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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세트] 얼굴값 (총2권/완결)
백하 / 로즈벨벳 / 2024년 9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남주는 절로 사람의 눈길을 끌어당기고 무심에서 나오는 느긋한 태도로 많은 관계에서 갑입니다.
내성적인 소심한 집순이 여주는 친구에게 끌려간 소모임에서 남주를 만나 한눈에 반하고 얼결에 하룻밤을 같이 보내지만, 섹스 후에도 그녀에게 전혀 관심이 없는 남주를, 내내 여자들에게 오는 메시지들을 보며, 혼자 설레고 혼자 좋아했다는 걸 깨닫고 착잡해집니다. 전화번호를 받았지만 자신은 그저 수많은 여자 중 하나일 뿐이라는 게 명백한데, 어쩌다 오는 연락에 한 번 거절을 못하고 내내 끌려다닙니다. 그럴 때마다 그의 지인에게 받는 흐릿한 조소, 은근한 무시에 자존심이 상하면서도, 남주와는 공통점 하나 없고 서로 결이 다른 사람이라는 걸 알면서도, 남주에게 존중받지 못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녀가 원하는 걸 남주가 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가 무슨 관계냐’는 질문에 싸늘해진 그를 봤으면서도, 그에게 홀려 사리분별을 못하는 제게 자기혐오를 느끼면서도, 그와 연락이 끊기는 걸 견딜 수가 없고 그를 계속 만나고 싶습니다.
남주는 어렸을 때 받은 생명의 위협 때문에 20년을 불면으로 살았습니다. 늘 피곤한 그는 만사에 관심이 없고 재미있는 것도 없습니다. 어렸을 때는 죽일 듯 괴롭혀놓고 이제야 그가 입을 놀릴까 폭탄처럼 벌벌 떠는 서류로만 가족들도 염증이 납니다.
외모가 뛰어난 그에게 여자들은 자동문이고 어려운 게 없습니다. 매달리는 사람들이 귀찮고 지긋지긋하고, 몇 번만 만나도 자신에게만 집중하길 바라고 특별한 사이를 원하는 여자들에게 넌더리가 납니다. 만나면 헤어지는 게 순리인데 왜 그런 관계에 특별함을 부여하려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돼서 오는 여자 안 막고 가는 여자 잡지 않으며 살아왔습니다. 여자는 별처럼 많아 아쉬울 것도 없습니다.
그저 흔한 여자인 여주와의 하룻밤도 어쩌다 보니 그랬고, 속내가 뻔히 보이지만 가끔 생각도 못한 말로 그를 당황시켰던 여주가 자존심도 없이 제게 매달리는 걸 다 알면서도 그가 필요할 때마다 여주를 불러내고 잠깐을 즐기며 보낼 뿐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몇 번 여주를 만나다가 그녀의 집으로 간 날, 여주의 옆에서 그는 숙면을 취합니다. 신기해서 몇 번의 테스트를 해봤는데 역시나 그녀 옆에서는 잘 수 있습니다. 머리가 맑아지고 세상이 훤해 보이는 숙면의 달콤함을 알게 된 남주는 그의 필요를 위해 여주에게 동거를 제의합니다.
여주는 연애는 아니라면서 동거를 입에 담는 남주의 무심함에, 부모가 없다는 남주의 말에 그녀가 그나마 붙들고 있던 유일한 동질감이 거짓이었음에, 마침내 그와의 관계를 끝냅니다. 남주의 문자에 전화번호를 차단하고 다시 만나자는 남주를 단호히 거절합니다. 하지만 무의식중에 여주를 찾아왔다가 기절해서 다시 숙면을 취한 남주는, 자신의 생존본능이 아직도 모르겠는 사랑 비슷한 걸 줘서라도 여주를 잡아낼 각오를 다집니다. 대체 불가능한, 이 세상에서 유일무이한 특별한 존재인 여주의 왼손 약지에, 기어코 반지를 끼워 줍니다.
이런 남주는 또 처음이라 흥미롭긴 합니다. 다만 여주 앞에서도 늘 담배를 피워무는 모습이나 여주에게 연락을 안하는 동안 다른 여자를 아무렇지 않게 만났을 남주의 모습이 유추돼서 영 떫은 맛이네요. 지금도 비어 있을 여주의 마음 한구석이, 남주가 주지 못한다고 공언한 사랑으로 가득찬 외전이 나오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