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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플레
애슬리 페커 지음, 박산호 옮김 / 박하 / 2016년 5월
평점 :
절판
집에서 부엌의 의미는 무엇일까. 대개 부엌에는 따스함이
있다. 무엇보다 그 따스함은 가족을 위해 요리를 하는 엄마에게서 비롯된다. 나 역시도 어릴 적 학교를 갔다 와서나 혹은 밖에서 신나게 뛰어
놀다가 들어왔을 때 부엌에서 나던 맛있는 냄새와 요리를 하시던 엄마의 뒷모습에서 따뜻함과 편안함, 행복감을 느끼곤 했던 것 같다. 또한 각자의
생활에서 유일하게 식탁은 함께 사는 사람들이 마주 앉아 같은 음식을 나눠 먹으며 이야기를 주고받는 의미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마치 이야기 속
릴리아가 그랬듯이 식탁에 여러 사람이 모여 그날의 일과나 자신의 이야기들을 주고받으며 함께 음식을 나눠 먹는다는 것은 소소한 일상의 행복이자,
살아 숨쉬는 삶이 되기도 한다.
이 <수플레>라는 책에서도 부엌에서의 의미와
수플레라는 음식을 통해 각자의 삶을 치유하거나 살아나가는 방식을 이야기한다. 뉴욕에 살고 있는 중년의 필리핀계 여성 릴리아, 파리에 살고 있는
중년의 남성 마크, 이스탄불에 살고 있는 중년의 여성 페르다까지. 각기 다른 나라에서 다른 삶을 살아 가고 있는 세 사람을 통해서 부엌과
음식(수플레)을 통해 삶과 인생을 이야기하며 각자의 무너지고 상처받고 흔들리는 삶을 다시금 일으키기 위한 과정을 보여준다.
누구나 지나온 삶에서 많은 것들을 놓치게 되고 지치고
흔들리는 시련들을 겪게 된다. 필리핀계 여성 릴리아는 잘나가는 화가였지만 남편과 결혼해 베트남계 아이 두 명을 입양한 뒤부터 조금씩 자신의 삶과
인생을 잃어버리게 된다. 거기다 남편이 뇌졸중으로 쓰러지면서 남편을 돌보기시작하면서부터 더욱 회의감에 빠진다.
"집에 아름다운 정원이 있는데 즐기지도 못하고, 현관 지붕 아래 놔둔 세련되고 널찍한 흰색 옥외용
의자에 단 한번도 앉지 못한 채 살아왔다. 이제야 그동안 억지로 해왔던 모든 것이 사실 얼마나 의미 없었는지 알게 됐다. ...그녀는 가끔 한
번씩 이런 생각들을 하며 속상해하다가 잠이 들곤 했다. 이렇게 다른 사람들의 뜻에 맞춰 살아온 나약한 자신이 싫어져 눈을 감고서도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글속의 릴리아가 말했듯 그녀는 자신의 삶을 살아가지 못했음에 절망한다. 늘 남편이 좋아하는 것에만
맞춰왔고 자신의 뜻은 없었다. 그러다 남편이 쓰러지면서부터 그녀의 인생이 조금씩 활력을 찾기시작한다.
반면, 프랑스의 마크는 아내 클라라를 너무도 사랑했다. 둘 사이에 아이는 없었지만, 두 사람은
서로의 중심이었고 전부였기에 늘 만족해하며, 행복해하며 살아갔다. 그러던 중 클라라가 부엌에서 쓰러지고, 삶의 중심이 사라지면서 마크의 삶은
송두리째 뽑힌 듯 중심을 잡지 못해 흔들린다.
"이곳에서 어떻게 계속 살아갈까? 어떻게 매일 이 가게들을 지나칠 수 있을까? 마크가 신발에만
시선을 고정한 채 집을 향해 걷고 있을 때 중더 가게 사람들은 모두 그가 가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속으로 같은 질문을 하고 있다고는 깨닫지
못했다."
"심장은 찢어질 듯 아팠지만 눈이 그냥 감겨버렸다. 잠이 들기 직전에 그는 다음 날 아침에도
일어나고 싶다는 것을 깨달았다. 삶은 그럼에도 계속될 것이다."
이스탄불의 페르다는 쓰러진 엄마를 모시고 살게 되면서부터 삐걱대기 시작한 자신의 엉망이 된 삶에서
힘들어하기 시작한다. 이러한 흔들리기 시작한 자신의 삶에서 부엌과 요리라는 공통적인 주제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데, 그것이 굉장히 달콤하면서도
때로는 먹먹하기도 했다.
"수플레는 아름다운 여인의 변덕스러운 마음과도 같다. 오븐을 여는 순간, 수플레의 한가운데는
완벽한 아름다움으로 부풀어 있지만, 한순간 폭삭 꺼져버린다. 마치 예측할 수 없는 우리의 인생처럼."이라는 글처럼, 알 수없고 완벽하지 않은
인생이지만, 그렇기에 더 빛나고 맛있는 것도 인생이 아닐까 싶다.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그 사소하지만, 인생의 작은 행복과 감사함을 다시금
느끼게 되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