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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곤했던 여름이 지나고
태재 지음 / 빌리버튼 / 2017년 11월
평점 :
빈곤했던 여름이 지나고. 작가 태재의 2016년 여름에서부터 2017년 여름까지의 일기를 담은 이 책에는 빈곤했던 여름날의 기억과 그 여름을 지난 작가의 진솔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사계절이 있는 게 좋은 것 같아, 그 계절을 따라 변하는 나뭇잎처럼, 우리는 각자의 숲에서 넉넉한 나무로. 이어지는 각 챕터들은 하나의 이야기를 연이어 말하고 있는 것처럼 들린다. ‘불행’의 어울리는 반대말은 ‘다행’이라고 말하는 저자의 말처럼 어쩌면 ‘불행’하지 않다는 것은 참 ‘다행’이다라는 말처럼 들려 오늘도 ‘불행’하지 않아서 ‘다행’이다라고 다독이게 된다.
“그래서 후회에 대해서 말하자면, ‘후회하지 않는다’보다 ‘후회할 수 없다’가 더 적절한 표현일 것이다. …가끔 동료들에게 물어본다. 당신의 친구들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고, 당신과 어떤 것들이 달라졌는지. 어떤 친구가 남아 있고, 어떤 친구 곁에 남게 되던지를. 그렇게 나와 내 친구들도 서로 다른 길을 가겠지만 어떤 휴게소에서는 우연히 만날 수도 있었으면 한다.” -48~49쪽
나 역시 이제껏 여러 회사들을 전전하면서 퇴사를 앞두고 많은 생각들과 고민에 휩싸였다. 과연 이 회사를 그만두고 다른 회사에 취직한다고 해서 지금의 삶과 달라질까, 더 행복할 수 있는 것일까, 라는 연이은 질문에 해답을 내리기가 곤욕스러웠던 것이다. 결국에는 퇴사냐, 아니냐를 놓고 고민하다가 퇴사를 하고 다른 회사로 옮기게 되었지만 어떤 선택이든 ‘후회’가 남게 마련이다. ‘후회하지 않는다’보다 ‘후회할 수 없다’라는 말이 더 와닿는 것은, 스스로의 선택에 느끼는 책임감과 이미 한 선택을 되돌릴 수 없다는 현실을 지극히 잘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후회할 수 없다는 것, 그리고 이 현실을 받아들이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일 게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마음껏 연료껏 달릴 수 있는 허허벌판이 아니라 장애물이 있고 그 장애물마저 바퀴가 달린 세상이잖아. 그러니까 자주 쉬어가도 돼. 목적지까지 장애물을 피해가는 게 아니라 어느 찻집이 분위기 있는지, 어느 횡단보도에 산뜻한 걸음이 있는지를 발견하는 거야.” -67~68쪽
바쁘게 삶을 살아가다 보면 문득 지치는 순간들이 있다. 그 지침은 사람을 한없이 나약하게 만들어서 스스로를 못살게 만들 뿐이다. 지금 내 삶이 제대로 살고 있는 것인지, 자꾸만 비교를 하게 되고 스스로를 초라하게 만든다. 누군가는 그것이 더 나아갈 휴식이라고 하지만, 누군가는 나태하거나 게으른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누구보다 자신이 잘 알고 있지 않을까. 쉼 없이 가다보면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볼 수 없음을,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음을 말이다. 그러니, 자주 쉬어가도 돼, 라고 말하는 작은 위로가 더욱 눈물겹게 느껴진다.
저자의 글 중에 이런 문구가 있었다. 사계절이 있는 것이 참 다행이라고. 추운 겨울이 지나면 다시금 따뜻한 봄이 오고, 더운 여름이 지나면 다시금 선선한 가을이 올 것이라는 기대를 가질 수 있으니 다행이라고. 계속 춥기만 하고 계속 덥기만 하다면 다음이 올 것이라는 기대를 할 수 없을 것이라고. 그 말이 어쩐지 지금의 내 모습을 생각하게 한다. 누구나 지금이 어두컴컴한 암흑이라도 언젠가 따뜻한 빛을 마주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와 희망을 안고 순간을 견뎌낸다. 그러니, 사람에게 ‘기대’와 ‘다음’은 한 걸음 나아갈 수 있는 용기와 희망을 안겨주는 것이다. 지금의 내가 걷고 있는 이 길도 언젠가는 내가 바라던 길이 될 수 있으리라는 ‘다음’ 말이다. 그러니 스스로에게 ‘다음’을 위해 조금 더 걸어보자고 다독이고 힘을 내본다. 꿈꾸던 ‘다음’을 위해 말이다.