 진정한 시인으로서 살아갔던 김수영이 사람을 사랑하는 철학가 강신주에게 자신의 삶을, 그리고 시 속에 담긴 자신의 세세한 감정과 느낌들을 모조리 내어보이고 있는 듯이, 이 책은 그렇게 시와 김수영의 삶이 어우러져 그 전체가 하나의 작품을 이루고 있다. 그리고 시와 삶을 엮고 있는 작가 강신주의 삶 역시도 빠져서는 안 될 이 책의 필수성분이다. 그래서 이 책은 강신주만의 것도, 김수영만의 것도 아닌, 이 둘의 교감을 적어내려간 소통과 공감의 기록이다. 실제로 이 두 사람을 이어주고 있는 것은 김수영이 살아 생전 이 땅에서 써내려간 시, 시 뿐이다. 시가 매개가 되어 이 둘을 이어주고 그 탄생품인 책은 나아가 독자까지도 연결해주고 있다. 길지도 않은 그 시들이 각기 다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이렇게 하나로 이어주고 있다는 것이 그저 놀랍고 감사했다. 


시인 김수영이 지금 살아있더라면- 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를 않았다. 그리고 '김수영을 위하여'라는 제목을 가진 이 책을 읽었더라면 그는 어떤 표정으로 자신의 시와 삶이 얽혀있는 이 글을 읽어내려갔을까. 자신의 삶과 작품을 위한 책을 세상속에 내어놓을 수 있는 것은 시인이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선물과도 같은 것이 아닐까 한다. 시대를 넘고, 세대를 넘어 시인으로서의 자신의 삶이 전해진다는 것은, 시대와 세대를 아우르는 진정성의 힘만이 이를 가능케 하는 것이기에. 그리시인 김수영은 그런 진정한 시인으로서의 삶을 온전히 겪어냈노라고 이 책은  증명하고 있기에. 



시인 김수영이, 그리고 그가 살아낸 단독적인 삶과 시들이 궁금한 모든 이들에게 추천한다.

더불어 시가 낯설다고만 생각하는 모든 이들에게는, 시와 친해질 수 있는 계기가 될 책일 수 있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 무엇이 가치를 결정하는가
마이클 샌델 지음, 안기순 옮김, 김선욱 감수 / 와이즈베리 / 2012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돈으로 우리는 무엇을 사야 하나?'



앞선 글의 제목에 대해 코웃음을 치는 사람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돈의 소유가 이미 모든 것의 소유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시장만능주의 속에서 돈으로는 세상에서 못할 것이 하나도 없다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이 책을 바로 그러한 사람들에게 일격을 가하고 있다. 


돈으로 살 수 있는 것과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의 경계를 끊임없이 일깨워주는 이 책은 시장경제의 뿌리가 생활영역에까지 확장돼 시장사회로 뻗어나가는 시장주의의 일방통행에 세워진 이정표와 같다. 수요와 공급의 법칙으로 재화가 생산되고 구매되는 시장에 속한 영역이 건강, 교육, 가정생활, 자연, 예술, 시민의 의무와 같은 비시장적 영역에까지 그 세력을 키워나가려 할 때, 이 책의 저자는 넌지시 우리에게 주의를 준다. 과거엔 상상하지도 못했던 비시장적인 것들의 시장화를 성급히 하려하기 앞서서, 그것의 가치를 평가할 수 있는 기준이나 잣대를 진지하게 고민해보라고 말이다. 그래서 앞선 '돈으로 우리는 무엇을 사야 하나?' 라는 질문에는 만능처럼 보이는 돈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감히 건드릴 수 없는 성역과도 같은 것이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합리성과 효율성이라는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았던 그 성역들은 시장에 대해 적절한 기준과 잣대를 통해 그 윤곽을 뚜렷하게 드러내게 된다. 저자는 그 기준과 잣대를 도덕성과 공정성을 꼽는다. 잃어버렸던 혹은 놓쳐버린 시장의 도덕성과 공정성을 되살린다면 우리는 돈으로 무엇을 사야하는지, 무엇을 살 수 없는지가 보다 뚜렷하게 보일 것이다. 


저자는 이 책의 일관된 질문을 서두에 제시하면서, 5개의 챕터에 걸쳐 구체적인 일상 영역을 포착해내고 곳곳에서 그 질문을 적용하고 있다. 새치기와 줄서기의 도덕에 대해, 인센티브와 도덕적 혼란에 대해, 시장과 도덕, 삶과 죽음의 시장, 상업주의라는 큰 틀 속에서 구체적인 실사례를 곁들어 자칫 추상적으로 겉돌 수 있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에 대한 질문에 숨을 불어 넣는다. 그가 미리 제시하고 준비해 놓은 질문과 사례들을 따라가다 보면, 읽는 독자들에게도 어느 새 어떤 '의견'이라는 것이 생성된다. 그리고 어느덧 우리는 당장 저자와 불러놓고 이런 저런 토론을 하고싶어진다. 이것이 바로 지난해 붐을 일으켰던 'JUSTICE정의란 무엇인가'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되었던 저자의 토론진행 능력이다. 저자는 책이라는 어쩌면 간접적인 수단을 이용해 독자와의 활발한 소통을 꾀하는 재주를 가지고 있다. 이 책에서도 역시 그 면모가 숨김없이 드러난 덕분에, 어찌되었든 독자들은 말하고 싶은 의견과 생각으로 입이 근질근질해진다.


책은 그 흔한 맺음말이나 결론을 내리고 있지 않다. 하지만 저자가 풀어놓은 풍부한 일상 속의 생각거리를 따라가다 보면, 독자들 나름의 의견이 생겨난다. 뜬금없이 책이 끊겼다는 느낌을 받았던 나와 같은 독자들은 내가 속한 일상에서의 시장과 사회에 대해 생각해보고 나만의 결론이라는 걸 가지게 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저자가 의도한 바이든 그렇지 않든 간에, 책은 돈을 가진 사람들이 던질 수 있는 유일한 질문이 "얼마죠?" 이 되어버린 지금의 시장만능주의 속에서 우리가 시장을 향해 그리고 사회를 향해 던질 수 있는 질문을 계속 추가하기를 주문한다. 


자칫 돈이 전부가 되어버린 듯한 세상에 갑갑함을 느꼈던 사람들은 이 책에서 한동안 긁지 못했던 등 언저리를 누군가 긁어주는 듯한 시원함을 느낄 것이다. 시장주의의 질주 속에 덩그러니 세워진 이정표같은 이 책을 읽은 후의 우리가 내딛을 한 걸음씩의 방향은 결정하는 것은 이제 읽은 이들의 몫일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